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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순항 '날씨의 아이'에 숨겨진 의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 했나

등록일 2019년11월05일 09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 본 기사는 '날씨의 아이'의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감상하신 후 본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天気の子)가 국내 관객 30만을 넘기며 순항하고 있다.
 
신카이 감독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전작 '너의 이름은.'의 차기작이라는 부담을 이겨내고 연속해서 작품을 성공시켰다. 흥행작 다음 영화에 이제까지의 작품들에 비해 선명하고 급진적 메시지와 생각을 담아, 작품성 면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한데...
 


 
연출 면에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일견 어색해 보이는 연출을 한 부분도 있고 지나칠 정도로 많은 상징과 의미심장한 대사를 사용하고 있어 한번 보고 '이상하다', '전작만 못 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관객도 많을 것 같다.
 
신카이 감독이 사용한 상징물, 대사, 상황에 대해 신카이 감독이 인터뷰, 기자회견, 팜플릿을 통해 해설한 내용 등을 종합해 설명해보려 한다.
 
영화 시작부터 눈에 띄는 것들을 발췌해 순차적으로 설명하려 하니,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본 후에 본문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영화의 시작부터 호다카의 도쿄 도착까지
1. 영화 도입부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소품은 히나의 어머니가 손목에 차고있던 팔찌이다. 이 팔찌를 히나가 물려받아 목걸이로 하고 다니는데, 히나가 날씨의 무녀의 힘을 얻은 날 히나의 어머니 손목에 있던 구슬이 빛나고 있다.
 
무녀의 피를 이은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에게서 딸인 히나에게로 날씨의 무녀의 힘이 옮겨지는 묘사로, 히나가 물려받은 이 목걸이는 호다카에게 받은 반지가 몸을 빠져나가 현실 세계로 떨어질 때에도 몸에 붙어있다 히나가 현실로 돌아오자 반으로 쪼개진다.
 
히나와 하늘을 이어주던 도구가 히나가 자신의 의지로 날씨의 무녀를 거부하고 현실에 돌아가길 바라며 하늘을 조정하는 역할을 포기하자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다.
 


 
2. 그리고 이어지는 호다카가 배를 타고 도쿄로 가는 장면.
 
호다카는 배에서 이미 상처투성이이다.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데 이에 대해 신카이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자 "호다카가 가출한 이유를 한마디로 하면 지내기 괴롭다, 동네가 지긋지긋하고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부모와의 관계가 나빴다거나 친구들과 별로였다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세히 묘사하려다 그만뒀다"며 "밖으로,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기분은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이유는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트라우마를 자극할만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그려내지 않는 것이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는 데 좋고, 영화가 관객들의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히고 있다.
 
신카이 감독이 쓴 소설판에서는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묘사가 나온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호다카의 가정 환경을 끝까지 묘사하지 않고 있다. 맥도날드에서 '이 식사가 평생 먹은 식사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하는 것이 가정환경을 짐작하게 하는 대사.
 
감독은 이 작품이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작품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도 있는 묘사는 뺐다는 것으로, 호다카라는 캐릭터는 빛을 쫓아 끝까지 내달려 나간 캐릭터로 남게 하려 했다고.
 
다만 신카이 감독 본인으로서도 이렇게 판단한 것(호다카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잘 한 것인지에 대해 100% 자신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호다카, 히나의 성실함 묘사, 그리고 청소년들의 빈곤
3. 호다카는 가출했다는 점, 총을 주워 들고 다니다 발사까지 하는 묘사로 불량한 소년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인상을 피하기 위해 두군데에서 강조해 묘사하고 있다.
 
첫번째는 초반 스가가 권하는 권하는 술을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거부하는 장면, 두번째는 후반부 경찰에 쫓겨 도망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오토바이에 타자 헬멧을 챙겨쓰는 장면이다.
 
