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인터뷰]거장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 담으려 한 것

등록일 2017년10월26일 13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일본을 넘어 아시아, 세계 전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이 빅 히트작이 그 흥행 만큼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서도 상을 휩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물론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쓸어담고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카타부치 스나오(片渕須直) 감독의 '이 세상의 한구석에'(この世界の片隅に)였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2017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 24일 폐막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도 장편 경쟁부문에 초대되어 대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TV시리즈 작업을 함께하기도 한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은 그 후 성장과 일상을 다룬 '마녀배달부 키키' 제작에 참여해 감독직을 수행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복귀하며 감독보를 맡았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기존의 지브리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카타부치 감독의 영향일 것이다.

 

카타부치 감독은 '블랙 라군' 등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을 독특한 감각으로 풀어내는가 하면 '아리테 히메',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 등 메시지성이 강하면서도 디테일에 집중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다수 선보여 왔다. 최근에는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에 이어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서 '리얼해 보이는' 게 아닌 진짜 리얼한 생활상, 실제 삶의 모습을 그려내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사실 그는 게이머들과도 연이 깊은 크리에이터. '포포로크로이스 이야기'의 애니메이션 파트를 맡았고 '에이스컴뱃4'의 인 게임 애니메이션에 이어 '에이스컴뱃5'에서는 각본을 담당한 바 있다. 최근에는 출시를 앞둔 최신작 '에이스컴뱃7'에 각본가로 다시 참여해 에이스컴뱃 시리즈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카타부치 감독의 최신작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히로시마와 군항 쿠레에서 살아가는 '스즈'라는 주인공이 성장해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며 그녀의 상실과 회복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피상적으로 바라보면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그렸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작품을 잘 뜯어보면 카타부치 감독이 담고자 한 메시지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카타부치 감독과 '세상의 한 구석에서' 제작과정에 대해, 작품 해석에 대해 기자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그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음을 밝혀 둔다.

기자는 이 영화는 해설을 먼저 본 후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전지식 없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 독자라면 11월 16일로 예정된 정식 개봉에서 영화를 본 후에 이 인터뷰를 읽어보기 바란다.

 

이혁진 기자: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2015년이었나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는 점, 그리고 그 크라우드 펀딩에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이 작품은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모험이나 영웅적인 요소가 없는 작품이지요. 저는 그런 작품을 전부터 만들어왔지만 아무래도 관객들에게 그런 작품들을 보여드릴, 관객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실감해 왔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자요.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용기를 얻어서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근거가 되는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숫자 말이죠. 영웅담이 아니라 생활을 그린 작품을 봐줄 분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라우드 펀딩이 좋다고 생각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그냥 지지표명을 해주시는 분들이 아니라 돈을 내 주시면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죠. 그런 분들, 보고 싶다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 다양한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듀서인 마키 씨는 클라우드 펀딩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어요.(웃음) 3000명 정도는 모여줄 거라고 예상했죠. 그런데 실제로는 3000명을 훨씬 넘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예상 이상이었죠.(*)

 

* 3374명이 펀딩에 참여해 3912만 1920엔이 모였다

 

코우노 후미요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셨습니다.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고 생각하신 계기는 뭔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가 작중 그리고 있는 시기가 1955년입니다. 거기에 나온 아이들의 연령을 생각하면 이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임신한 건 전쟁 기간 중이라는 이야기가 되죠.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을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연령이 궁금해지더군요. 신코의 어머니는 1955년에 29세였습니다. 즉 그녀는 전쟁 중, 10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것이죠. 이어서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에서는 전쟁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모습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에는 전쟁을 겪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당초 신코의 어머니의 10년 전을 그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작자인 타카기 노부코씨의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 자료조사에 도움을 준 호후시 관계자에게 이 만화가 좋다고 추천을 받았습니다.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에서 직접 연결된 느낌이 들었죠.

 

만화를 읽고 '이 작품은 내가 해 온 방법론에 가까운 방법론으로 그려졌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중 무대가 되는 시대의 생활모습을 '이렇다'고 정해두고 묘사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다시 조사해서 이제까지 우리가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생각하던 '전쟁 중의 당시 모습'과는 다르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조사를 해서 이런 결과가 되었겠다'는 게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에서 1955년을 그려낼 때에도 했던 작업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원작에 친근감이 느껴져 원작자인 코우노 후미요씨와 만나고 싶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답장이 왔는데, 제가 과거 참여했던 TV 애니메이션 '명견 래쉬'를 알고 계셨고 제가 그 작품의 감독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어릴 적에 명견 래쉬를 보고 감명받았다고 해 주셔서 고마웠죠. 제가 코우노 작가와 마찬가지로 생활의 시점에서 작품을 그려왔다는 점과 그렇게 생활을 그린 작품을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흥미를 끌어내고 연결시키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이해해 주셨습니다.

