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역대급 명작이라는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모두를 위한 '파판 7'일 수는 없을까

등록일 2020년04월22일 13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문화 콘텐츠 산업 전반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주목하고 있다. 핵심 고객으로 성장한 3040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인데, 게임업계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고전 명작들의 리메이크 또는 리마스터 타이틀을 발매하고 있다.

 

다만 당시의 게임에 대해 별다른 추억이 없는 20대 후반 게이머인 기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복고 열풍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원작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올드 게이머들의 반가움을 100% 이해하기도 어렵고 고전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는 것조차 쉽지 않다.

 

스퀘어 에닉스가 최근 국내에 발매한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가 딱 그렇다. 1997년 발매되어 당시 기기의 성능을 초월한 그래픽과 연출로 호평을 받은 '파이널 판타지 7'의 리메이크 버전인 해당 타이틀은 원작의 모든 연출을 고퀄리티 3D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한편, 전투 시스템을 일신해 발매 이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추억이 빈약했던 탓일까? 원작의 감성을 제대로 구현하고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는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지만 기자는 그리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원작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감성을 더한 전투 시스템이나 캐릭터의 모델링 자체는 인상적이지만, 시리즈 초심자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한 스토리라인과 분할 판매로 인한 부실한 구성은 실망스러울 정도.

 

이에 '파이널 판타지 7'을 몰랐던 기자가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해야겠다. 역대급 명작의 귀환이라는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지만 원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완결성이 부족한 반쪽자리 게임에 불과했다.

 

*본 리뷰는 SIEK와 스퀘어 에닉스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리뷰용 코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기사에 포함된 스크린샷 중에서는 독자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사를 읽기 전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ATB 빼고 다 바뀐 전투, 익숙해지니 재미가 보인다

 



 

이번 리메이크 작품의 가장 큰 변화는 전투 시스템이다. 원작이 전통적인 턴 기반 전투 시스템 위에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력을 충전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ATB 시스템'을 더해 실시간 전투의 느낌을 살렸다면, 리메이크 버전은 반대로 실시간 전투 위에 'ATB 시스템'을 활용해 턴 기반 전투 같은 느낌을 준 것이 특징이다.

 

순서가 돌아와야만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원작과 달리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별다른 제약 없이 가드, 회피, 기본 공격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자유로운 이동과 함께 X, Y, Z 축 개념이 추가되면서 적과 아군이 사이 좋게 공격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실시간으로 공방이 펼쳐지는 보다 역동감 넘치는 전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스킬이나 캐릭터 고유 어빌리티, 아이템 등은 기본공격이나 방어를 통해 'ATB 게이지'를 충전해야 사용할 수 있어 턴 기반 전투 고유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액션 게임과 유사하게 전투 시스템이 변화하면서 캐릭터 사이의 차별화 요소가 강해졌다는 점도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턴 기반 게임은 지형, 거리 개념이 없기에 스킬을 제외하면 궁수와 전사 직업 캐릭터 사이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에서는 액션 게임으로 외형이 변하면서 원거리 캐릭터와 근거리 캐릭터 사이의 플레이 스타일이 확연하게 나뉘는 편. 여기에 고유 어빌리티를 통해 4인의 캐릭터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게임이 액션 게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기본은 턴 기반 전투이기에 플레이어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한 편이다. 회피 기능이 존재하지만 성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회피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은 드물다. 결국 '세키로'나 '다크소울' 같은 액션 게임처럼 '노히트' 플레이를 노리기보다는 "맞을 건 맞아주는" 플레이가 필요한데, 기자를 비롯해 많은 플레이어들이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만의 전투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운영 방법에 익숙해지면 턴제 게임과 액션 게임의 절묘한 조화를 즐길 수 있다.

