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깔=꿀색', 상처로 가득한 유년시절을 껴안고 삶을 회복하다

벨기에로 입양된 감독의 아픈 자전적 이야기

등록일 2014년05월27일 10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피부색깔=꿀색'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크린샷들은 보도를 위해 미루픽처스가 배포한 것입니다.

헐리웃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땡땡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의 고향 벨기에. 그 벨기에의 한 만화가가 안시(Annecy International Animation Film Festival 2012, France), 자그레브(Zagreb Animafest Festival 2013, Croatia), 아니마문디(Anima Mundi International Animation Festival 2013, Brazil) 등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 등을 휩쓸었다.

그의 이름은 융 헤넨(Jung Henin).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전정식으로 어린 시절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입양아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인 '피부색깔=꿀색'을 그래픽노블에 이어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30여 년만에 '고향'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아 수출 대국'이라는 오명처럼 한국전쟁 이후 살기 어려웠던 시절, 한국의 고아들은 그 동안 세계 곳곳으로 입양 보내졌다. 사회가 발전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됐지만 여전히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와 자신의 근원을 잃은 아이들, 이 같은 소재는 그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극영화부터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졌다.

피부색깔=꿀색 역시 입양아인 감독 자신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1965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정식은 한국을 떠나 1971년 벨기에의 백인 부부 가정으로 입양된다. 입양기록지에는 그의 특징으로 '피부색깔=꿀색'이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어권인 벨기에에 사는 부부는 입양기록지에서 아이의 이름 첫글자 Jung을 보고 그들 발음대로 융으로 읽는다. 그는 전정식에서 융 헤넨이 되었다.

이제 중년의 만화가가 된 융 헤넨은 그 과정들을 실사와 이미지가 혼재된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다. 한국 전쟁과 홀트아동복지회의 입양 활동의 공적인 기록 영상, 융의 아버지가 융의 입양일로부터 그의 어린 시절을 찍은 사적인 기록 영상, 중년이 되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현재의 융을 담은 영화의 영상까지. 애니메이션은 그 객관적인 기록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그가 직접 겪고 느낀 주관의 기억과 감정들을 불러온다. 


그렇다고 감독이 이 애니메이션을 섣불리 따뜻하고 감동적인 동화로만 그려내진 않는다. 그가 그려낸 자신의 어린 시절은 참 가감없다. 아니, 가차없다. 소재의 특성상 개인적인 내용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부분까지 모두 열어두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을 향한 미묘한 감정선, 자신을 버린 한국이 미워 철저히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소년 시절, 자신의 상처를 주체 못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며 정작 자신은 그림으로 도피했던 일은 물론, 가족이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까지 회피하지 않고 드러낸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양부모에게 채찍으로 체벌을 당했던 일, 특히 양어머니에게 '썩은 사과 같은 놈'이란 욕과 함께 들었던 '(내가 낳은) 다른 아이들까지 썩게 만들지 말라'는 폭언까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럽의 좋은(?) 양부모의 환상을 조각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치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드러냄으로써 그는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화해하고 진정으로 그들과 가족이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벨기에인 융이자 한국인 전정식임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고백을 통해 양부모 역시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가진 연약한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받아들임(self-acceptance)'과 '용서(forgiveness)'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삶의 궤적을 3D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는데, 결이 굵은 종이 위에 인쇄된 그래픽노블을 보는 듯한 화면의 질감은 기억 속의 모나기만 한 어린 시절과 가족의 모습을 좀 더 가깝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원작자이자 감독인 융은 피부색깔=꿀색으로 사람들이 입양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보다 입양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임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물론 아픔은 남아있지만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사실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비극적인 일은 아니며, 충분히 자가복구가 가능하고, 자가복구가 가능하다면 타인과 공유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삶이 누군가에 의해 침해당했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재건할 것인가? 상처받은 삶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질문과 감독이 들려주는 자신만의 답, 이것이 비단 입양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피부색깔=꿀색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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