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장르 :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 국가 : 미국 감독 : 잭 스나이더 제작/배급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수입) 런닝타임 : 151분 등급 : 12세이상관람가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누구라도 한번쯤 해봤을 만한 질문이다. '히어로물'을 접해봤던 사람이라면, '배트맨'과 '슈퍼맨'의 자리에 다른 히어로들의 이름을 번갈아 넣어가며 여러 대결들을 상상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령,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잠깐 보여줬던 아이언맨과 흥분한 헐크의 대결은 얼마나 '흥미'로웠던가.
물론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 이유는 '배트맨'은 '인간'이고, '슈퍼맨'은 크립톤 행성에서 온 '초능력자'이자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이 대결은 사실상 인간 대 초인(超人), 인간 대 신(神)의 대결 구도를 갖고 있다. 애초부터 승부가 되지 않는다. 물론 슈퍼맨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는 크립톤 행성의 광물 '크립토나이트'가 배트맨에게 '제공'되지만, 이렇게 되면 애초부터 승부는 의미가 없어진다.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흥미 요소'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사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핵심은 '배트맨(벤 애플렉)과 슈퍼맨(헨리 카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가 아니라 '배트맨과 슈퍼맨이 '왜' 싸워야 하는가?'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제목(원제는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이다)에 굳이 '대결'을 의미하는 'VS' 대신 'V'를 쓰고 있는 까닭은 두 히어로의 대결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설명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연출했던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헨리 카빌)은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과 대결을 벌이면서 메트로폴리스를 초토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슈퍼맨이 구한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는데, 그 숫자가 무려 수백 만 명에 달한다. 이쯤되면 '히어로'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 그동안 등장했던 수많은 '히어로'들은 '시민의 안전'이라는 '제1 원칙'을 암묵적으로 혹은 드러내놓고 수행해왔다. 아이언맨이 그러했고, 윤리적으로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는 캡틴 아메리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 오브 스틸'서 슈퍼맨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비판과 진한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그에 대한 '반성'과도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맨 오브 스틸'서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싸움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심정을 '배트맨'을 통해 드러내면서 여러가지 '철학적 물음'들을 녹여냈다.
"선한 인간도 결국 변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신에 버금가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만약 그 존재가 '악'으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슈퍼맨의 '만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배트맨은 '잡초'들을 제거하기보다 인간 세상의 큰 고민거리가 돼버린 슈퍼맨을 처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처럼 영화의 초반부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 '설득'은 생각보다 잘 와닿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젊은' 슈퍼맨과 변별을 두기 위해 흰머리가 어울리는 '나이 든' 배트맨을 설정한 탓일까. 배트맨이 보여주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 시대의 흐름에 순행하지 못하고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이미지를 주는데, 심지어 그는 슈퍼맨을 억압하는 '악'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또, 중반 이후 두 히어로의 갑작스러운 '화해'는 다소 엉뚱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를 위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슈퍼맨'은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강요받았던 난해한 선택지의 질문을 받아든다. 또,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는 영화 속에서 조커 역할을 담당하는데, 히스 레저가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 있는데 바로 힘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는 거야"
'배트맨과 슈퍼맨이 왜 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더 큰 악을 상대하기 위해 히어로들은 힘을 합쳐야만 한다'는 당위에 순식간에 묻혀버린다.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배트맨과 슈퍼맨이 각각 안고 있는 철학적 질문들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갑작스럽게 등장한 '원더우먼(갤 가돗)'의 활약은 뜸금없게 여겨지고, 그 역할도 애매모호하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산만하게 진행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DC 코믹스가 앞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저스티스 리그'의 프리퀄로서는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애초부터 '목표'는 그것 아니었겠는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2017년 11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저스티스 리그 파트1'과 2019년 6월에 찾아올 '저스티스 리그 파트2', 이 3부작 가운데 1부이자 그 시작점에 불과하다. * 참고로 '원더우먼'도 2017년 계봉 예정이다.
DC 코믹스는 기어코 고담의 수호신 배트맨과 크립톤의 후예 슈퍼맨, 두 히어로의 만남이라는 '히든 카드'를 선보였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보여주는 비주얼과 그들이 펼치는 액션은 더할나위 없다. 하지만 DC 코믹스의 히어로들의 차별화되는 특성, 존재론적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철학적 고민은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어찌됐던 마블 코믹스의 '어벤저스'에 견줄 수 있는 DC 코믹스의 '저스티스'가 그 서막을 올렸다.
히어로물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아니, 이 거대한 유치찬람함의 끝은 어디일까?
글 제공 :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의 블로그(
http://wanderingpoe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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