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미남 게임개발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포프 김. 그는 렐릭 스튜디오를 거쳐 현재 스퀘어에닉스 산하 에이도스 몬트리얼에서 스퀘어에닉스의 극비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인 개발자다.
'셰이더 프로그래밍 입문', '북미 취업 가이드북' 등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그는 국내에 많은 개발자 팬(?)을 거느리고 있다. '삼국지를 품다'의 정종필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를 비롯해 그를 '스승'으로 지목하는 이도 많다.
지난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KGC 2012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아 체류중인 포프 김을 만나 해외 업체에서 일해온 소감과 함께 국내 게임업계에 부족한 부분에 대한 그의 조언을 들어 보았다.
그는 THQ 산하 렐릭 스튜디오에서 일한 경험과 스퀘어에닉스 산하 에이도스 몬트리얼에 합류한 과정과 소감을 담담히 설명한 뒤 한국 게임업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지식 공유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렐릭스튜디오에서 에이도스 몬트리얼로
게임포커스: 캡콤 쪽에 계시다가 THQ 산하 렐릭 스튜디오에서 워해머 40K: 스페이스 마린(이하 워해머 40K), 다크사이더스2 개발에 참여하신 걸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스퀘어에닉스 산하 에이도스 몬트리얼에 계신데 일본계 업체와 미국계 업체 사이에 분위기 차이가 좀 있었을 것 같다.
포프 김: 사실상 일본계 회사는 이번 에이도스 몬트리얼이 처음이다. 첫 회사가 데드라이징2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개발 당시에는 캡콤의 자회사가 아니었고 퇴사 후 자회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캡콤 자회사에서 근무한 건 아니었다.
게임포커스: 그렇다면 이번에 처음으로 일본계 업체에서 일하게 되신 건데 분위기는 좀 어떤가?
포프 김: 스퀘어에닉스 산하 아이도스 몬트리얼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도스가 원래 유럽계 업체로 스퀘어에닉스에 인수된 것이라 일본 업체의 느낌은 별로 안 난다.
분위기만 놓고 보면 이제껏 다녔던 회사 중에서 가장 자유롭고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시작 단계라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고 개인적 경력 상에서도 가장 큰 대작을 만들고 있는 곳이라 무엇보다 성공에 대한 야심이 크게 느껴진다. 입사를 결정한 것도 그런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 부분이 컸다. 개발자로서 오랜만에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니 즐겁다.
정말이지 이런 것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야심이 크고 자신감이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즐겁게 일하고 있다.
게임포커스: 스퀘어에닉스에 참여하기 전 경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역시 워해머 40K인 것 같다.
포프 김: 워해머 40K 개발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며 개인적으로 성장한 부분도 있고 만들었다는 게 자랑스러운 게임인 건 맞다. 가장 잘 한 부분은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 사이의 조율을 무척 잘 했다. 자체 엔진으로 개발하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자식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그런 탓에 렐릭을 퇴사하고 우울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뛰어난 최신 기술을 도입했다거나 하는 느낌은 안 들어서인지 야심차게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은 좀 덜한 것 같다.
게임포커스: THQ의 경영이 악화되며 렐릭에서 마지막에는 힘든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포프 김: 렐릭을 퇴사한 이유는 렐릭이 콘솔게임을 포기한 게 원인이었다.
렐릭은 원래 PC게임 전문 개발사로 시장 변하에 맞춰 콘솔에 들어가 '아웃핏'을 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한 동안 콘솔게임을 만들지 않다가 다시 콘솔 게임에 도전하자고 나온 게 워해머 40K였다. 렐릭 입장에서는 야심차게 만들어 미래를 열어 보려 했지만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나를 포함해 콘솔 개발자들 대부분 퇴사한 상태다.
퇴사 전 마지막 시기를 생각해 보면 워해머 40K가 실패하며 실망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THQ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느껴졌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게 아니겠나.
아무튼 워해머 40K 개발자들은 대부분 렐릭을 떠났다.
