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어비스 'CEDEC 2026'서 대규모 오픈월드 개발 노하우 공개... 붉은사막 '대규모 오픈월드 구축 위한 개발 프로세스 재정의'

월드 우선 레이어링 및 XML 기반 개발 프로세스 공유

등록일 2026년07월23일 17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펄어비스가 200명 남짓한 인력으로 AAA급 오픈월드 '붉은사막'을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일 게임 개발을 넘어 향후 프로젝트의 토대가 될 병렬 워크플로우와 데이터 구조화에 있었다.

 

펄어비스는 23일 일본 요코하마 퍼시피코에서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 ‘CEDEC 2026’ 세션 강연자로 참가했다. 두승빈, 김현겸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이 발표자로 나서 '붉은사막'의 오픈월드 프로덕션과 개발 프로세스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붉은사막은 펄어비스가 차세대 자체 엔진인 '블랙스페이스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한 AAA급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타이틀이다. 독창적인 액션성과 방대한 월드 구현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K-콘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붉은사막은 출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누적 판매량 600만 장을 돌파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치열한 글로벌 AAA 콘솔 시장에서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검증받으며 펄어비스의 핵심 IP로 완벽히 자리매김했다.

 

이런 배경에는 개발 초기부터 단일 타이틀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 했던 펄어비스의 프로덕션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제한된 인력과 시간 속에서도 시스템 자동화와 효율적인 데이터 관리를 통해 독창적인 오픈월드를 구현해낸 과정이 이번 CEDEC 2026 강연을 통해 상세히 공개됐다.

 

200명 한계 극복한 '월드 우선' 파이프라인

 

두승빈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 김현겸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


두승빈 총괄 실장은 붉은사막 개발에 7년이 걸린 배경부터 짚었다. 200명 남짓한 인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거대 오픈월드를 처음부터 한 편의 완성품으로 만드는 접근법에서 벗어났고, 이후 프로젝트의 토대로 삼기 위해 속도보다 시스템 구축에 집중했다.


대신 도구와 워크플로우, 프로세스를 다듬는 데 시간을 들였다. 문제는 목표와 리소스의 간극이었다. 액션 전투와 진짜 같은 NPC, 퍼즐, 탐험을 담은 AAA 오픈월드를 노렸지만 개발팀은 비슷한 규모 팀보다 작았다.

 

오랫동안 MMO를 만들어온 스튜디오가 처음 잡은 싱글플레이 타이틀이기도 했다. 두 실장은 인력을 더 넣거나 더 열심히 일하자는 주문으로는 풀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빠른 반복 작업과 유지보수성, 병렬 워크플로우를 원칙으로 세웠다.

 

반복 작업은 프로토타이핑 초기뿐 아니라 폴리싱 단계에서도 중요하다. 콘텐츠를 고칠 때마다 시간과 조율이 많이 들면 개선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부서 간 작업이 촘촘히 엮이면 만드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병목이 생긴다.

 

오픈월드를 채우는 방법으로는 월드를 여러 겹으로 쌓는 방식을 택했다. 지형과 식생, 야생동물, 관심 지점이 환경 레이어에, 아이템과 보물상자, 도적 캠프가 콘텐츠 레이어에, 교역소와 세력 노드가 메타게임 레이어에 들어갔다.

 

지형과 콘텐츠 데이터를 레이어 단위로 분리해 구축함으로써 퀘스트 없이도 작동하는 오픈월드를 구현했다


레이어를 따로 제작하고 배치할 수 있어 팀마다 다른 종류의 콘텐츠를 나눠 맡았다. 가령 채집 식물과 야생동물, 도적 캠프가 놓인 계곡 옆에 보물상자를 숨긴 동굴이 붙으면 플레이어가 머물 이유가 여러 개 한꺼번에 생긴다.


이어 퀘스트가 게임플레이를 이끌고 월드가 배경 역할을 하는 구조를 뒤집으려 했다고 설명다.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아예 내려놓아도 발견할 장소와 싸울 적, 채집할 자원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봤다.

 

개발 초기에는 퀘스트를 먼저 설계하고 거기 맞춰 환경을 만든 뒤 콘텐츠를 붙이는 순서였다. 작은 규모라면 통하지만 붉은사막 크기에서는 제작 주기가 길어졌고, 목표가 바뀔 때마다 환경과 콘텐츠를 다시 만드는 일이 반복됐다.

