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넥슨 '블루 아카이브' 양주영 시나리오 디렉터, "최종편, '한판 크게 벌일 수 있는 축제' 만들고 싶었다"

등록일 2023년10월01일 15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명실상부한 인기 서브컬처 게임으로 자리매김한 넥슨 '블루 아카이브'의 빅 이벤트, 최종편 '그리고 모든 기적이 시작되는 곳'이 국내 및 글로벌 서버에 화제 속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는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고 스토리를 감상한 후의 약간의 여운만이 남아있는데요. 물론 여전히 'Re Aoharu'를 듣거나 4th PV를 보면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번 최종편의 한국 및 글로벌 서버 업데이트를 기념해, 게임포커스에서 지난 작곡가 인터뷰 3부작에 이어 다시 한번 넥슨게임즈 MX스튜디오 양주영 시나리오 디렉터 겸 IP실 실장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최종편 업데이트 이후 든 소회, 소설이 아닌 '게임'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있어 신경쓴 점,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업계에 전하고자 하는 인사이트와 환경 및 처우에 대한 의견까지 다양한 것을 여쭤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블루 아카이브'의 선생님이라면 모두 잘 아는 분인 만큼 굳이 길게 서문을 가져갈 필요는 없겠죠? 기자의 우문(愚問), 그리고 양주영 실장님의 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한 현답(賢答)들을 만나보세요.

 


안녕하세요 실장님. 지난번 작곡가 인터뷰에 이어 다시 인사 드리게 되었네요.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독자 분들께 근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원하는 학생들은 천장 없이 잘 데려오고 계신가요? 또 건강이나 일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양주영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인사드리네요. 제 근황이라면…… 글로벌 권역의 최종편이 마무리될 쯤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좀 쉬고 나니까 살 것 같네요. 역시 건강이 최고입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직업 특성상 다른 서브컬처 게임도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요. 저는 '블루 아카이브'만 천장을 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확률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제 운이 문제랄까요. 게임은 죄가 없습니다. (웃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블루 아카이브'가 서브컬처 씬에서 명실상부한 인기 타이틀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 외에도 IP 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계신 입장에서 어떤 감상인지 궁금합니다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게임 개발자로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블루 아카이브'를 만들고 계신 개발자 여러분들, 그리고 함께 해주시는 선생님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겠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눈 앞에 있기 때문에 '시지프스'처럼 묵묵히 계속 나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게임 개발이 신의 형벌은 아니지만, 어쩐지 저희의 삶은 약간 그런 느낌이 있지 않나요……. 음, 결국 성공이나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계속 해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 서버에 이어 최종편이 국내 및 글로벌 서버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업데이트 후 든 소회와 소감이 있으시다면
다른 것보다 한글로 된 시나리오를 선생님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어서 감회가 깊었습니다. 특히 최종편의 제목이 어째서 '그리고 모든 기적이 시작되는 곳'이었는지는 한글로만 전달되는 뉘앙스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문장가가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이기에 이런 부분에 큰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 역시 한국어를 베이스로 삼는 라이터이기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특징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실장님께서 '블루 아카이브'의 최종편을 게임의 개발 착수 전부터 구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정체성을 '작가'가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신념 같은 것입니다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가는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며,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는 회사에 소속되어 게임을 만드는 것이죠.

 

당연히 '블루 아카이브' 또한 소설이나 영화, 만화가 아닌 게임입니다. 저(라이터)의 의도가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며, 저 또한 함께 협업하는 많은 전문가분들과 조화를 이루며 그 안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탐구해 나갈 뿐입니다.

 


'블루 아카이브'의 최종편은 물론 오래 전부터 구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모두 저의 의도대로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게임 개발은 (당연히) 고려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으며, 기획, 구현 여부, 사업적 고려(BM), 시장 상황, 심지어는 인력 문제 등등 많은 변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 설정이나 세계관이라도 게임으로서 갖춰야 할 부분이 성립되지 않으면 (혹은 주변을 설득하지 못하면) 완성되지 못하니까요.

