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소속이었지만 경쟁사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외모로 '마리오 사장'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카와우치 시로 전 SIEK 대표. 현재는 SIE 출신 멤버들이 모여 일본 콘텐츠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 현자의 언어로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Clouded Leopard Entertainment, 이하 CLE) 한국 지사장 직함으로 여전히 한국 게임시장에 관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의 많은 콘솔게임 유저들이 막연히 '열심히 했던 사람', '재미있는 사람', '한글화에 힘쓴 사람'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사실 그가 한국 콘솔게임 시장에 끼친 영향은 더 크다.
한국을 신형 하드웨어가 가장 먼저 출시되는 나라가 되도록 힘썼고, 한글판은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안 된다고 게이머들과 게임사들이 모두 체념하고 있던 당시 국내 콘솔게임 시장에 '해 봤어?'라며 적극적인 로컬라이즈 정책을 펴 '해보니 되네'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사람이다.
'한글화가 당연하고 안 하면 욕먹는' 시대에 콘솔게임을 시작한 게이머라면 한글판 타이틀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던 시절이 상상이 잘 안될 것 같다.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콘솔게임 시장 부흥을 이끌고 일본 본사로 옮기게 되었을 때, 카와우치 지사장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심경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취중진담, 한국에서 은퇴하고 싶었어
도쿄에서 카와우치 지사장을 만날 기회가 생겨 술잔을 기울이며 그가 한국을 떠나게 되었을 당시의 이야기, 그리고 SIEK 대표로 취임했던 당시의 상황과 그가 하려고 한 것, 현재의 한국시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본사에 이야기했는데, 본사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다른 시각에서 일을 해 보라며 들어주지 않더군요. SIEK 대표로 일할 때 밤에 혼자 한국 술집에 가서 혼술을 자주 했는데, 주변 모두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가운데에서 한국어를 BGM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카와우치 지사장의 한국어 발음은 SIEK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보다 더 좋아져 있었다. 한국을 떠나니 오히려 더 '제대로 한국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습을 좀 했다는데... 아는 단어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익힌 단어의 발음은 제대로 하려고 한다는 말에 꾸밈이 없어 보였다.
그가 SIEK 대표로 취임하던 2010년경 국내 콘솔게임 시장 상황은 처참했다. 유저들은 한글판 타이틀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분노했지만, 퍼블리셔들은 한글판 타이틀을 낼 정도의 시장 사이즈가 되지 않는다고 체념하고 있었고, 간혹 한글판 타이틀을 내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2010년 도쿄게임쇼 취재를 갔던 기자는 일본의 한 게임사 간부로부터 "한국은 대만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데 판매량은 훨씬 적게 나온다.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듣고 말문이 막혔던 기억을 갖고 있는데... 당시 한국 콘솔게임 시장에는 게이머들과 퍼블리셔 사이에 불신이 팽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시아 총괄 부사장이 당시 규모가 작던 한국 지사로 내려온 것에 놀란 사람이 많았다. 놀라움과 함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온 만큼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컸고, 카와우치 시로는 그런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한국 시장 가능성 믿었다, 해 보고 말하자고 하고 해 보니 되더라
"SIEK에 부임하던 당시 한국 시장은 안 된다고 다들 체념하고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가, 한번 해 보자고 생각하고 마트 게임매대부터 게임 소매점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무엇이 문제인지, 왜 안되는지를 알려 했습니다"
카와우치 지사장의 당시 회상이다.
그가 마트와 매장을 돌아다니며 확인한 것은, 당시 소니가 한국 게이머들의 니즈를 전혀 충족시켜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니즈를 충족시켜 주고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 분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최신 게임기를 손에 쥐고 플레이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게임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플레이하길 원했죠. 당연한 것입니다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로컬라이즈 타이틀이 잘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게임사들이 '안 되는 시장이라 안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해 보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카와우치 당시 SIEK 대표는 로컬라이즈 라인업을 크게 늘렸다. 새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4를 일본보다도 먼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출시되도록 노력해 성사시킨 것도 게이머들의 기억에 생생할 것 같다.
플레이스테이션4 발매일의 추억, '울보 사장'의 탄생
플레이스테이션4 한국 선행출시는 그가 목표로 하고 달려간 길의 일종의 도달점으로, 출시일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울보 사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플레이스테이션4 한국 출시일은 저의 인생에 가장 멋진 날이었습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매우 추운 겨울날에 플레이스테이션4가 발매됐죠.
단상에 올라 보니 플레이스테이션4를 구입하기 위해 그 추운 날씨에 나와 계신 여러분의 얼굴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들어오더군요.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생각했던 일이 이뤄졌다는 생각에 기뻐서 절로 눈물이 나왔는데, 저만 운 것은 아니고 당시 통역을 담당하던 SIE 직원을 포함해 현장의 SIE 관계자들이 많이 울었습니다"
카와우치 지사장의 회상이다.
플레이스테이션4 발매 후 한국 콘솔게임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고, 후속 하드웨어도 빠르게 발매됐다. 로컬라이즈는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 한글판이 나오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가 됐다.
최근 발매된 '파이널판타지16'의 경우 3% 이상의 판매고를 한국에서 올렸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인데, 전통적으로 글로벌 콘솔게임 시장의 1% 정도 비중이던 것을 2% 가까이 끌어올렸던 상황에서 더 큰 약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이제는 모든 퍼블리셔가 무시 못할 시장이 됐습니다.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믿고 달려간 입장에서는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큽니다. 앞으로도 한국 게이머 여러분을 위해 여러 일을 하고 싶고, 한국에서 한국 게이머들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기자님과도 다음에는 한국에서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카와우치 시로가 플레이스테이션4 선행 출시를 성사시키고 그에 한국 게이머들이 뜨겁게 화답한 뒤, 소니에서는 신형 하드웨어를 한국에 빠르게 출시하게 됐다. 한국 시장이 소중한 시장이라는 인식도 강해졌다.
CLE 한국 지사장 직함을 달고 있는 만큼 한국을 찾을 일도 많을 텐데, 카와우치 시로 지사장이 한국 게이머들과 직접 대면할 날이 기대된다. 그리 머지 않은 시기에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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