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은유에서 오는 긴장감을 즐겨라, 이창동 감독 유아인 주연 '버닝'

등록일 2018년05월26일 15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 해당 리뷰는 영화 '버닝'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불 태운다'라는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붓는 것을 '열정을 불 태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또 누군가 내면에 억누르고 있던 욕망이나 분노를 쏟아낼 때도 '불 태운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저녁 무렵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도 우리는 '불 타는 듯한 저녁 노을'이라고 표현하는 등 '불 태운다'라는 말은 참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은 제목에서 무언가를 '불 태운다'라는 암시를 건네고 있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불 태운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감독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애를 태웠다'고 느꼈다. 영화의 상영 시간은 148분, 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전개가 늘어지거나 지루함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영화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들의 '애를 태우기' 때문이다.

 

영화의 장르는 미스터리지만 영화 전반을 담당하는 기본 줄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추리 스릴러 영화에 가깝다. 속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 벤(스티븐 연)의 등장과 함께 주인공 종수(유아인)의 근처에서는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여기에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어 놓는 해미(전종서)까지, 영화는 이 3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과 사건 속에서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종수는 부단히 노력하지만, 정작 영화 내에서는 아무런 진실을 밝혀주지 않는다. 영화 결말부에서도 아무런 해답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결말 부에서 진상을 밝혀내고 사건을 정리하는 추리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영화는 추리 스릴러의 껍질을 쓴 하나의 메타포(은유) 덩어리에 가깝다고 느꼈다.

 

영화는 중반 이전까지는 청춘 드라마의 전개를 따라가지만, 중반에 이르러 벤이 종수에게 자신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한다. 자신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말에 종수는 벤이 불을 지른 비닐하우스를 찾지만 아무리 해도 타버린 비닐하우스를 발견할 수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인 해미는 어딘가로 잠적해버린다.

 

진상을 밝히지 않고 시종일관 답답한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의 진짜 매력은 메타포를 바탕으로 한 연출 방식에 있다.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기 전부터 영화는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은유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고양이부터, 흔해 빠진 분홍 시계, 불타오르는 노을에서 나체로 춤을 추는 해미, 우물 등 영화는 관객에게 계속해서 은유를 던지고 관객들은 그 의미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온갖 은유적인 장치들을 통해 알 듯 말 듯하게 관객들의 애를 태운다. 알 수 없는 말들을 남기는 해미와 벤을 쫓아 의미를 찾아나서는 종수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영화 속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게 되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 이창동 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의미를 찾아나서는 과정에 힘을 불어넣는다. 매 컷마다 배치되어 있는 사물, 풍경, 인물들이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영상미 자체로도 아름답기 때문에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 속의 숨겨진 의미를 찾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다. 특히 영화 중반에 나오는 석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버닝'의 명 장면 중 하나.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입증한 유아인의 연기는 보는 내내 어딘가 소름이 돋으면서도 20대의 평범한 청춘을 잘 담아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인 스티븐 연의 연기 역시 걱정과 달리 좋았다. 모든 대사가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발음에서 크게 문제되는 부분이 없었다. 첫 작품을 통해 칸에 이름을 알린 전종서의 연기 역시 좋았다. 크게 인상에 남을 법한 연기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겉모습은 그럴듯한 추리 스릴러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부분은 은유로 숨겨놓은 의미들을 찾아나가는 데에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곱씹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 속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버닝'을 100%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에서 해미는 부기맨들의 전통 중 하나인 '그레이트 헝거'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배가 고픈 '리틀 헝거'에 비해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고파 있는 보다 큰 사람. '버닝' 역시 단순히 영화 속의 진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리틀 관객'보다는 영화 전반에서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찾아나서는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그레이트 관객'이 되기를 주문하고 있으니 '버닝'을 통해 은유가 가져다 주는 순수한 재미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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