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미흡한 완성도의 게임이 풀 프라이스로 출시되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 속에서, '문명 7'

등록일 2025년02월21일 09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자신만의 확고한 게임성과 위치를 보유하는데 성공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의 최신작이 9년 만에 넘버링 타이틀로 돌아왔다.

 

파이락시스 게임즈가 개발한 '시드 마이어의 문명 7(이하 문명 7)'은 11일 정식 출시된 시리즈 최신작이다. 따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전략 시뮬레이션계의 거물이자 대표작이기도 하다. 9년 만에 돌아오는 만큼 많은 시리즈 팬들, 특히 5편과 6편을 현재까지도 즐기고 있는 게이머들이 주목하는 기대작이었다. '문명 하셨습니다'나 '한 턴만 더' 같은 밈(Meme)이나 '타임머신'이라는 별명이 여전히 언급되기도 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다만 현재까지의 평가는 '문명'이라는 네임밸류에 비해서는 썩 좋지 않은 모습이다. 11일 정식 출시에 앞서 파운더스 에디션 구매자는 며칠 일찍 플레이 할 수 있었는데, 이 글을 적고 있는 시점에서의 '스팀' 유저 평가는 '복합적'이다. 메타스코어 또한 81개 리뷰 기준 80점으로, 시리즈의 이름값에는 다소 걸맞지 않은 점수를 받아 들었다.

 

'문명 7'이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출시됐지만 복합적인 평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즐겨본 뒤 소감을 정리했다.

 


 

간소화, 그리고 '유산의 길'

이번 작의 핵심 아이덴티티는 '간소화' 내지는 '캐주얼화'로 느껴졌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혹은 시리즈를 얼마나 경험해 봤느냐에 따라 '문명 7'에 일어난 변화가 각기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큰 변화 중 대표적으로는 '유산의 길'을 먼저 언급할 수 있다. '유산의 길'은 일종의 가이드 겸 메인 퀘스트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다. 어떻게 플레이 할지 게임에서 목표를 제시하고, 각 시대를 구분 지으며, 또 승리 목표가 되기도 한다. 아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유저라고 해도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가이드 해줌으로써 게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한다.

 

이 '유산의 길'은 시각에 따라 강점으로도, 단점으로도 볼 수 있다. 유산의 길'로 하여금 게임을 익히고 접근하기에는 쉬워졌다. 대신 '문명' 시리즈의 핵심이자 또 진입장벽으로 손꼽히는 자유분방한 다회차 플레이에서의 재미는 다소 퇴색됐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문명과 지도자를 별도로 선택하는 시스템이 채택됐는데, '유산의 길'로 방향성을 일정 부분 제한하면서 줄어든 다양성을 이 시스템으로 파훼 하려는 인상이다.

 



 

하지만 TRPG 같은 느낌으로 선호하는 국가를 골라 흐르는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기존 '문명'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생각한 전략대로, 시대 별로, 또 콘셉트 대로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시대가 딱 들어맞는 경우는 '문명 7'에서는 극히 적다. 그렇다고 시리즈 팬이 아닌 신규 유저들에게도 좋냐 하면 '글쎄' 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시대 별로 적용되는 일종의 '소프트 리셋'도 게임의 흐름을 끊는 아쉬운 요소다. 인게임에서는 각 시대 별로 '위기'가 찾아오고 이를 극복하면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형태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때 열심히 일궈놓은 것들 대부분이 초기화되고 다음 세대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물론 유지되는 요소들도 있기는 하나 흐름이 끊기고 '쌓은 것들 대부분이 없어진 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썩 좋지 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UI는 불편한 게임 플레이 경험을 선사한다. 개선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에 있어서 편의성, 특히 UI & UX와 관련된 문제는 상당히 치명적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다

보다 가볍게, 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이 선호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이해된다. 다만 시리즈의 최대 강점인 '시스템에 적응한 뒤 다회차 플레이에서 느끼는 재미'라는 핵심 특징마저 칼질하며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게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당연히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시리즈의 팬과 신규 유저 둘 다 잡지 못한 느낌이다. 여러 요소들이 간소화되고 튜토리얼도 개선되었으며 가이드 역할을 하는 '유산의 길' 등 여러 보조적인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진입장벽을 느끼는 유저도 분명 있을 것이다. 큰 변화와 간소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팬들도 있을 수 있다.

 

즉 현재로서는 새로운 유저들을 위한 접근성 완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매력적이거나 완성도가 높다는 느낌이 아니다. 또 이로 인해 시리즈 팬들은 원래 '문명'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재미가 퇴색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사실상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놓쳤다고 봐야 한다.

 



 

어렴풋이 보이는 노골적인 DLC 정책

'문명 7'의 출시를 보면서 한 가지 또 아쉬운 점이 있다면 DLC를 판매 하겠다는 흐름이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개선점이 눈에 띄게 보이는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시장의 흐름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마치 완성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예 개발 단계부터 콘텐츠나 핵심 시스템을 따로 DLC로 쪼개서 파는 걸 상정하는게 당연시 되어가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이번 '문명 7'의 경우 DLC와 확장팩이 모두 포함된 합본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DLC 출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사후 지원, 콘텐츠 볼륨의 확장 측면에서 좋아하는 게임의 DLC가 나온다는 건 상당히 기쁜 일이다. 다만 10의 완성도를 가진 게임에 1이나 2의 새로운 즐길 거리가 추가되는 방식이 아니라, 7 또는 8의 완성도로 일단 출시하고 나머지를 차근차근 몇 년에 걸쳐 유료 DLC로 추가해 나가는 방식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인류사에 대한 찬가를 그린 '문명' 시리즈, 핵심 가치를 잊지 말아야

게이머들이 '문명' 시리즈를 즐기는 이유는 뭘까? 또 '문명'이 호평을 이끌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명'은 인류가 발전해 온 역사에 대한 찬가(讚歌)와도 같은 게임이었기 때문이고, 그러한 인류사의 큰 줄기 속에서 자신만의 전략과 '설정'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승리하는 소위 '뽕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작에서도 그러한 요소와 재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선택지나 다회차 플레이의 매력은 상당히 감소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9년 만에 돌아온 넘버링 시리즈라는 부담감,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게임에 녹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문명'이라는 게임의 핵심 가치 마저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개선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지적되고 있는 단점들을 모두 포용할 정도는 아니다.

 

'문명'은 유독 시리즈마다 큰 변화를 일으키며, 조금 강하게 말하자면 매우 거칠게 갈아 엎어지며 어느 정도 볼륨이 확보된 뒤에야 호평을 받는 일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이번 작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똑같이 일어날지, UI 개선이나 업데이트 그리고 DLC 출시 등으로 현재의 평가가 반전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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