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게임, 라인게임즈 '베리드 스타즈'

등록일 2020년08월11일 10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진실을 파헤치고 손에 넣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그래서 애써 진실을 끄집어내기 보다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쉽고 단편적인 사실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나갈 것도 없이 인터넷 세상에서는 근거 없는 소문, 추측, 폭로 등이 난무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베리드 스타즈'에 참가했다가 의문의 붕괴사고에 휘말린 다섯 명의 스타, 그리고 한 명의 스태프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그들은 각자의 아픔,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에게 씌워진 의혹과 루머들을 끌어안고 있다. 붕괴 현장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그들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왜곡된 모습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SNS. 붕괴 현장에서 진실을 향한 열망, 왜곡된 소문 등이 그들을 덮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검은방'으로 이름을 알린 '수일배' 진승호 디렉터의 첫 콘솔 게임 '베리드 스타즈'가 드디어 정식 발매되었다. '베리드 스타즈'는 서바이벌 오디션 현장에서 일어난 붕괴 사고에 휘말린 6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군상극을 다룬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 이번 작품에서는 진승호 디렉터의 특기인 '방탈출' 요소를 빼고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으며,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짜릿한 반전들이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현실의 SNS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게임 속 가상의 매체인 '페이터'. 진승호 디렉터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냈다고 밝혔던 것처럼 게임에서 묘사하는 SNS의 모습은 현실과 상당히 흡사하다. 어찌 보면 '베리드 스타즈'는 가장 한국적인 게임이 아닐까?

 

커뮤니케이션 추리 게임, 대화로 생존하자

 



 

진승호 디렉터의 전작들과 달리 '베리드 스타즈'에서는 '방탈출' 등의 퍼즐 요소나 추리 요소가 대거 사라졌다. 여전히 굵직한 사건의 내막을 밝히는 것은 플레이어의 몫이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비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검은방'에서처럼 다양한 퍼즐과 미니게임 등을 기대했다면 '베리드 스타즈'에서는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를 대신해 게임을 채워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다. '베리드 스타즈'의 매 챕터에서는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고 이에 따른 키워드를 획득하게 된다. 이 키워드를 제시해 다른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수습하거나 플레이어의 정신을 가다듬어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베리드 스타즈'의 목표.

 



 

단서를 수집해 진상을 밝히거나 수수께끼를 푸는 등 전통적인 의미의 '추리' 대신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 간의 원활한 소통을 '추리'하게 된다. 키워드를 제시하고 소통을 시도하면 이에 따른 반응이 오게 되는데, 상대 캐릭터의 호감도가 상승 또는 하락하거나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정신력이 하락한다. 트루 엔딩을 위해서는 호감도와 정신력 수치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기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어떤 선택지를 제시하고 어떻게 대답할지를 선택하는 것이 '베리드 스타즈'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추리'인 셈이다. 각 캐릭터는 저마다의 성격에 맞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키워드, 선택지가 존재하는데 극중의 상황이나 캐릭터의 성향, 설정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다 보면 어느정도 해답이 보이게 된다.

 



 

최대한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끌어나가게 되는데, '검은방' 및 '회색도시' 시리즈를 통해 갈고 닦은 진승호 디렉터의 캐릭터 설정 및 시나리오 설계 능력이 빛을 발한다는 느낌이다. 각 캐릭터가 간직하고 있는 사연들을 파헤쳐 나가는 재미도 있으니, 전작을 재미있게 즐겼거나 텍스트 어드벤처를 자주 접한 사람들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사이버 아수라장 그대로 반영한 '페이터', 게임의 또다른 무대

 



 

게임의 주요 무대는 붕괴된 서바이벌 오디션 무대 현장이지만, 게임의 진짜 이야기는 가상의 공간인 SNS에서 주로 진행된다. 게임의 새로운 전개를 더해주는 역할도 SNS의 몫이며, 플레이어가 대부분의 정보를 얻게 되는 곳 역시 SNS. 게임 내에서는 '페이터'라는 이름으로 묘사되지만 모티브는 누가 봐도 '트위터' 혹은 '페이스북'이다.