밴쿠버와 몬트리얼, 어떻게 다른가
게임포커스: 밴쿠버에 계시다 몬트리얼로 이주하셨다. 밴쿠버의 게임 스튜디오들이 많이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밴쿠버의 게임산업이 시들고 있는 것인가?
포프 김: 사실 밴쿠버에서 나온 게임 중 EA가 만든 것 말고는 성공한 AAA급 대작이 없었다. '프로토타입' 정도 빼면 성공한 게임도 없었던 것 같고. 물론 데드라이징2는 대작이긴 했지만 기대만큼은 성공하지 못했다. 몬트리얼의 '어쌔신크리드' 같은 AAA급 작품을 내는 스튜디오가 없다 보니 콘솔게임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된 것 아닐까 한다. 밴쿠버는 몬트리얼에 비해 아무래도 B급 감성이 강한 느낌이다.
사실 현재 콘솔 게임이 힘을 잃어가는 와중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AAA급 게임을 내는 스튜디오 뿐이다. 그런데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그렇게 나빠지지 않았다. 캡콤 밴쿠버에서 꾸준히 프로그래머를 채용하고 있어 150명을 넘겨 300명까지 인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많은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몰락하고 있다기보다 업체들이 추려진 것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나 게임 디자이너는 좀 힘들 수도 있다.
게임포커스: 몬트리얼의 분위기는 어떤가?
포프 김: 몬트리얼에서 유비소프트의 '왓치독스' 개발자들을 만났는데 정말 야심차게 일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밴쿠버에서는 안전하게 가자는 느낌이었는데 이 쪽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대작을 만들자, 리스크 감수하고 거창한 작업을 해보자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 감동도 받았고 대작을 만드는 스튜디오는 이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하는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다. 몬트리얼에서는 유비소프트가 대작을 계속 만들어 왔고, 아이도스 몬트리얼도 최근 '데우스 엑스'라는 대작을 내놓은 바 있다.
이제는 세계적 대작을 만들어야 버티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성공적이지 못한 회사는 정리되고 있는 추세다. 사람들이 콘솔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밴쿠버에서는 모바일 업체가 엄청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큰 회사들은 돈도 있고 노력도 하고 위험도 감수하고 있달까? 에이도스 몬트리얼은 개발자로서 동기 유발이 되는 곳이다.
크라브(KLab) 사나다 대표가 북미 지역의 인건비가 너무 비싸 스튜디오를 동남아로 이전하고 있다던데 인건비가 그렇게 비싼가?
포프 김: 서부는 확실히 비싸다. 하지만 몬트리얼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집값 등 물가가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북미에서 인건비가 높냐 낮냐의 차이가 있다 해도 아시아보다는 비쌀 테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한 가지,근무시간은 확실히 차이난다. 북미가 주 40시간을 확실히 지킨다면 아시아는 80시간 정도 일하지 않을까.
게임포커스: 사실 입사 직후 외국으로 강연을 온 것도 특이한 것 같다.
포프 김: 채용 면접 볼 때 입사할 생각으로 갔다기보다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만났다 입사하게 됐다. 시그라프 강연 때 불러서 프로젝트를 보여주며 들어오겠냐고 묻던데 10분 정도 들어보니 바로 입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KGC의 경우는 이미 오기로 되어 있던 상황이라 강연을 해야 하니 11월에 입사하거나 아니면 바로 시작해 4주 일하고 한국에 와야 하는 3주 정도를 쉬어야 한다고 하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결국 이왕이면 일찍 와서 시작하고 자유롭게 다녀오라고 해서 2주 일정으로 오게 됐다. 회사에서는 3주 일정으로 다녀오라고 했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게 걸려 2주로 줄였다.
한국 게임업계에 필요한 것은?
