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근무환경 개선 및 권익보호를 위해 '게임인'들이 모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 한국게임개발자협회가 주관하는 'kgc 2018'이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진행된 가운데, 현장에서는 '국내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근무환경 개선 및 권익보호'를 주제로 패널 토크가 진행되었다.
최근 주당 법정 근로 시간이 기존의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됨에 따라 하루 최대 8시간, 휴일 근무를 포함한 연장근로의 경우에는 총 12시간까지 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확대되는 상황이다. 법정 근로 시간이 변경됨에 따라 탄력적 근로 시간이 적용되어 자율성이 확대될 것이란 의견과 근로 시간이 축소되어 임금이 감소될 것이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정석희 회장과 스마일게이트 노조 'SG 길드'의 차상준 지회장, 동양대학교 김정태 교수와 마나크리 이원석 개발자가 참석해 게임 업계의 근무환경과 권익 보호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게임업계 노조는 아직 생소한 개념, 건강한 게임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시작점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현장에서는 게임 업계 노조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이전까지 게임 업계에서는 노조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최근 대기업인 스마일게이트와 넥슨에서 노조가 탄생함에 따라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
차상준 지회장은 스마일게이트 노조가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 탄생했다고 밝혔다.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됨에 따라 선택적 근로 시간제가 실행되었는데, 당시 사측이 제시한 계약서의 내용에 문제가 있음에도 별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껴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것. 'SG 길드'는 현재 헌법 33조에 명시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중 단체교섭권을 행사하고 성과 분배 등의 안건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 역시 게임 업계 노조가 탄생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게임 산업의 규모가 조 단위로 커지고 있음에도 업계 내부에서는 조직적인 노동환경이나 복지의 향상, '게임인'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그는 최근 게임 업계에서 드러나는 '승자독식'의 구조에 대해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임 생태계의 미래 발전을 위해 준비해야 할 때"라며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개인이나 업계에 다른 부작용들이 발생하지만 게임 생태계의 건강한 선순환과 의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게임 업계 노동조합이 그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소규모 업체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종사자들의 게임 노조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마나크리 이원석 개발자는 "소규모 업체 개발자들은 게임 업계 노조가 탄생한 것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라며 "다른 업계에서는 노조가 탄생하면서 노동 환경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게임 업계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다. 노조를 통해 게임 개발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은 그동안 게임 업계에서 노조가 출범하지 않았던 이유로 '프로젝트 중심'의 노동 구조를 꼽았다. 업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개발자들의 경우 프로젝트에 따른 이직이 잦았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직장'보다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보다 큰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 차상준 지회장에 따르면, 노조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외에도 소위 '회색지대'라 불리는 중립적인 태도의 구성원들이 가장 많다. 그는 노조가 의미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결과를 내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차상준 지회장은 "현재 구성원의 30% 정도가 노조에 참여하고 있다. 50% 정도의 인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라며 "게임 업계 노조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만큼 우리도, 회사도 아직은 모르는 부분이 많다. 서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양극화 심화,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 개발사들
이어서는 게임업계 노동환경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실제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 관련 업계의 근무 환경이 열악해 외부에서 게임 업계에 대한 선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는 상황.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이에 대해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게임업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어 지속가능한 개발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태 교수가 진행한 동양대학교 콘텐츠 관련 학과의 수요 조사에 따르면, 시각 디자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콘텐츠 학과 학생들이 게임 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태 교수는 게임업계 내부의 양극화를 지적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의 경우 다른 문화 콘텐츠 업계에 비해 근무환경이 나은 상황"이라며 "그러나 중소 게임사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소 게임사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고 게임 산업에 진입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 게임사들의 게임이 단순한 시스템이나 확률형 BM을 통해 큰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고 이를 단순히 따라해 큰 수익을 거두려는 게임사들이 많지만 이중 주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개발사는 적으며 대부분의 중소 개발사들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 김정태 교수의 설명.
김정태 교수는 "게임산업은 이제 산업으로서의 성장을 어느정도 완료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라며 "그러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게임 산업은 물론 주변의 다른 문화 콘텐츠 사업들도 무너질 수 있다. 임금협상이나 근로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개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논의들도 진행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포괄임금제'에 대한 이야기.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등의 시간외 근로에 대한 수당을 포괄적으로 계약하는 것으로, 최근 법정근로시간이 축소됨에 따라 이러한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하는 것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은 이런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중소 개발사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포괄임금제가 폐지되는 경우 대기업에 종사하는 인원들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중소 개발사의 경우 늘어나는 임금이나 인원의 근무 관리 측면에서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 그는 "대기업의 매출은 점차 성장하고 있지만 중소 개발사의 경우 망하는 곳이 많은 등 양극화가 심화된다"라며 "노조로 인해 이득을 보는 것은 대기업 종사자들 뿐이라는 우려도 많다"라고 말했다.
차상준 지부장은 이에 대해 "회사 내부의 문제를 시작으로 게임 산업 전반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다"라며 "우리가 잘 되어야 더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 어깨가 무겁다"라고 말했다.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개발 환경 필요, 프로젝트의 실패가 개발자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문제도 개선해야
마지막으로는 게임업계의 노동 환경 개선 방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게임인들의 이력관리'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중심으로 게임 개발 환경이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똑같은 코드와 에셋을 제공하더라도 70% 정도가 색다른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인'들의 창의력은 무한하다. 이러한 창의성을 근무환경이 뒷받침하는 상황에서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김정태 교수의 설명.
그는 "재원들은 창의적이지만 나오는 결과물들은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AI나 블록체인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도 좋지만 참신한 소재를 발굴하거나 창의적인 도전을 하는 게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김정태 교수는 이를 위해 게임인의 이력 관리 시스템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 단계부터 이력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여러 게임들을 개발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 특히 게임 업계에서는 자신이 개발하지 않은 게임에도 이름만 올리는 인원들이 많은 만큼 회사나 개인 차원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이력 관리와 새로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김정태 교수는 밝혔다.
한편, 현장에서는 게임업계의 권고사직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더다. 차상준 지회장은 "얼마 전 스마일게이트에서 한 개발자가 육아 휴직을 사용하고 복귀했는데 팀이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라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해당 인원에 대한 전환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6개월 뒤 권고사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팀이 사라진 상태에서 기존의 인력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은 회사의 결정임에도 책임은 구성원들에게 있다. 회사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긍정적인 변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석희 회장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공감했다. 그는 "프로젝트의 실패가 개발자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라며 "이 때문에 콘텐츠를 만드는 개발 팀이 스스로를 필터링하는 상황들도 많다. 오너가 개발에 깊숙히 관려하는 문제 역시 해결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연스러운 게임 생태계를 위해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석희 회장은 "게임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개발자들이 여러 회사를 이동하고 다시 스타트업에 참여해 실패를 겪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라며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다양성을 위해 큰 기업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라며 '게임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게임업계 양극화 해결을 위한 방안들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패널 토크를 마치면서 차상준 지회장은 "우리는 장기적으로 게이머, 회사, 사회가 서로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고자하는 목표가 있다"라며 "회사 내부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회사 밖으로 이어지는 상생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에는 게임 개발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분위기가 옅어지는 만큼, 이들도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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