 

코우노 후미요씨를 만나서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은 기적적인 일로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낍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서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40년대의 마을, 생활양식 등이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어 놀랐습니다.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하신 건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스즈가 살던 당시 모습은 코우노 작가가 원작 만화를 그릴 때 취재를 잘 하셨더군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었고 어머니도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셨고, 그렇게 가까운 분들을 취재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당시 사람들이 남긴 당시의 일기를 많이 봤습니다. 당시를 실제 체험한 분이라도 그 후 긴 시간이 수십년 지나며 기억이 변한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때 쓴 일기에는 그 때 느낀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전쟁 중이지만 '꽃이 이뻤다'고 쓰여있기도 했는데, '이렇게 느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도 잊어버린 채 살고 있지만 계절이 바뀌면 꽃은 피고 바람이 불고 전쟁 중에도 그건 당연히 거기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고 평화나 행복을 느낀 분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이불을 널었다' 같은 걸 보며 '당연히 그런 일도 있었겠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평범한 주부가 쓴 일기도 보고 쿠레에서 군함을 만들던 해군기사 아버지를 둔 소년의 일기도 봤습니다. 다양한 분들의 일기를 보고 당시 사람들의 생각, 신념을 확인했습니다.

 

잡지나 신문도 봤지만 거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 일기에 잔뜩 나와 있었습니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더군요. 동화의 양을 늘려서 가능했던 건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동화도 충분히 넣으려 했지만 그 전에 연구를 좀 더 해서 응용한 게 컸지 않나 합니다.

 

시각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인간이 어디를 보고 사물과 움직임을 받아들이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애니메이션의 원리와도 닿아있는 학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이란 우리가 그림을 한장 한장 그려서 이어붙여 사람들이 그것을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어진 그림을 움직임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 시각심리학입니다.

 

아직 모든 부분에 답이 나와있진 않습니다만 시각심리학을 연구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표현하면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자연스러운 움직임보다는 멋있고 보기 좋은 표현으로 조금 다르게 발전한 면도 있지요. 우리가 예전에 하던, 지금까지 해온 걸 제대로 하면 된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화도 충분히 넣으려 했습니다. 한국 스탭들, DR무비에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DR무비에서 만들어 준 동화는 단순히 양만 채워준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완성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시기가 시기인만큼 한국 관객들은 좀 더 따가운, 의혹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될 겁니다. 전쟁 중의 모습을 어떤 시각에서 그리려 하신 건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그렇지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스즈의 생각과 기분입니다. 그게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 관객들이 좀 더 불편한 시선을 보낼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어떻게'라는 관념으로 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잘 모르는 것을 영화에 씌워서 무언가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좁은 시야에 맞춰 그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다는 리얼리티를 중시하려 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스즈가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스즈의 입을 빌려 우리(일본인)가, 스즈 본인이 누군가를 괴롭혔다, 고통스럽게 만들고 말았다는 걸 말하려고 해도 실상 스즈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으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즈가 바다 건너에서 건너온 음식을 먹었던 건 사실이고 그건 스즈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즈의 대사나 행동에서 그 부분을 리얼리티로 그리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전쟁 중 일본의 모습을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로만 봐 왔습니다. 그건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만들며 조사해 보니 생각보다 더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봐 온 전쟁 중 모습, 생활상은 실제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중 일본의 민가 창문에는 폭탄이 떨어져도 창문이 깨져 날아가지 않도록 종이 테이프가 발라져 있는 표현이 흔히 나옵니다만 그런 건 실제로는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런 장면이 등장하는 대목은 중국과 전쟁을 시작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정부가 프로파간다로 일본 시민들의 전쟁의식을 높이기 위해 방공 연습을 했는데, 시민들에게 폭탄이 떨어지면 이렇게 하라고 하며 위기감을 높이기 위해 전파한 겁니다.

 

전쟁이 격화되어 미국에서 실제로 폭격을 하는 시기가 되면 그런 건 멍청한 짓이라는 걸 모두 알게 돼서 아무도 안 하게 됩니다. 애초에 미국이 투하한 폭탄은 폭발하는 게 아니라 소이탄이 많았습니다. 창문에 종이 테이프를 바르는 건 소이탄 앞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유리가 깨져서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 예방하기 위해 하라는 건데 실제 폭탄이 떨어지면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군대도 정부도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용 매뉴얼에 넣은 겁니다.

