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바람의 검심: 교토대화재/전설의 최후, 전작의 장점들은 어디로 갔나

등록일 2015년03월06일 17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바람의 검심: 교토대화재편'과 '바람의 검심: 전설의 최후편'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틸샷들은 보도를 위해 티조이/메가박스 플러스엠에서 배포한 것입니다.


'바람의 검심'은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과 함께 20세기 소년 점프의 대표 만화 중 하나로 꼽히는 걸작 액션만화다.

막부 말 동란기에 어둠 속에서 암약하며 '칼잡이 발도재'란 이름의 전설로 남은 주인공 켄신은 유신 성립 후 불살의 맹세를 지키며 역날검을 들고 일본 전국을 떠돈다. 중세가 근대로 전환되는 메이지 유신기의 혼란스러운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현실의 한계 속에서도 각자의 사정과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싸우고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면면은 빼어난 매력을 발산하며 만화팬들을 사로잡았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바람의 검심'은 TV 장편 애니메이션과 OVA, 극장판 등 무수한 미디어믹스가 진행됐지만 실사 영화화만큼은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 연재 종료 후 12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2012년, 바람의 검심이 마침내 실사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된 '바람의 검심' 실사 영화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화 원작의 일본 실사 영화라는 이미지의 한계를 일정 부분 뛰어넘은 좋은 액션영화였다.


흔히 컷 바이 컷으로 원작을 옮기는데 급급한 일본 만화 원작 실사 영화와는 달리 원작의 도쿄편을 적극적으로 각색한 바람의 검심은 우도 진에를 켄신의 대립항으로 키워 영화만의 독자적인 이야기 영역을 구축했다. 또한 실제 역사 속 토바 후시미 전쟁의 일반병 전투로 영화를 시작해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서서히 만화 속 주역들의 와이어 액션으로 그 수위를 높여 관객이 시나브로 액션에 젖어들도록 배려함으로써 액션의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인기 아이돌 배우를 동원해 폼만 잡다 코스프레쇼로 끝나곤 하는 만화 원작 일본 영화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히무라 켄신 역을 맡은 사토 타케루를 비롯, 라이벌인 사이토 하지메 역의 에구치 요스케부터 악당인 칸류 역의 카가와 테루유키까지 원작의 캐릭터와 잘 매치된 연기파 배우들을 적소에 배치하는 것을 잊지 않아 바람의 검심은 만화 원작 일본영화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극복한 성공 사례가 되었다.

이 성공에 힘입어 바람의 검심은 2014년 3부작 실사 영화로 확장된다. 기존작을 1편으로 삼아 2편과 3편을 동시 제작한 것. 이번에 실사화된 원작은 바람의 검심의 진미라고 할 수 있는 교토편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1편보다 보다 더 멋진 영화를 기대했다.

바람의 검심의 가장 재밌는 부분을 원작으로 한 이번 교토대화재편과 전설의 최후편은 좋은 1편에 부끄럽지 않은 후속작이 되었을까?


안타깝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마치 감독이나 제작진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1편의 장점은 대부분 잊고 극복했던 단점은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평소의(?) 만화 원작 일본 영화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이번 교토대화재편과 전설의 최후편의 가장 큰 단점은 스토리 각색을 이상하게 한 채 축약으로 점철했다는 것이다. 교토편의 원작 캐릭터들을 무리하게 다 등장시키고 있는데 시간 관계상 내용을 축약하다보니 기능적으로 등장만 해놓고 의미 없이 퇴장한다.


교토대화재 편에서 최종결전의 큰 역할을 할 것처럼 부른 '십본도'는 전설의 최후편에서 전투는 커녕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리는 일 없이 '맹검의 우스이'처럼 엑스트라나 다름없는 최후를 맞거나 '안지'처럼 먹히지도 않는 개그를 하다 퇴장해버린다.


원작 바람의 검심은 메인 캐릭터뿐 아니라 적이 되는 캐릭터들까지 나름의 사연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칸 코믹스의 빅 팬이라는 원작자 와츠키 노부히로의 취향대로 비유하자면 바람의 검심의 매력있는 적 캐릭터들은 각자의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스파이더맨의 빌런들과 흡사하달까?

그런 의미에서 바람의 검심 후속 2부작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패착과 닮은 구석이 있다. 폐불훼석의 밤 에피소드가 없는 안지가, 어린 시절 불우한 사건이 없는 소지로가, 마리아 루즈 호 사건이 없는 유미가 등장해봤자 그 캐릭터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정번중' 부하들의 묘비 앞에 바칠 최강이라는 이름의 꽃을 찾는 배경이 없는 아오시가, 절대적인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는, 숨겨진 뜻이 보이지 않는 비기 전수 묘사와 스승 히코 세이쥬로의 캐릭터는 어떤가? 영화에 그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배경 스토리 없이 캐릭터의 겉모습만 등장시켜봐야 폼만 잡는 코스프레쇼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반지의 제왕'이 원작 소설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아이언맨'이나 '어벤져스'가 원작 그래픽 노블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고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2차 창작인 동인지나 팬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만든 영화라면 원작은 (재미있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수단, 보조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바람의 검심 교토대화재편과 전설의 최후편은 팬 서비스 이상의 가치가 없다. 교토대화재편과 전설의 최후편은 1편의 미덕을 이어받아 십본도와 아오시 등 영화에서 의미 없이 등장한 캐릭터들을 과감히 정리하거나 캐릭터들을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각색을 했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만 잔뜩 집어넣은 영화의 어설픈 스토리는 액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원작에 등장한 '칼사냥꾼 쵸우'의 '박인내태도' 등 지나치게 만화에 가까운 장면을 덜어내고 비천어검류 오의 '천상용섬' 단 하나를 제외하곤 여전히 아무 기술명도 외치지 않는 등 전작에 이어 영화는 리얼 액션을 표방하고 있다. 1편만큼은 아니지만 카미키 류노스케가 맡은 세타 소지로와의 검격 등 인상적인 액션도 몇 존재한다.

하지만 널뛰는 이야기와 중구난방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로 인해 액션마저 꼬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히무라 켄신과 시시오 마코토의 최종결전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시노모리 아오시를 비롯해 사이토 하지메, 사가라 사노스케 등이 무리하게 4대1로 싸우는 장면에 이르면 배우간 액션이 꼬여, 들어갈 타이밍을 못 잡아 주춤거리는 배우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라 실소를 넘어 안쓰러울 정도이다. 이 역시 아무리 원작의 최종결전이 그랬다고는 해도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잘라내거나 압축했어야 할 부분이다.

여기에 세타 소지로가 켄신과의 결전 끝에 낸 옳음의 정의와 사도지마 호우지의 자살로 드러낸 당시 일본 정부의 무능과 폭주라는 역사 인식까지, 원작 교토편의 에센스를 깡그리 무시한 채 이토 히로부미의 "사무라이들에게 경례!"로 끝맺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어이가 없어 쓴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바람의 검심: 교토대화재편과 전설의 최후편은 좋은 액션 영화가 되려면 적절한 스토리 각색과 캐릭터 메이킹이 필요하다는 교과서적인 반면교사다. 아울러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었던 만화 원작 일본 영화가 아직 갈길이 멀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바람의 검심: 도쿄대화제/전설의 최후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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