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콘솔게임을 즐긴 게이머라면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한국계 게임 개발자, 아티스트 세실 킴이 모국을 방문했다.
현재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에서 개발해 운영하는 감성적 MMO 게임 '스카이 - 빛의 아이들'(이하 '스카이')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는 세실 킴은 '스카이' 오프라인 유저 축제 '협력의 날' 서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11월 한국을 찾아 지스타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협력의 날 행사에서 팬들과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시프트업을 방문해 김형태 대표의 소개로 주요 설비, 개발환경을 살펴보고 글로벌 게임시장에 대한 의견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서울 사당동에서 세실 킴 아트 디렉터를 만났다. 올드 게이머인 기자에게는 역시 세실 킴 하면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갓 오브 워' 시리즈 개발자로 인상에 남아있는데... 그러 그가 감성적 그래픽과 분위기의 평화로운 게임 '스카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퀘스쳔 마크가 머리 속에 남아 있었기에 '스카이'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작업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를 떠나 창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댓게임컴퍼니에 참여하기까지 수년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던지라, 그 사이에 있었던 일까지, 즉 과거와 현재를 듣고 싶었다. '스카이'를 어떻게 키워나가고 싶은지와 함께 다시 한번 웅장한 배경과 거친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남아있는지, 미래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사실 그와 댓게임컴퍼니 사이에 접점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에서 '갓 오브 워' 시리즈 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시절, 댓게임컴퍼니 역시 산타모니카에 연고를 두고 소니를 통해 게임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접점이 있더라도 거칠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세실 킴이 '스카이'의 아트 디렉터라니... 게다가 오랫동안 게임을 잘 발전시켜 냈으니 나이가 들며 서정적인 성향으로 바뀐 것일까 하는 멍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본인의 입을 통해 그런 의문을 직접 해소할 기회가 생겼기에, 기자가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서둘러 만남을 추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를 떠나 창업에 나선 이유부터 댓게임컴퍼니 '스카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과정, 그리고 2025년에 공개될 '스카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까지, 세실 킴 아트 디렉터와 나눈 대화를 옮겨 본다.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떠나 댓게임컴퍼니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기까지
이혁진 기자: 세실 킴 하면 역시 국내에는 '갓 오브 워' 시리즈로 기억하는 게이머가 많을 것입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같은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을 너무 오래 개발하게 되면 아티스트들이나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은 지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갓 오브 워' 시리즈 개발에 오랫동안 참여했는데, 1, 2, 3편을 각각 3년 정도씩 해서 9년에 걸쳐 한 시리즈의 작업만 한 셈입니다.
'갓 오브 워3'에서 일종의 '정점'을 찍고 '갓 오브 워4'를 만들자, 신작도 만들자고 하던 시기에 때가 된 것 같아 산타모니카 스튜디오를 나와 창업을 했습니다.
아티스트로 안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창업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지금 나가지 않으면 계속 같은 시리즈 작업만 하다가 커리어가 끝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10년 가까이 '갓 오브 워' 개발에만 참여했는데, 회사가 워낙 크고 잘 되고 있으니 한정된 작업만 하게 되더라고요. 머리 속의 게임 구상을 실현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디렉터로 내 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통 큰 회사에서 나와 창업을 하는 경우 엔지니어들이 창업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기술적 경험이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아티스트였고 엔지니어와 함께 창업할 만큼의 자금도 없고 해서 처음에는 서비스를 하면서 회사를 키우다 내 게임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모바일게임'을 구성하는 법이나 BM을 만드는 법도 모르고, 프리 투 플레이 게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도전한 것으로, 시행착오를 해 가며 배워나갔지만 결국 돈은 못 벌었죠.(웃음)
AAA 타이틀에 오래 참여하다 모바일게임 개발로 옮겨간 것이네요. 창업 후 댓게임컴퍼니에 참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예전이나 지금이나 AAA 타이틀을 못 만드는 것은 예산 문제가 가장 클 것입니다. '갓 오브 워' 같은 그림을 뽑으려면 사람 수도 필요하지만 단순 숫자보다 시니어 레벨의 숙련자가 있어야 하죠. 당시 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편 실력이 좋은 학생들을 인턴으로 뽑아 키우고 기초부터 쌓아가야 했습니다. 빅 타이틀은 생각도 못한 시절이었네요.