 

저는 그런 부분을 인정하고 주변을 설득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혹은 설득에 실패해 자신의 설정, 시나리오, 캐릭터를 가차없이 부술 수 있고, 또 그렇게 부순 것에서 여전히 유의미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사람을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의도를 충분히 존중해주고 구현해주신 동료 개발자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무리를 지을 수는 없었겠죠. '블루 아카이브'가 제대로 완성된 '게임 개발'의 한 케이스로서 평가받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블루 아카이브'의 이야기는 수많은 이들이 함께 했기에 비로소 '게임'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어서, 전작인 '큐라레 마법도서관'에서 이루지 못한 창작자로서의 갈증은 해소가 되셨나요

'큐라레 마법도서관'에서 제가 창작자로서 느낀 갈증은 해소가 되진 않았습니다. 그런 갈증이라는 건 다른 대체제를 통해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고, '큐라레 마법도서관 2' 같은 걸 만들지 않는 이상 영원히 해소되지 못하겠죠. 뭔가 거창한 말이지만 창작자로서의 갈망이라는 것은 보통 그런 것이니까요. 익숙합니다. (웃음)

 

하지만 게임 개발자로서의 갈증이라면……. 네, 상당히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종편의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동료들과 함께 한판 크게 벌일 수 있는 '축제' 같은 것을 만들고 싶었고, 게임을 만드는 동료 개발자분들,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선생님들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던 것 같으니까요.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반복하는 말이되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자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최종편이 호평 속에 잘 마무리된 터라 다음 이야기에 대한 부담감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작업은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고 있나요? 분위기나 주제의 무게감, 그리고 '학원과 청춘의 이야기'라는 핵심 줄기는 같을지도 궁금합니다
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자세히 말씀 드리기는 힘들지만 선생님들께서 만족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종편 '그리고 모든 기적이 시작되는 곳' 관련

 

대책위원회 편부터 최종편까지 모두 감상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스토리의 '수미상관'이 유독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작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역시 "저와 같은 오타쿠는 수미상관에 약하니까요!"라는 답변일까요
오타쿠는 수미상관에 약하죠. (웃음) 하지만 이것은 사실 많은 창작자-수용자의 관계성에서 쉽게 발견되는 흔히 있는 개념입니다. 기승전결, 서파극, 3막 구조, 12여정(조지프 캠벨의 영웅 신화의 원형 12여정) 등등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끝과 연결되어 있죠.

 

다만 저는 그것을 작법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저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재구축을 했는데, (여기서부터는 영업 비밀이지만) 결국 '블루 아카이브'에서의 수미상관은 바로 우리(오타쿠)들이 수용하고 경험한 것을 바로 우리들이 긍정할 때 발생하는 '카타르시스'입니다.

 

또한 저는 그 '긍정'이 에티카(Ethica), 그러니까 스피노자적인 윤리를 담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윤리는 외부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서부터 발생하는 판단을 중요하게 여겼으니까요. 그렇기에 '프레나파테스'의 희생을 종교적인 것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인 윤리적인 담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점점 탈윤리적인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 국가에 한정한 것이 아닌 글로벌적인 징후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도덕적 질서와 규범의 시대를 생각해보면 어쩐지 '오타쿠'라는 존재는 전통적으로 그런 사회 규범이나 질서 같은 보편성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있는 '괴짜 (mania)'를 지칭해 온 것 같지 않나요? 그러니까 오히려 역설적으로 윤리야말로 지금에선 가장 오타쿠스러운 가치여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억지스러운 마음을 담아봤습니다. (웃음)

 

최종편에서는 두 번째 화두인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해를 얻을 수 있는가'가 자주 언급됐고, 또 이에 대한 '린'과 학생회장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화두'라는 요소에 대해서 조금 부연설명 해주신다면. 또 다른 '화두'는 언제쯤 언급이 될지, 또 소재로 활용될지 궁금합니다
네. 화두란 불교 선종에서 쓰이는 바로 그 의미입니다. 즉, '말(話)보다 앞서는(頭) 것'이라는 뜻의 잘 알 수 없는 이상한 문장들을 뜻하죠. 퀴즈나 수수께끼 같은 것은 아니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에게서 어떤 마음을 이끌어내는 그런 도구로서의 화두를 의도했습니다. 물론 키보토스에 떠도는 일곱 화두는 불교와 관계된 것은 아닙니다만…….

 

'린'은 두 번째 화두에 비어있는 부분에 자신만의 목적어를 넣고 또 자신만의 해답을 이끌어냈죠.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각자의 목적과 대답을 생각해보시면 저로서는 더 할 나위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을 듯해서, 이 부분은 미리 양해를 드립니다.

