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플레이스테이션 업적 점수를 겨루는 트로피 헌팅계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9년 동안 국내 랭킹 1위를 지키던 'dudergy' 유저가 2위로 내려가고 1위 자리에 새 얼굴이 들어선 것.
그 주인공은 'sanwang' 유저로, 계정주는 본 기자다. 2012년 초 플레이스테이션3을 구입해 2012년 5월 첫 플래티넘 트로피를 획득한 지 9년만에 기자가 국내 트로피 헌팅계 정상에 서게 됐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대항해시대 온라인' 등 MMORPG를 주로 즐기고, 스팀에서 RPG만 플레이하던 기자가 어쩌다 트로피 헌팅에 정열을 쏟고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가볍게 정리해 보려 한다.
남들보다 늦었던 트로피 입문
소니가 2007년 플레이스테이션3을 출시하고 '트로피'라는 업적 시스템을 도입한 뒤 자연스럽게 일부 게이머들은 업적 점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로 점수를 겨루게 됐다. 소니가 직접 제공하지 않는 업적 순위를 집계해 제공하는 글로벌 업적 통계 사이트들이 여럿 생겨나 지금까지 트로피 순위를 집계해 공개히고 있는 상황으로, 10여년째 매일같이 트로피 헌터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기자는 플레이스테이션3가 나와 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 '리치킹만 잡고 효도하겠다'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를 즐기던 와우저였다. 여가시간은 100% 와우에 투자했고, 시골섭이지만 리치킹 하드 퍼스트킬, 노다이 킬 업적 등을 달성하고 다짐대로 와우를 접게 되었다.
와우를 접고 일이 바빠 한 가지 게임을 집중해서 하기 힘든 상황에서 플레이스테이션2 이후 와우를 하느라 멀어졌던 콘솔을 다시 잡자는 생각에 2011년 말 플레이스테이션3을 구입했다.
처음 트로피를 획득한 게임은 '철권 태그 토너먼트2 프롤로그'였는데, 기자는 '버츄어 파이터'를 오랫동안 즐긴(주캐릭터: 아오이) 버파맨이지만 철권, DOA, 스트리트파이터,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등등 격투게임은 두루 해보는 편이고, 철권 시리즈는 트로피가 붙은 전 시리즈의 트로피를 획득한 상태이다.
이것저것 게임을 하면서도 플래티넘 트로피를 획득한다, 트로피 획득을 위한 플레이를 한다는 개념은 반년 가까이 머리에 없었다. 그러다 PS Vita가 출시되고, 콘솔게임을 좋아하는 선후배 기자들과 교류를 하며 '플래티넘 트로피를 획득하고 게임을 끝낸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됐다.
첫 플래티넘 트로피는 '언차티드' PS Vita 버전으로, 2012년 5월에 획득했는데, 국내 트로피 순위 1위에 오른 것이 2021년 5월이니 묘한 인연을 느낀다.
인생을 바꾼 GTA5 인터뷰
잡은 게임은 가능한 한 플래티넘 트로피를 따 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트로피 점수를 올리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던 기자에게 트로피 점수, 순위를 올리자고 결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있었으니, 2013년 진행한 'GTA5' 출시 전 인터부에서의 대화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트로피 난이도나 플래티넘 트로피 달성조건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자도 트로피 헌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자 락스터 관계자가 순위가 몇등쯤 되는가를 물어왔다. 하지만 그냥 소소하게 즐기던 중인 기자는 등수를 댈 수 없었다.
언젠가 나올 'GTA6' 인터뷰 전까지 순위를 올려 다음에 만났을 때 제대로 답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201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점수 쌓기, 순위 올리기에 힘을 기울이게 됐다. 어느덧 세계 20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지만 GTA6은 기약이 없고... 다음 만남이 성사될 때까지는 순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싶다.
