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PC방 열풍과 함께 한국에서 산업화된 e스포츠 산업은 오늘날 저변을 빠르게 넓히며 축구, 야구, 농구 등 전통적인 인기 스포츠들과도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잠재력을 지닌 시장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올해는 e스포츠가 주류 스포츠 시장으로 편입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시험받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개최가 연기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올해 개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탄탄한 팬층과 게임이라는 높은 접근성, 세계 유수 기업의 적극적인 스폰서십 참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e스포츠를 진짜 스포츠로 만들어나고 있다.
특히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의 성장이 둔화됐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입증하며 유연하게 성장한 e스포츠 산업은 엔데믹 시대를 맞아 각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는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e스포츠 산업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 속에서도 종주국이자 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국의 e스포츠 산업은 세계적인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몇 년째 정체기에 빠져있다. 게임포커스는 2023년을 맞아 전세계 e스포츠의 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아시아 e스포츠 시장을 살펴보고 한국의 e스포츠 시장이 나아가야될 방향을 짚어보았다.
전세계 최고의 e스포츠 마켓으로 성장한 중국, 올림픽 통한 제2의 도약 노린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규제, 외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많은 인구수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의 e스포츠 시장은 단일 시장으로는 글로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으로 여겨진다.
CNINC가 발표한 제49차 인터넷 발전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중국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는 약 10억 2900만 명으로 중국 인터넷 사용자의 99.7%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으며 이중 약 48%에 해당하는 인구가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의 규모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Statista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중국의 e스포츠 시장 규모는 1673억 위안(한화 약 30조 5000억 원) 규모로 오는 2024년까지 해마다 약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186억 위안(한화 약 39조 91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용자의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Iresearchchina의 2022년 중국e스포츠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에서 e스포츠를 즐기는 이용자들의 숫자는 약 5억 6000만 명 수준으로 2020년 대비 1.2% 증가했다.
압도적인 유저풀을 바탕으로 대회의 규모 역시 다른 나라와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대표 MOBA ‘왕자영요’는 글로벌 e스포츠 대회의 상금 규모를 1000만 달러(한화 약 123억 6500만 원)로 끌어올렸으며 1200만 달러(한화 약 148억 5000만 원) 이상의 상금을 가지는 대회들도 쏙쏙 개최가 진행되거나 준비중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의 규제 강화와 라이브 스트리밍 사업 표준화 정책으로 e스포츠 관련 게임 및 라이브 스트리밍의 성장세가 둔화되거나 오히려 역성장 했음에도 중국은 대표 IT 기업인 텐센트를 필두로 정부와 함께 적극적으로 e스포츠 시장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세계 최고 시장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중국산업정보기술부는 지난 2020년 ‘신인프라구축(新基建)’ 정책을 통해 2025년까지 e스포츠를 포함해 이동통신, 인공지능 등 IT 분야 첨단 산업에 약 10조 위안(2020년 기준 한화 약 17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기술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의 경쟁 우위를 보여주기 위한 의지의 표출이지만 핵심 사업중 하나로 e스포츠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후발주자에서 선두주자로…발빠르게 변화하는 일본 e스포츠 시장
한국과 중국과는 달리 일본은 아직 e스포츠라는 스포츠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지만 한국의 KeSPA를 모티브로 설립된 일본 e스포츠연맹(Japan Esports Union, JeSU, 이하 연맹)의 주도하에 성장하고 있는 일본 e스포츠 시장은 KeSPA 및 글로벌 e스포츠 단체와는 달리 IP홀더가 연맹에 직접 가입돼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을 살려 연맹은 일본 산업청 함께 중소기업의 e스포츠화를 돕고 나아가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기 위한 ‘도쿄 e스포츠 페스타’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일본 e스포츠 백서 2022’에 따르면 2021년 일본의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15.5% 상승한 78.4억엔(한화 약 740억 원) 규모로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되고 오프라인 행사가 조금씩 활성화 되기 시작하면서 연 평균 20% 이상 성장율을 기록해 2025년에는 약 180억 엔(한화 약 1709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전통적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PC게임 시장 외에도 모바일, 콘솔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e스포츠가 조금씩 활성화 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활성화 될수록 일본의 e스포츠 시장 규모 역시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해볼 부분은 IP홀더가 가입되어 있는 연맹의 특성상 e스포츠 시장의 스폰서십 문화가 발달해 이를 통한 시장의 확산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에는 선수, 혹은 팀을 중심으로하는 스트리머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직접적인 시합 외에도 다양한 방면으로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났다.