히나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 동생 나기를 소개받는 장면, 나기가 아야네와 하나를 서로 소개해주는 장면 등에서 정형화된 인삿말을 사용하는 건 코믹 코드도 고려한 것이겠지만, 캐릭터들의 성실성과 히나와 나기가 어머니에게 교육을 잘 받았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3년 전,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타키나 미츠하에 비해 히나나 호다카는 돈이 없다. 가난한 생활을 한다. 넷카페에서 생활하고, 편의점에서 산 정크푸드 등 과자를 연구해서 요리해 먹는다. 타키나 미츠하처럼 빛나는 좋은 생활을 하지 못한다.
 
'너의 이름은.' 당시에는 동경할 만한 빛나는 무대를 그리고 싶었다. 그래야 관객이 몰입할 것이다, 나도 미츠하의 집에서 살고 싶다, 저기 가 보고 싶다는 그런 기분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3년이 지나며 사회 분위기가 조금 변한 것 같다. 동경할 만한 빛나는 집을 그려내도 어차피 (나는) 그런 집에서는 살 수 없다는 포기가 젊은이들에게서 보인다. 그렇다면 '너의 이름은.'에서 보여준 반짝이는 세계보다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거기서 즐거움을 찾아내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그리는 쪽이 관객들에게 공감이 될 거라 생각했다"
 
신카이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고 들은 설명이다.
 


 
4. 영화 초반 '바닐라 바닐라~'라는 여성 대상 성인업소 구직 사이트 광고가 흘러나온다. 이것 때문에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 이런 걸 내보내도 되냐'는 비판도 받았는데, 이후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히나가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기웃거리는 장면이나 호다카가 호스트에 지원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묘사이다.
 
청소년들이 몸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무거운 상황을 가벼운 터치로 하고 지나가는데, 소녀가 온천여관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10여 년이 지났지만 소녀들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현실이 제시된 것 같아 괴롭다'고 평하기도.
 
히나와 나기의 생활상에서도 빈곤 묘사를 꾸준히 보여주는데, 히나가 저렴한 과자로 음식을 만드는 묘사, 집에서 채소를 직접 키워 활용하는 묘사, 모텔에서 즉석식품 뷔페로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장면 등이다.
 
신카이 감독이 스가에게 부여한 역할
5. 오구리 슌이 연기한 스가 케이스케와 혼다 츠바사가 연기한 나츠미는 중요한 캐릭터인데, 두 사람 모두 연기를 매우 잘했다. 영화 공개 전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캐스팅된 스가 역의 오구리 슌(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오디션을 거치지 않은 배역이다)이나 혼다 츠바사의 연기에 우려가 컸는데,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오구리 슌이 연기한 스가 케이스케는 캐릭터의 성격, 역할에 대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가장 늦게까지 고민하고 수정한 캐릭터라고 한다.
 


 
당초 신카이 감독은 스가를 호다카와 끝까지 대립하는, 호다카가 뛰어넘어야 하는 '아버지' 포지션으로 배치하려 했다고 한다. 어른들, 사회의 대변자로 호다카를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두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부여한 역할은 '관객들의 대변자'라고.
 
성인 관객들이 사회적 견지에선 삐딱선을 타고 있는 호다카, 히나에 대해 상식적 접근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이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담겼다.
 
클라이막스의 호다카가 선로에 내려 달려가는 장면이 의아할 정도로 길게 묘사되는데, 이 장면에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때까지 '날씨의 아이'를 지켜본 관객들은 호다카보다는 경찰의 입장, 어른들의 입장에서 '규칙을 지켜라', '법을 지켜라', '위험한 짓 하지말라'는 복구작업중인 인부, 전철 관계자들의 시선으로, 혹은 말도 안돼, 뭐 이딴 식이냐' 라고 조롱과 냉소를 보이는 다리 밑의 행인들의 시선에서, 혹은 '한 명이 희생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공리적 결론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스가의 시선에서 호다카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가가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호다카를 도와줬듯, 관객들이 관객들의 대변자로 배치한 스가에게 공감해주길 바란 것이다.
 