그런데 그때 마침 '져니'를 보게 됐습니다. 당시 소니에서는 '져니' 아트북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했는데, 댓게임컴퍼니 사람들이 정말 예술가 기질이 강한 사람들이라 굉장히 까다롭고 책을 만든다면 책 제작 과정에도 다 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소니가 평소 하던 대로는 할 수가 없어서 함께 협의하고 제작할 디자인 회사를 찾아야 했죠. 제 회사가 당시 미술잡지 등 책 관련 업무도 하고 있었기에 소니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와서 '져니' 아트북을 해야 하는데 함께 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져니'가 나오자마자 플레이하고 감탄했던 게임인데 그 게임 작업을 하자고하니 두말없이 수락하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제노바 첸을 만나 사인도 받고... 돌이켜 보니 12년 전의 일이네요. 그러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나 저도 다음 게임을 출시했고, 비슷한 시기에 댓게임컴퍼니에서는 '스카이'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제가 내놓은 게임은 PVP 전략게임에 하드코어풍이었는데, '스카이'를 보니 뭐 하는 게임인지 모를 몽환적이고 예쁜 게임이더군요. 그런데 댓게임컴퍼니에 먼저 참여해 일하고 있던, 소니 시절 같이 일했던 친구에게 들어보니 비슷한 시기에 소프트론칭을 한 제 게임과 '스카이' 사이에 수치가 10배 이상 차이가 나더라고요. 문제는 '스카이' 쪽은 유저들은 모이는데 과금이 발생하지 않았고, 제 게임은 플레이어 베이스가 작아서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즈음에서 회사를 닫고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소니에서는 언제든 돌아오라고 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소니 출신들이 만든 회사, 예를 들면 리스폰 같은 좋은 회사의 제안도 있었죠. 하지만 큰 회사에 다시 들어가면 이번에야말로 못 나올 것 같았습니다. 창업해서 서비스도 해 봤으니 아트만이 아니고 기회는 많았지만 큰 회사에 들어갈 용기가 안 생기더군요. 고민하던 차에 앞서 언급한 댓게임컴퍼니에 먼저 합류해 있던 친구가 '스카이'의 한국 번역 검수를 부탁해 와서 하게 됐습니다.
당시 번역은 유럽의 규모가 큰 번역업체에 외주로 진행했는데 당시에는 사내에 한국어 사용자가 없어 번역이 잘 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고 동음이의어 같은 것들, 고유명사들을 하나씩 물어보고 설명을 듣고 맞춰나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부탁을 받고 감수를 하긴 했는데, 돈을 받자고 한 일은 아니라 밥이나 한끼 얻어먹기로 하고 만난 자리에서 회사를 더 못할 것 같다, 나는 나오고 파트너들이 끌고가기로 했다고 털어놓고 나는 다시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비스, 영업을 9년 정도 하다 보니 느긋하게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갈망도 생겼던 시기였습니다. 그러자 댓게임컴퍼니에 아트 디렉터가 그동안 없었다며, 가능하다면 와서 맡아주면 좋겠다고 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바로 제노바와 연락해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스카이'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게 되신 거군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사실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스카이'가 아니었습니다. 댓게임컴퍼니가 다음 게임을 준비해야 하는데 다음 게임을 제노바와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가 됐었죠.
저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제안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져니'를 워낙 좋아했거든요. 알고보니 '져니'가 나오고 '스카이'를 6~7년 동안 만들었는데, 초반에는 가능성이 크게 보이지 않아서 불안감이 컸던 모양입니다. 주변에서는 어서 소니에 가서 '져니'같은 게임을 하나 더 한다고 제안하라고들 하고 있었고요. 사실 제노바와 댓게임컴퍼니에서 프리 투 플레이 게임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고, 제가 그랬듯 모바일게임 도전도 처음이다 보니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서 어려움도 겪었고 불안도 컸을 것입니다.
