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 민주주의' 국회의원을 만약 추첨으로 뽑는다면?

등록일 2015년08월25일 10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글 제공: '착선의 독서실' 운영자 착선, http://newidea.egloos.com/2191073



 
법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국민 거의 모두는,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자격은 25세 이상일 것, 중범죄를 저지른 후 집행유예기간이 남아있지 않을 것, 선거와 관련된 처벌을 받은 뒤 10년이 지날 것 등입니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자격요건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입사기준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취업의 스펙 요구사항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명문대를 나올 필요도, 토익 900점을 넘지 않아도, 어학연수나 자격증, 인턴경험이 없어도,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는 대표자,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아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선거를 통해 뽑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돈과 명성, 권위가 필요합니다. 돈이 없으면 공천 경쟁에 나설 수 없고, 공천을 받더라도 본선 경쟁에서 이기기 힘듭니다. 평범한 사람들과 차별화된 학벌과 직업, 경력이 없다면 선거에서 뽑히기 힘듭니다. 결국 선거는 버나드 마넹이 지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단 귀족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입니다.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뽑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선거가 중요합니다. 선거만 잘 할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당선하려는 욕망과 재선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국회의원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JTBC 예능방송인 '썰전'에서 지적했던 것 처럼 그들은 재선에만 신경씁니다.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는, 결과적으로 엘리트들만이 국민을 대표하는 현실을, 엘리트들의 활동이 정치 본연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정치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것에만 집중하는 현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일반 시민들은, 정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힘듭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점은 과거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왔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라고 지적합니다.

민주정의 기본적인 원칙은 민중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기본 원칙'인 자유가 취해야 할 두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유의 한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적 자유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 '선거는 민주적인가' p.46
선거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 저자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가 말하는 것은, 미국 상하원 제도에서 '하원 의원을 추첨을 통해 구성'하는 것입니다.

추첨제라는 아이디어는 과거 아테네의 민주주의부터 18세기, 19세기에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거론된 방식입니다. 추첨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 갓난아기나 연쇄 살인범에게도 국회의원의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네테의 추첨제를 기반으로 말하면, 추첨 대상은 자신이 하겠다고 신청한 모든 국민에 한합니다.
신청한 사람 중에서 랜덤으로 국회의원이 선출되며, 국민 누구라도 선출된 국회의원의 활동에 공개적으로 의의를 제기하고 그것이 옳다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무차별적 의의를 방지하기 위해 의의를 제기한 시민은 그 주장이 불합리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아테네에선 추첨제와 동시에 투표제도 실시했는데, 투표제는 대표적으로 군대를 이끄는 장군을 선발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수가 많아지면서 생겨난 제도이며, 추첨 민주주의 역시 대의적 성격을 가집니다. 추첨 민주주의는 추첨을 통해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직접적이지만,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간접적인, 이중적 성격을 가집니다. 저자들은 추첨으로 선발된 의원들이 기존의 정치구조가 지닌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추첨으로 뽑힌다고 해서 부정부패에서 완전히 자유롭거나, 뽑힌 사람들이 모두 정치활동에 열정적이거나, 행정부와 싸울만한 충분한 역량을 다 갖추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단점들은 지금 선거를 통해 뽑히는 국회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들은 추첨제도를 통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국민의 얼굴을 가진 국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선의 동기가 없는 의원들은 선거로 선출되는 지금의 의원들처럼 국회 업무를 팽개치고 지역구에서 재선 활동에 전념하지도 않을 것이고, 서민들이 하루빨리 처리되기를 바라는 민생 법안을 계속 미루지도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조항이나 지나치게 복잡한 세제 관련 법안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될 것이며, 연말에 도매금으로 수백 건씩 처리되는 법안들은 진지한 심의를 위해 처리 건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의회는 전문가 집단의 특권적 공간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진정한 민주적 권력체가 되는 것이다. - p.12
국회의 이상적 모습은 모든 국민의 마음과 감정, 의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 구성원들은 국민 다수의 얼굴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국회의원들은 거의 모두 남성들이며,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이고, 많이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선호하는 의제와 국회가 선호하는 의제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대부분의 시민과 다른 계급의 사람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 정치를 멀리하는 참여의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선택하지 않은 대표성의 문제를, 대표성이 낮아지니 그만큼 국회의원의 책임감이 결여되는 문제를 불러오게 됩니다.

캐나다의 경우 2006년에 단순 다수 대표제를 개혁하기 위해 추첨제를 통해 시민총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추첨 민주주의의 전통은 재판의 배심원 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작위 추출이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선 통계학적으로 최소 500개 정도의 샘플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첨 민주주의가 국민의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국회의원 자리도 최소 500석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저자들은 투표제의 상원, 추첨제의 하원이라는 절충적 개혁안을 주장합니다. 추첨제도를 통해 국회가 구성이 된다면, 지금처럼 대부분이 남자이고, 절반이 변호사이고, 대부분이 부유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회의 모습은 사라질 것입니다. 대신 절반은 남자이고 절반은 여자인, 공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캐셔, 과학자, 선원, 교사, 의사, 광부, 변호사, 요리사 등으로 구성된, 시민의 얼굴을 한 국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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