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 이벤트였던 '재귀정리' 이후 약 3개월 만에 '소녀전선'의 열 두번째 이벤트인 '고정점'이 최근 숱한 이슈를 만들어내며 마무리됐다.
'재귀정리'에서는 정치극 성격의 스토리텔링이 이전보다도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어 빛을 발하는 한편, '카터'의 대규모 공격으로부터 탈출하는 '크루거' 일행의 처절한 생존기가 그려졌다. 또 지휘관과 '그리폰' 사이의 이념적 대립과 충돌, 오랜만에 재등장했던 'M16A1'과 '모나'를 비롯한 신규 캐릭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고정점'은 '재귀정리'와 유사하게 다양한 '떡밥'들이 새로이 추가되었고, 아주 약간의 시원한 연출만이 담겨져 있었기에 돌이켜보면 다소 아쉬운 느낌이다. 특히 아래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시원하게 달리는 전개보다는 이미 정해진 결말에 맞추기 위해 천천히 분량을 조절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별개로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게임에 복귀하는 유저가 꽤나 많이 보인다. 스토리 상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혹은 신규 이벤트의 힘인지 그 이유는 확언하기 어렵지만 오랜 시간 게임을 즐겨온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 최근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의 국내 정식 서비스 일정 관련 소식이 전해지는 등 타임라인이 꽤나 바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전개는 지지부진해 찝찝함을 남긴 채 마무리 되었지만, 막상 자세히 연출과 대사들을 뜯어보면 엄청 나쁘지만은 않았던 '고정점'의 소감을 정리했다.
*아래 체험기에는 '고정점' 이벤트 등 '소녀전선'의 스토리 전반에 걸친 스포일러와 추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드러진 이념적 대립과 '페러데우스'의 내막
'재귀정리'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고정점'은 '소녀전선 2'와의 연결고리를 위한 준비 과정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이벤트였다.
먼저 '고정점'에서는 '거울단계'와 '재귀정리'를 기점으로 그 본심을 드러낸 훈작사 '그리폰'과 이념적으로 부딪히는 지휘관의 대립이 이어졌다. '안젤리아'의 구출과 포기라는 명확한 목표를 두고 훈작사 '그리폰'과 지휘관의 대립이 계속됐는데, 대의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냉혈한 '그리폰'의 실질적인 모습이 보다 더 눈에 띄게 드러났다.
'그리폰'은 '크루거'를 비롯해 지휘관과 연관된 이들의 안녕을 위해 '안젤리아'를 포기하라며 회유했다. 지휘관은 이전보다 더 직접적이고 격렬하게 반대하며, 심지어 먼저 통신을 끊어버리기까지 한다.
이 연출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안젤리아'를 구출하기 위해 지휘관이 결심을 한 것에서 더 나아가, 두 사람 사이에 미약하게나마 이어져 있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짐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새삼 '크루거'가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믿지 말라고 지휘관에 충고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다음 스토리에서 지휘관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그리폰'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 사뭇 궁금해진다.
'윌리엄'을 위시로 한 '페러데우스'의 보다 자세한 내막도 두드러지게 연출됐다. 새로이 등장한 '네메아란'과 '윌리엄'의 소름 돋는 '가족놀이' 연출이 인상적이었고, '블랙 존' 내부에 존재하는 '페러데우스'의 본 기지와 그 규모 그리고 '몰리도' 일행의 이야기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자신들은 단순한 소모품이라며 자조하거나, 동료 '그레이'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틸'이 인상적이다. 전술 인형들의 인간적이면서도 끈끈한 전우애가 '니토' 사이에서도 표현되었다는 점이 그렇다.
또 초기 마인드맵 상태로 돌아간 'M16A1'과 '니토'로의 개조를 마친 'RPK-16'의 전투는 새삼 소설을 읽는 재미와 이유를 다시 느끼게 해준 파트였다고 호평하고 싶다. 머리 속에서 두 캐릭터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며 읽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적절하게 추가되는 SFX도 이러한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다. 또 두 캐릭터의 대립하는 성격과 이것이 잘 드러나는 대사들도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엔딩 연출과 쌓여만 가는 무수한 '떡밥'들
이와 함께 이번 '고정점'에서는 지휘관 휘하 전술 인형과 철혈 공조, 슈타지 지원 전술 인형들의 합동 작전인 '아이네이아스 작전', '거울단계'에서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했으나 개조를 거쳐 새롭게 태어난 'AN-94'와 'AK-15'의 귀환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조된 'AK-15'의 강력한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소녀전선'의 초창기 아기자기하고 아이들 장난 같았던 '철혈공조'와의 전투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전체적인 진도가 지지부진하다는 점, 그리고 엔딩 파트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방금 전까지 적의 본 기지 한복판에서 인형들이 고군분투 하다 '안젤리아'가 구조를 거부하더니, 갑자기 장면 전환 후 지휘관과 '크루거' 일행이 재회해 '우리의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엔딩이 너무 허겁지겁 마무리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출의 문제로 생각되는데 조금 더 신경쓸 수 있었기에 아쉽다.
