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의 트로피 잡설]우치코시 코우타로 '살아있네!', 극한탈출 시리즈의 엔딩을 마침내 봤다

등록일 2020년04월29일 09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슈타인즈 게이트'가 빅히트하며 '과학 어드벤쳐'가 메이지스의 전유물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90년대부터 00년대까지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을 꾸준히 즐긴 게이머들이라면 과학과 판타지가 결합된 게임들을 즐긴 경험을 다들 갖고 있을 것이다. '과학 어드벤쳐' 시리즈는 그 시절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게이머도 많을 것이다.
 
90년대~00년대에는 일본에서 세계 게임사에 남을 걸작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들이 연이어 나오며 재능있는 시나리오라이터들이 이름을 알렸다.
 
'EVE' 시리즈나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유노' 등에서 과학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신기의 재능을 보여준 칸노 히로유키나 '팬텀 오브 인페르노', '사야의 노래'에서 광기의 재능을 드러낸 우로부치 겐, 걸작 '에어'와 클라나드'로 세계 미소녀게임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마에다 준 등 PC 기반 미소녀게임에서 독특한 감각을 보여주던 이들이 있었다.
 
콘솔에서도 '428 봉쇄된 시부야에서'의 이시이 지로, '탐정 진구지사부로', '단간론파'의 코다카 카즈타카, '메모리스 오프', 'EVER17'의 우치코시 코우타로 등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시나리오라이터가 속속 등장했다.
 
메모리스 오프에서 극한탈출 시리즈까지, 우치코시 코우타로가 걸어온 길
시간이 지나며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게임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게 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이 기사에서 소개하려는 우치코시 코우타로(打越鋼太郎)도 그 중 한사람이다.
 
'메모리스 오프'로 유명한 미소녀게임 전문 브랜드 운영기업 KID에서 게임 개발자 인생을 시작한 우치코시 코우타로는 시나리오라이터로 작업한 첫 작품인 '메모리스 오프' 1편부터 인간관계 묘사, 반전으로 주목을 받았다. 1편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킨 '메모리스 오프2'와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걸작 'EVER17' 등을 작업한 뒤 KID를 떠난 그는 코다카 카즈타카의 권유로 2007년 춘소프트에 입사한다.
 


 
춘소프트에서는 우치코시에게 시나리오만 맡을 게 아니라 게임 자체를 맡도록 했고, 우치코시가 처음 디렉터와 시나리오라이터를 겸임한 게임이 바로 2009년 나온 '극한탈출'(極限脱出) 시리즈 1편 '극한탈출 9시간 9명 9개의 문'(極限脱出 9時間9人9の扉)이었다.
 
'999'로 불리는 이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들은 세계관, 전개, 캐릭터 묘사에 감탄하며 많은 의문을 남기고 끝난 게임의 속편이 언제 나올지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2년 나온 정식 속편 '극한탈출 선인 사망입니다'(極限脱出ADV 善人シボウデス)에서 그런 의문들이 해소되길 기대했는데...
 
우치코시의 오랜 팬인 기자는 '극한탈출 선인 사망입니다'가 출시되자마자 일본어판, 그 후 영문판까지 구해 반복해 플레이했는데 이 작품은 전작과 다른 주인공, 캐릭터, 무대, 시간축을 배경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임이었다. '???'라는 감상과 함께 조금 실망도 되었고, 그래도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그런 게임이었다.
 


 
2016년 마침내 시리즈 완결편 '제로 이스케이프 시간의 딜레마'(ZERO ESCAPE 刻のジレンマ)가 나왔다기에 게임을 구입해 두고는 오랫동안 플레이를 못했다. 각잡고 한번에 플레이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점도 있고 전작에 조금 실망해 '제대로 된 결말, 이야기와 설정의 완결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플레이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리고 2020년...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재택근무가 시작됐고 주말에도 집에만 있는 나날이 죽 이어졌다. 기자는 오랫동안 미뤄온 '제로 이스케이프 시간의 딜레마'를 어서 플레이하라는 대우주의 의지를 느껴 게임의 밀봉을 뜯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늦었지만 사과한다, 우치코시가 보여준 솜씨는 '대가'의 솜씨였다
엔딩까지 플레이한 지금 시점에서, 디렉터이자 시나리오라이터인 우치코시 코우타로에게 사과해야할 것 같다. 10년에 걸쳐 나온 3부작 게임의 끝을 이렇게 마술처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니, 20년전 느낀 우치코시의 재능, 솜씨는 그대로였다.
 
아무 것도 없어보였던 캐릭터들의 관계나 구멍투성이에 수습불가능으로 느껴지던 설정, 세계관 모든 것이 하나의 결말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며 '등장인물 모두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고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고 사망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최적의 결말을 맞이하는' 루프물의 정석을 멋지게 그려냈다.
 


 
흑막의 정체는 충격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었고, 그 동기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마지막의 "나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 아무 사건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여러분의 감정은 남아있을 것이다. 마지막 선택지를 제안하겠다. 원한다면 나를 쏴라"라며 권총을 건네는 장면은 10년 이어진 시리즈의 라스트 신으로 너무 잘 어울렸다.
 
우치코시 코우타로는 이 3부작 후에도 2019년 'AI: 솜니움 파일'을 선보였고, 2020년에도 신작을 보여줄 예정. 의심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AI: 솜니움 파일'을 서둘러 구입할 생각이다.
 


 
극한탈출 시리즈 중 999의 경우 닌텐도 기기로 나와 트로피가 붙지 않았다. 선인 사망합니다는 PS Vita로 나와 일본, 북미, 유럽판으로 트로피가 3종 존재한다. 999와 선인 사망합니다 합본팩이 일본, 영문판으로 나와 있으며, 시간의 딜레마는 일본판 PS4 버전과 PS Vita 버전, 영문판(기종 구분은 없음)이 존재한다.
 
기자의 경우 선인 사망합니다 유럽판, 시간의 딜레마 일본 PS4 버전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 트로피를 컴플릿한 상태로, 남은 2종도 연내 처리해 시리즈 올 컴플릿을 달성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트로피도 따고 멋진 시나리오도 감상할 수 있는 이 시리즈를 한번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전히 좋은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작품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문제는 국내에 정식 소개되는 경우가 많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텍스트 어드벤쳐 시장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이런 좋은 작품이 소개되지 않아 많이 알려지지 않고 지나간다는 건 정말 아쉽다.
 
'메모리스 오프'와 '슈타인즈 게이트 선형구속의 페노그램' 등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10여편에 이르는 우치코시표 게임이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국내 게이머들에게 너무 비극이다. 메이플라워 엔터테인먼트 등 텍스트 어드벤쳐 장르에 관심을 가진 퍼블리셔가 아직 있으니, 언젠가 국내 유저들이 우치코시 코우타로의 작품을 한국어로 즐기는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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