여담이지만 기자는 해외 개발사와의 인터뷰에서 트로피나 어치브먼트(Xbox) 관련 질문은 빼놓지 않고 하고 있으며, 질문 전 플래티넘 트로피 개수와 세계순위를 언급하면 트로피와 업적에 대한 답변이 좀 더 성실해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트로피게임 장르 등장으로 더욱 격렬해진 경쟁
플레이스테이션3 시절까지는 업적 점수를 올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엔딩을 보는 것은 기본에 플래티넘 트로피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파고들기 플레이를 요구했다. 드림웍스 영화 기반 게임 시리즈나 일본의 텍스트 기반 게임들처럼 비교적 쉬운 게임도 있었지만 비중이 크진 않았다.
플레이스테이션3 말기로 가며 트로피 조건을 쉽게 설정한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트라인2'와 같이 '엔딩을 보지 않아도 플래티넘 트로피 획득이 가능한 게임'이 등장했을 때 헌터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는데, 이것은 트로피 획득 조건을 매우 쉬운 '트로피게임' 장르가 형성될 것을 예고하는 일이었던 것 아닌가 싶다.
플레이스테이션4 출시 후에는 '트로피게임' 장르 게임들이 갈수록 늘어나게 됐다. 소니가 콘솔게임 경쟁에서의 영광을 재현하고 유저가 늘어나며 필연적으로 트로피에 관심을 갖는 유저도 많아졌는데, 소니가 트로피 정책을 변경해 트로피게임 장르 형성에 속도가 붙게 됐다.
소니는 당초 게임의 볼륨, 규모, 판매 형태 등을 기준으로 게임에 플래티넘 트로피를 붙이는 것에 제약을 두었는데, 플레이스테이션4 출시 후 그런 제약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그러면서 일정 이상의 '최소한의 판매'가 보장되는 트로피게임을 '많이 출시해 수익을 내려는' 퍼블리셔들이 하나둘 생겨나게 된다.
현재의 트로피 헌팅 경쟁은 매달, 매주 쏟아지는 트로피게임을 '당연히 모두 소화하면서' 추가로 일반적인 게임, 어려운 게임을 누가 더 많이 하는가로 승부가 가려지게 되었다.
나오는 트로피게임을 모두 구입해 플레이할 시간과 돈은 기본에 그 외의 게임들까지 소화할 시간과 열정이 필요한 것으로,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과 힘을 게임 플레이, 트로피 헌팅에 투입하는 기자와 같은 삶을 독자 여러분은 따라하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살면 안 돼요'인 것이다.
늘 정상에 서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다. 실제 정상에 올라 보니 트로피 헌터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을 순위이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취미 분야 한가지에서 한국 최고가 되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한편으로 후련하면서도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이다.
정상에 올라 서 보자는 생각으로 플레이해 왔지만, 정상에 서서 거기 눌러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1위 자리에 오른 뒤에는 트로피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고 플레이스테이션3을 늦게 구입하는 바람에 플레이하지 않고 지나친 게임들을 하나둘 플레이중인데, 최신 그래픽이 아니지만 하나같이 너무나 재미있다. '나루티밋 스톰' 시리즈와 '어쌔신크리드2' 3부작 등등.
돌아보면 트로피 헌팅 덕분에 게이밍 경험이 풍부해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트로피 헌팅에 나서기 전 기자는 액션 어드벤쳐와 RPG만 플레이하던 유저였는데, 트로피 헌팅에 나선 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게임(9년 동안 2905개의 게임을 플레이했다)을 플레이하며 대부분의 장르의 재미를 확인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플레이하게 됐다.
이제까지 업적 점수를 올리기 위해 플레이한 괴상망측한 게임들(일반적인 게이머들이 플레이할 일이 없을)이 뇌리를 스치고, 이제부터는 내려놓고 점수를 위한 게임보다는 즐거움을 위한 게임을 더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게임 플레이 시간이 당장 줄어들진 않을 테고,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많이 플레이해야겠다.
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게이밍, 트로피 헌팅 라이프를 즐기시기 바란다. 기자와 같이 정상에 한번 서 보자는 생각을 가진 분들의 도전도 기다리겠다. 9년 동안 기자의 앞을 막아서며 1위 자리를 지켰던 장강의 앞물결 'dudergy'님처럼 이제는 기자가 여러분 앞을 막아선 앞물결로 버티고 있을 테니 어서 밀어내 주시기 바란다. 쉽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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