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게임이용장애' 과잉진료 후폭풍... 국민건강 위협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하면서 침술을 통한 게임중독 치료법이 등장하는 등 벌써부터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난립, 오히려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이런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난립하면서 학부모들의 혼란도 극심해지면서 보건복지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면서 게이머 및 업계가 큰 혼란에 빠진 가운데,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침술을 통해 게임중독을 치료한다는 한 한의원의 광고가 논란이 되고 있다. 광고에 따르면, 게임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이는 심장과 간의 화가 심하기 때문에 한약 및 가벼운 침 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게임이용장애'가 대인관계나 학업스트레스 등 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해당 광고 등을 접한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없는 이런 한방치료는 자녀의 학업 성적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대치동과 목동 등 학구열이 높은 학군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략을 자극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게임중독을 치료하는 처방 등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를 놓고 벌써부터 치열한 의료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명확한 진단 기준이나 처방 없음에도 난립하는 민간 치료, 과잉 의료 후폭풍 분다
최근 난립하고 있는 이러한 치료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어떤 것도 효과나 방법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가 총회를 통해 '게임이용장애'를 질병 코드로 등재했지만, 아직 진단의 범위와 명확한 증상이 정립되지 않아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게임을 다른 일상보다 우선시하고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속해서 게임을 이용하고 ▲게임을 조절하지 못하는 증상이 12개월 동안 반복되는 경우 '게임이용장애'로 정의하지만 게임을 업으로 삼는 프로게이머 및 인플루언서들이나 일반 게이머들에게 적용시키기에는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다. 이 때문에 게임산업이 활발한 국내에서 오히려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각종 치료법이 벌써부터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하는 국제질병분류(ICD)는 권고사항으로, 각 회원국이 이를 고려해 자유롭게 질병 코드 정책을 개정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담당하는 통계청이 2025년 이전까지 KCD에 '게임이용장애'를 질병 코드로 등재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아직 국내에서는 명확한 진단 기준이나 처방이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국제적인 기준조차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음에도 한의학을 중심으로 각종 민간 치료법이 성행하면서 일각에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후폭풍인 '과잉진료'가 벌써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진단 기록이 남아 취업이나 진학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신과 진료와 달리, 한의학은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한방 치료를 찾게 된다는 것. 국내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큰 정신과와 달리 한의학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낮다는 점도 한방 치료가 성행하는 이유로 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게임중독 한방치료'가 한약이나 침술을 통해 증상을 치료한다는 점도 난립하는 민간 치료를 자제해야하는 이유다. 아직 성장기인 청소년들이 검증되지 않은 침술이나 한약을 처방 받고 치명적인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 또한 국제적으로 명확한 진단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음에도 자의적으로 '게임중독' 증상을 판단한다는 것 역시 자칫 엉뚱한 환자나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
과잉의료 후폭풍 방치한 채 문체부와 힘겨루기 집중하는 복지부
이처럼 한의학계를 중심으로 검증되지 않은 '게임이용장애' 치료법이 난립해 학부모와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도입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과 문화체육관광부와의 힘겨루기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한다고 결정한 뒤, 6월 중 관계부처와 전문가 및 단체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해야 하는가를 놓고 문체부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두 기관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
권준욱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협의체 운영을 통해 관련 분야 전문가 및 관계부처 등의 의견을 나누고 중장기적 대책을 논의하고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내에서 난립하는 한방 치료에 대해 별다른 주의 사항이나 자제를 권고하지 않아 사실상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지난 5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토론회를 통해 “보건복지부가 구성하는 민관협의체는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협의체가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의학계 내부에서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진단과 치료를 남발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개선을 보이지 않아 '게임이용장애'를 사실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대안을 논의하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양 기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조정되지 않은 의견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낙연 총리는 5월 28일, 간부회의를 통해 “ICD 개정안은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시행된다”라며 “관계부처들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 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진단과 치료가 학부모를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지만 복지부 측에서 별다른 입장을 표하고 있지 않다”라며 “국내에서는 아직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된 것이 아닌 만큼, 복지부 차원에서 나서 과잉 의료 후폭풍에 대한 논란을 일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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