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읍시다', 새해를 맞아 만나는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개발사, 퍼블리셔 관계자들이 던지는 덕담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덕담이지만 예년과는 크게 달라진 내용이다.
지난해까지는 '새해에는 부자되자', '새해에는 대박내자' 같은 내용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도 성공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시기였지만 2017년을 맞는 지금은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지 상투적인 인사만 나누게 되는 듯 하다.
"상장을 앞둔 N사 등 N사들을 제외하면 희망이 있을까요?", "작년에 애를 가진 게 실수인 것 같습니다. 올해 구조조정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바일에서 MMORPG가 된다니 개발중이던 게임의 장르를 바꾸긴 했지만 리니지가 아닌 우리 게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같은 말이 뒤따른다.
모바일, 온라인에서만 희망이 사라진 게 아니다. 콘솔게임 업체들을 만나봐도 비슷한 말을 듣게 된다. 2017년에 대해 밝은 전망을 이야기하는 건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뿐이다. PS4 PRO와 PS VR의 공급이 늘고 한글판 타이틀이 늘며 둔화된 성장세가 다시 탄력을 받을 거라는 것.
하지만 서드파티 퍼블리셔들, 유통사들, 게임매장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가장 많은 한글화 게임이 나오면서 한글화 종말의 해가 되는 것 아닐까요?", "지난 20년 사이에 2016년 12월~2017년 1월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듯 합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안보이니 라인업을 늘릴 수 밖에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진다.
해가 바뀌면 없던 희망도 생기는 법일 텐데 왜 이렇게 우려와 불안의 목소리만 들려오는 걸까. 과연 정말 2017년 국내 게임업계에 이렇게 불안요소들이 많은 걸까? 플랫폼별 2017년 전망과 불안요소들을 짚어봤다.
먼저 온라인게임을 살펴보면, 2016년에는 '오버워치'라는 간만의 빅 히트 신작이 등장했다. 오버워치는 영원할 것만 같던 '리그오브레전드'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의 대성공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신규 확장팩 '군단'도 호평을 받으며 좋은 한해를 보냈다. 하지만 국내 온라인게임사들의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기대를 걸고 출시한 게임들은 하나같이 실패했고, 출시하고 나서 얼마 안돼 서비스 종료를 발표한 후 실제 해를 못 넘기고 서비스가 종료된 넥슨의 '서든어택2'는 그런 흐름의 집약이자 상징이었다.
2017년에도 온라인게임사들이 준비중인 온라인게임은 몇 종 있다. 넥슨이 역시 많은 타이틀을 준비중이며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이터널', 스마일게이트가 '로스트아크'의 다음 테스트를 연내 실시할 수도 있다.
넥슨은 대표 IP를 활용해 언리얼 엔진4로 개발중인 신작 및 네오플과 띵소프트 공동개발로 '던전앤파이터2'도 준비중이지만 2017년 중 출시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연내 출시될 가능성이 큰 게임 중 가장 성공 가능성이 큰 타이틀은 넥슨의 '니드포스피드 온라인'과 '타이탄폴 온라인'이다. EA의 유명 IP를 활용한 게임들로, 이 두 타이틀이 성공할 경우 모바일에 이어 온라인에서도 IP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온라인게임 개발이 줄어드는 흐름은 이어질 것이며, 각 사가 개발중인 게임 외에 신규 프로젝트 개발에 나서긴 쉽지 않을 것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정도가 신규 프로젝트 개발에 나설 여력과 의지가 있는 개발사지만 엔씨소프트의 경우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하더라도 결과물이 드러나기까지는 매우,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넥슨도 온라인게임보다는 모바일게임 신규 개발에 더 힘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모바일게임은 불안과 우려가 가장 큰 부문이다. 상장을 앞둔 넷마블, '리니지RK'의 성공으로 고무된 엔씨소프트, 새해에는 더욱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설 넥슨까지 3N을 제외하면 희망적인 전망을 가진 회사가 드물 것 같다.
3N에게도 장및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모바일게임 시장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2016년 전망에서 중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며 중국보다는 다른 지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과 함께 대형 콘솔게임사들이 모바일로 본격 진입하며 시작될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쟁을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준비 기간은 끝났음이 명확해졌다.