 

월드 우선으로 바꾼 뒤에는 퀘스트가 지역의 유일한 출발점 자리에서 내려왔다. 지형과 관심 지점, 콘텐츠 레이어가 모든 팀의 공통 토대가 되면서 스토리가 바뀌어도 이미 플레이 가능한 공간에서 목표만 손보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개발 속도를 얻은 대신 내러티브의 긴밀함을 일부 양보하는 트레이드오프도 발생했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에 스토리를 맞추는 과정에서 응집력이 약해진다는 한계가 드러났지만, 이는 제한된 인력으로 초대형 월드를 완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파이프라인 선택이었다.

 

밀도와 생동감 잡은 배치와 위상 변화

 

지형 데이터와 도로 스플라인에서 추출한 이동 패스를 함께 활용해 NPC와 야생동물을 배치했다


김현겸 총괄 실장은 월드 우선 파이프라인을 실제로 받쳐준 것이 배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자동 배치와 수동 스팟 배치를 섞어 썼고, 강이나 도로처럼 월드 전체의 구조를 잡는 요소에는 후디니 같은 절차적 도구를 적극 활용했다.


자동 배치는 지역 데이터와 지형 데이터를 읽어 콘텐츠를 채워 넣는 방식이다. 숲에는 작은 동물이, 물에는 물고기가 들어갔고 지형에 따라 식생이 갈렸으며 도로를 따라서는 NPC가 놓였다. 어떤 종이 배치되는지는 지역마다 달랐다.

 

지역과 구역 분류에는 비트맵과 트리거를 썼다. 이 데이터를 기준으로 캐릭터와 월드 오브젝트가 알맞은 자리에 자동으로 놓였고, 도로 스플라인에서 뽑아낸 패스 데이터도 NPC와 야생동물을 배치하는 데 함께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자동 배치가 월드 전반의 기본 밀도를 맡았다면, 디자인 의도가 강하게 필요한 자리에는 스팟 배치를 썼다. NPC의 일상을 보여주는 작은 장면이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활동, 퀘스트를 주는 중요 캐릭터가 여기 들어갔다.

 

가령 플레이어가 숲에 들어서면 자동 배치된 너구리가 흩어지고, 근처에서는 멧돼지 무리가 스케줄대로 지나가며, 수동으로 놓인 사슴 두 마리가 뿔을 맞댄다. 자동 배치가 월드를 채웠다면 스팟 배치는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NPC끼리 싸우는 장면이다. 김 실장은 연출된 시퀀스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대립하는 세력을 전장에 놓아두면 각자의 AI를 따라 적을 찾아 교전하는 구조라, 넓은 전장도 적은 공수로 채울 수 있었다.

 

월드를 채운 다음 과제는 플레이어 행동에 월드가 반응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지나가기만 해도 지면에 따라 먼지나 흙이 튀고 풀과 얇은 나무가 밀리며, 무기를 휘두르면 갈대가 잘리고 나무를 휘게 만들어 반동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베이스 레벨과 게임플레이 레벨을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위상 변화 구조를 적용해 dynamic 오브젝트 제어를 단순화했다


오브젝트에는 되도록 상호작용하거나 부서지거나 반응해야 한다는 규칙을 세우고 기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태와 동작이 정해진 스크립트 기반 오브젝트로, 가까이 가면 작동하는 함정부터 부품 여럿이 맞물린 크레인까지 여기 해당한다.


기믹을 대규모로 만들기 위해 커스텀 XML 스크립팅 시스템을 따로 구축했다. 자동 오브젝트 교체도 지원해 환경 아티스트가 일반 오브젝트로 월드를 만드는 동안 디자이너는 상호작용 버전을 준비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교체했다.

 

기믹이 아닌 오브젝트도 그냥 두지 않았다. 무기처럼 휘두르거나 던질 수 있고, 아이템으로 만들어 상점에 팔거나 집을 꾸미는 데 쓰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나 기차, 수문처럼 기능이 있어 보이는 물건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레벨 단위에서도 플레이어 진행에 따라 월드가 바뀌기를 원했다. 적 요새를 클리어하면 같은 장소가 아군 전초기지로 변하는 식인데, 지형이 크고 시스템들이 월드 데이터를 공유하는 탓에 맵을 여러 벌 만드는 방법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정되는 부분과 바뀌는 부분을 가르는 위상 변화를 썼다. 지형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Base Level에, 건물과 NPC, 적 배치처럼 페이즈마다 달라지는 건 Gameplay Level에 두고 전환 조건은 XML로 정했다.