 

당시 사진을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도 종이 테이프같은 건 바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건 전쟁 초기의 프로파간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확인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그렸던 것 아닌가,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온 것들은 실제 모습과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자면, 흔히 전쟁 중 일본의 여성들은 몸뻬(もんぺ, 여성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바지)를 입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영화에서 스즈도 몸뻬를 입지요.

 

원작 만화에서 스즈가 몸뻬를 입는 것은 1944년 들어서입니다. 일본은 1937년부터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고 1941년에는 미국과의 전쟁도 시작했지만 1943년까지는 아무도 몸뻬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전쟁 초의 프로파간다에서만 등장합니다.

 

당시 잡지에 그 이유가 확실하게 나와 있더군요. 몸뻬는 세련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있어 다들 안 입었던 겁니다. 멋지고 아름답게 입고 싶은 보통 여성들은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1943년 11~12월경이 되면 몸뻬를 입게 됩니다. 당시 물품들이 배급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천도 배급제가 되었고 배급이 잘 안되니 추워서 입은 겁니다. 봄이 오고 따뜻해지니 다들 몸뻬를 벗어버립니다. 정부에서 열심히 그런 모습으로 전쟁의식을 높이려 한 것을 당시의 실제 여성들은 다들 거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폭탄이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빨리 도망가기 위해 가벼운 복장으로 편리해서 하루 종일 몸뻬를 입게 됩니다.

 

스즈가 극중 입는 옷들을 살펴보면 어린아이 때에는 기모노를 입고 도중부터는 스커트를 입게 되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전쟁이 격화되며 스커트를 못 입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가 끝날 때 엔딩에서는 다시 스커트를 입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실 때는 꼭 엔딩까지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스즈의 세계가 되돌아왔다,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봐야 할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런 의식이 있으셨는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전작인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도 그랬죠.

 

현재 일본에는 아이들 대상 영화를 만들어도 그게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시스템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들 대상 영화로 극장에 걸리는 것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TV시리즈가 이어져 온, 20년 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하던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도라에몽'같은 작품들이 그렇죠.

부모에게 친숙한 그런 작품들이나 디즈니, 지브리 같이 유명한 작품에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데려가는 구조입니다. 아이들이 '저게 보고 싶으니 보러 가요!'라고 해서 극장으로 가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보러가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도 어른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보고 이 작품이라면 아이들을 데려가서 보자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봤고 실제 그렇게 됐습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도 어른들이 먼저 봐 주길 바랐습니다. 그랬더니 영화관에서 보고 돌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영화관을 찾는 케이스가 늘더군요. 극장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러오는 경우가 많다는데 들어보면 자녀들이 4~50대에 부모님은 60대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보다 한 세대 전 분들은 전쟁을 겪었고 전쟁 중의 생활상을 알고 있습니다. 스즈가 살던 시대를 체험했고 아는 사람들이지요. 그렇지 않은 다음 세대가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 못지않게 그 시절을 겪은 부모님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전쟁을 겪은) 부모들이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전쟁 중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전쟁 중 겪은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 그것이 특별히 괴롭고 슬픈 경험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전쟁 중에도 평범하게 살았던 그들에게 당시 이야기는 평범한, 보통 일이라 말하지 않은 겁니다. 보통 이야기를 일부러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떨어진 폭탄에 크게 다쳤다거나 원폭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말을 하지만 평범하게 생활을 했다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 분들,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평범한 경험도 말할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11월 영화를 처음 공개하고 방학이 되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엄마 아빠에 손자 손녀들까지 3대가 함께 와서 영화를 같이 보는 분들도 많더군요.