먼저 중국 시장은 더 이상 공략 대상이 아니다. 한국 모바일게임의 수입을 원하는 게임사도 그리 많지 않고 무엇보다 중국 게임이 한걸음, 아니 두걸음 이상 앞서나간 상태다.
이제는 싼 값에 들여오던 중국게임이 아닌 중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한 단계 진화되고 최고의 퀄리티를 갖춘 게임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걱정해야 하게 됐다. 100억원대 계약으로 화제가 된 '음양사'나 고퀄리티 액션을 선보인 '붕괴학원3' 같은 게임을 보고 중국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케팅비가 갈수록 높아지며 글로벌 시장에서 IP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동안 중국 내 판권만 획득하던 중국 게임사들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사람이 있을까? 뛰어난 개발력, 퀄리티에 IP까지 갖춘 중국게임들과 대적할 준비가 되어있는, 혹은 대적할 여력이 있는 게임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콘솔게임사들의 모바일게임 시장 진입도 이미 시작되었다. 아이템 과금을 하지 않고 고전적 과금제를 들고 나온 '슈퍼마리오 런'의 충격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지만, 닌텐도가 계속해서 선보일 자사 IP를 활용한 게임들이나 소니가 준비중인 유명 IP들을 활용한 게임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소니가 준비중인 '모두의 골프' 모바일게임이 나왔을 때 글로벌 시장에서 컴투스, 엔씨소프트(엔트리브) 등이 준비중인 캐주얼 모바일게임이 어떻게 경쟁을 펼쳐야 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많은 준비와 연구, 퀄리티 업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콘솔게임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한국어화 타이틀이 많이 나오는 시기가 이어질 것 같다. 이렇게 적으면 장및빛 전망으로 보이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2016년 성장이 둔화된 국내 콘솔게임 시장에서는 모든 퍼블리셔가 라인업 확대라는 선택지로 나아갔다. 하지만 성장(플랫폼 보급)이 둔화되며 유저들의 옥석가리기가 본격화되었고, 무작정 라인업만 늘려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국내 퍼블리셔들은 먼저 손을 빼는 회사부터 망한다는 불안감 속에 오히려 라인업을 더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 동안 관행으로 지켜오던 기존 퍼블리셔가 있을 경우 속편을 빼가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도 유명무실해졌다.
밝은 전망을 내놨지만, SIEK가 '인왕', '단간론파3' 등 서드파티 퍼블리셔들이 힘을 쏟고 기대하던 괜찮은 타이틀들을 직접 퍼블리싱하는 건 SIEK 역시 급하다는 얘기다. 안정적인 시장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치킨게임을 가속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2017년 상반기 콘솔게임 퍼블리셔들은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던 장르, 개발사 게임들을 더 많이 들여오는 길을 갈 것이다. 그 끝에 있는 것은...
SIEK의 전망처럼 플랫폼 보급이 다시 확대되며 콘솔게임 시장이 성장하기만을 기대해야할 것 같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뭐 이렇게 암울한 이야기만 늘어놓냐고 할 것 같다. 기자 역시 그래도 마지막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위에 절망을 이야기한 업계 관계자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지 않느냐고, 밝은 이야기도 있지 않냐고.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좋은 게 있어야 좋다고 하지요"
"주변에 창업했던 사람들 다 망했고, 저도 올해는 망할 예정입니다"
"가끔은 있는 그대로 전달을 해야지요"
급변하는 환경, 치열해지는 경쟁, 악화되는 사정 속에서도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와 플랫폼 홀더인 소니, 구글, 애플은 끄떡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 살아남은 미래가 희망과 활기, 도전과 새로운 시도로 가득한 미래일지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이렇게 2017년은 희망보다는 불안과 우려가 큰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권 교체 등 외부 요인으로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모르며, 기술적, 시스템적으로 변화하는 부분도 많다.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한, 2017년 기대해볼만한 게임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불안과 절망으로 스타트를 끊었으니,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런 변화하는 점들과 기대해볼만한 게임사들을 짚어보며 암운 속에서도 빛을 찾는 노력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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