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투가 국내에 소개한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은 어려운 게임이다. 친절하고 편한 요즘 게임들에 익숙한 게이머가 가볍게 접근했다간 적응이 힘들 수도 있는 게임이지만, 어려움 너머에 고전명작 턴제 RPG들이 보여주던 그런 재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처음 이 게임을 접한 유저들이 느끼는 건 아마도 답답함과 이해할 수 없음, 느리다 같은 느낌들일 것 같다. '발더스게이트', '마이트앤매직' 시리즈 등 고전 RPG들을 즐긴 유저라면 '아니, 요즘도 이런 게임이!'라고 외치며 빠져들 수 있겠지만 요즘 이렇게 불친절한 게임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4로 한국어 버전이 나왔으니 콘솔에서 정통파 RPG를 하고 싶었던 유저라면 꼭 해봐야 할 타이틀이다. 어서 주문하자.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을 각 요소 별로 쪼개서 평가를 해보려 한다.
첫인상
화염구를 맞으면 내성굴림을 해서 실패하면 불이 붙는다. 기름 위에 화염구를 던지면 '불바다'를 연출할 수 있다. 액션포인트와 턴제가 결합된 시스템으로 과거 일본, 서양 RPG들에서 찾아볼 수 있던 스타일의 변용이다.
기본적으로 전투 중 스킵이 되지 않고 뛰어다닐 수도 없어 답답함을 느낄 유저도 있을 것 같다.
퀘스트
퀘스트에 느낌표를 표시해주고 클릭하면 퀘스트를 받고 보고하는 그런 편리한 기능은 없다. 지도에 마커가 표시되는 건 메인 스토리와 연관된 중요한 경우 뿐이다. '살인사건을 해결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아도 어디에 단서가 있는지는 내 발로 뛰어 찾아야 한다.
메인 퀘스트는 어느 정도 강제 이벤트와 전투가 주어지지만 서브 이벤트는 그야말로 유저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있다. 플래티넘 트로피나 100% 클리어를 노리는 유저라면 위키나 공략사이트를 적절히 참고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퀘스트를 해결해 경험치를 받고 물건도 다 판 후에 돌아서서 전투를 걸어 전투 경험치를 먹고 팔았던 물건도 루팅해서 회수하는 게 가능한 그런 게임이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아니 일자진행의 RPG에 익숙해져 있는 유저라면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협동플레이
'디아블로'처럼 한 쪽이 전투를 하고 한 쪽은 따라다니는 방식의 키워주기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주인공 두 명을 각각 조작하게 되는데 시야에서 벗어나면 화면이 분할된다. 퀘스트 진행도 별도로 할 수 있고 전투도 별도로 할 수 있다. 한 명이 마을 밖에서 언데드와 싸우는 동안 한 명은 마을 안에서 용의자를 수사하는 진행도 가능하다.
퀘스트를 진행함에 있어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죽이자/살리자 식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를 위한 가위바위보 게임도 준비되어 있다.
사실상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을 협동플레이로 하려면 부부나 친구가 거실 소파에 같이 앉아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함께 게임 속 세계를 여행한다는 느낌이 딱 맞을 것 같다.
주인공 둘이서 대화하면서 선택한 선택지는 주인공의 성향에 반영되며 이 성향으로 능력치 변동이 있다. 이타적인 선택을 하면 명성이 오르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면 물물교환에 보너스를 받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혼자서 게임을 하는 경우 한쪽 주인공의 선택을 고를 수 있는데, 캐릭터 생성 시 성향을 지정해 주면 성향에 맞는 선택을 자동으로 해 준다. 성기사로 골라주면 플레이어가 악한 선택지를 고를 때 명예롭고 선한 쪽에 서서 반대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래픽
나쁘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AAA급의 그래픽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에서 엄청난 퀄리티의 그래픽을 요구하는 건 무리 아닐까 싶다.
쿼터뷰/탑뷰로 시점 전환이 가능한데 지형에 고저차가 있어 탑뷰가 능사는 아니므로 쿼터뷰 시점에서 지형 그래픽이 캐릭터를 가리는 부분에 대한 처리가 중요하다. 게임에서는 캐릭터 주변부를 가리는 지형을 완전 투명하게 처리하면서 시야에 대한 불만이 전혀 생기지 않게 잘 구현해 뒀다.
