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들 간의 저작권 침해 금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송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러한 소송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엔씨소프트(이하 엔씨)다.
엔씨는 웹젠('R2M'), 카카오게임즈 및 엑스엘게임즈('아키에이지 워')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금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이유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자사의 대표작 '리니지M'과 '리니지2M'의 UI 등 각종 요소들을 해당 게임들이 모방한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였다.
엔씨는 이번 소송에 앞서 2016년 넷마블의 자회사 이츠게임즈에서 개발한 '아덴'이 자사의 '리니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양사 간에 합의로 종결된 바 있다. 또 크래프톤은 에픽게임즈에게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 또한 취하됐다.
한편, 킹닷컴의 '팜 히어로즈 사가'와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의 '포레스트 매니아' 표절 소송의 경우 1심에서 표절이 인정된 바 있으나 항소심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이에 불복한 킹닷컴이 결국 승소했다.
이처럼 일부 케이스를 제외하면 표절, 저작권 침해 문제의 경우 양사 간에 원만하게 합의하거나 원고가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법적 공방이 장기간 이어지더라도 게임의 저작권 분쟁에 있어서는 명확하게 그래픽, 사운드 등의 에셋이 똑같은 수준이 아니라면 표절 내지는 저작권 침해로 인정 받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양사 간에 합의했던 기존의 표절 소송 케이스와 달리 엔씨와 웹젠의 소송전 양상은 다소 거칠게 진행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끝까지' 법적 공방을 이어가는 사례가 극히 적었던 만큼, 엔씨와 웹젠 간의 소송 1심에서 법원이 원고인 엔씨의 승소를 선고하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엔씨는 2021년 6월, 웹젠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송에 나섰다. 2020년 8월 출시됐던 웹젠의 모바일 MMORPG 'R2M'에 자사의 '리니지M'을 모방한 듯한 콘텐츠와 시스템이 확인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원고인 엔씨는 웹젠이 단순히 MMORPG에서 통용되는 각종 시스템이나 문법을 모방한 것을 넘어, '아인하사드의 축복' 등 '리니지M'의 주요 콘텐츠 및 시스템의 유기적 결합 그리고 세부 표현과 수치까지도 모방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인 웹젠은 엔씨소프트가 침해를 주장한 표현은 타 게임에도 사용되는 보편적인 요소이며, 게임 규칙과 UI도 차이가 있다고 반박하며 소송전을 이어왔다. 약 2년 여의 재판 결과 1심에서는 엔씨가 승소를 얻어냈다.
법원은 1심에서 '리니지M'의 구성 요소가 저작권법으로 보호 받을 대상은 아니지만, 엔씨가 '리니지M'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 노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인정해 부정경쟁행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법원은 웹젠에게 엔씨소프트에게 10억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하고 'R2M'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는 게임, 광고 등을 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엔씨 vs 웹젠 소송전 쟁점은 두 가지,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 여부 판단
이번 양사 간의 소송 1심에서 쟁점이 된 것은 두 가지로, 저작권의 침해 여부 판단과 부정경쟁행위의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법원은 두 가지 쟁점 중 엔씨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청구만을 인용했다.
먼저 법원은 엔씨가 주장한 '리니지M'과 'R2M'의 구성 요소, 게임 규칙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게임 규칙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라며 일정 부분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 하더라도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엔씨는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 무게 시스템, 장비 강화 시스템, 아이템 콜렉션 시스템, 변신 및 마법인형 시스템, 메인 UI 등 총 여섯 가지의 요소를 'R2M'이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요소들이 게임 규칙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로 보고,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인하사드의 축복' 등은 이미 존재하던 게임의 규칙을 변형한 것이며, 이 요소들이 '리니지M'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물로 보호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서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해 '창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완전한 의미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법적으로 '창작성'이 인정 되려면 적어도 다른 작품을 모방해서는 안 되며 독자적인 표현이 담겨야 한다. 법원이 엔씨의 저작권 침해 주장을 인용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법원은 엔씨가 주장한 부정경쟁행위 위반의 청구는 인용했다. 엔씨가 제출한 증거들을 기반으로, 법원은 엔씨가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리니지M'의 각종 구성 요소와 선택, 배열, 조합을 구현한 만큼 이것이 엔씨가 가진 무형의 성과에 해당한다고 봤다.
