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추억의 마니', 아쉬움이 남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결과물

등록일 2015년04월14일 10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추억의 마니'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틸샷들은 보도를 위해 대원미디어에서 배포한 것입니다.


 


2014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가장 화제를 모은 이슈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해체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였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스튜디오는 유지하되 제작 부문은 해산'이라는 형태였지만, 몇 번의 번복이 있어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와는 무게감이 다른 발표였다. 적어도 지브리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체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는 없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으로 쏠렸다. 의외로 현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최후의 작품은 그 자체로 스튜디오 지브리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도,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도 아니었다. 지브리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마루밑 아리에티'를 만든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추억의 마니'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지난 2010년 선보인 마루밑 아리에티에 이어 4년만에 감독을 맡은 추억의 마니 역시 영국 동화가 원작이다. 다만 마루밑 아리에티와 달리 추억의 마니는 무대를 영국 노포크에서 일본 홋카이도로 옮기는 등 원작을 적극적으로 각색했다.

사춘기 소녀 안나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마법의 원이 있고 사람은 원 안의 인간과 원 밖의 인간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원 밖의 사람이다. 안나는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예의바르지만 이 보이지 않는 선을 침범하는 사람에게는 폭언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날이 선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날선 자신에 대한 혐오를 느끼면서도 날을 거둘 수 없어 더 상처를 받는 안나. 이는 천식으로 몸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품 중반 이후 밝혀지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안나는 천식 요양 때문에 찾아간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에서 습지의 저택을 발견하고 그곳에 사는 금발의 마니라는 소녀와 만나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지브리를 대표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의 손을 벗어나 신진 감독과 프로듀서의 힘만으로 완성했다고 하는 추억의 마니는 확실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전작들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머릿속 한 장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스토리보드와 설정을 만들어 작품화한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달리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미술 디자인과 공간 설계를 시작으로 추억의 마니를 작품화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이와이 슌지, 쿠엔틴 타란티노, 장예모 등 거장들의 실사영화에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던 타네다 요헤이를 미술감독으로 영입했고,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스튜디오 지브리 전성기의 작품들의 작화감독을 맡았던 안도 마사시가 13년만에 다시 돌아와 작화감독을 맡았다. 지브리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진 감독의 지휘 하에 실사영화에서 영입한 새로운 피와 왕년의 지브리맨이 한 팀으로 만나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디테일이 살아있는 공간 묘사, 잔잔한 달빛처럼 은은한 인물 묘사와 작화 등 외형 면에서는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렇게 완성된 아름다운 장면들을 본 후 흐르는 엔딩송인 프리실라 안의 'Fine On The Outside'는 감동을 배가시킨다. 혼자여도 괜찮아라고 노래 부르고 있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한 가사를 보고 있으면 9년 전에 만들었다는 이 노래가 추억의 마니의 원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본 박스오피스 역대 1위 기록을 차지하고 10위 안에 세 작품이나 랭크된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흥행 성적이 상당히 안타깝게 나왔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자신의 데뷔작인 마루밑 아리에티에 비해서도 말이다. 스토리가 중층적으로 진행되다보니 다소 꼬여있고, 아름다운 장면들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러운 장면들의 합 등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그간 가지고 있었던 보편성을 희생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선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로 보편성을 가진 여태까지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추억의 마니는 대상 연령층이 높고 좁다. 모노노케 히메의 폭력 수위나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마지막 작품인 바람이 분다도 여태까지의 지브리와는 달리 연령층이 높아졌으니 그 부분은 오히려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좁아졌다는 부분이다.


날 선 안나의 모습이나 마니와의 교감은 아이들에게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고, 어른들에게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인생의 한 때가 아닐까 싶다. 요컨대 핀포인트로 어떤 영역의 관객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보편적인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할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거칠게 구분해 보통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구분하는 의미로 쓰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각 속성별 모에 코드로 세분화된 오타쿠 대상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편성을 무기로 전세계의 사랑을 받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대상 관객의 폭을 좁혀버린 것은 각 코드별 배타성을 지닌 여타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구별 포인트를 스스로 없앤 면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추억의 마니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일찍이 지브리의 후계자로 낙점 받았지만 요절한 콘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이 지브리 작품들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어떤 의미에서 추억의 마니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브리 스텝이 제작에 대거 참여했지만 기존 지브리 정서와는 구분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추억의 마니는 대상 관객, 작품 내 정서, 캐릭터 등 많은 면에서 지브리의 후계자라기보다 탈 지브리에 가까워 보인다.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 말이다.

흥행 면에서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백합 내음 물씬 풍기는 혈육의 정은 한해 먼저 전세계를 강타한 디즈니의 겨울왕국에서 이미 선점한 부분이다. 추억의 마니를 끝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끝을 맺었다. 아름다움과 아쉬움을 모두 남기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특히 막 지브리 안에서 지브리를 벗어난 새로움이 준동하는 찰나에 끝나버려 이 이상의 결과물을 볼 수 없다는 점은 더욱 아쉽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추억의 마니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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