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로보캅'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크린샷들은 보도를 위해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가 배포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현재의 시각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 크리스토퍼 놀란,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UCE의 Behind The Scenes - The Fire Rises: The Creation and Impact of The Dark Knight Trilogy 中
'로보캅'이 돌아왔다. 1987년 원작을 27년 만인 2014년에 되살린 것이다.
그 동안 폴 버호벤이 감독했던 1987년 원작은 육신과 기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성의 탐구와 자본주의에 의해 극단화된 세계를 예견한 걸작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렇다면 27년 만에 돌아온 로보캅은 어떨까? 리메이크된 로보캅(2014)은 걸작으로 남은 원작에 도전하는 무모함 대신 큰 줄거리는 따라가되 두 가지 포인트에서 관점을 달리해 원작을 오마주한다.
첫 번째 포인트는 원작의 많은 부분을 현재의 시각으로 업데이트한 것이다. 1987년 작인 원작의 경우 영화 시작과 함께 남아공의 핵 위협, 우주정거장의 전력 문제 등 곧 도래할 세기말에 대한 불안을 예견하는 뉴스로 시작했다. 하지만 2014년에 등장한 로보캅은 이미 지나버린 세기말에 대한 불안은 걷어버리고 지금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것과 같은 테러와의 전쟁을 보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계의 경찰로 임무를 다한다는 명분으로 점령지를 순찰하는 로봇 병사들, 이 뉴스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여론몰이하는 극우 언론, 그리고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법안 폐기에 사활을 거는 기업, 그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로보캅이 제조된 장소가 세계의 공장 중국이라는 사소한 점까지 이번 로보캅은 설정상 미래이지만 오늘의 세계를 재현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런 노선을 선택한 이유는 관객인 우리가 이미 원작이 우려했던대로 민간 기업이 전쟁과 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옴니코프가 아니더라도 이 세계엔 이미 1990년대 이라크 전쟁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했으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아수라장에서 뉴올리언스의 치안을 담당했던 민간기업 블랙워터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로보캅은 미래를 내다본 원작의 날카로운 예지에 존경을 바치며, 그 예지가 현실이 된 오늘날로 시선을 확장했다. 이로써 리메이크작임과 동시에 원작의 후일담으로서의 성격도 갖게 되었다.
영화 내적인 요소뿐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최근 블록버스터의 흐름을 수용하고 있다. 원작에서 기술의 한계로 움직임에 큰 제한을 주었던 로보캅 수트는 현재의 기술과 CG로 더욱 날렵해졌다. 촬영 당시 로보캅 수트가 너무 커서 경찰차에 탄 장면을 찍을 때는 하반신을 벗고 타야만 했다는 일화를 가진 원작에 비해, 이번 로보캅은 뒷태를 뽐내며 전용 오토바이로 질주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로보캅 고유의 묵직한 개성을 잃어버려 로보캅보다 아이언맨 같다는 쓴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로보캅 원작에서 강도가 들어오는 잡화상에 아이언맨 코믹북이 소품 중 하나로 등장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둘 사이의 유사성을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너무 비난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번 로보캅은 신·구 수트의 활용을 통해 원작에 대한 충분한 오마주를 바쳤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번 로보캅에서 OCP 회장인 셀라스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이 갓 만들어진 로보캅을 보고 하는 대사인 “블랙으로 해”는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브루스 웨인이 텀블러를 처음 보고 한 대사인 “블랙으로 하죠?”와 묘하게 겹친다.
알려진 대로 마이클 키튼은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브루스 웨인/배트맨을 연기한 바 있다. 이번 로보캅에서 로보캅 설계자인 데넷 노튼 박사 역은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 짐 고든 역을 맡은 바 있는 게리 올드만. 배트맨을 매개로 원작 로보캅과 리메이크 로보캅은 서로가 발 담그고 있는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흥을 제공한다.
리메이크 로보캅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서사의 시점을 좀 더 다각화했다는 점이다. 원작이 로보캅에 집중한 일점돌파를 보여주었다면 리메이크작은 로보캅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입장으로 시선을 확장하였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플래그쉽 상품으로 로보캅이 필요했던 옴니코프의 중역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과학자로서의 야심으로 로보캅을 만들어 낸 과학자 데넷 노튼,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인 알렉스가 살아있길 바랐던 클라라, 동상이몽이지만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알렉스를 로보캅을 만들어낸 일종의 공범들이라고 할 수 있다. 리메이크는 원작이었다면 로보캅 혼자 가져갔을 고민과 서사를 이들에게 나눠서 펼쳐내고 있다.
특히 로보캅의 인간성에 대한 부분이 그런데, 원작과 달리 이번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미국 국내 치안에 순수 로봇 사용을 금지하는 드레퓌스 법안 폐기를 위해 회사 차원에서 로보캅에게 일부러 인성을 남겨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이 인성을 다시 억누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로보캅의 창조자 데넷 노튼은 로보캅으로 다시 살아난 알렉스보다 오히려 더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다만 이런 시점의 다변화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면도 있었지만 원작에 비해 집중력과 캐릭터 일관성의 저하를 가져온 측면도 있다. 그 영향인지 후반부에서는 이야기를 제대로 봉합되지 못하고 스토리텔링의 힘이 떨어져 아쉬움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리메이크가 원작보다 낫다거나 그에 버금가는 걸작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로보캅의 원작과 리메이크는 같지만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포를 불러올 정도의 과도한 폭력 묘사로 X등급(등급 외 영화)으로 지정될 뻔 했다가 12번이나 편집한 끝에 겨우 R등급(미성년자 관람불가)을 받은 원작과 가족 영화에 해당하는 NR 등급을 받은 리메이크가 지향하는 바가 같을 수가 없지 않겠나.
다만 이번 로보캅은 앞서 리메이크된 폴 버호벤의 또 다른 걸작 '토탈리콜'의 리메이크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로보캅이라는 명성의 무게에서는 조금 부족할지 모르지만 또다른 재미와 평가할 만한 부분이 분명 있는 영화였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로보캅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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