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의 게임노트]쓰나미 코앞까지 밀려왔는데, 게임업계 준비되어 있나

등록일 2018년04월12일 10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국내에서 게임산업은 그 규모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산업이었던 게 사실이다. 모바일게임 시대로 접어들며 국민 대다수가 게임을 접하고, 플레이하게 되었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는 급격히 커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엿보인다. 게임산업이 화제의 중심으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여기저기서 받는다. 정부 부처들의 관심이 커졌고 게임산업, 게임업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정부 부처 및 국회 토론회, 사례수집, 연구조사도 크게 늘고있다.

주목할 지점은 부정적인 사례, 문제가 더 많이 거론되고 정부 부처의 관심도 게임업계의 '문제점'에 대한 것이라는 것. 수면 위로 드러난, 혹은 아직 수면 아래에 있는 이야기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파열음 1. 공정거래위원회가 넥슨, 넷마블, 넥스트플로어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서비스중인 온라인, 모바일게임들의 확률 고지를 문제삼은 것으로, 세 회사 모두 1년 이상 전에 일어난 일로 과징금을 내게됐다.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한참 전 일어난 일의 결과가 늦게나온 것일 뿐 특별히 큰일이 아니라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지난 수년간 게임업계는 자율규제로 확률을 공지하자면서도 세부확률은 공개하지 않아왔다. 말 그대로 자율규제이다 보니 지키지 않는 게임도 많았고 해외에서 수입한 게임은 개발사가 원치 않는다는 걸 방패로 눈을 감아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공정위는 물론 관계부처에서는 더 이상 게임의 고액 과금 피해사례를 확률 고지로 해결될 수준의 단순한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 과소비 이야기가 나오고, 셧다운제 시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규제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며 게임회사들이 '선물하기', '경매장 등 보조 시스템'을 활용해 과금액 제한을 피해가고 있다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확률문제를 넘어 과소비 문제로까지 논의가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게임회사들은 확률을 앞으로 공개하겠다는 수준의 사후대응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파열음 2. 고용노동부가 게임회사들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넷마블 서장원 부사장은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오랫동안 게임업계에서는 게임 개발이 다른 산업군의 작업과는 성격, 프로세스가 달라 특수한 노동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해 왔다. 야근, 주말근무가 강요되는 크런치모드가 관행적으로 실시되었고 노동법대로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정부)의 개입이 시작되었고, 사회적, 보편적 시각에서 바라본 게임업계의 관행적 노동행태는 '노동자 탄압', '말이 안되는 형태'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뒤늦게 수당을 지급하고 노동시간을 엄격히 지키자고 결의하는 건 그나마 낫다. 어떤 게임사는 노동부가 제출을 요구한 자료를 조작하다 발각되어 형사고발이 예정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정도면 이제까지 정부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방종하게 운영해 온 게임회사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부의 개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의 개입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에 가깝다. 관행이 아닌 법과 제도에 맞춰 게임을 만들고 회사를 운영하라는 당연한 요구에 적응해나가야 할 일이다.

파열음 3. 두 가지 시선, '메갈사태' 혹은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 탄압사태'.

셧다운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여 게임업계, 게이머들의 공공의 적이 된 여성가족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명분도 명확하다. 여성 노동자와 여성 게이머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저들이 특정 성우가, 일러스트레이터가, 개발자가 마음에 안든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회사에서 이를 수용했다면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유저에게만 설명하면 되었지만 이제 정부에, 국회에 불려가 같은 질문을 받게될 텐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해둬야 할 것이다.

성별을 떠나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서 벌어지는 사이버불링 행위가 지나치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최근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는 물론 각종 단체에서 사례를 수집하고 전문가, 피해자들을 불러 의견을 수렴하며 제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게임회사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뭘 해야할지, 그리고 지금까지 뭘 해 왔는지에 대한 대답이 지금쯤은 준비되어 있어야 할 시점이다.

해외 게임사가 AI를 동원해 사이버불링을 막고, 건전한 게임이용을 위해 연대한다는 소식을 먼나라 이야기로 흘려넘기며 손놓고 있던, 혹은 그 이상으로 한심한 대응을 해 온 회사가 있더라도 적응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노력중인 부처도 있고 관심을 가진 의원들도 있다. 문화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 그리고 몇몇 국회의원들이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방향은 대기업 중심보다는 중소기업, 소규모 개발팀에 대한 지원이 주가 되고 있다. 앞으로 대기업들에겐 규모에 걸맞는 높은 기준이 요구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건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일 뿐이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WHO의 게임 중독에 대한 질병코드 부여 문제도 있고, 게임에서 묘사되는 선정성, 폭력성에 대한 논의도 갈수록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부분 역시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는 부분으로, 최근 한 정부부처 주관 회의에서는 "왜 어린 소녀의 옷을 벗길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나왔다. 수많은 게임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아바타'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으로, 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사회가, 정부가 던졌을 때 납득할 만한 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게임업계가 신경쓰고 공들이고 있는 부분이 결제한도액 증액 문제 뿐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대처하고 정부의 개입에 선대응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개입을 피할 수 없는 지점에 왔다. 매출극대화만 신경쓰던 단계에서 벗어나 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의 노동, 복지, 과금모델, 정보공유를 (아주 빠르게) 갖춰야 할, 게임산업이 성숙해질 것이 기대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유예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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