제노바와 만나 '져니'같은 신작을 만드는 것인가 물으니 맞다고 하더군요. 곧 소니와 미팅도 잡혀 있다고 하고. 사실 그래서 합류를 결정했는데 막상 들어오게 되자 '스카이'가 잘 되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댓게임컴퍼니는 규모가 작아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게임 플레이는 되어도 용어나 설정 등에 체계가 없고 각각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스카이' 아트 디렉터로 취임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물어보고 진행해 나갔습니다.
회의를 하면 다음 시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테마는 무엇인가부터 시작하고... 초반에는 스토리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플레이의 목적을 설정하기보다는 이곳은 어떤 세상이고,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에 집중하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시즌 오브 리듬'이 지나고 '시즌 오브 인챈트먼트' 정도부터 제노바도 그렇고 개발자들이 '더 재미있는 것을 해 보자'는 욕구가 강해져 이것저것 시도해 보게 된 것 같네요.
제노바의 스타일은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식입니다. 시즌 오브 인챈트먼트를 해 보셨다면, 추락한 배가 무대라는 것을 기억하실 텐데, 평범한 마을과 성 등 다양한 구상을 하다가 마지막에 제노바가 갑자기 추락한 배는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서 제가 그런 이미지를 그려 보여줬더니 그대로 채택이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3개월 정도 전이네요 합류한 것이. 5개월 정도 함께 일하다 그 뒤로는 쭉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댓게임컴퍼니 차기작도 천천히 준비중, 개발 진척도는 30% 정도
신작을 하러 가서 '스카이' 아트 디렉터로 눌러앉으신 것이군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처음 합류해서는 당시 제노바가 구상하던 신작의 콘셉트가 추상적이어서 계속 제노바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도 그리며 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후 '스카이'가 너무 잘되어서 '스카이'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스카이' 서비스를 원활하게 해야 하니 아티스트도 더 뽑고 말이죠. 제가 소니 시절부터 회식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좋아하던 성향이라 아트 팀 살림을 꾸려가고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의 업무 스타일은 디렉터가 있고 매니저가 있으면 매니저가 인사 문제부터 퍼포먼스 관리 같은 전반적인 관리업무를 하고 디렉터는 실제 개발 관련된 업무를 하는 것인데, 저는 '스카이'가 출시가 이미 된 상태에서 합류한 것이라 뭔가를 바꾸자고 할 것 없이 리드들을 지원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하면 됐습니다. 새 시즌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는 작업인데 3개월마다 새로운 시즌을 하니 꾸준히 새로운 개발을 하는 느낌도 나서 좋았죠.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사람들과 마주하고 일하다 모니터 화면으로만 바라보게 되니 기분이 참 이상하더군요. 모두 그럴 것 같아 각자 하고싶은 것이 뭔지 말해보자고 아이디어를 모아보니 절반 정도가 휴양지에서 쉬고 싶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사태 하에서 어디 갈 수가 없으니 해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쉬는 것을 모두 꿈꾸더라고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던지라 '시즌 오브 생츄어리'에서는 섬을 만들어 마지막 클리아막스에서 고래와 새들이 날아가는 것도 보고 휴양지로 설계했습니다. 만들 때는 좋았는데 게임 플레이는 재미가 없었던 것 같긴 하네요. 멀어서 한번 하고 나니까 유저들이 안 가게 되더군요.
