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하셨습니다', '패왕 간디', 'Be폭력주의자 간디'라는 유행어와 각종 '유혈사태' 패러디를 양산해 낸 20세기 최고의 타임머신으로 불린 '시드 마이어의 문명'.
'문명'은 플레이어가 하나의 문명을 선택해 문명을 발전시키고 상대 문명을 점령하거나 앞선 과학 기술, 문화력 등을 앞세워 승리하는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게임을 한 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플레이 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역사적 고증이 잘된 콘텐츠와 한 턴, 한 턴이 중요한 게임의 특성이 유저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가장 최근작 '시드 마이어의 문명 V(이하 문명5)'의 경우 2015년까지 8백만 장 이상 판매되며, 역대 턴제 전략 게임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양한 국가의 긴 역사를 콘텐츠로 구현한 만큼 문명 시리즈의 방대한 콘텐츠와 시리즈 자체의 높은 명성 때문에 많은 이들은 문명 시리즈는 온라인게임으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2012년 그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시도에 '아키에이지'의 개발사로 유명한 엑스엘게임즈가 도전했고 지난 해 12월 그 결과물을 우리들 앞에 내놓았다. 바로 '문명 온라인'이다.
참신한 만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션제 온라인게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MMORPG의 경우 한 번 캐릭터를 생성한 후 초기화 되는 경우 없이 계속 성장하고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명 온라인은 세션의 존재하는 네 개의 문명 '중국', '아즈텍', '이집트', '로마' 중 하나의 문명이 승리 조건을 달성하거나 정해진 시간을 모두 소모하면 각 유저들에게 문명 발전을 위해 기여한 정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고 유저가 그 동안 달성한 직업 레벨, 모은 재화나 아이템을 초기화하는 세션제 온라인게임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캐릭터가 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던 유저들에게 세션 종료 후 자신이 힘들게 올린 직업 레벨과 모은 재화들이 초기화 돼 새로운 세션에서 빈털터리에 기본 직업인 수련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문명 온라인에서의 세션은 하나의 채널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동일 세션을 경험하고 있는 동일 문명의 유저들은 같은 시대를 경험하고 전투, 건축, 채집, 제작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문명 승리를 위해 기여하게 된다.
즉 전투를 즐기는 유저들은 전장에 앞서 싸워 다른 문명을 정복할 수 있고 전투를 싫어하는 유저들은 자신의 문명이 속한 도시에 건축을 통해 문명 발전에 힘을 쏟거나 장비 제작으로 전력 강화에 힘을 쏟을 수 있다. 물론 전투와 비 전투 직업을 병행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문명 온라인은 각 시대마다 문명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각 직업마다 직업 레벨을 최대 10까지 올릴 수 있다. 직업 레벨은 레벨 정도의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수, 캐릭터 스탯 등에 영향을 주고 최고 레벨을 달성한 캐릭터는 부 직업으로 설정할 수 있어 주 직업과 연계해 나만의 연계 콤보를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하지만 문명 온라인의 시대는 하루 혹은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바뀌므로 한 가지 직업에만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춰 직업을 바꿔야 하는 것도 특징이다.(남들은 창을 들고 싸울 때 나 혼자만 돌 칼을 들고 전투할 수 없으므로).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각 시대마다 하나 이상의 직업을 마스터하고 있는데 문제는 힘들게 올린 직업 레벨이 세션이 종료되고 새로운 세션에 참여하면 모든 직업 레벨이 초기화 된다는 것. 이 점에 대해서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는 원작인 문명 시리즈의 게임성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문명의 기본 시스템이 유저들이 승리 엔딩 혹은 패배 엔딩을 보고 또 다른 문명을 이용해 다시 고대시대부터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세션제는 적합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또한 세션이 종료된 후에도 직업 레벨이 유지되면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의 형평성 차이가 커지는게 불가피하므로 개인적으로 이 시스템이 문명 온라인에 맞는 나름 최적의 시스템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문명 온라인에서도 세션이 종료되어도 유지되는 레벨과 자원이 존재하는데 바로 시민 레벨과 카드이다.
시민 레벨은 유저가 세션에 참여한 정도에 따라 획득하는 경험치 양을 환산하고 이를 통해 올릴 수 있는 캐릭터 레벨로 시민 레벨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수, 카드의 종류가 다양해져 능력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카드의 경우 문명 온라인의 대표적인 유료 아이템 중 하나로 공격력, 방어력, 회피율, 건축력, 채집력 등 일반적인 스탯을 올리는 카드와 '클레오파트라', '꼬마 무투가', '나무꾼' 등 특별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나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클레오파트라나 꼬마 무투가는 도시 공방전에서 불리한 정세를 뒤집을 수 있는 키 카드로 사용될 정도로 중요해 카드는 유저들에게 최고의 무기임과 동시에 주요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MMORPG임에도 높은 전략성
문명 온라인은 분명 MMORPG의 특성을 갖고 있지만 분명 엔딩이 있고 그 엔딩이 승리냐 패배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다양한 전략을 이용해 승리를 하기 위해 경쟁한다.