 


최종편 3장에서는 '아리스'가 '케이'를 설득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리오'를 용서하면서 정말 '용사'처럼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내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리스'와 '케이', 그리고 '아리스'와 '리오'의 관계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쟁이가 가장 구차한 순간이 자기가 쓴 글을 자기가 설명할 때라고들 하죠. 이미 많이 구차해진 것 같습니다만…… (웃음) 이 질문 만큼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최종편 4장에서는 말 그대로 유저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멋진 연출과 대사들이 한가득이었는데요. 저는 '프레나파테스'의 대사 "제 학생들을 부탁합니다"에서 오열했습니다. 흑흑… 실장님께서는 어떤 연출, 어떤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최종편의 제목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아무래도 '블루 아카이브'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가장 잘 포괄하기도 하고, 배경도 너무 아름다워서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거대 메카 '카이텐 MK. 인피니트'와 거대 괴수 '페로로지라'의 결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연출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장면 등 최종편에는 정말 다양한 오마주가 아낌 없이 들어가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중 가장 묘사나 구성에 공들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말 많은데 선뜻 꼽기가 힘드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총 3페이즈로 진행된 '프레나파테스 결전'을 꼽고 싶네요.

 

그 외에 시나리오 연출은 양이 많다보니 저희 IP실의 기획자 분들이 총동원되어서 진행했는데요. 기억에 남는 건 3장 11화 '처음의 이야기'에서 총학생회장을 만나는 시퀀스네요.

 

3장 11화는 프롤로그의 장면을 다시 다른 구성으로 재현하는 것이었는데, 연출하신 분께서 제 의도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아, '아리스'가 '빛의 검'을 쏘는 장면도 좋았고, '시로코 테러'와 선생님이 '색채'와 조우하는 장면들도 좋았습니다.

 

1장 1화인 '프롤로그'는 최종편의 라이브 일정에 맞춰서 총 4번 정도 내용이 수정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애착이 가는 시퀀스네요. 또 2장의 5화도 작전시작 전의 긴장감이 잘 드러나서 좋아합니다. 그 외에도 잔뜩 있지만 지면 관계상……. 진짜 너무 많아서 꼽기가 힘드네요. (웃음)

 



NDC의 포스트모템에서, 실장님께서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있어 아트 디렉터와의 협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하루나'와 '츠루기' 등 캐릭터성을 시나리오 상에서 '드라이브' 한 캐릭터가 예로 나왔는데, 이번 최종편에서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역시 '린'이겠죠. 그전까지는 어쩐지 어딘가 차갑고 냉정해보이는 캐릭터였지만, 최종편 전체를 다 보고 난 뒤엔 '린'의 이미지가 조금은 알던 것과는 다르게 보였으면 좋겠네요.

 

이번 최종편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유저들이 실장님께서 '기적'의 원천이자 힘을 '사랑'이라고 제시했다는 분석을 하고 있더군요. 유저들이 스토리를 감상하고 난 뒤 어떤 점을 고민해 보셨으면 하시나요
앞의 답변을 다시 가져와서, 글쟁이가 가장 구차한 순간이 자기가 쓴 글을 자기가 설명할 때라고들 하죠. (웃음) 이 질문 역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무드'를 조절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말씀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쉬운 가독성입니다. 쉽게 이해되고, 쉽게 읽히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글. 그러면서도 유의미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 부분을 이해해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웃음)

 

모두들 아시겠지만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그냥 쓰는 것보다 구성 난이도도 높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100을 준비해서 거기서 70 정도를 날려버리는 감각인 것 같네요.

 

그럼에도 이런 기조를 계속 관철했던 것은 저희가 만드는 것이 소설이 아닌 '게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게임 텍스트는 보통 스킵해 버린다, 그런 사회적 통념을 바꾸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런 기조에서는 많이 벗어난 느낌이긴 하네요. '블루 아카이브' 외에도 스토리가 쉽게 잘 읽히는 게임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장면에서 많은 유저들이 울며 웃었다는 후문이다

 

#최종편 외 기타 스토리 및 설정

 

각종 신화와 고전, 서사시 등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나 캐릭터들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관계, '헤일로' 디자인과 캐릭터의 외형, 성격 등이 그렇게 보입니다. 유저들도 이러한 신화 기반의 흥미로운 분석을 많이 하는데, 이런 분석을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실제로 이러한 신화 기반 분석이 부합하는 면이 있나요
'상징'에 대해 정답을 말하는 것도 일종의 금기인데요. 정답이 밝혀지는 순간 '상징'은 더이상 상징으로서의 힘을 잃기 때문이겠죠. 다만 굉장히 제 의도를 잘 파고든 해석도 있었고, 말도 안되는 이상한 해석도 있었다 라고만 말해두겠습니다. (웃음)

 