"이런 결말을 그리면 많은 반발이 있을 거라고 각오하고 엔딩을 그려냈다. 확실히 호다카는 사회보다 히나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도쿄가 물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게 호다카 개인의 책임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맑은 날씨를 바라는 것은 도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고 히나는 그런 도쿄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게 된 것이다. 호다카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로 희생되는 한 사람을 구하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호다카가 반드시 이기적, 멋대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호다카가 이기적이라고 지목하는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엔딩을 만들었다"
 
6. 스가가 침수될 걸 알면서도 창문을 연 것을 의아해하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일본 평론가들은 스가가 히나의 희생으로 비가 그치자 침수될 걸 알면서도 창문을 연 것은, 과거에만 매여 있던 자신을 씻어내는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 뒤 집안에 과거 기록을 그대로 남겨뒀음을 형사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 소년과의 대립을 끝내고 응원하는 입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한편 나츠미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로 관객들(스가)을 그런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조력자인데, 영화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라는 설정이 붙어 있다. 영화에서는 조금 허당 아가씨로 끝나버린 것 같아 아쉽다.
 
히나는 자신의 운명을 눈치채고 있었다
7. 히나는 나츠미에게 날씨의 무녀의 운명에 대해 듣기 전부터 자신의 운명을 어느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능력을 쓸 때마다 몸이 투명해지는데, 인터넷에 소문이 될 정도로 능력을 사용했으니 눈치 못채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극중 히나가 날씨를 바꾸는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손을 들어 빛을 가리고 태양을 바라보는 묘사는 자신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불꽃놀이를 위해 날씨를 바꾸고 호다카에게 '내 역할을 찾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라는 말을 하는 대목은 능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기쁘고 자기 역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결과에 대해 알고 있기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사이다.
 
히나는 호다카에게 끌리고 호다카도 맑은 날씨를 원한다는 사실에 그 바람을 들어주기로 결심(날씨의 무녀로서 기능하기를)하지만, 호다카와 함께 있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이 생겼고, 구름 위로 들고갔던 반지가 호다카에게 내려가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실을 이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
8. 호다카가 졸업식 노래 중 노래를 중단하는 대목은 '지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하는 대목으로, 히나와 만날 수 없는 상태로 숨막히는 집에서 보낸 지난 3년이 호다카에게 너무 긴 시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묘사이다.
 


 
9. 호다카는 히나에게 '앞으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빌어라'라고 하는데, 히나가 바란 것은 호다카와 현실 세계에서 함께 있는 것이었고 날씨의 무녀의 역할에서 벗어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나가 기도하고 있는 묘사가 나오는데, '무엇을 빌었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나뉜다.
 
날씨의 무녀로서의 힘은 잃었지만 계속해서 맑은 날씨를 빌었을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호다카가 자신이 바라는 걸 빌라고 했으니 호다카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빌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기자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카메오 등장신과 번역에 대해
10. '날씨의 아이'에는 카메오로 '너의 이름은.'의 주역들, 타키, 미츠하, 요츠하, 텟시, 사야카가 등장한다.
 
타키는 할머니 집에서 수박도 자르는 등 출연이 길고, 미츠하도 호다카가 반지를 고르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나오지만 나머지 3명은 잠시 스쳐지나가 한번에 캐치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텟시와 사야카는 바자회에서 날씨가 개는 대목에서 뒷모습으로 나와 대사를 한다. 요츠하는 히나의 희생으로 맑은 날씨가 되는 대목에서 학교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11. 번역을 매우 잘했지만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 호칭을 뭉개버린 부분은 조금 아쉽다.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감이 안 오긴 하지만 너무 편한 선택을 해버렸다.
 