그래서 다음에는 플레이가 재미있도록 만들어 보자고 해서 '시즌 오프 프로퍼시'가 나왔습니다. 트라이얼 도전이 제대로 게임 플레이 재미를 담았죠. 그렇게 시즌마다 계속 바뀌는데, 그렇게 꾸준히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야 유저들이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개발팀 입장에서도 그렇고 제 입장에서도 가장 큰 난제는 '스카이' 개발팀을 관리하면서 개발팀이 싫증나지 않게 끌고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져니'같은 게임이 다시 나온다면 저도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만, 신작은 완전히 동결된 것인가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그렇지는 않고 느리지만 진행은 되고 있습니다. 진척도를 말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30% 정도 단계인 것 같네요. '스카이'를 하다보니 유저들의 게임플레이나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기술력이 생겼고 다음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작을 위해 만들어본 기능 등을 거꾸로 '스카이'에 넣자고 해서 실제 그렇게 추가된 것도 있습니다.
'갓 오브 워' 10주년 아트북의 웅장한 아트웍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스카이'의 밝고 서정적인 아트웍을 보고 사실 조금 혼란도 느꼈습니다. '스카이' 아트 디렉터로 어떻게 작업하고 계신가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IP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에는 조금 달라집니다만, 일반적으로는 큰 그림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초기 설정화를 좀 그리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아트웍을 그리게 되는데, '스카이'는 엔진으로 많은 부분을 만들다 보니 자연의 바위, 산 같은 것은 엔진으로 정교하게 깎아낼 수는 없더군요. 처음에는 하던 대로 디테일을 많이 넣어서 그렸는데 직원들이 착해서 말을 안 하다가 좀 지나서 구현 못하는 부분을 그리면 안 된다고 말을 해 주더군요.(웃음)
멀티플레이 네트워크게임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싱글플레이 아트 작업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싱글플레이 작업은 일하면서 이해가 됩니다.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이고, 내가 그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말이죠. '갓 오브 워'는 길을 가다가 랜드마크가 되는 문이나 건축물, 배경 등이 나오면 작중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픈월드 게임은 유저들이 어디서 어디로 갈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 어디가 더 중요하고 어디가 덜 중요하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팀이 크다면 아트를 그대로 게임에 구현해 버릴 텐데, 팀이 작고 오픈월드가 되니 그림을 해석해서 구현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면서 어디까지 해야하나 애매한 느낌도 조금 받았죠. '갓 오브 워'는 싱글플레이 게임이라 카메라 위치가 중요했다면 '스카이'는 유저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으니 카메라도 오픈되어 있고. 회사마다, 프로젝트마다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고 무엇을 처음 접했냐에 따라 '이 작업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에 차이도 조금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싱글플레이 게임 개발을 하던 입장이라 요즘은 싱글플레이 타이틀이 줄어들었고, 콘솔게임의 힘이 전같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미 개발비, 규모의 사이즈가 전과는 달라졌고, 성공하는 곳이 여전히 있지만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하니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지금 싱글플레이 게임을 개발한다면 정말 네임밸류가 있는 IP가 아닌 이상 힘들 것입니다. 댓게임컴퍼니가 '져니' 이후에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나아간 것도 '져니'가 상도 정말 많이 받고 호평받았지만 '져니'로 돈을 많이 벌었느냐고 하면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이죠. 예술작품을 만들고 뮤지엄에 전시가 되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지 않으면 아쉬우니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스카이'로 이어진 것으로, 플랫폼을 모바일로 간 것도 그런 생각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영감은 주변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것
'스카이'를 처음 본 느낌은 어떠셨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깜짝 놀랐습니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미끄러지는 것 같고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기존의 모바일게임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라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불을 붙이는데 불이 빛나는 것도 정말 타오르는 것처럼 고급스럽게 표현했고, 질감을 잘 살려서 대리석이 번쩍번쩍 빛나고 말이죠.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언리얼로 뽑아낸 것과 유니티 사이에는 차이가 꽤 나던 시기입니다. 넥슨이 '히트' 같은 하이 퀄리티 MMORPG를 막 보여주던 시기이죠. 저도 제 회사에서 유니티를 활용했지만 '스카이'를 보니 다른 레벨을 보여줘서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유저들이 호평하는 구름에 대해서는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게임업계에서는 '스카이'의 구름 표현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도 알게 됐죠. 사실 유럽 개발사들이 구름 표현을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 좀 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습니다.