'블루 아카이브'는 캐릭터의 특징과 '밈' 만을 소화하며 캐주얼 하게 즐길 수도, 스토리와 설정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석해가며 진지하게 파고들 수도 있기에 유니크 한 강점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즐기는 방법'의 다양성을 의도하시는지, 또 그것이 맞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블루 아카이브'는 그런 해석을 의도하고 또 권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흔히 있는 패턴이죠. 저는 10대 때 '에반게리온'의 세계관 분석을 수학의 정석보다 더 많이 파고들었거든요. 이렇게 물고 뜯을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에 현재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쓰는 이야기에서 의도한 가치나 전하고 싶은 마음 등이 수용자에게 제대로 닿기를 바라는 것은 창작자로서 당연합니다. 하지만 텍스트는 창작자의 손을 떠나 수용자에게 도달한 순간 공공성을 띄게 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더이상 이야기라고 부를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예로, '흥부와 놀부'라는 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아무래도 재미도 없고 허탈한 느낌만 들지만요.

 

즉 이야기란 그것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니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놀부를 자본주의의 시점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해보거나, 쫄쫄 굶는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수십명이나 낳은 흥부의 절륜함을 생각해보면 그 주걱의 밥풀의 의미는……. 죄송합니다. 각설하고.

 

그런 의미에서 '블루 아카이브'의 역사나 신화적 해석으로 모티브, 상징 등을 연구하는 분들, 그런 부분은 모르겠고 그냥 가볍고 흥미로운 이야기만 즐기는 분들 모두 저희의 텍스트를 즐겨주시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게 '블루 아카이브'를 즐겨주시기만 한다면 라이터로서 더 바랄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텍스트라는 것은 상호적인 것이고, 저는 텍스트의 죽음은 '아무도 재해석하지 않을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해석은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이 텍스트를 의미있게 살아있게 합니다. 부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단을 불태우면 살아 남는 것은 무오류한 단 한권의 경전뿐이며, 그렇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선생님 여러분들의 다양하고 다층적인 해석이야말로 '블루 아카이브'를 유의미하게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업계 및 시나리오 라이터 직무 관련

 

최근 서브컬처 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업계의 기조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스토리를 쓰시는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업계에 주고 싶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덧붙여 말씀 부탁드립니다
게임 시나리오는 소설이 아니며, 혼자서 완성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심지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협업해야 완성되는 창작물입니다. 작법론보다는 이런 프로듀싱이랄까, 개발론이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블루 아카이브'는 결국 게임인 만큼, 스토리를 구성해 나가는 방법이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의 스토리로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최종편에서 이런 요소를 두드러지게 활용한 포인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라이팅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진짜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제 라이팅의 기조는 '큐라레 마법도서관' 때부터 바뀌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쉽게 잘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며, 이것을 관철해 오고 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요소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은 15년 NDC에서 소개했던 '큐라레 시나리오 작법'이나 22년 NDC에서 했던 '블루 아카이브' 포스트 모템 발표 등을 참고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NDC22]복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히로인이 탄생한 과정, '블루 아카이브' 양주영 시나리오 디렉터의 포스트 모템

 

게임에서의 스토리가 이전보다 크게 부각되면서 업계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느낌인데 반해 공급은 원활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시나리오 라이터이신 입장에서 이러한 업계의 환경과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업계의 환경은 계속 바뀌고 있지만,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선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시장 특성상, 실력있는 분들은 보통 웹소설, 웹툰에 계시죠.

 

이것이 저에겐 현재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거기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잘 되기만 한다면) 게임 개발자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벌게 됩니다. 능력있는 인재가 어느쪽을 매력적인 직장으로 볼지는 불보듯 뻔하죠.

 

저도 시나리오 라이터이지만, 그보다는 서브컬처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이자 인재 영입을 책임져야 하는 시나리오 조직의 책임자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재 게임 업계, 특히 서브컬처 쪽 프로젝트가 부흥하고 글로벌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 라이터 인재풀을 경쟁하고 있는 웹소설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즉, 시나리오 라이터의 대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져야 합니다.

 

웹소설에 계신 작가들이 게임개발자를 고려해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현재 업계에 계신 시나리오 라이터 분들이 보람과 열정만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고려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제넘은 소리를 한 것 같지만,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장기적 투자는 현재 서브컬처 게임이 발전해 나가는 것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제 생각을 말씀 드려봤습니다.

 


이어서, 현재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를 지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현직 입장에서 조언해주신다면. 좋은 시나리오 라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작, 다독, 다상량, 이겠죠. 만고의 진리이자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으실 독자 분들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긴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정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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