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발매 13주년, 한국 게임산업의 변화

스타크래프트가 한국 게임산업에 미친 영향

등록일 2011년04월01일 10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1998년 3월 31일, 오늘로 정확히 스타크래프트가 세상에 공개 된지 13년의 세월이 흘렀다(국내는 4월 9일이 발매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테란, 프로토스, 저그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는 이 게임은 출시된지 1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여전히 수 많은 게이머들이 즐기고 있을 만큼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또한, 전성기는 아니지만 지금도 방송을 통한 리그개최 및 전문적인 프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의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e스포츠의 역사와 함께 해온 스타크래프트가 변화시킨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RTS전성기 시대에 찾아온 PC방 붐

페러디로도 인기가 많았다

스타크래프트가 출시 될 98년도는 바야흐로 RTS의 전성기였다. 우리가 잘 아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워크래프트' 및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C&C시리즈까지 종류를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봇물 쏟아지듯 출시가 되었다.

쏟아지는 게임 속에서 세간의 평가는 "RTS붐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게임"정도였다. 1990년 후반 국내 PC게임 산업이 불법복제로 점차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시절. 만장이 팔려도 대박으로 분류되고 여의치 않으면 출시한지 얼마 안 된 게임도 PC게임 잡지의 부록으로 등장할 정도로 열약했던 PC게임 시장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출시 1년 만에 10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pc방이 없었다면?

이 판매고에 도화선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점차 발전하는 IT산업을 부흥시킨 PC방의 공로 역시 컸다. 스타크래프트는 PC방 문화를 만들며 당대 최고의 FPS게임이었던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와 함께 PC게임 2강 체제를 굳혔다. 이들 두 개의 게임이 렉 없이 구동되는 PC방을 으뜸으로 여겼을 정도로 PC방에서 이 2개의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PC방 창업 대박신화, 1인으로 대기업 임원보다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이른바 'PC방 드림'으로 우후죽순 PC방이 생기고 여기에 대중적으로 일반화 되어있지 않았던 컴퓨터와 정부의 e코리아 정책으로 인해 PC의 개인보급 역시 빠르게 가속화 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전신! 생방송 게임천국에서 곰TV 까지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유저들이 신작 게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네 게임 판매점과 전문 잡지, 입소문 및 제한된 공중파의 게임 방송을 통해서였다. 최초의 게임 방송은 1995년경에 방송된 KBS의 '생방송 게임천국'이었다.

KBS슈퍼걸세리 SBS달려라코바

당시 많은 인기를 받고 있는 손범수 아나운서와 개그맨 박미선의 깔끔한 진행과 함께 신작 관련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생겼다. '슈퍼걸 세리' 이외에도 '세균전', 등 ARS를 통해 즐겼던 게임은 당시 유일무이한 현대적 기술의 쌍방향 통신 프로그램이었고 온라인 대전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SBS의 '달려라 코바'등 ARS게임 방송이 짧은 시간이지만 황금시간대에 방영되기도 하며 그리 길진 않았지만 게임이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 나름대로의 인기를 끌어갔다. 그러던 중 세계 최초로 케이블 TV를 통한 24시간 게임전문 방송 채널인 '온게임넷'이 2000년 7월경 첫 전파를 타면서 본격적인 게임 미디어 시대가 탄생했다.

처음 출범당시 12시간 방송은 아니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2시까지 12시간씩 방송형태를 잡았으며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당시 가장 유명했던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식스, 피파와 포트리스의 프로리그전을 중계하는 형태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본격적인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ARS를 통한 퀴즈쇼가 정규 프로그램에 편성되어 있었으니 ARS를 통한 쌍방향 통신이 만들어낸 게임인구 창출이 당시 게임 산업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이후 게임 산업의 높은 성장에 MBC와 KBS, SBS의 3사 모두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이후 게임전문 방송채널 투자 계획을 세웠으며 실제로도 방영을 했지만 시청률 부진과 방송시간의 문제 인터넷 보급을 통한 전문 매체가 하나 둘씩 등장하며 경쟁력을 잃은 결과 현재 자체적인 방송채널에서 일부 프로그램만이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형태다.