마법효과나 전투 이펙트 모두 특별히 흠 잡을 부분 없이 깔끔하게 구현되어 있는 편이다. 프레임은 30프레임 고정이라고 하지만 게임 특성상 프레임 면에서 고민할 부분은 없다
텍스트, 스토리
RPG 유저들이 서양식 RPG에 기대하는 스토리 수준에 비해 조금 아쉽게 구현되었다는 평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나쁜 편은 아니다. 1장이 방대한 볼륨을 자랑하는 데 비해 그 뒤로는 일자진행의 느낌을 주는 건 조금 아쉽다. 볼륨 면에서는 최소 50시간 이상 걸리는 게임으로 10~20시간에 끝나는 요즘 게임들에 비해 지나치게 방대한 볼륨을 자랑한다.
장르 특성상 텍스트가 넘쳐나다 못해 터져 나간다. 게임 콘셉트 상 어려운 단어도 많이 등장하고 퀘스트 진행 사이에 대사에 감춰진 단서들이 많아서 영문판이었다면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제대로 게임하기 힘들었을 거라 느껴질 정도다.
에이치투가 한국어화를 아주 잘 해서 게임 진행에 무리가 없다. 한글 번역 후 전체적인 감수가 잘 이뤄진 느낌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번역으로 고통받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퀘스트 진행에 필요한 단서를 대화 중간중간에 던져주고, 퀘스트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이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NPC가 던져주기도 하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탐문하고 대화를 종합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 물론 그 결과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유저의 몫이다.
전투
우선권에 따라 턴 내에서 행동순서가 정해진다. 속도에 따라 초기 AP 양이 정해지고 이동, 공격, 캐스팅 등 모든 행동이 정해진 양의 AP를 소모한다.
남은 AP를 턴을 강제종료하면서 다음 턴을 위해 적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대 AP는 건강 수치에 영향을 받는다.
전사가 돌진해서 상대의 주의를 끌고 마법사가 메즈, 힐 등으로 지원하고 도적이 뒤를 치거나 활을 쏘아 딜링을 하는 방식으로 고전 RPG들처럼 상태이상이 가장 유효하다. 동결, 기절, 넘어짐, 공포, 매혹, 실명 등으로 다양한 메즈가 가능하다.
지형을 이용하여 길을 막거나 기름을 깔고 불을 붙여서 근접 캐릭터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불정령을 상대하기 위해 비를 뿌리는 등 '그럴듯한' 전략이 모두 통용된다. 원거리 캐릭터의 시야를 방해하기 위해 연막을 뿌리는 등 이러면 이렇게 되겠지가 그대로 적용되므로 머리를 써 가며 플레이해야 한다.
밸런스는 굉장히 빡빡하게 맞춰져 있다고 느꼈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거나 공략 숙지가 되어있지 않으면 언제든 순식간에 파티가 전멸할 수 있다.
몬스터는 정해진 위치에 정해진 만큼 나오고, 리젠은 없다. 레벨링은 퀘스트와 전투 전반을 감안해서 조절되어 있으므로 특정 보스가 너무 어렵다면 레벨링이 아니라 전투 방식을 고민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조작
장르 특성 상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에 특화되어 있어 패드 플레이가 조금 불편한 게 사실이다. 주요 컨텐츠인 제작에 있어 마우스로 드래그 앤 드랍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이템 선택, 제작하기, 다음 아이템까지 이동, 아이템 선택 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 많은 유저들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쓰는 시간보다 인벤토리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지 않을까. 전투중 기술 사용 자체는 턴제의 특성상 조금 느려도 문제가 없다. 다만 비전투 상황에서 함정에 빠졌다거나 하여 급히 힐을 쓰려고 하면 좀 답답할 것이다.
총평
필자와 같이 발더스게이트나 아이스윈드데일 시리즈, 마이트앤매직 고전시리즈 등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게임이다. 하지만 일본식 RPG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식의 MMORPG에 익숙해져 있다면 1장 퀘스트 진행에서 벽을 느낄 것 같다.
전자에 속하는 필자는 이 게임을 하고 100점 만점에 94점을 매겼지만, 후자에 속하는 게이머라면 '이게 뭐야, 못할 게임'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을 것 같다.
리뷰 서두에 적은 것을 반복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콘솔에서 정통파 RPG를 하고 싶었던 유저라면 꼭 해봐야 할 타이틀이다. 어서 주문하자.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김명훈님이 기고하신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