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계가 최근 게임에 주목하고 있다. 게이머들의 기억에 남는 명작들이 앞다투어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기는 가운데, 게임이 슈퍼히어로에 이어 새로운 흥행 필수 소재로 떠오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세가의 대표 게임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호그'의 IP를 활용한 영화 '슈퍼 소닉'이 미국 현지에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서는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인 셈. 원작 팬을 위한 요소들과 대중성을 모두 잡으면서 관객들의 평가 역시 긍정적이다.
스크린 데뷔를 노리는 것은 소닉 뿐만이 아니다.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 타이틀 '포켓몬스터'의 마스코트 피카츄는 영화 '명탐정 피카츄'를 통해 성공적으로 실사 영화 데뷔를 마쳤으며, 이 밖에도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 '언차티드'나 스마일게이트의 국산 FPS '크로스파이어' 역시 연이어 실사 영화화를 발표하면서 많은 게이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한 게이머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레지던트 이블'이나 '사일런트 힐' 등 좋은 성적을 거둔 게임 원작 영화도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실패한 작품들도 많기 때문.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반드시 실패한다”라는 '게임 원작 영화의 저주'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거론될 정도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영화 산업계가 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또 '게임 원작 영화의 저주'를 깨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높은 인지도에 주목, 주요 소비자로 성장한 게이머 공략한다
영화 산업계가 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게임이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와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함이다. 게임은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적인 놀이문화로 자리잡았으며, 다양한 미디어 믹스 활동을 통해 게임을 직접 즐기지 않는 소비자들도 '마리오'나 '피카츄' 등 인기 캐릭터에 대해 알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최근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IP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영화 제작사들 역시 게임 IP의 높은 인지도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과거 게임을 즐기면서 성장한 3040 게이머 층이 영화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 역시 영화 산업계가 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다. 게임을 핵심 소재로 뭇 올드 게이머의 향수를 자극한 2018년 개봉작 '레디 플레이어 원'은 중국 및 북미 지역에서 호평을 받으며 5억 8천만 달러(한화 약 7000억)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처럼 핵심 소비자 층으로 떠오른 올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흥행 게임들이 연이어 실사 영화로 탄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CG를 비롯한 그래픽 기술의 발전도 게임 원작 영화의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여느 문화 콘텐츠보다도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초현실적인 움직임이나 연출을 보여주는 게임은 그동안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시리즈 등 비현실적인 장면이나 움직임을 기술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 업계가 게임에 주목하고 있다.
대중화 가로막는 진입장벽, 연출 방법의 차이 간과 등 '게임 영화의 저주' 피해야
매력적인 캐릭터와 높은 인지도가 영화 소재로서 게임이 지닌 매력이지만, 유독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성공한 작품은 드물다.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워크래프트'의 IP를 활용한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중국 시장에서 흥행했지만 원작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유비소프트의 인기 게임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에 기반한 실사 영화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 원작 영화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연출 과정에서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 게임 원작 영화 중 최초의 실패작이라는 영광(?)을 안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이름만 그대로 따왔을 뿐, 게임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연출로 인해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인기 격투 게임 '철권'의 실사 영화 시리즈도 게임 내 설정을 대부분 파괴하면서 게임의 인기에 안일하게 편승하려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게임의 방대한 세계관을 그대로 옮기면서 대중화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 없이 너무 많은 인물들과 장소, 사건들을 나열해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앞서 실패 사례로 언급한 '어쌔신 크리드' 역시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들을 짧은 분량의 영화 안에 넣으면서 게임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들의 유입에 실패했다.
결국 이는 게임과 영화라는 콘텐츠의 연출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흔히 AAA급 타이틀이라 불리는 게임의 경우 평균 플레이 타임이 24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으며, 게임 상의 연출 이외에도 NPC와의 대화나 각종 요소들을 통해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그러나 최대 2시간 이내의 상영 시간을 지니고 관객이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하는 영화에서는 너무 방대하고 많은 정보는 오히려 혼선을 가져다 줄 뿐이다.
연출 방식에 있어서도 게임과 영화는 차이를 보인다. 게임에서 액션이나 연출이 흥미로운 이유는 플레이어가 주인공 등 게임 내 캐릭터에 몰입하기 때문. 다소 단조로운 액션이더라도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과 달리,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통해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게임에서 보여지는 액션의 문법을 그대로 영화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1인칭 슈팅 게임의 연출을 그대로 살린 영화 '둠'의 액션 연출이 호평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매력적인 영화 소재 게임, '게임 원작 영화의 저주' 깨려면 슈퍼히어로 영화를 참고하라
영화의 소재로서 게임과 슈퍼히어로 코믹스는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이에 '게임 원작 영화의 저주'를 깨기 위해서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흥행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한편, 대중성을 살린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다.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의 대중화를 불러온 '아이언맨' 이전의 슈퍼히어로 실사 영화는 만화책 속의 이야기나 복장, 연출 등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실사와 만화 사이의 괴리감을 느낀 관객들 사이에서 괴작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마블 실사 영화 시리즈는 대중성을 살리기 위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원작의 핵심 캐릭터의 핵심 설정, 특징 등을 제외하면 영화의 스토리를 독자적인 이야기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게임 원작 영화의 저주'를 깬 '슈퍼 소닉' 역시 소닉과 에그맨 등 원작의 핵심 캐릭터의 설정과 특징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영화 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대중과 원작 팬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원작의 복제품에 지나지 않던 게임 원작 영화들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잡아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대 게임 최대 오프닝 성적을 기록한 '슈퍼 소닉'은 원작 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주인공 소닉의 외형을 바꿨으며, '명탐정 피카츄' 역시 피카츄라는 인기 캐릭터에 영화 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더해 폭넓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이 밖에도 '언차티드'의 실사 영화 시리즈 역시 원작 재현보다는 프리퀄 성격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전개하는 등 게임만의 고유한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만화 '배트맨' 속 악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대해 작품성을 논하거나 대중들도 마블 히어로의 복잡한 설정이나 세계관에 매료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에 대해 전율을 느끼며, 만화 속 캐릭터 '아이언맨'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다. 게임 원작 영화 열풍이 예고된 가운데, 머지 않은 미래에는 '마리오' 역을 연기한 배우가 작품상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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