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지티가 야심차게 선보인 '서든어택2'가 서비스 시작 한 달도 안 된 지난 7월 29일, 2개월 후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9월 29일이 되면 서든어택2는 수백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대작 게임 중 가장 빨리 서비스를 종료한 게임으로 한국 게임사에 남게 될 듯 싶다.
올해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기대작으로 평가받았던 서든어택2는 대체 왜 실패했을까? 무엇이 잘못됐는지 서든어택2의 기획단계부터 살펴봤다.
원대한 꿈을 담은 시작
서든어택2는 개발과정에서 기자를 포함한 게임업계 관계자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던 작품이다.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로 상징되는 서구권 FPS게임에 충격을 받은 국내 개발사들은 2010년 전후로 하나같이 스토리가 강조된 싱글 플레이를 담고 멀티플레이를 제공하는 스타일로 FPS 게임 개발을 진행하게 됐다. 중국 유저들이 싱글플레이를 원한다는 이야기도 이런 흐름에 박차를 가했다.
서든어택2 역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멋진 스토리를 담은 싱글플레이를 제공하는 게임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됐다. 유명 작가를 영입하고 당시로는 최고의 게임엔진이었던 언리얼 엔진3를 채택해, 콜오브듀티, 배틀필드 시리즈 수준의 그래픽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국산 FPS 게임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하지만 모던워페어2, 3가 나오던 시기에 개발을 시작해 긴긴 시간이 흘러 간신히 서든어택2를 세상에 내놓은 2016년에는 '오버워치', '콜오브듀티: 블랙옵스3', '레인보우식스 시즈',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등등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희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서든어택으로의 회귀
스토리를 담은 싱글플레이를 만든다는 구상은 좋았다. 하지만 처음 시도해서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중국 유저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분량을 줄여서라도 싱글플레이를 가져가려 했지만 결국 싱글플레이 구상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서든어택2의 프롤로그에서 그 흔적만 보여주고 있다.
싱글플레이라는 한 축이 없어지고 멀티플레이만 남게되었다. 이 멀티플레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이어졌다.
서든어택2 개발팀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참고할 게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서든어택' 앞에서 색다른 게임성, 리얼한 고증, 뛰어난 그래픽을 앞세운 경쟁작들은 추풍낙엽이었다. 경쟁작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고 서든어택이 국내 온라인 FPS게임 점유율 90%를 차지한 게 2016년 초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든어택이 진리'라는 판단을 내린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서든어택2 개발팀은 맵, 동작, 타격음 등 모든 것을 서든어택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들였다. 지나고 나서 보면 이나후네 케이지의 명언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인가'가 생각나는 슬픈 과정이지만 당시로는 최적의 판단으로 보였다.
넥슨지티의 개발을 총괄하는 김대훤 이사는 지난 4월 NDC 발표에서 "서든어택2는 플랫폼으로 접근하고 있다. 서든어택을 서든어택2 안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품는 방향을 생각 중"이라며 "서든1의 장점은 철저히 계승하고 단점인 그래픽만 강화하자는 생각에 서든1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서든어택1과 서든어택2를 하나의 게임으로 묶어 90%의 점유율을 유지, 확대하며 그래픽 좋은 서든어택을 제공해 유저 이탈을 막자는 생각이었다. 서든어택이 차지한 PC방 점유율 1~20% 정도를 국내 FPS 게임 유저의 맥시멈으로 생각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직후 나온 오버워치가 재미있는 게임이 나오면 30%, 40%까지도 유저들이 몰린다는 걸 입증하며 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실력있는 개발사, 그러나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간과하다
사실 언리얼 엔진을 만드는 에픽게임스에서는 넥슨지티에 개발기간이 길어지면 미래 시점에서 당대 게임들과 비교될 테니 일찌감치 언리얼 엔진4로 개발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넥슨지티와 퍼블리셔 넥슨은 서든어택2를 빠르게 개발해 출시할 예정이라며 R&D가 필요한 언리얼 엔진4 대신 언리얼 엔진3를 고집했다.
2014년, 아니 2015년에만 출시되었어도 그래픽 면에서 이 정도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개발은 생각보다 지연됐고 출시되고 보니 최고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FPS 게임들이 줄지어 나온 직후라 크게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레인보우식스 시즈, 오버워치 등 북미, 유럽 FPS 게임들이 멀티플레이 온리, 혹은 튜토리얼 수준의 싱글플레이만 담고 멀티플레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더 이상 '온라인게임이니까'라는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이건 다른 장르의 온라인게임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 콜오브듀티: 블랙옵스3,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여기에 오버워치까지 뛰어난 그래픽과 게임성을 보여준 대작들을 봤다면 그래픽을 더 끌어올리거나 아예 다른 방향을 추구해야 했지만 정해진 데드라인 속에서 넥슨 사업팀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이 정도면 통할 것이라고 한국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든어택2 탓에 게이머들의 놀림감이 되고 있지만, 사실 넥슨지티는 국내 개발사 중 실력있는 개발자를 가장 많이 확보한 개발사 중 하나다. 진보된 개발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는 회사다. 언리얼 엔진3도 제대로 다룬다면 여전히 높은 퀄리티, 세련된 그래픽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사내에서 개별 층을 쓰며 보안 속에 개발된 서든어택2는 회사와 시장의 지나치게 커진 기대에 눌리며 개발 방향이 자주 바뀌는 등 제대로 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개발됐다.
출시를 앞둔 라스트 스퍼트 단계에선 사내 개발력이 총동원되었다지만 우수한 개발력을 보여주는 게임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완성도로 마무리됐다. 여기에 '전장의 아이돌' 같은 코미디 설정을 붙이고 여성캐릭터의 몸매를 최대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모습들에서 알 수 있듯 개발팀이 구현하고 싶은 게임성을 구현했다기보다 사업팀의 그릇된 시장분석에 따라 휘둘린 게임이 되고 말았다.
빠른 결단력에 박수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김대훤 이사는 "서든어택2는 해외를 염두에 둔 만큼 중국에서 크로스파이어를 정말 이기고 싶다"는 말도 했다.
넥슨은 서든어택을 해외에 서비스해 보려다 그래픽 면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서든어택의 게임성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래픽만 보강하면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판단 하에 서든어택2를 서든어택과 똑같은 게임이 되도록 개발을 밀어붙인 것이다.
중국, 세계 게이머들의 수준도 얕잡아 본 판단이었다. 해외 서비스를 포함해 서든어택2를 완전히 포기한 빠른 결단과 용기만은 평가해주고 싶지만 지금이라도 개발, 사업 프로세스를 돌아보고 시장분석도 제대로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
서든어택2 서비스 전, 넥슨은 그룹 내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했다. 당시 많은 넥슨 개발자들이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정말 이대로 내려는 건가?'라는 의문과 함께 이대로는 안된다는 피드백도 많이 전달되었다. 하지만 서든어택2 사업팀은 더 미룰 수 없다며 출시를 강행했다.
현실을 부정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결과가 말해 준' 셈이 된 것이다.
넥슨의, 넥슨지티의 구성원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개발력이 부족해서, 회식비로 개발비를 날리고 대충 만들어서 서든어택2가 실패한 게 아니다. 개발력이 충분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서든어택2 실패의 더 큰 책임은 개발 방향을 계속 바꾸고 여성캐릭터의 몸매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등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판을 한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 까 싶다.
이미 한국 게이머들의 시각은 글로벌 수준에 맞춰져 있는데 게임회사 개발, 사업팀의 시각, 수준은 여전히 0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번 서든어택2 사건이 우리 게임개발 환경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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