전반적으로 게임이 굉장히 예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나중에 콘솔 버전도 내고 하면서 큰 화면으로 보니 로우폴리곤이나 크래킹 이슈 같은 게 있었고 작은 회사라 쉽지 않았지만 고쳐나가야 했죠. '스카이'의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을 론칭할 때에는 호텔을 잡고 제노바와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체크하면서 그래픽을 보고 이 부분은 고쳐야 하는 것 아니냐 하며 서로 지적을 했던 기억이 나고, 하나하나 고쳐 나갔습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MMORPG라고 하면 사실 '갓 오브 워'의 감성에 가까울 텐데, 스카이는 꽤 독특한 게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유저가 참여하는 MMO 게임이라는 점에서 아트 디렉터로 작업에 힘든 점은 없었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스카이'를 MMORPG 장르라고 표현하면 틀린 표현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선을 긋기가 애매하네요. 어드벤쳐를 넣고 RPG도 넣어야 하는데 MMO까지 넣게 됐고.
RPG보다는 친구를 맺어주는 플랫폼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스카이'를 5년 운영했지만 게임 플레이가 더 재미있어졌다기보다 사람과 사람의 매칭이 더 잘 되고,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 되도록 하는 기능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혼자 들어와 노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친구들과 같이 와서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 같고요. UCC 쪽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셜 성향이 강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가 없는 게임이라는 점도 그렇고 다른 유저와 직접적인 대화도 불가능한 게임이죠. 그런 부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가 안됐습니다만, 특별한 의견은 없었습니다. 제가 잘 하는 분야도 아니고 저는 아트만 생각했거든요.
다시 한번 거칠고 웅장한 아트를 그려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드시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사실 소니를 나온 즈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죽음'을 테마로 표현하고 싶어서 세계관만 만들어 본 적도 있고, 나중에 제노바에게도 보여줬는데 '당신이 정말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준비가 더 된 다음에 해야겠다고 답을 했습니다.
작업의 영감은 어디에서 주로 얻으시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영감이라는 것은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잘하는 사람 사이에 묻혀 있으면 나도 모르던 것도 해 보게 되고 더 도전하게 되죠. 소니에서도 그랬는데 제가 배경은 꽉 잡고 있었지만 캐릭터 작업은 안했는데 찰리, 앤디... 캐릭터를 잘 하는 분들이 엄청났습니다.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그 뒤 마블에 가서 거장이 된 분들도 있었고...
그런 친구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저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많이 배웠죠. 스퀘어에닉스에서는 노무라 테츠야 같은 분들...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정교하게 그리나 싶었는데, 저도 따라해 보니 되더군요. 매일 연습하며 정교하게 그리는 것도 배웠고요.
그런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댓게임컴퍼니가 첫 회사, 첫 게임 개발 참여인 일본 스탭 타나베 유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정말 어디서 이런 인재를 뽑았나 신기할 정도입니다. 제가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스카이' 팀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찰리나 앤디와는 다르게 약간 유럽 스타일, 유럽 만화 스타일을 내는 친구입니다. 뫼비우스를 좋아하고요.
정말 열심히 하고 실력도 뛰어난 분으로, '스카이'의 귀엽고 정감가는 표현력이 거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스카이'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됐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빨리 배우게 되는데, 실력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그 과정이 더 쉬워지게 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냐고 하면 최근에는 주로 학생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나 짧은 영상들을 보며 받기도 하고요. 자료를 찾다가 고대문명, 미스터리에 빠져들어 그런 것들에서도 영감을 받습니다.
그림에서 제가 늘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본기입니다. 기본기가 잘 묻어나는 그림을 그리는 분이 애니메이션 업계에 많고, 사실 저도 그쪽 공부를 하다 게임으로 온 것이거든요. 같은 대학을 나온 분들이 디즈니나 드림웍스에서 배경 아트의 거장이 되어 계시기도 한데, 그런 분들이 애니메이션을 떠나 밖에 나와 그리면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이 나옵니다.