 

DVD와 블루레이를 빨리 내달라는 요청도 많았는데 다리가 아파서 극장을 찾지 못하는 고령의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실현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게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80대의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와서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와 함께 보러간 마지막 영화가 이 영화라 좋았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DVD로 한번 더 같이 보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전쟁 중 생활을 알고 있는 분들이 당시 자기들이 보고 느끼던 자기 주변의 세계와 이 영화 속 세계가 같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은 당시 어렸거나 젊었던 분들입니다. 그 때 어른이었다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었을 테고 내 주변 세상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스즈는 당시 18세에서 19세 정도였죠. 어린 아이들에게 세계는 작았습니다. 그 작은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 제대로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그 밖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극장에서 만났습니다. 스즈와 나이가 같은 분도 와 주셨습니다. 90을 넘긴 분이었죠. 영화관이 만원이라 좌석이 없어서 서서 봐야한다고 해도 꼭 보고싶다고 하는 90대 관객이 있어 영화관에서 곤란해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당시를 그리워하는 게 아닙니다. 전쟁 중 세상을 그린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있었지만 언제나 관념적으로 당시를 그려 왔습니다. '저건 뭔가 다른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는 진짜 다르지 않은, 당시의 냄새와 풍경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해서 영화관에 와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1960년대생이라 전쟁이 끝나고 15년 뒤에 태어나서 그런 전쟁 중의 생활상은 직접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이나 저보다도 젊은 코우노 후미요 작가가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건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작은 세계의 바깥에는 큰 세계가 있고 다음 스텝으로 그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TV나 극장에서 본 전쟁 중의 일본과 다른 모습이 그려져 있는 걸 봤으니, 다음에는 지금까지 듣고 봐 온 전쟁 양상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진실이란 무엇일까를 많은 분들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30분 가량의 분량이 추가되는 '이 세상의 한구석에' 확장판을 제작중이신데, 어떤 부분이 추가되는 것인가요? 현재 버전만으로 온전히 완성된 영화라고 느껴졌습니다만...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스즈가 결혼해서 쿠레로 이주하는 건 1944년입니다. 그리고 1946년 1월까지의 생활이 극중에서 그려지죠.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순서대로 진행되는 도중 1944년 가을 부분의 묘사가 없다는 걸 눈치채실 수 있을 겁니다.

 

원작에는 그 때 일어난 사건도 묘사가 됩니다만, 영화에서는 슈사쿠와 결혼한 후의 스즈와 시누이인 케이코, 두 사람의 인생을 기둥으로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영화의 전개가 그렇게 되며 스즈와 결혼하는 슈사쿠의 이야기는 좀 빠져버렸습니다.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유곽의 린에 대한 이야기도 빠졌죠. 스즈와 케이코의 관계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둥이 슈사쿠와 스즈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이번에는 빼고 케이코와 스즈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슈사쿠의 이야기는 원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원작을 읽은 분들은 그 부분의 이야기가 없는 것에 부족함을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잔뜩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프로듀서인 마키 씨에게 꼭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영화가 흥행하며 마키 씨가 다른 곳에서 30분 더 만들 거라고 발표해버렸습니다.(**)

 

마키 씨는 제가 처음에 그린 30분 분량이 더 있는 긴 버전의 콘티를 읽은 상태니까 알고 있기도 했고요.

 

** 프로듀서인 마키 타로가 영화가 일정 수준의 흥행에 성공하면 30분 분량이 추가된 긴 버전을 제작하겠다고 밝혔는데 달성하며 제작이 기정사실화됐다

 

슈사쿠와 린의 이야기가 추가되면 느낌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현재 버전의 영화는 그대로 별개의 영화로 남겨둬야지요. 30분 추가 버전은 현재의 영화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완전판 같은 개념이 아닌) 별개의 영화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겹치는 부분은 있지만 조금 다른 영화가 2개 동시에 존재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30분 추가 버전은 좀 더 어른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작품이 될 겁니다. 스즈와 슈사쿠, 린 사이의 3각관계가 그려지게 되지요.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는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즈는 당시 일본 여성들이 대개 그랬듯 자기가 태어나 자란 가족에게서 떨어져 다른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했는데, 그 새로운 가족은 자기가 원해서 된 가족이 아닙니다. 새로운 가족에게 받아들여지게 될지, 새로운 가족(남편)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르게 될지 여부는 운에 맡겨야 했죠.

 

