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절 보면 놀립니다. 직원들이 다 지나가면 그때 사진을 찍으면 안될까요?"
대표보다는 친구에 가깝다. 이제는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어엿한 중견기업의 대표가 됐지만 개발자 출신의 피를 숨기지 못하고 여전히 프로그래머 주변을 맴돌다 쫓겨난다.
있어야 할 마땅한 자기자리도 없다. 오히려 직원들이 개인 집무실을 만들라고 권하지만 딱히 원하지도 않아 여전히 회사의 남은 빈자리를 자기의 일터로 삼으며 전전한다. 그러다 직원들의 한숨 섞인 눈총이라도 받는 날에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자리를 피해 다닌다. 이제 직접적인 개발과는 멀어져버린 위치에 와있음에도 개발의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며 최근 개발팀 근처 빈자리를 자신의 보금자리로 확정하고 뿌듯해 하는 남자가 있으니 바로 넥스트플로어의 김민규 대표다.
모두에게 특별했던 게임 '드래곤 플라이트', 모든 게임이 소중했던 넥스트플로어
넥스트플로어는 대표작인 '드래곤 플라이트'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개발사다. 카카오 플랫폼이 퍼즐게임을 중심으로 서비스하던 당시 당시 비주류 장르였던 비행 슈팅을 전면에 내세워 동시접속자 850만 명, 누적 다운로드 2,300만 건이라는 흥행을 이끌어내며 모바일 슈팅 게임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을 기록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너무나 큰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일까? '스피릿 캐처', '엘브리사', '나이츠 오브 클랜' 등 '드래곤 플라이트'의 뒤를 이어 출시한 신작이 드래곤 플라이트라는 이름에 가려져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김민규 대표 역시 아쉬움을 드러냈다. 드래곤 플라이트의 흥행이 넥스트 플로어라는 회사의 이미지에 너무 각인된 나머지 본의 아니게 차기작의 성장을 가로 막은 독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드래곤 플라이트가 개발단계에서 엄청난 흥행을 예상하고 디자인된 게임은 아닙니다. 단순히 우리가 해봐서 재미가 있었기에 그 재미 하나를 보고 개발을 한 것이었죠.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제는 신작 게임들이 나오면 비교 기준이 드래곤 플라이트가 되어버렸습니다. 차기작들이 드래곤 플라이트 만큼의 흥행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죠. 하지만 차기작들의 성적표를 받아보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넥스트 플로어와 수익을 만들어나가야 되는 넥스트 플로어 사이의 간극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은 아직 제가 대표의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웃음)”
김민규 대표는 지금까지 내놓은 모든 게임을 다 소중한 게임이라고 평가한다. 비록 흥행에 실패해 대중적인 게임으로 기억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게임을 즐기며 응원해주는 유저들과 개발자 사이의 유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롭게 다짐한다고.
우리 회사는 '지하연구소'가 아니에요
최근 진행된 넥스트 플로어의 기자 간담회에서 신규 타이틀보다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았던 것은 바로 넥스트 플로어의 '지하연구소'다.
지하연구소는 넥스트플로어가 어엿한 회사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제도로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을 회사가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다. 순수하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원해주는 제도인 만큼 개발자들이 BM을 고민하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날 간담회에서 지하연구소에 대한 부분을 30초 정도밖에 얘기하지 않았는데 행사 이후 외부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았나 봅니다(웃음). 일반적인 회사의 초창기 프로젝트와 동일한 구조고 거기에 좀 더 자유롭게 게임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인데 이것이 신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심이 어느 순간 넥스트 플로어=지하연구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하연구소는 우리 회사의 아이덴티티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직원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회사가 회사로써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요"
김민규 대표의 최대 고민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개발 환경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되느냐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발 환경은 개발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환경이지만 이를 위해서 누군가는 회사의 생계를 책임지고 매력적인 수익모델을 갖춘 게임을 개발해야 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의욕과 재능 발굴, 기업의 이익이라는 무게중심을 맞추는 작업. 바로 균등조절이다. 해답을 찾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민규 대표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않았다고 대답하면서도 도전의 결과로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키도' 프로젝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에서부터 콘솔까지, 재미있는 '선순환' 구조 만들어보고 싶다
김민규 대표는 업계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잡식성 오타쿠다.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재미있어 보일만한 대부분의 콘텐츠를 경험했고 특히 어려서부터 개발자가 된 지금까지도 일본 게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그런 그가 롤모델로 삼는 게임은 바로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다. 특히 디렉터인 이가라시 코지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수익성을 이유로 홀대를 받았지만 자신의 게임을 즐겨주고 좋아해주는 유저들을 위해 시장의 끊임없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게임을 집중해서 출시할 수 있는 그 결단력은 경영자가 되어버린 그에게 하나의 지표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게임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드래곤퀘스트, 악마성 드라큘라, 파이널판타지 등등의 게임을 재미있게 했던 적이 기억납니다. 파이널판타지7: 크라이시스코어의 경우는 눈물을 흘리면서 클리어 했던 경험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책임질 식구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당장은 힘들지만 분명히 우리만의 확실한 색이 들어간 '악마성 드라큘라'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넥스트플로어가 단시간에 매력적인 모바일 게임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드래곤 플라이트의 성공 외에도 디렉터들을 향한 개발사 대표의 끊임없는 신뢰였다. 경영자가 개발자를 신뢰하고 그들이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에 최소한 혹은 아예 개입하지 않으면서 결과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반적인 개발자 출신의 대표가 자신의 모든 작품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참여하는 것에 비하면 같은 개발자 출신 대표로서는 분명 다른 행보다.
"저에게는 개발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게임하는 것을 보면서 코딩 한 줄이라도 꼭 해보고 싶어하죠. 그럴때마다 프로그래머들이 말립니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에는 만족합니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의지가 보이거든요. 일부는 지하연구소를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 회사의 디렉터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마음껏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분명 쉽지 않은 길이겠죠?(웃음)"
일본 게임에 영향을 많이 받은 그가 흥행이나 개발비용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해볼까? 해당 질문에 김민규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AA급 콘솔 타이틀을 한국에서 개발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로 진지하게 회의시간에 AA급 콘솔 게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건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이 말렸죠. '회사 상황을 모르느냐. 제발 그러지 말라'구요. 자기가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이 있음에도 프로젝트 진행보다는 회사 걱정을 하는 직원들이 있는 회사를 본적이 있나요? 제가 디렉터들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회사의 모두가 이렇진 않습니다. 분명 불만도 있겠죠. 하지만 재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분명 언젠가 개발자들도, 유저들도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게임의 철학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올해로 14년차 개발자이자 이제는 한 회사를 이끌어가는 대표가 되어버린 김민규 대표가 오랜 침묵을 깨고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 있는 게임만을 위해 쉼 없는 경주를 예고한 넥스트플로어의 힘찬 날갯짓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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