특히 한 계정에 존재하는 두 캐릭터가 동시에 같은 세션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부 계정으로 1인 길드를 만들고 길드장들이 이용하는 전용 채널의 대화를 우리 문명에 전달하는 첩보원 역할을 하거나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도시에 생산 건물 대신 포탑을 주로 세워 한 시간만 주어지는 도시 공방전 시간 동안 적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등 다양한 전략이 난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첩보원이나 건물의 배치에 따른 전략적인 전투는 공성전 시스템을 가진 MMORPG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문명 온라인 유저들의 전략적인 움직임은 그것보다 더 다양하고 집요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우선 게임 시스템 중 점령한 지역(그리드) 순위에 따라 강력한 야만인이 등장하는 지역이 달라진다는 것에서 착안해 부 계정으로 상대방 문명에 그리드를 확장하는 건물인 전초기지를 짓고 다닌다거나(일명 전초기지 테러) 전쟁으로는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한 일부 문명은 자신들의 군사 건물을 파괴하고 문화 도시를 세워 문화 승리를 노리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
또한 특정 기술을 얻으면 빠르게 시대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해 도시 공방전 후 특정 지역을 점령해 기술을 독점해 상대 문명보다 빠르게 시대를 넘어가거나 상대 문명이 시대를 넘어가는 것을 늦추는 전략도 꽤나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대체로 이런 전략을 짜는 것은 길드장들로 그들은 전용 채팅창 혹은 전용 카카오톡 그룹을 오픈해 대화를 통해 각 길드의 역할을 정하고 그 역할에 맞춰 길드장들은 길드원을 이끌어 나간다. 이런 길드장의 역할 상 그들은 자신의 길드가 보유한 도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런 특권이 좋은 방향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길드장을 중심으로 이 특권이 남용돼 문제를 일으킨 일도 있어 이런 부분에서는 엑스엘게임즈가 계속 게임 진행사항을 주시하며 조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만족, 그러나 보완해야 할 부분도...
이 게임의 한 시대에서 유저들은 전쟁을 준비하거나 도시공방전 타임에 도시 방어 혹은 점령을 위해 전쟁하는 것을 반복하곤 한다.
전쟁 준비기간 동안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도시공방전 타임 동안 사용할 무기 제작 재료를 모으기 위해 채집을 한다거나 장비 제작자들은 유저들이 의뢰한 무기나 방어구 제작을 진행하고 도시 방어를 위해 성벽이나 포탑 등의 건설을 진행한다.
문제는 이 작업들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요구하고 이 작업과는 별도로 자신의 공격 직업 레벨 업 등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이다.
도시공방전은 1주짜리 세션을 기준으로 오후 6시, 8시, 10시에 각각 한 시간씩 진행되고 시대가 바뀌는데 약 하루가 소요된다. 즉 유저들이 도시 공방전을 치루고 다음 날에 진행될 도시 공방전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약 19시간이지만 직장인과 일반 학생이 주요 유저임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라이트 유저도 많은 편이다.
반면 2주짜리 세션에서는 공방전은 오후 8시, 10시에 두 번 진행되며 이틀에 한 번씩 시대가 바뀌게 된다. 덕분에 1주짜리 세션보다는 전쟁 준비가 여유롭다 못해 너무 길어 지루하다는 평가도 많아 이 시기의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최근 현대시대가 오픈되면서 공개된 과학 승리도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과학 승리의 경우 원작과 같이 현대 시대에 아폴로계획 기술을 발견하고 우주선 부품을 조합해 발사대에서 우주선을 발사하면 이기는 승리 조건이다.
우주선 발사는 공방전 타임에만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아폴로 계획은 세션 종료 1일전 마지막 도시 공방전을 앞두고 공개되는 경우가 많아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이길 가능성은 매우 적어지지만 그 기회만 잘 잡으면 땅이 얼마 없어도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실제로 지구 세션에서 중국의 경우 도시 두 개로 과학 승리를 이끌어냈다) 정복 승리나 문화 승리를 노리기 힘든 약소국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승리 루트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공방전 시간에만 할 수 있어서 견제도 많이 당하고 힘들꺼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판게아의 과학 승리 풍경은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기본적으로 최약소국이 아닌 이상 마지막 날까지 그리드 전쟁과 불가사의 수성을 진행하는 것이 피곤하다는 걸 많은 유저들이 알기 때문에 힘들고 복잡하게 가기 보다는 마지막 날 바로 전 날 편하게 과학승리를 하자는 생각으로 다른 나라 견제도 안가고 4개 문명 모두가 자신들의 우주선 부품 조립에 모든 힘을 쏟아내 그 중에 빠르게 조립한 문명이 승리한 허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런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해당 세션이 끝나고 결과에 대한 허무함과 과학 승리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어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콘텐츠 보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문명5를 좋아하고 아직까지도 즐기고 있는 유저로서 사실 문명 시리즈가 PC 온라인게임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즐겨 본 기자의 입장에선 걱정했던 것 보다 잘 나온 게임성에 꽤나 만족스러웠다.
비록 각 문명마다 특별한 건물이 따로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화 유닛, 다양한 불가사의, 그리고 개인적으로 즐겼던 그 어떤 게임보다 다양한 전략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 공방과 다양한 생활 콘텐츠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비록 국내에서는 익숙치 않음 세션제 시스템과 매일 시대가 바뀌어 해야 하는 일이 달라져 초보가 적응하기에는 다소 힘든 면이 있지만 유저들이 게임에 적응하고 이 게임만의 재미를 찾는다면 어느 순간부터 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유저들을 위해 개발사가 콘텐츠 보강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는다면 이 게임도 원작 문명 시리즈 보다 더 강력한 타임머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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