가상세계의 괴물이 나오는 게임의 그림이라고 해도 괴물 이전에 기본기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멋있는 괴물 캐릭터를 그리려고 처음부터 노력하지 말고 나가서 나무, 산, 그리고 구름을 그리면서 잘 하게 되면 다른 것도 다 잘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규모가 작다고 하셨지만 세계 여기저기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전원 재택근무라 어느 나라에서 뽑아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초기에 비해 많은 인력을 채용했지만 여전히 규모가 아주 큰 회사는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 후 잠시 게임업계가 호황으로 보이던 시기가 있었죠. 그 때 우리도 사람을 많이 뽑아야 해서 채용을 했는데, 문제는 같은 시기에 라이엇게임즈도 소니도, 큰 회사들이 많이 채용을 했다는 것이죠. 저희가 좋은 분들을 모셔오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LA에 거주하는 분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니 세계 어디에 거주해도 문제없다고 해서 일단 유럽에서 아티스트들을 채용했습니다. 유럽 풍이 '스카이'의 느낌에 좀 맞기도 했고요. 유럽, 뉴욕, 노스 캐롤라이나, 아시아. 이제는 출근을 하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8명 채용을 했습니다. 커뮤니티 인력도 있고 아티스트도 있죠. 인도나 태국에서 뽑은 분도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많이 지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협력의날 행사에 가서 보니 여성 유저가 대부분이고 캐릭터 그리기 이벤트에 제출한 그림들의 퀄리티가 상당했습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스카이' 유저층이 확실한데, 여성분들이 많이 좋아하고 창의적인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을 봐도 예술하는 분들, 그림 그리는 분들이 많고 한국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슬랙이 있으니 트위터를 검색해서 미국이거나 일본이거나 글로벌에서 '스카이' 팬아트 같은 것이 올라오면 마구 사내에 공유를 합니다. 그런 것을 보고 이야기하고, 어떨 때에는 영감을 받아서 그 팬아트를 올린 분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년 정도 지나니 시스템도 갖춰졌고요.
저희 커뮤니티 파트에 아티스트 2명이 있는데 팬아트를 잘 그려서 연락해 채용된 분들입니다. 그중 한분은 의대에 다니고 있어서 1주일에 20시간밖에 근무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들어오면 팀에 활력이 생기게 됩니다. '스카이'를 굉장히 잘 아는 커뮤니티의 팬을 채용하면 확실히 일이 수월하더군요. 게임에 대해 할 말도 많고 지난 아이템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잘 기억하는 분들이니까요. 한분은 미국, 한분은 싱가폴에서 채용했는데, 두분 다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2025년 공개될 '스카이' 애니메이션, 게임 이해한다면 보이는 것 많은 작품 될 것
가벼운 질문으로, 댓게임컴퍼니 멤버 소개를 보니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적어두셨더군요. 무슨 의미인가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게임 개발에 오래 참여해 왔지만 계속해서 더 잘 만들고 싶고,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있습니다. 소니에서 나와 9년 가까이 '내 게임'을 시도했는데 잘 안됐죠. '스카이'는 제가 순수하게 개발 초기부터 참여한 작품은 아니고. 하지만 5년 동안 아트 디렉터로 일했으니 '스카이'에 기여한 부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스카이'에서도 더 잘 하고 더 좋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고, 언젠가 새로운 것도 보여드리고 싶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애니메이션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크니 이야기를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 내년에 공개될 '스카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애니메이션에서의 정식 타이틀은 프로덕션 디자이너입니다. 애니메이션은 저희가 자체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각본, 스토리보드, 초반 프리 프로덕션은 자체적으로 만들고 작업 자체는 외주로 진행했습니다. 작업을 여러 회사로 나눠 진행하지는 않고 하나의 회사와 진행했죠.