 

플레이어가 자주 오가는 회색갈기 캠프가 대표적이다. 여정에 따라 캠프가 달라져야 했기에 공유 Base Level 위에 모듈 단위 Gameplay Level을 얹어 만들었고, 이를 통해 캠프가 자연스럽게 커지는 모습을 효율적으로 구현해냈다.

 

개발 속도 올린 'XML' 기반 파이프라인

 

스크립트와 비주얼 에디터의 단점을 보완한 XML 체계를 채택해 직군 간 협업 장벽을 낮추고 작업 효율을 높였다


두승빈 총괄 실장은 워크플로우를 떠받치는 도구와 데이터 시스템을 짚었다. 펄어비스는 콘텐츠 관련 데이터와 스크립트에 XML을 공통 문법으로 쓰고, 액션과 AI, 기믹, 스테이지마다 차트 포맷을 따로 정의한다.


액션 차트를 예로 들면 캐릭터 액션은 상태 머신이고 XML 노드 하나가 액션 상태 하나에 대응한다. 하위 노드에서 어떤 애니메이션을 재생할지, 어느 프레임에 이펙트와 공격 판정, 사운드를 걸지, 어디로 전환할지를 각각 정한다.

 

덕분에 디자이너는 작은 변경마다 엔진 코드를 건드리지 않고 데이터만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조정하고 테스트한다. 프로그래머는 액션과 이벤트, 조건, 런타임 시스템처럼 재사용 가능한 엔진 기능을 갖추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XML을 고른 것은 스크립트 언어와 비주얼 에디터 사이에서 현실적인 중간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데이터라면 파이썬이나 루아보다 비프로그래머가 읽고 배우기 쉽고, 모든 콘텐츠 영역에 같은 문법을 쓰니 일관성도 지켜진다.

 

블루프린트 같은 비주얼 에디터와 비교하면 구축과 유지보수 비용도 낮다. 콘텐츠 유형마다 커스텀 에디터 UI를 만들 필요가 없어 UX 문제도 생기지 않고, 검색과 일괄 편집, 정규식, 실행 취소 같은 IDE 기능을 그대로 쓴다.

 

강연 직후 이어진 질의응답 세션에서 현장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텍스트라서 버전 관리와도 잘 맞는다. 변경 사항 비교를 검토하기 쉽고 병합도 수월해 여러 명이 같은 시점에 콘텐츠를 편집한다. 두 실장은 최근 들어 AI 보조 코딩 도구와 잘 맞는다는 이점도 하나 더 생겼다고 덧붙였다.

 

정적 게임 데이터도 결국 XML로 옮겼다. 처음에는 익숙하고 업계 표준으로 통하던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썼지만, 컬럼이 늘면서 데이터 사이 관계를 따라가기 어려워졌고 읽고 검토하고 안전하게 고치기가 모두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병합도 문제였다. 한 사람이 끝낼 때까지 다른 사람이 기다려야 했다. XML StaticInfo로 바꾼 뒤에는 공통 속성은 매크로로 묶어 캐릭터 데이터를 한 화면에서 확인하고, 전담 담당자 없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넣는다.

 

두 실장은 이러한 변화를 '역할 수렴'이라고 정의했다. 스크립트와 데이터가 팀 전체의 공용어가 되면서,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아티스트가 동일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구현 방식을 이해한 채 협업하는 구조가 완성됐다.

 

그 결과 아티스트는 리소스 적용을 요청하고 대기할 필요가 없어졌고, 디자이너는 프록시 메시로 퍼즐을 직접 프로토타이핑하는 수준까지 작업 영역을 넓혔다. 보스전 하나를 디자이너 한 명이 스테이지 로직부터 전투 액션, AI 패턴까지 전담해 개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현지취재: 한국게임기자클럽 공동취재단 

 

 

가장 많이 본 뉴스

취재기사 기획/특집 게임정보

화제의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