어쩌면 그런 만남이 계기가 되어 진짜 가족으로서 애정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코우노 후미요 작가는 원작 마지막 부분에 시로 그것을 표현해 놨습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마지막에 노래로 표현했는데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프레이즈가 있습니다. 만남이 어떤 형태였건 만나게 된 순간 관계는 생겨나는 것이고 만남의 소중함을 우리는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 같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부부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이 생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만나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만남에서 사랑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말미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원작에도 있는 장면입니다. 현재 한국 국기와는 조금 생김새가 다른 당시의 태극기입니다. 전시 일본은 일장기 게양만 허용되던 곳인데 전쟁이 끝나자 태극기가 게양되는 장면입니다. 당시에 실제 쓰이던 깃발의 문양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스즈가 태극기게 게양되는 걸 보고 자신이 은연중 폭력에 가담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폭력에 가담했다는 인식 대신 해외에서 들어온 식량을 먹었다는 쪽으로 대사가 바뀌었죠. 하지만 태극기 게양 신은 빼지 않으셨습니다. 왜인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극중 스즈는 해군 병사가 된 테츠에게 '너만은 평범하게 있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건 전쟁이나 전쟁의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달라는 의미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쟁 중 많은 것을 잃어버리며 스즈는 어느 새 머리 위를 날아가는 미국 폭격기를 미워하게 되고 그에 대해 '지지 않겠다'고 외치게 됩니다.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싸움, 전쟁이라고 인식하게 되어버립니다. 전쟁을 겪으며 스즈가 변한 것이죠. 희생을 겪으며 적개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전쟁이 끝나버리자 스즈는 차가운 물을 머리에 뒤집어 쓴 기분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보통에서 멀어졌다는 것을요. 그런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오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라가 전쟁에 져서 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마음이 전쟁에 가담해 버린 것이 안타깝고 분해서 우는 겁니다.

 

그런 안타까움과 분함을 만들어내는 것 중 하나가 당시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일본 사회에서 힘겹게 사회와 어긋난 상태로 살고있던 모습을 알게된 것 아닌가 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스즈가 자기 몸은 바다 건너에서 온 쌀과 곡물로 되어 있다고 외치죠.

 

스즈는 조선 사람들과의 접점이 별로 없었지만 내가 그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으니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온 걸 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된 겁니다. 암시장에 설탕을 사러가는 대목에서 시장에서 대만 쌀을 팔고 있는 장면이 있었죠. 당시의 조선, 대만, 중국에서 가져온 것들을 스즈와 일본 사람들은 먹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것들을 먹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그게 내 몸을 형성한다는 걸 깨닫고 전쟁에 가담하는 전쟁의식에서 갑자기 깨게 되는 겁니다.

 

태극기 게양 신은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당시 실제로도 쿠레에는 강제로 끌려온, 혹은 다른 형태로 정착한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대인사 중 그렇게 쿠레에 정착한 분 중 한분을 직접 만난 적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쿠레로 이주해 쭉 살고 계셨던 할머니가 영화관에 이 영화를 보러 와 주셨습니다. 상냥한 분이었죠. 영화를 보시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프랑스 앙시에서 수상한 데 이어 한국 부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그랑프리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어떤 부분이 받아들여졌다고 보십니까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마이마이 신코 이야기'에서는 지방의 시골 생활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이 거기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그린 작품입니다. 캐나다 영화제에서 그 영화를 보신 분이 '내가 어릴 때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라고 하시더군요. 이탈리아 영화관에서 보신 분도 자기 어릴 때를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뭔가 아이들은 이런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의 경우  영국, 프랑스에서도 많은 분들이 봐 주셨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나라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전쟁을 벌인 나라들입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적들의 나라라고 생각해고 있던 그 시절 일본에 이런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말해 주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여기서도 보편적인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걸 발견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 여러분과도 이 영화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10여년 전부터 뵙게 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각본 제의를 왜 거절하신 건가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웃음) 제가 거절했다기보다는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완성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는 나우시카가 자살하는 영화였습니다. 마지막에 폭주하는 오우무 앞에 뛰어들어 자신을 희생하는 영화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나 살아나게 되지만 이런 이야기라면 내가 맡지 않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도 마찬가지였죠. 시타와 파즈는 마지막에 마법의 말을 외쳐서 자신들을 희생하려 합니다. 저로선 그런 이야기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설령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는 다른 길을 찾는 주인공을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아리테 히메' 제작에 9년, 이번 '이 세상의 한구석에' 제작에는 6년이 걸렸습니다. 카타부치 감독의 작품을 더 많이 보고싶은 팬들의 기다림이 너무 긴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은 좀 빨리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그러게요. 정말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마키 씨, 다음 작품은 더 빨리 보고 싶으시다는데 어쩌죠?

 

마키 타로 프로듀서: 저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아마 카타부치 감독의 다음 작품을 가장 보고싶어하는 사람은 저일 겁니다. 빨리 만들어 주세요 카타부치 감독.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들고 싶은 게 많은데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만들지 않으면 나이를 먹어 버리니까요. 만들고 싶은 건 정말 잔뜩 있습니다. 뭐부터 할까가 문제죠. 관객 여러분은 제가 만든 걸 순서대로 볼 수 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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