'428 봉쇄된 시부야에서'로 유명한 각본가 이시이 지로는 '에반게리온' 등 도쿄가 수몰되는 묘사가 나온 작품들처럼 전체적으로 수몰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일부 지역만 수몰된 것으로 표현한 것이 이런 재해 상황에서 버려지는 건 결국 가난한 동네가 아닌가 하는 신카이 감독의 시각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풍스런 집' 같은 식으로 번역되었지만 타키의 할머니가 살던 곳을 호다카는 '시타마치'(下町) 라고 표현하는데,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으로 가장 먼저 수몰된 지역이라는 의미와 함께 개발되지 않은, 서민들이 사는 지역이라는 의미가 중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시이 지로의 해석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신카이 감독에게 따로 문의해둔 상태로, 답변이 오면 추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호칭 부분에서는 호다카가 히나를 부르는 호칭을 '히나'로 통일해 표기하고 있는데, 호다카가 연상인 줄 알고 히나를 쭉 '히나상'(히나씨)으로 부르다가 사실은 연하였다는 걸 알게 되고 강하게 현세로 히나를 데려오려는 의지를 담아 '히나'로 불렀다가, 마지막에는 최초의 관계를 복원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히나상'으로 호칭이 되돌아가는데 이 과정이 생략되어 버렸다. 참고로 히나는 18세로 자신을 소개할 때 의문형으로 이야기하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
 
12. 신카이 감독이 '날씨의 아이'에서 희생을 배격하며 생각한 모티브 중에는 인터넷에서 감정의 배출구가 되어 공격받는 사람들이 현대의 희생양 아닌가 하는 것이라는데...
 
"'날씨의 아이'를 제작한 것은 치유와 위로보다는 지금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 더 컸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혹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가, 뮤지션, 혹은 누군가 보통 사람이라도 SNS나 미디어에서 실수로 말을 해서 공격받고 한 번의 실수로 평생 두들겨 맞아 한 사람의 인생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몇번이나 지켜보고 있다. 그런 사회는 아무래도 살기 힘들다, 숨막힌다고 느낀다. 그래서 호다카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잘못된 일, 법률 위반, 많은 이들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일을 해서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가는 캐릭터로 그려냈다.
 
관객 여러분이 호다카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해 주신다면 사회의 숨막히는 그런 면이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다"
 
신카이 감독은 히나에게 '희생양이 될 필요 없다, 괜찮다'는 결론을 재차 제시하고 있다.
 
신카이 감독은 내한해서 샤이니 종현이 살아서 '날씨의 아이'를 봐주길 바랐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는데, 그 이유는 '날씨의 아이'가 희생을 부정하고 우린 괜찮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카이 감독이 희생의 배격과 함께 '날씨의 아이'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세대 문제이다.
 
젊은 세대는 이 세상이 이런 모습이 된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지만 세상에 떨어져 살아가며 이런 세상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른들도 아이들이 멋대로 선택한 세상에 대해 불평해선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하고 있다. 평론가들이 '기후소녀'로 유명해진 그레타 툰베리와 비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기후변동이 일어난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아이들은 그냥 주어진 환경을 받은 것으로, 어른들의 행동이 겹쳐져 세계를 이런 형태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것이다. 히나와 호다카는 어른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아예 다른 세계에 가버린 것이다. 바뀐 도쿄는 다른 세계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 그들이 다른 세계까지 가버리는 것을 그리려 했다.
 
이것이 건설적이거나 건전하지 않은 메시지라는 것은 알고 있다. 어른과 아이가 협력해서 세우는 것이 우리 사회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환경문제나 정치문제를 봐도 어른들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밀어붙이고 떠넘기는 건 아마 아이들 입장에서는 질려버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건 싫다는 생각으로 '날씨의 아이'를 만들었다"
 
신카이 감독의 설명이다.
 
판타지 로맨스 흥행작을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그 다음 영화에서 바로 이렇게 날선 이야기를 보여줬다는 것에 놀랐다. 전작만 못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많겠지만, 실망해서 이제 신카이의 영화는 안 보겠다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도록 그래도 어느 정도 절제는 한 것 같 같다.
 
그만큼 이번 작품이 더 좋았다는 관객이나, 신카이를 새로 보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자는 신카이 감독이 작가로서 크게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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