 

분할 판매로 인한 아쉬운 분량, 의미 없는 시간 끌기는 아쉬워

 

지하철에서는 앞으로 매기를 생활화 합시다
 

발매 이전부터 화제가 되어 많은 게이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리메이크 작품은 분할 판매가 결정된 바 있다.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 중 이번에 발매된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가 다루는 분량은 '미드가르'에서 본격적으로 모험을 시작하기까지의 이야기로, 원작에서는 극 초반부에 해당한다. 원작 기준으로 5시간 정도의 분량 만으로 20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게임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흐름을 끊는 장치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가장 큰 문제는 '미드가르'라는 중심 무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원작에서는 단순히 지나가는 길 정도로만 소모되었던 지역들을 하나의 던전으로 구성해 볼륨을 키웠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알뜰하게 던전을 재활용하는 노골적인 퀘스트나 스토리라인 등이 눈에 띈다. 무리해서 분량을 늘린 탓에 대부분의 던전은 의미 없는 갈림길이나 플레이어의 IQ 수준을 시험하는 듯한 퍼즐들로 가득 차 있다. 던전 탐험이 흥미롭기보다는 "어서 빨리 끝나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스포일러로 인해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리메이크 작품에서 탑 또는 타워와 관련된 던전이 등장하면 십중팔구 모든 층을 플레이어가 직접 올라가야 한다. 각 층마다 뭔가 특별한 볼거리나 보상이 있다면 불만이 덜했겠지만 1층부터 마지막 층까지 플레이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분량을 늘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부분. 게임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캐릭터가 좁은 틈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연출도 잦은데 이마저도 플레이 타임을 늘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

 

발매 이전 리메이크 버전 만의 차별화 요소로 내세웠던 서브 퀘스트나 신규 캐릭터들도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이다. 다양한 조연 중 스토리에 그나마 크게 관여하는 캐릭터는 총 3명 정도인데, 메인 스토리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시피 하며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편도 아니다. 특히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마다 서브 퀘스트가 등장해 플레이어의 진행을 가로막는데 이것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별의 붕괴라는 역대급 위기를 앞두고 한가하게 남의 보물이나 찾아다닐 사람이 있을까?

 

추억이 없으니 감동도 빈약하다

 

그래도 에어리스는 참 곱더라
 

원작을 모르는 입장에서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는 당황스러움의 연속이다.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리메이크 작품에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마무리되지 않는다. 기존에도 분할 판매나 시리즈를 통해 방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임들은 많았지만, 적어도 그 게임들은 하나의 작품 내에서는 완결성 있는 스토리를 제공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분량의 복선과 설정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기대하고 리메이크 버전을 접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게임 전반에 걸쳐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만 쏙 빼놓고 게임 속 등장인물들끼리 뭔가 아는 듯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이상하게 소외감이 든다. 결국 플레이스테이션1 시절의 원작부터 영화화된 게임과 속편까지 전부 즐겨야 이번 리메이크의 존재 의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감동을 느낄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명작의 귀환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모두의 '파판 7'이 될 순 없을까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파이널 판타지 7'의 리메이크 타이틀은 원작의 핵심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움을 더한 전투 시스템이 매력적이지만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특히 원작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미드가르' 파트를 20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늘리면서 구성에 빈틈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리메이크 버전의 초반부와 후반부는 연출이나 구성 측면에서 인상적이지만 정작 허리가 되는 중반부의 완성도가 너무나도 빈약하다. 같은 던전을 반복하는 단순하고 지루한 구성이나 의미 없이 늘어놓은 서브 퀘스트는 흥미를 떨어트리는 요소. 그래픽 측면에서도 유독 중반부가 허술해 억지로 분량을 늘린 부작용이 눈에 띈다.

 

여기에 이번 리메이크 작품이 '파이널 판타지 7' 프랜차이즈를 새로 접하는 사람이 아닌 기존의 팬 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겠다. 기존의 어떤 프랜차이즈도 시도하지 않았던 큰 그림을 그리는 노무라 PD의 생각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파이널 판타지 7'이 '킹덤하츠' 시리즈처럼 작품이 거듭될수록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폐쇄성이 짙은 프랜차이즈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분할 판매로 인한 부작용이나 신규 유저들에게 불친절한 서사는 후속작이 발매되면 조금 완화될 수 있겠지만 첫 작품이 발매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추억 속 명작의 화려한 귀환이라는 찬사를 받는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지만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반쪽짜리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기자도 명작의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리메이크 버전이 모두를 위한 '파판 7'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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