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에게 눈이 중요하고, 또 없어서는 안될 신체 부위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WHO(세계 보건 기구)가 발표한 '세계 장애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질환이나 교정되지 않은 굴절이상 등으로 인해 시력에 손상을 입은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3억 1천 4백만 명에 달하고, 이 중 4천 5백만 명이 전맹(全盲, 시력이 0으로 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미흡한 실정이다. 또, 시각장애인이 실생활과 여가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보조장치 또한 제한적이고 보급 또한 미비한 상황이다. 특히,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대대적인 보급 이후 나타나게 된 정보 습득의 격차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재앙과도 같다. 글자를 소리로 읽어주는 TTS(Text-To-Speech) 프로그램이 내장된 스마트폰이 시중에 있으나 비장애인과 같이 완전한 정보 습득의 자유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맹인 경우에는 실생활은 물론이고 게임, 동영상 시청 등 여가생활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정보 습득의 격차는 시각장애인으로 하여금 재활의지를 꺾이게 하거나, 또는 무기력감과 우울증 등의 심리적 불안마저 야기하게 된다. 이에 실생활에 필요한 각종 보조장치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북 등 각종 콘텐츠와 게임이 개발되어 왔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게임 중에서도 '오디오 VR'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활용한 모바일게임이 있다. 소리로 듣고 유저 자신이 상상해야 하는 게임 '더 오로라'는 뛰어난 공간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리 효과까지 구현된 것이 특징.
게임포커스는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에보42게임즈를 찾았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VR게임 '더 오로라'를 개발하고 있는 에보42게임즈의 이종환 대표를 만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게임개발에 대한 이야기와 '더 오로라'는 어떤 게임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더 오로라'는 어떤 게임인지 소개를 해달라
'더 오로라'는 가상현실(VR)을 소리만으로 구현해낸 오디오 VR 모바일게임이다. 게임은 작년 8월부터 개발을 시작했고, 실제 개발 기간은 약 6개월 정도 됐다.
게임은 가상공간의 아바타를 통해 플레이 하는 일종의 상상이지 않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더불어 단순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엔딩이 존재하는 PC 게임 그리고 정서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개발하고 있는 '더 오로라'가 그 결과물이다. '더 오로라'에는 늘 분기가 존재하고,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이라고 하면 보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나. 어떻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게임을 만들게 됐는지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오디오 VR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 전시회를 두 번 정도 해볼 기회가 생겼다. '어둠 속의 대화'는 100분 동안 빛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가이드를 따라 특정 장소를 가는 체험 전시회인데 정말 상상력이 많이 자극됐다. 이러한 상상이 마치 소설을 읽을 때 장면을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아예 그래픽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게임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오디오만으로 표현되는 가상현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인터렉션(상호작용)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유저가 게임 내에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그 결과 실제 부딪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등의 인터렉션(상호작용)이 가능 하려면 실제로 만들어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 실제로 만든 가상공간은 존재하지만, 그래픽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기존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게임들이 출시가 되어있는 상황이다. '더 오로라'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기존 게임들의 경우 오디오 VR이라는 형태가 아니다. 또, UI와 UX 또한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다. '더 오로라'는 이어폰만 꽂으면 느낄 수 있는 가상공간에 내가 직접 들어가서 플레이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려면 터치 디바이스의 특성상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컨트롤이 독특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게임인 만큼 UI와 UX적인 부분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 스마트폰으로 방향을 정해 화면을 터치하면 이동하고, 자신이 있는 장소를 소리로 판단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그래픽이 없는 대신, 풀을 밟으면 풀 소리가 나게끔 만들어서 유저가 이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러니까, 개발할 때 일반적인 게임처럼 3D로 가상의 장소를 구현해놓고, 게임에서는 그래픽만 배제한 것이다.