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무수한 '떡밥'들이 찝찝함을 남긴다. 진작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안젤리아'를 살려둔 '윌리엄'의 의중과 '안젤리아'가 지휘관의 처절한 구출 작전에도 아직 떠날 수 없다고 못박은 이유는 무엇인지, 'M16A1'이 지휘관 휘하에 합류하지 않고 국가안전국의 '하벨' 말을 따르고 있는 이유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그것이다. 스토리의 전개 외적으로 캐릭터들의 거취나 의도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있게 다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네이아스 작전'에 참여한 전술 인형들의 생사 여부도 관심거리다. 작전에 참여한 전술 인형들이 한둘이 아닌데, '고정점' 막바지에 들어서는 일부 전술 인형들의 생사가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백업 가능한 전술 인형이라는 설정을 과하게 활용해 스토리에서 쉽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치 죽어도 되살릴 수 있어 빛이 바란 '드래곤볼'처럼 말이다.
아직 생사가 묘연한 'AK-12'가 '니토'인 '콜레다'와 동일 인물인 것처럼 묘사된 점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만약 '콜레다'와 'AK-12'가 동일 인물이라면, 'AK-12'가 스스로 이를 선택한 것인지 혹은 모종의 피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선택 당한'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또 '니토'로 개조된 'RPK-16'의 진짜 생각은 무엇인지, '몰리도'가 '윌리엄'에게 던진 도박수는 'M4A1'과 나눈 대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등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와 '떡밥'들이 너무 많아 이를 어떻게 풀어낼 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흔히 웹 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들이 시원하고 빠른 전개를 원하는, 소위 '사이다패스'에 대해 잘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고정점'을 즐겨보고 나니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물론 '그레이'가 사망하는 등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긴 했으나, 유저들이 원하는 '떡밥'의 해소와 시원한 연출 그리고 복수 등 보다 더 크고 통쾌한 한 방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재귀정리' 체험기에서도 적었듯 '빌드 업'이 중요하기에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지만, 슬슬 조금은 더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적절한 난이도와 랭킹전의 개편, 부담은 줄고 보상 획득은 쉬워졌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정점' 또한 신규 또는 복귀 유저, 꾸준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 모두에게 적당한 난이도와 보상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벤트들의 복각 주기는 상당히 긴 편이지만, '질 스팅레이'나 '페코라'와 같이 강력한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벤트를 통해 제공되는 보상들을 모두 얻기에 큰 무리는 없다.
이번 '고정점'에서는 '하드' 난이도의 상위인 '악몽'이 새로이 도입됐다. 게임을 오래 즐겨온 지휘관들을 위한 도전적인 난이도로, 여러 번 클리어를 반복할 필요 없이 신규 전술 인형을 포함한 핵심 보상을 한 번에 얻을 수 있어 편했다. 전장의 신규 요소들은 현재 시점에서는 너무 많아져 피곤하긴 하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측면과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는 호평할 수 있겠다.
특히 다양성 추구와 변화 시도라는 측면에서, 이번 '고정점'의 랭킹전인 '베티 수'에서 도입된 분할 구조의 맵과 점수 합산 방식 그리고 사실상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 순위별 보상 등에 대해서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전술 인형 기반의 '그리폰&크루거'와 '철혈공조'로 이루어진 '혼합세력'을 따로 구분해 진행하는 랭킹전 구조는 '혼합세력'이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 나왔던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보상 지급 기준이 완화되고 이전과 같이 절대평가 점수만으로도 대부분의 핵심 보상은 얻을 수 있어 랭킹전에 대한 부담이 조금이나마 더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연결고리 완성을 위한 준비, 지휘부도 철저히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거울단계', '재귀정리' 그리고 '고정점'까지, '소녀전선'과 '소녀전선 2'의 스토리를 잇기 위한 준비가 숨가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고정점'은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크게 진전된 것은 아니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정치극의 비중은 줄어들고 전술 인형들과 '철혈공조' 그리고 '페러데우스'의 직접적인 대립과 대규모 전투 장면 등이 잘 묘사돼 읽는 재미가 탁월한 시즌 이벤트였다고 평하고 싶다. 특히나 각 캐릭터들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스크립트 및 대사, 이를 뒷받침하는 연출 등 세세하게 살펴보면 만족할만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어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개조 스토리와 함께 돌아온 'AK-15'의 활약, 'M4A1' 등의 핵심 캐릭터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RO635'의 탁월한 지휘 능력이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된다. 이중에서도 'AK-15'는 이번 이벤트와 개조 스토리를 통해 캐릭터성도 잘 확립돼 이후 활약이 기대되는 1순위 캐릭터다.
다소 느지막이 작성된 이 체험기를 쓰는 시점에서는 복각된 '사진관 미스테리'와 조만간 추가될 것으로 보이는 화이트데이 이벤트 '사랑의 조리법'이 예고되어 있다. 다음 시즌 이벤트를 기다리며, 지휘부를 잘 관리하는 성실한 지휘관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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