제작 초기에 '스카이'에 맞는 디자인으로 새로운 캐릭터도 만들어야 하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맞춰야 해 교육을 많이 시켰습니다. 스케치가 오면 다른 아티스트와 피드백을 주고 당장 오늘도 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색상, 문양 등에서도 저희가 '스카이'의 지역을 다 아니까 '그 지역은 이런 문양은 안 쓴다'거나. 가방을 만들어 왔는데 현대적 핸드백처럼 생겨서 수정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카이'의 배경은 인간 세계로 보면 2000년 정도 전이라 현대적 디자인은 NG인 것이죠. 바퀴가 들어온 스케치도 왔었는데 '스카이' 세계에는 바퀴가 없습니다.
캐릭터에게 손가락이 있어서 사내에서 난리가 났던 기억도 나네요. '스카이' 캐릭터들은 벙어리장갑 같은 손이어야 하거든요.
'스카이' 개발과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디자인을 병행하다 보니 애니메이션 디자인이 너무 좋아 게임에 도입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매너티' 디자인이 너무 좋아 게임에 적용시킨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돌고래로 오해하는 분도 계시던데 매너티라는 바다동물입니다.
애니메이션이 '스카이'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 좋겠네요. 스토리가 참 좋은데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시 대사가 없는 작품이니까요. 아트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작품이 될 것 같고, 조카들에게 시사회를 해보니 딱 한 아이만 스토리를 이해하고 좋다고 하더군요.(웃음)
'디모'가 상영됐던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상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니메이션 한번으로 끝내지 않고 미디어믹스는 계속 해 나가시겠죠
세실 킴 아트 디렉터: 계속 해야죠. 애니메이션은 영화제에 진출한다는 목표도 있었던 것이라 부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는 성사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본 적도 없고 애니메이션 회사도 아닌데 왜 해야 하는가 하는 내부 의문도 있었습니다. '스카이'같이 세계관이 확실한 IP는 자꾸 설명해 주고 디테일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기 힘든 게임이니 할 수 있다면 해 보자고 해서 진행하게 됐죠.
감독을 찾아야 했는데 좋은 감독이 맡으면 문제가 쉬워지니 고심해서 알아봤습니다. 여러 좋은 분들을 소개받았지만 아무래도 '스카이'에 대해 잘 모르니까 설명이 힘들더군요. 그런데 댓게임컴퍼니에서 일했던 애니메이터로 '스카이' 출시 직전 퇴사해 애니메이션 업계로 옮겨가 감독이 된 분이 마침 있었습니다. 만나서 일단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찾아갔는데, '스카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흔쾌히 수락해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콜라보레이션은 어느 정도 주기로 한다는 방향성이 있나요? 최근 '무민' 시즌은 매우 반응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일정 주기로 한다기보다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한꺼번에 몰아서 하기는 그렇고, 스케쥴을 정리하며 구상하다 보니 1년에 하나 정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정도입니다.
무민에 대해서는 수년 전부터 일본 직원이 이야기를 했던 콜라보가 마침내 실현된 셈입니다. 사실 저는 처음 들었을 때에는 무민에 대해 잘 몰랐는데, 영국 아티스트가 무민을 매우 좋아해서 콜라보가 성사되었을 때 엄청나게 흥분하더군요. 러시아인 프로듀서더 미팅하는데 자신이 무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러시아, 북유럽 일본, 영국 등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IP로, 콜라보 시즌도 그런 지역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IP 콜라보레이션은 확실히 게임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무민은 진짜 힘들긴 했어요. 검수가 매우 엄격해서 직원들이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있어서 무민 덕분에 유저도 늘고 매출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카이' 유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세실 킴 아트 디렉터: '스카이'를 플레이해 주시고 꾸준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자주 뵈면 좋겠고, 한국 팬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만들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스카이'를 다른 예술 미디어로 해석한 것으로, '스카이'를 이해하는 분은 아주 많은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게임에서도 유저 여러분이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이래서 이런 것일 거야'라고 찾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애니메이션에는 디테일이 아주 많이 담기니 재미있으실 것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