처음에는 조작을 PC FPS의 마우스 화면전환과 키보드 이동을 합쳐서 구현도 해봤지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현재에 이르게 됐다. 또, 시각장애인의 경우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메뉴를 터치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잘 사용되지 않는 세 손가락을 동시에 3초 동안 터치하면 진동과 함께 메뉴를 불러오고, 메뉴를 선택하는 것 또한 화면 전체가 터치 범위가 되는 식으로 구현했다. 또, 게임에서는 소리를 통해 '몇 시 방향으로 이동하세요' 라고 안내 음성이 나와 도움을 주는데, 난이도 조절을 위해 방향 지시 음성을 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현재 특허 출원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시스템을 구현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소리의 방향을 구현하는 것이 문제였다. 3D 사운드라는 것이 2채널 스피커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양 옆의 경우에는 가능하지만, 앞뒤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개발팀은 테스트를 계속 하다 보니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앞에서 나는 소리와 뒤에서 나는 소리를 느끼고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씩 수정해 나가고 있다. 이 외에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화면이 아예 검정색으로 처리될 줄 알았는데, 직접 해보니 유리가 깨지거나 공격받는 효과가 구현되어 있다. 의도한 것인가
그렇다. 사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아예 보이지 않는 전맹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인터렉션(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도록 다소 강한 효과를 사용했다.
실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도 진행한 적이 있나
그렇다. 두 명을 대상으로 FGT(Focus Group Test)를 한 적이 있는데, UI와 UX적인 측면에서 만족스럽단 반응을 얻었다. 다만, 이야기(콘텐츠)가 다소 부족해 이 부분을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음성으로 안내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이야기 해주셨고, 그래서 현재 개발중인 버전에는 음성 안내 시스템이 포함됐다.
선천적인 시각장애를 겪는 분도 있고, 개인마다 장면을 상상하는데 편차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과거에 시각장애인이 조형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일반적인 크기보다 조금 더 과장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 그러나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게임을 플레이 하고 상상을 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완전히 검정색 화면이 아니라 이야기에 따른 이미지를 넣어두었다. 사실 처음에는 아예 보이지 않는 화면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아예 그래픽이 제공되지 않으니 비장애인 유저들이 게임을 할 때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물어보고, 청각이 아닌 시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래픽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비주얼 노벨처럼 실루엣처럼 이야기에 따른 배경이 보이도록 구현했다. 대신, 앞서도 언급했듯이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파트는 정적이지만 인터렉션(상호작용) 파트에서는 강하게 표현했다.
'더 오로라'가 일반적인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은 아니지 않나. 이 게임이 어떤 게임으로 기억됐으면 하는가
RPG 일변도인 국내 게임 시장에서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 게임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어떤 게임이 출시되면 '매출이 얼마다'가 관심사의 전부지 않나.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게임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시각장애인이 몇 명이나 되겠어' 하고 속단하곤 한다. 이런 참신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개발사도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한다.
여전히 현재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RPG라고 생각한다. 사실 PC 온라인게임 종주국이지만, 현재는 몇몇 인기 게임들만 유저들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장르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울궈먹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더 오로라' 같은 독특한 장르의 게임들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익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전세계 시각장애인의 수가 약 3억 명에 이르고, 여기서 지역과 나이 등 조건을 따져 어느 정도 쳐낸다고 해도 최소한 50만, 100만 명의 시각장애인 유저가 게임을 한다면 수익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일본의 히로시마 정보대학교와 현지 진출 계약도 마친 상황이고, 텍스트와 더빙 등 일본어 로컬라이징까지 끝냈다.
일본 외 다른 국가에도 진출할 계획이 있나
그렇다. 언어만 바꿔 더빙하면 곧바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포함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까지 계획 중이고, 이후에는 도서관이나 플랫폼처럼 모빌화시켜 게임을 진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더 오로라'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게임으로도 '먹고 사는'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감동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도전하는, 그런 개발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또, 소박하게나마 조금씩 더 나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게임을 2018년 출시할 예정인데, 게임을 즐기게 될 유저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임이 있구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개발사가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고, 출시됐을 때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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