 

흥미로운 점은 '베리드 스타즈'에서 묘사하는 SNS의 모습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SNS 상에서 익명의 인물들이 사용하는 어투나 단어 선정, 여러 낭설들이 퍼져나가고 이런 소문들이 기정사실화되기까지의 과정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된다. 진승호 디렉터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페이터'라는 요소를 넣게 되었다고 하는데, 게임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 한국적인 정서를 다룬 게임이 드물다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는데, '베리드 스타즈'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 듯한 느낌이다. 꼭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한옥, 한복 등의 소재들이 등장해야만 한국적인 게임은 아닌 듯하다. '베리드 스타즈'를 플레이하면서 한국의 인터넷 문화의 병폐와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페이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게임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 되겠다.

 

조금 지루한 대회의 연속, 다회차 편의성도 아쉬워

 



 

전작과의 차별화, 새로운 게임성을 위해 '방탈출' 요소를 과감히 삭제했지만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만으로는 빈 자리를 채우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갈등이 본격화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게임이 흘러가는 중반부부터는 엔딩까지 단숨에 도달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편이지만, 해당 지점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

 

특히 사건 발생 – 커뮤니케이션 시작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게임 흐름이 초중반부의 지루함을 배가시킨다는 느낌이다. (엄밀히 구분하면 장르는 다르지만)비슷한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인 '역전재판' 시리즈나 '단간론파' 시리즈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재판'이나 '추리' 등의 요소들을 넣어 플레이 과정에서의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고 있지만 '베리드 스타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단조로움을 없애줄 만한 장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워드를 제시하고 이에 따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캐릭터에게 똑 같은 키워드를 제시하는 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대화를 통해 뭔가 좋은 키워드나 힌트를 얻어낼 수 있다면 조금 낫겠지만, 사실 단서를 제공하는 대화보다는 의미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의 키워드가 더 많은 편. 이런 과정을 세네 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키워드를 전부 제시하기보다는 다음 챕터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들만 획득하고 넘어가게 되더라.

 



 

진짜 게임이 시작되는 2회차 이후부터는 편의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처음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때를 제외하면 저장이나 불러오기를 할 수 있는 구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분기점으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지를 시도해볼 수 있는 기능도 없다. 다른 전개나 선택지를 원한다면 커뮤니케이션 파트 처음으로 돌아가거나 게임을 아예 다시 시작하는 방법 밖에 없어 도전과제를 목표로 하는 게이머들이라면 조금 피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모든 루트가 지루한 초중반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 다회차 플레이 시에는 초중반부를 통째로 건너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작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한 첫 단추인 '베리드 스타즈'

 

다시 돌아온 그게 나야 엔딩? 이건 못 참지
 

'베리드 스타즈'는 진승호 디렉터의 특기인 매력적인 캐릭터와 상황 설정,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돋보이는 게임이다. '회색도시' 이후 그의 작품을 기다렸던 사람들이라면 만족할 수 있을 만한 게임이 되겠다.

 

다만, 덮어놓고 수작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아쉬운 부분들도 많다. 분기점으로 돌아가 게임을 진행하는 등의 편의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콘솔 기기에서 즐기기에는 커뮤니케이션 위주의 게임 진행 방식이 조금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국내 성우들의 녹음 퀄리티는 상당히 좋지만, 커뮤니케이션 파트에서는 음성이 일부만 지원된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번이 첫 콘솔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콘솔 게임에 어울리는 편의성과 게임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던 만큼, 차기작에서는 좀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본다.
 

만약 게임을 즐길 생각이라면 거치형 콘솔보다는 휴대용 기기를 추천한다. 세이브 포인트가 제한적이기도 하고 텍스트 기반 게임인 만큼 손에 들고 다니면서 간간히 진도를 나가는 것이 좀더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한편, '베리드 스타즈'는 진승호 디렉터의 첫 콘솔작인 동시에 그의 첫 작품 '검은방'의 출시 10주년을 기념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이에 작품 전반에 걸쳐 '검은방'에 대한 셀프 오마주들이 여럿 담겨있는데, 디렉터의 개인적인 팬이거나 전작부터 꾸준히 즐겨온 열성 게이머라면 반가울 만한 부분들이 있고 또 기대와는 다른 부분들도 여럿 있겠다.

 

여전히 첫 전개에서는 파국을 맞이하고, 외부의 제 3의 인물을 통해 이야기는 다른 전개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시리즈 전통의 '그게 나야' 엔딩도 여전히 건재. 세부적인 요소들이나 설정에서는 첫 작품 '검은방'의 흔적들이 여럿 느껴지지만, 게임의 전개 방식과 결말에서는 또다른 분위기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베리드 스타즈'의 매력이다.

 

저마다 간직한 이야기들

 

진실에 대한 호기심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엉켜서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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