e스포츠 시장의 활성화는 e스포츠를 즐기는 주류 층의 저변 확대 및 시장 활성화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도카와 아스키 종합 연구소가 조사한 일본의 e스포츠 팬(경기 관전, 관련 방송 시청자의 총합)은 2021년 기준 약 743만 명으로 코로나 상황에서도 2020년 대비 약 108%가 성장했으며 2025년에는 약 12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맹 국제 위원장인 후루사와 아키히코는 “현재 일본의 e스포츠 시장은 ‘스타크래프트’로 큰 성장을 이뤘던 한국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e스포츠 시장도 점점 즐기는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그러한 청소년들에 의해 e스포츠 시장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며 “일본은 상대적으로 한국과 중국에 비해 늦었고 e스포츠 성장을 위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해결과제이지만 오사카 엑스포, 다양한 대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e스포츠와 e스포츠 선수를 크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스포츠 인프라 확대 나서고 있지만… 성장하는 세계 시장 속 영향력 줄어드는 한국
글로벌 지역의 e스포츠 시장의 성장세와는 달리 종주국인 한국의 e스포츠 시장의 규모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한국 e스포츠 산업 규모는 전년 대비 12.9% 감소한 약 1048억 원으로 추산됐다.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e스포츠 리그의 상금 규모, 게임단 예산이 각 44.2%, 14.7%의 높은 성장율을 기록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방송 분야의 매출이 사라지고 스트리밍 시장도 20%이상 위축되며 e스포츠 시장 전체 감소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015년도 이후 연평균 18.3%(2014~2019년) 성장한 국내 e스포츠 시장의 성장율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인 것으로 일상생활이 회복된 2023년을 기준으로 조금씩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종목사의 비중이 큰 e스포츠 시장에 대한 투자 비용 역시 코로나와 함께 줄어들었다. 방송, 대회, 선수, 게임단 등을 제외한 인프라 투자, 기술 및 인력 투자에 대한 종목사의 투자 규모는 2020년 157억 원에서 24% 감소한 119.2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의 전반적인 감소세로 전세계 e스포츠 산업에서의 한국 e스포츠 영향력도 축소됐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서 공개한 전세계 e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11억 3,700만 달러(한화 약 1조 5100억 원) 규모로 2025년에는 연평균 19.1%가 상승한 22억 85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뉴주에서 공개한 산업 규모를 기반으로 국내 e스포츠 산업을 비교하면 종목사 투자와 매출 비중을 합친 e스포츠 산업의 세계 시장 비중은 2020년 대비 4.7% 감소한 9.9%로 18.9%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2015년 대비 약 10% 줄어든 수치다.
시장 크기를 평가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대회의 상금 규모도 주류 게임이 아니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2020년과 2021년도에 시장의 규모를 가장 크게 확장한 기업은 크래프톤과 라이엇게임즈로 자사의 주요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의 리그 규모를 확대하면서 지속적인 선수 확보에 열을 올랐다. 하지만 e스포츠 대회 자체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21년에 개최된 e스포츠 대회수는 2020년대비 40개가 감소한 128개에 그쳐 종목 편중화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특정 게임에 편중되고 리그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e스포츠 산업에 젊음을 바치는 인재들의 고민들도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e스포츠 감독은 “소위 1군이라고 불리는 프로 구단에 인력과 자원이 집중되면서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 준프로급 인제 육성이 자력으로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며 “이러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해외에 우수한 선수들을 빼앗기거나프로 선수들을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의 한국 e스포츠 산업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종주국의 위상만 남았다. 시장의 적극적인 변화가 중요한 때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정부 역시 한국e스포츠협회, 업계, 학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중장기 진흥정책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오산대학교, 신구대학교 등 다양한 학교들이 e스포츠 학과 및 강좌를 신설하고 프로게임단들과 협업해 전문 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고 정부와 한국e스포츠협회가 ‘풀뿌리 e스포츠’ 활성화읭 일환으로 다양한 리그를 개최하고 있지만 오히려 e스포츠의 가능성을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는 글로벌 지역보다 늦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Robert Morris 대학은 지난 2014년 최초의 e스포츠 장학금 제도를 신설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전체 등록금의 35% 수준인 12000달러를 지원했으며 이후 다양한 학교에서 캠퍼스 전체가 함꼐 할 수 있는 유효한 스포츠로 e스포츠를 채택한 바 있다. 특히 200개 이상의 미국 대학이 e스포츠 장학금으로 연간 약 1,500만 달러 이상을 제공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STEM 분야(과학, 기술, 공학, 수학)를 전공으로 택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2021. Viewsonic 리포트).
e스포츠를 활용한 교육 연계 사업도 눈여겨볼만하다. 유럽의 e스포츠 기업인 GGTech의 대표 세자르 로세스(César Roses)는 강연을 통해 e스포츠의 교육 연계 사업에 대한 일화를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오버워치를 이용해 물리학을 가르쳤으며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자연 과학을 가르쳤다”며 “의욕이 높은 학생들을 많이 보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비디오 게임과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통합이 우리가 학습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게임 기업과의 연계도 눈여겨볼만하다. Digital Schoolhouse는 Nintendo UK과 협력해 게임화된 수업이 학생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확인했다. 2021년 주니어 e스포츠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e스포츠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학생들의 학교 활동 참여율이 더 높아졌으며 교사들의 절반 이상이 게임화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평소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고했다. Nintendo UK 역시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8세에서 11세 사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확장해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의 e스포츠가 지속적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선수 차출에만 집중되어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 더 많은 가능성을 확인해야 된다고 조언한다. 지난 2020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올림픽 아젠다 2020+5’의 15개 권고안에 ‘e스포츠 수용’이 포함되고 곧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 스포츠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선수 뿐만 아니라 사업 전반이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
특히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은 e스포츠 선수들이 장기적인 사회적 활동을 가능하게하고 나아가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실력있는 선수들을 육성하는 교육 지원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업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해외의 모범 사례를 참고해 적극적이고 실효적인 R&D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