즉 UI와 '아인하사드의 축복' 등 약간의 변형이 이루어진 게임 내 시스템들은 '창작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돼 저작물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법원은 엔씨가 게임을 아우르는 요소들을 개발하는데 기울인 노력과 투자를 웹젠이 그대로 모방해, 엔씨가 경제적 이익을 침해 당했다고 해석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사건의 각 구성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을 통해 원고(엔씨) 게임에 구현된 시스템의 명성, 고객 흡인력, 비중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시스템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무형의 성과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피고(웹젠)는 피고 게임('R2M')을 출시 및 제공함에 있어 원고 게임('리니지M')의 선택, 배열, 조합을 구현, 원고(엔씨)의 종합적인 시스템을 모방하였고, 피고(웹젠)의 이러한 행위는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무단 사용으로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파)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게임 규칙이나 디자인은 법적으로 고유의 창작물로 인정 받기 어려워… 또 다른 사례에 이목 집중
이처럼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게임사들의 표절 관련 소송에서 저작권법 위반만으로 승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동안 법원은 게임 규칙이나 디자인을 고유의 창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특별히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도 보지도 않았다. 이번 1심에서의 법원의 해석 또한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게 똑같은 수준이 아니면 저작권 침해로 인정 하지 않았던 이전 기조와 동일한 것이다.
다만, 법원은 웹젠이 엔씨가 이룬 성과(게임의 개발 및 투자 등)를 무단으로 차용해 'R2M'을 출시 및 서비스 중이라는 점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해석했다. 즉, IP가 지닌 무형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증명할 수 있다면 승소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1심에서 원고인 엔씨가 승소한 것도 이 이유다. 웹젠이 엔씨의 영업상 이익을 침해했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R2M'의 서비스 중단을 주문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아키에이지 워'와 관련해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 및 엑스엘게임즈가 진행하고 있는 소송전에서도 부정경쟁방지법 상 피고가 침해한 점이 있는지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또 이를 어떻게 증명하는지에 따라 판결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아키에이지 워' 또한 '리니지2M'과 유사한 점이 다수 지적된 바 있다. '아키에이지 워'는 출시 직후 '리니지2M'과 게임성과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 심지어 세부적인 UI와 일부 용어까지도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엔씨와 웹젠의 소송전에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법적 공방에서는 판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만큼 유사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아직 엔씨와 웹젠의 소송은 1심 결과만 나온 상황이며, 웹젠이 즉각 항소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예단하기는 어렵다. 엔씨와 웹젠은 각각 항소할 계획임을 밝혀 소송전은 장기화 될 전망이다.
저작권 침해 및 회사 간 경제적 이익 침해 기준의 논의 필요성도 제기돼
한편, 자사의 무형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게임 업계 소송전이 점차 늘어나면서 향후 시장에 대한 전망과 예측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앞서 살펴본 저작권 침해, 부정경쟁방지법과 관련된 판례가 게임업계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만큼 추후 판결의 방향성에 따라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엔씨의 '리니지M'의 출시 이후 많은 게임사들이 '리니지라이크' 문법과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된 게임들을 출시하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향후 법원의 결정에 따라 현재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의 판도와 사업 방향성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리니지라이크' 문법과 비즈니스 모델을 지닌 게임들이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대거 전략을 수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수익성만을 따진 게임사들의 '리니지라이크' 장르 개발 일변도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0종 가까운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타 게임사가 R&D한 비즈니스 모델과 기획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는 '돈 되는 인기 장르 베끼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 또한 판결문에서 "피고(웹젠)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게임 업계의 관행에 비추어 부당하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오히려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게임 업계에서 굳이 힘들여 새로운 게임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어디까지가 저작권 침해인지, 또 게임에서의 표절과 회사 간에 경제적 이익의 침해 기준은 무엇인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게임 업계에서는 저작권 침해나 경제적 이익 침해 기준이 모호했고, 마땅히 참고할 만한 판례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이슈가 된 케이스가 적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또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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