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낄 때는 언제일까. 공포 문학계의 대가인 H.P. 러브크래프트에 따르면 인간이 느끼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 또는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을 만났을 때 인간은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것.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장소인 집이나 회사, 학교 등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익숙한 장소가 낯설게 변한다면 어떨까. 알고 있던 장소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거나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단순히 미지의 공간이나 존재를 대할 때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현대 공포물에서는 집이나 학교 등 일반 대중들에게 익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국내에서 학교는 공포의 온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공포물의 주된 배경이기도 하다. 각종 괴담에 야간 자율 학습 등으로 오래 생활하는 공간인 만큼,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공포가 더욱 배가 되기 때문.
국내 게임 중 학교를 배경으로 한 공포 게임으로는 손노리의 2001년 작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을 떠올릴 수 있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학교에서 탈출하기 위해 여러 실마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이 게임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친숙한 스토리라인과 배경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5년 국내 인디 게임사 '데베스프레소'가 출시한 '더 코마: 커팅 클래스'는 '화이트데이'를 어느정도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학교라는 공간이 미궁으로 변했다는 점, 이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두운 학교를 돌아다닌다는 점 등 여러 유사점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
개발사의 첫 작품으로는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주목받은 '더 코마'가 최근 리마스터 작품인 '더 코마: 리컷'을 통해 PS4로 돌아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학교라는 장소를 미궁으로 뒤튼 이 게임을 플레이했다.
갈 수 있는 곳은 전부 가보자, 탐색에 집중한 콘텐츠
'더 코마: 리컷'의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는 미궁이 되어버린 학교를 탐색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학교는 후관, 본관, 신관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게임 진행에 따라 새로운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해야하는 일에 따라 3개의 구역을 오고 가는 방식이다.
게임 초반에는 대부분의 교실과 교무실 등의 문이 잠겨있으며, 게임 진행에 도움이 되는 메모들도 학교 곳곳에 놓여있다. 또한 게임 진행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나 퀘스트들이 많기 때문에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무작정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기 보다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놓여있는 모든 방들을 샅샅이 탐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를 쫓아오는 킬러를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장소들을 오고 갈 수 있도록 모든 교실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킬러에게서 도망가는 경우에도 어디에 어떻게 길이 나 있는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직접 미궁이 된 학교를 탐색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게임 내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대신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노트들을 통해 풀어놓기 때문에 자신이 게임 속 등장인물이 되어 이야기들을 하나씩 파헤쳐 나가는 부분도 좋았다. 노트나 각종 대화문에서 보이는 소소한 개그들은 덤이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하는 그래픽과 사운드
공포물에서 분위기를 더하는 것은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이다. '더 코마: 리컷'에서는 그래픽과 사운드가 게임 내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기 때문에 분위기와 몰입감이 아주 높다.
캐릭터 일러스트와 게임 내 그래픽들은 상당히 깔끔하다고 느껴졌다. 선이 굵기 때문에 손으로 그린 듯한 그림 임에도 가시성이 높다는 점이 좋았다. 여기에 귀신들이나 각종 알 수 없는 물체들의 디자인이 괴기스럽기 때문에 공포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더 코마: 리컷'에서는 각종 사운드 효과가 풍성하다. 킬러가 근처에서 돌아다닐 경우 하이힐 소리가 들리는데 이 소리가 상당히 리얼하기 때문에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를 하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여기에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들이나 숨을 참고 있을 때 들리는 심장 박동 소리 등 긴장감과 공포감을 더해주는 사운드들이 다양한 편이며, 그 품질도 높은 부분이 좋았다.
특히 게임 내에서 입장할 수 있는 음악실의 배경 음악은 상당히 소름이 끼치는 정도이며, 중간에도 플레이어를 갑자기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 심신이 미약한 편이라면 인터넷에서 미리 관련 부분에 대해 파악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정도.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는 순간 공포는 사라진다
앞서 인간은 미지의 존재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변하면 그 공포는 배가 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닌가. 그 낯설게 변한 공간에마저 익숙해지고 나면 공포는 금세 사라지게 된다.
특히 '더 코마: 리컷'은 한정된 장소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이동해야 하는 만큼, 게임 중반에 이르러서는 어쩌면 학교에 원래부터 있었던 킬러보다 이곳의 지리를 더 잘 파악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는 킬러와 플레이어의 숨바꼭질 게임으로 장르가 다소 변하게 되었다.
이처럼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존재가 킬러 하나로 줄어들게 되면 긴장감이 다소 줄어들어 게임 진행이 지루해진다.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후관, 본관, 신관 3군데를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면서 지름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동 과정이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졌다.
게임 내에서 랜덤하게 발생하는 함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학교의 구조가 전체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포로 인한 긴장감이 다소 희미해지는 부분은 아쉬웠다. 물론 이런 단점은 한정된 공간에서 게임이 진행되는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첫 작품이기에 느껴지는 미숙한 부분들
한편, '더 코마'가 데베스프레소의 첫 작품인 만큼 미숙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먼저 사운드의 품질과 양은 좋지만 소리들 사이의 크기 비율이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가방을 여는 지퍼의 소리는 너무 크며, 일부 방에서만 나오는 배경음악들의 소리도 너무 커서 놀라는 일이 잦았다. 공포게임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사운드는 불쾌할 정도로 소리가 컸던 부분이 아쉬웠다.
또한 키 반응이 느리다는 느낌도 받았다. 학교 내부에는 'O'키를 눌러 반응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는데, O키를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물건과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상황들이 많았다. 특히나 급한 상황에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게임 내 텍스트들의 어색한 부분 역시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각종 메모들로 인해 텍스트의 양이 많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체가 어색한 부분들도 많았다. 차기작에서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인상적인 첫 작품,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더 코마: 리컷'를 플레이하면서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았다. 특유의 그림체와 풍성한 사운드를 통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구현한 점과 탐색과 수집에 기반한 게임 플레이도 인상깊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지리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긴장감이 덜하다는 점과 일부 사운드가 너무 큰 점, 키 반응이 느린 점과 어색한 점이 느껴지는 텍스트가 아쉬웠다.
그러나 '더 코마'가 개발사 데베스프레소의 첫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개발사가 지향하는 부분과 장점들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특유의 그림체와 사운드에 많은 공을 들인 부분들은 개발사의 차기작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점이다.
현재 데베스프레소는 차기작 '뱀브레이스: 콜드 소울'을 통해 또 한번 국내 유저들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하니, 개발사의 차기작에서는 문제점들을 개선하여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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