'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이 말하는 '가족'과 '사랑'

등록일 2014년12월15일 14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인터스텔라'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틸컷들은 보도를 위해 워너브라더스가 배포한 것입니다. 


SF의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9백만 관객을 넘어서며 '인셉션', '다크나이트 라이즈' 등을 제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국내 최고 흥행 영화로 등극한 '인터스텔라'.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와 인셉션 등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영화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이라고는 하지만 다소 이례적일 정도다. IMAX 티켓의 암표까지 성행할 정도로 매진행렬에, 한국에선 상업적으로 이미 사라진 35mm 필름 상영까지 다시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에 대한 기대감과 우주를 다룬 스케일 큰 볼거리 등 인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홍보의 포인트가 이론으로 무장한 과학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홍보의 작용과 반작용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영화 '콘택트'에도 관여했던 킵 쏜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정도였다는 블랙홀과 웜홀의 메이킹부터 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유수의 대학인 칼텍에서 상대성이론을 공부를 했다는 조너선 놀란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인터스텔라는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홍보를 했고 이는 주효했다.

첨단 과학을 토대로 한 블랙홀과 웜홀을 영상으로 만들어 낸 데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부수적으로 거기서 오는 권위를 통해 일종의 과학교육 영화의 지위까지 누리게 되었다. 마치 과거에 게임을 하기 위한 PC나 만화책에 교육용이란 이름이 붙어 있듯 말이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감독의 전작인 인셉션에 등장한 대사처럼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가장 먼저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하물며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홍보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과학의 프레임으로만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관람이나 감상보다 맞았나 틀렸나 검증에 더 주안점을 두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놀란은 분명 스티븐 스필버그에 찬미를 바치며 가족영화가 일종의 '멸칭'으로 쓰이는 현 상황에서 자신이 아이였을 때 보았던 도전적이고 멋진 가족 영화를 인터스텔라로 재현하고 싶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 빈치가 수학을 즐겨했고 미켈란젤로가 해부학에 정통해서 이를 작품에 적용했다고 해도 모나리자와 다비드는 미술 작품이다. 작품에서 수학적인 아름다움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수학 공식은 아니다. 자업자득이라고는 하지만 인터스텔라를 과학적으로도 즐기는 것이 아닌, 과학의 프레임으로만 가두는 것은 좀 더 다양한 감상으로 큰 그림을 보는데 다소 적당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 주자가 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내한 GV 당시 이런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을 주요 테마로 다루는 작품은 반드시 모순에 봉착하게 되어 있다. 감독은 이 모순을 좀 더 복잡한 추가 설정으로 회피하는 하드SF의 길과 모순을 끌어안은 채로 캐릭터의 감정의 흐름을 존중하는 길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후자를 택했다"라고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 역시 가족 영화로서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으나 홍보를 전자에 치중한 나머지 지금과 같은 호불호의 파열음이 더 심해진 것이 아닐까? 


물론 호불호의 파열음이 괜한 소리는 아니다. 설정보다 감정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가족영화로는 감동적인 장면도 많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인물의 감정이 납득이 가지 않는 면이 있고, 개연성이 좀 떨어져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의 전작 중 전체적으로 다소 덜컹거리는 면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가족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려 노력하는 영웅 서사라는 면에 있어서는 인셉션을 떠오르게 만든다.

보는 사람의 원체험을 상기하게 만드는 영화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스텔라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 때부터 인연을 맺은 물리학자 킵 쏜과 프로듀서 린다 옵스트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 바톤을 이어받은 크리스토퍼 놀란. 스티븐 스필버그가 워호스로 헐리웃 고전 영화 그 자체를 재현해낸 것처럼, 인터스텔라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우리 세대의 영화적 원점 중 하나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오늘날에 재현해내고자 노력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는 인터스텔라를 만들며 엠파이어지와의 인터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해 J. J. 에이브럼스의 '슈퍼 8'와 같은 오마쥬가 아닌 '미지와의 조우'나 '죠스' 같은 영화에 담긴 위대한 정신을 오늘날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했다. CG 대신 미니어처와 SFX를 최대한 동원한 장면들, 프론티어 정신과 가족애를 앞세운 테마, LP의 노이즈 낀 음악처럼 아련한 필름 그레인 등 인터스텔라는 새롭다기보다 미지와 우주를 동경했던 예전 그 시절을 복기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IMAX와 필름 그리고 CG가 아닌 실재하는 물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 포맷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우주보다 지구의 장면들이다.

놀란은 이 영화에서 최대한 현실감을 살리기를 바랐고, VFX 슈퍼바이저인 폴 프랭클린 역시 다크나이트 라이즈나 인셉션과 비교하면 인터스텔라의 시각효과 장면은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모험 가득한 이미지를 창조하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스텔라의 우주는 웜홀 진입과 블랙홀 가르강튀아에 근접할 때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스케일은 크지만 오히려 지구 장면들보다 스펙터클해 보이지는 않는다. 


놀란이 인터스텔라를 통해 스필버그 가족영화에 대한 원체험을 재현하고 싶어했듯, 인터스텔라를 보고 관객들이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도 굉장히 많다. 놀란이 인터스텔라를 만드는데 직접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과 필립 카우프먼의 '필사의 도전'은 물론이고, 다소 동떨어져 보이지만 조카딸을 구하기 위해 광활한 미 대륙을 떠도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색자'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5차원의 존재는 아서 C. 클라크, 조 홀드먼 등 인류의 단일 정신체 진화를 그린 수많은 SF 소설들도 떠오르게 만든다. 


물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본 사람이라면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지는 사람의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 속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그린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과 '톱을 노려라2!'부터 생각날 것이다. 나아가 '2001 야화'의 에피소드들, 화성을 무대로 초차원의 존재인 테서렉트와 조우하는 '극한의 별', 축제 같았던 세상이 고요하게 멸망해 갈 무렵을 그린 '카페 알파' 등 인터스텔라의 장면과 상황에 따라 생각나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다.

이처럼 자신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경험을 현재에 다시 반추해보게 만드는 점도 인터스텔라의 재밌는 감상 중 하나가 아닐까? 이 낭만과 추억으로 가득한 장면들은 마지막 스페이스 콜로니에서도 드러난다. 중력 방정식을 풀어냄으로써 중력을 직접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라면 굳이 어렸을 적 과학백과에서 보던 것처럼 원통형 디자인의 스페이스 콜로니를 만들 것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어렸을 적 보아 왔던 그 모습들의 재현을 통해 노스텔지어를 최대한 끌어내 활용한다.

별과 별 사이를 뜻하는 제목처럼 인터스텔라는 그 별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그린다. 웜홀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감히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동떨어진 다른 은하계의 별에서도 사람들 사이에는 감정이 흐른다. 서로 만나서 반가워하고 싸우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서로가 어디에 있건, 어느 시간대에 살건 말이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인터스텔라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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