게임포커스: 한국에 개발 입문서를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포프 김: 셰이더 책은 원래는 한국 대상이 아니라 북미에서 출판할 예정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휴가를 더 내서 3주 만에 쓴 책으로 출판사의 일정이 늦어지며 글은 다 썼는데 출판이 안 되어 블로그에 연재하다 국내 출판사와 연결이 되어 한국에 먼저 내게 되었다. 다른 분이 쓴 좋은 책이 있다면 굳이 안 썼겠지만 나와있는 게 없어서 직접 쓰게 됐다.
게임포커스: 책을 또 내고 싶은 생각도 있나?
포프 김: '셰이더 프로그래밍 입문'은 입문서로 이만한 책이 없다는 생각에 낸 거고 출판사에도 조건을 걸어서 얇고 싸게 낼 수 있었다. 자신있게 쓴 책이고 중급, 고급책을 써 달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는데 기존 책들보다 잘 쓸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이건 정말 확실하다고 자만할 정도의 책은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입문서 쓸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집에서 할 일이 없어 열심히 썼는데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저번에 쓸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해서 하루 16시간씩 자고 먹고 글만 썼는데 언젠가 다른 책도 낼 수 있으면 내야 하지 않겠나.
게임포커스: 그러고 보니 게임을 즐긴다는 말씀은 못 들어본 것 같다. 게임은 평소에 잘 안 하는 편인가?
포프 김: 게임을 즐겨하진 않는다. 게임개발자라면 게임을 많이 해야 한다는 개념이 있긴 하지만 난 좀 예외인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1, 2, 디아블로는 즐겨 했지만 확실히 다른 게임 개발자들에 비해 덜 하는 편이다.
모션 울렁증으로 FPS도 못 하는 편이고. 게임은 덜 하는데 게임개발자로 일하는 이유는 게임개발보다 재미있는 걸 못 찾았기 때문이다. 힘들고 괴롭지만 재미있다. 집에서 자다가 꿈에서 버그를 고치고 출근하니 안 고쳐지던 버그가 고쳐지는 경우도 몇 번 있었는데 게임개발은 정말 재미있다.
게임포커스: 마지막으로 북미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한국 게임업계를 바라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지, 조언을 부탁드린다.
포프 김: 아쉬운 점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게임이 마녀사냥 당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다.
저를 비롯해 게임 개발자 중 많은 분들이 게임업계로 온 게 돈을 벌려는 생각만으로 온 게 아니라 어릴 때 하던 게임이 좋고 즐거워서 온 것 아니겠나. 저같은 경우도 법대 다니다 재미를 못 느껴 게임업계로 들어온 것이고 정말 좋아서 온 것이고.
그런 분들이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게임업계를 떠나고 들어오려는 생각을 못 할 것 같아 걱정이다. 북미에서 콘솔 퇴조로 어쩔 수 없이 모바일 개발자로 가서 모티베이션 저하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보며 아쉬웠는데 한국에서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이탈이 일어날 것 같다. 게임 프로그래밍은 정말 힘든 일이고 뛰어난 인재들이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쉽다.
두번째 안타까운 점은 한국에 기술력을 보유한 규모가 큰 게임업체들이 많은데 KGC에 나올 때마다 강연자를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강연을 직접 들으러 못 가고 강연자료만 찾아봐도 정말 실용적으로 도움되는 강연이 많고 지식공유를 활발히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
프로그래밍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적인 아이디어. 노하우가 공유되어야 좋은 게임이 나올 텐데 게임개발포에버, 넥슨 NDC, KGC 등이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한국 게임산업의 규모에 비해 자료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민감한 문제이긴 하겠지만 더 많은 회사들이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의 서버기술은 정말 세계 최고일 것으로 공유된다면 한국 게임업계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KGC만큼 강연자에게 혜택을 주는 컨퍼런스가 잘 없다. 시그라프나 GDC도 패스만 주고 항공권, 호텔 지원은 안 해준다. KGC는 정말 잘하고 있다고 보고 우수한 강연자들이 몰리는 게 당연한 것 같다. 환경은 잘 되어 있고 남은 것은 개발자들이, 회사들이 공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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