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유신헌법에 이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공포되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국가가 주도한 본격적인 아파트단지 건설은 권위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급증은 권위주의 국가 주도의 성장 모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은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되는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큰 수익원이다. 당첨된 가구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면서 체제의 수혜자이자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p.102사람들은 고도성장의 열매가 성과급의 형태로 예비 중산층의 계좌로 흘러들었다가 아파트 분양 대금으로 용도를 변경한 뒤,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와 보조를 맞춰 다시 아파트 소유자의 호주머니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게임에 참가했습니다. 버블의 한가운데엔 언제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있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0년 초까지 일본의 부동산 투자액은 1,800조 엔에 이른다. 국고예산이 60조 엔이니 약 30배의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4개나 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투기 이면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강하게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굿바이 부동산》p.140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 되면서, 아파트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파트 게임의 혜택은 복지 제도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줄 방패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임의 위험성을 염려해 뛰어들지 못한 사람, 시작할 자본이 없었던 사람들은 근로소득을 능가하는 자본이득의 압도적인 행진을 지켜봐야 했고, 서울이라는 게임판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 라고 했을 정도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p.142부동산, 특히 아파트는 빈곤층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이자, 중산층에게 있어서는 건드려서는 안될 성역이 되었습니다. 종합부동산세가 논의되자 그들이 보여준 격렬한 저항은, 정권을 뒤집을 정도였습니다. 게임의 승리자는 먼저 시작했던 투기꾼들, 불법적으로 정보를 얻을수 있었던 정치인들, 재벌들이었습니다. 아파트 게임은 고도성장과 경제 규모의 팽창을 동력원으로 삼은 상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동력원을 잃어버린 지금 아파트 게임의 결과는 엄청난 규모의 가계 부채, 대출을 받아 게임의 막바지에 참가한 하우스푸어, 엄청나게 오른 집값 때문에 내집은 커녕 방 한칸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청춘 세대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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