2005년경부터 시작된 판도라TV, 엠군, 곰TV등이 실시간 방송서비스와 UCC동영상을 통해 오프라인 형태의 사업이 중심이 되었던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온라인 시장으로 끌어올리는데 많은 기여를 하며 게임 내에서만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유저 커뮤니케이션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게임종합지원센터'로 시작된 본격적인 게임 산업 발전
청소년을 중심으로 영향을 미친 게임의 파급력으로 얻는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인지한 정부는 건전한 게임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1998년에 첫 설립을 발표한 이후 1년 뒤인 1999년 '게임종합지원센터'를 설립,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금처럼 세분화되진 않았지만 불법 복제물의 근절을 위한 조항 개설 및 게임 산업을 제조법과 유사한 조세, 금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관련기금을 조성, 매년 열리는 E3와 칸느의 'MLIA'등 국제 게임 전시회에 국내 게임업체 참가를 지원하는 등 많은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당시 일반인에게 생소했던 게임전용 펀드 개설로 인한 자금력 확대, 이를 통한 국내 유망 중소기업이나 개발프로젝트에 집중투자를 하는 등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역할과 이름이 통합되었지만 지금의 게임 산업이 있기까지 든든한 초석의 역할을 했다.

프로게이머와 게임전문 캐스터의 등장
스타크래프트와 관련해서 프로게이머를 빼 놓으면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스타크래프트 열풍의 연장선에는 프로게이머로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쌈장'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프로게이머 최초로 대기업 광고에 출현한 이기석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1세대 프로게이머 임요환에 이르기까지 셀 수도 없는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하고 사라져갔다.

e스포츠의 아이콘 임요환 'MC용준'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전용준 캐스터

프로게이머의 시작은 볼 품 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해야 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프로대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이 애매모호했다. 단지 성적에 호불호가 갈렸을 뿐이며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역시 피시방에서 지원을 하거나 개인이 자수성가를 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나 둘 씩 체계가 잡혀나가고 리그가 장기화 되면서 이들의 경기를 재미있게 만들고 전문적인 분석을 할 전문 해설가 역시 등장하게 되었다. 최초의 게임 해설가는 프로게이머 신주영의 매니저이자 공동저자로 활동했던 임영수씨다.

임영수는 당시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시절, SG길드가 있던 게임방의 사장이었으며 당시 SG길드는 신주영, 이기석 등 가장 정상급의 기량을 발휘하던 프로게이머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이었다. 당시 SG길드의 리더이자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해설자 김창선도 이런 열약한 환경 속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다.

형체가 없이 명맥만 있었던 프로게이머는 2000년 8월 사단법인 한국e-Sports협회(KeSPA)가 문화관광부로부터 '프로게이머 등록제도'를 승인받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소양과정이 잡히면서 공식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때 '닭장'으로까지 비하될 정도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프로게이머 양성의 그늘 역시 공식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게 되어 점차적으로 안정권에 들어갔으며 세간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열약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사회적인 관심도 부족했던 당시에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정식 프로게임구단이 창설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게임산업의 빛과 그늘
"게임이 밥 먹여주냐?", "게임은 애들이나 하지"

불과 10년 전, 아니 지금까지도 자주 듣는 말이다. 게임을 포함한 전 IT산업이 발전하며 게임으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고 어른들도 게임으로 여가 생활을 즐긴다. 좀 더 넓게 바라보면 게임을 통한 학습도 가능하다. 게임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 본능적인 '즐거움'이 주는 마력을 뿌리치지 못하고 일상을 등지거나 몸을 망치는 이들도 많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스타크래프트가 흥행신화를 이룩할 때 역시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하곤 했다. 지금과 차이점이라면 시장의 크기에 따른 관심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젠 당당히 문화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시장은 포화상태다.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덩달아 관심도 급증하였으며 그와 관련된 부정적인 사회현상(중독) 역시 비례해서 증가했다.

지금까지 게임 산업이 발전하며 게임이 많은 사람과 '즐거움'을 공유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간에는 '신화'라고까지 평가받는다.

조금은 늦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않았다. 이젠 이 '즐거움'으로 상처 받는, 혹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신화'를 이룩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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