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서 이어집니다
'셰어드 월드', 도전은 하지만 성공은 힘들어. 호빗과 어벤져스는 꼭 봐야 하는 영화
게임포커스: 근래 쓰고 계신 그랑크레스트 전기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복수의 작가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셰어드 월드'는 미디어믹스가 발달한 일본이라 가능한 시도인 것 같습니다. 셰어드 월드의 전망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미즈노 료: 셰어드 월드는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노력하고는 있지만, 역시 쓰기 어려워요. 셰어드 월드를 시도해 대성공을 거둔 작품은 없었습니다.
셰어드 월드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독자들의 관심이 캐릭터에 집중되는 데에 있습니다. 캐릭터에 우선 초점이 맞춰지니 같은 세계라 해도 다른 캐릭터가 활약하면 전혀 다른 작품으로 인식됩니다. 각각의 작품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든다면 셰어드 월드로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셰어드 월드로 성공한 게 아니라 개별 작품이 성공한 것으로 봐야겠죠.
그런 면에서 마블, DC 등의 아메코미(아메리칸 코믹스의 준말로 일본에서 북미 그래픽노블을 가리키는 말)는 하나의 캐릭터를 다양한 작가가 그려내는 '셰어드 캐릭터' 작품들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저도 셰어드 캐릭터를 생각한 적이 있지만 역시 일본에서는 셰어드 캐릭터가 성공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마블이나 DC를 보면 새로운 슈퍼히로가 나오면 세계관은 같다는 설정이지만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세계관이 같으니 셰어드 월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 세계이니 의미가 없는 편이고 다른 작품이라 보는 게 맞겠죠.
'어벤져스'처럼 히어로들이 모이는 작품이 나오는 걸 보면 셰어드 월드라는 느낌도 받지만 어벤져스도 어디까지나 히어로들이 단체로 나오는 개별 작품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일본에서는 역시 '아이언맨'의 인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아주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게임포커스: 미즈노 선생님은 영화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즐겨 보시는 걸로 아는데, 팬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미즈노 료: 오래된 작품이지만 에반게리온은 재미있었어요.
근래 작품 중에는 대개 유명한 작품이 인기를 얻을만 했다는 느낌이었죠. '바케모노가타리'(괴물이야기)나 '마마마'(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같은 작품들은 그런 평판이 나올만 하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많은 작품을 보는 편은 아닙니다.
영화 중에서는 역시 어벤저스가 좋았어요. 저는 영화는 굉장히 많이 보는 편입니다. B급 영화도 많이 보죠. 아, 호빗은 꼭 보셔야 합니다. 스마우그와의 전투신은 정말 최고이고 드워프들의 활약이 굉장합니다. 추천작이에요.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영상물에서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게임포커스: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드래곤랜스'를 칭찬하신 적이 있죠.
미즈노 료: 네. 사실 드래곤랜스 이후에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했어요. 드래곤랜스는 좋은 작품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드래곤랜스가 원래 두 사람의 작가가 공동 집필하던 작품인데 중간에 여성작가가 혼자 쓰게 되면서 탐미성이 강한 작품이 되어서 제 취향과는 조금 멀어졌어요.
게임포커스: 드래곤랜스는 정말 멋진 작품이죠. 선생님이 드래곤랜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미즈노 료: 캬라몬(전사)입니다. 멋진 캐릭터죠.
게임포커스: 조금 의외네요. 저는 레이스트린이나 로라나가 좋았습니다.
미즈노 료: 레이스트린도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 지나치게 다크사이드로 가버렸어요.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성향이 매력적이었는데 이블 성향으로 너무 가버렸죠.
스템이 죽음을 맞이하는 대목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고, 태니스의 약함도 매력적입니다. 로라나도 물론 사랑스럽죠.
게임포커스: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영화에 나오는 엘프를 보고 로도스도 전기의 엘프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팬도 있더군요.
미즈노 료: 톨킨님에게 혼날 소리네요.(웃음) 애니메이션의 디드리트의 이미지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걸 떠나 저를 포함한 모든 판타지 작가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D&D는 물론이고. 반지의 제왕 후에 반지의 제왕 없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랑크레스트 전기는 기대해도 돼, 하이판타지 팬이라면 만족할 것
게임포커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는 원작을 가필, 수정한 로도스도 전기 신장판이 나왔더군요.
미즈노 료: 네. 로도스도 전기 25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와서 보면 서툰 부분이 보여서 조금 고치고 가필한 버전입니다. 전반적으로 손댄 건 아니고, 이 부분은 좀 확실하게 묘사를 하자는 부분만 가필을 했습니다. 아마 그냥 봐서는 어디가 바뀌었는지 알기 힘들 겁니다만 구판과 비교하며 보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게임포커스: 좋은 작품이긴 했지만 로도스도 전기 OVA는 원작과는 내용이 좀 다른 면이 많습니다. 원작을 충실히 살린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미즈노 료: 원작자란 애니메이션이 원작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그런 생각은 늘 하죠.
하지만 어른이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죠. 자금 문제도 있고 애니메이션 작화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게임포커스: 한국 판타지 작품 중에 아는 작품이 있으신지요?
미즈노 료: 부끄럽지만 잘 모릅니다. 공부가 부족해서지요. 한국 판타지 시장에 대해서는 최근에야 들을 수 있었고, 공부가 되었습니다. 사실 프로가 된 뒤에는 일본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던 상황이라 해외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을 많이 둘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쪽에서는 한국에 MMORPG가 발달했고, 일본에도 한국의 MMORPG가 여럿 들어와 있다는 걸 압니다. '아키에이지' 같은 작품은 해 보고 퀄리티가 상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곧 나올 로도스도 전기 온라인도 한국의 실력파 개발사 엘엔케이에서 개발하고 있죠. 기대하고 있습니다.
게임포커스: 미즈노 선생님을 만나러 오기 전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니,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문학 작가'로 소개되어 있더군요. 위키피디아에서는 라이트노벨 작가로 분류하고 있고요.
미즈노 료: 하하. 로도스도 전기가 나올 당시에는 라이트노벨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로도스도 전기와 같은 것들이 당시의 라이트노벨 스타일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라이트노벨은 그 후 독자적으로 발전해 저의 스타일과는 차이가 생긴 것이죠. 저같은 경우 라이트노벨이라는 최첨단의 스타일에 맞춰서 글을 쓰지는 않지만 의식하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자면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부분처럼 말이죠. 라이트노벨의 캐릭터는 보통의 소설, 보통의 인간 세계의 캐릭터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성격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인간들이 나오는 것이라, 라이트노벨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리얼리티를 낮춰서 쓰는 면이 있습니다.
신작 그랑크레스트 전기에서도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쓰고 있습니다.
코미컬한 요소도 작품에 넣으려고 하긴 하는데 제가 쓰는 내용이 전쟁이나 역사이다 보니 인간의 권력욕과 같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나오는 다툼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 걸 묘사하며 개그를 넣으면 위화감이 크다 보니, 라이트하지 않은 부분도 많죠. 아, 물론 라이트노벨이 모두 코미컬한 건 아닙니다. 라이트노벨의 최대 장점은 다양성이 있다는 것일 겁니다.
게임포커스: 본인이 라이트노벨 작가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즈노 료: 제가 라이트노벨 작가라 불리는 데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라이트노벨 작가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답하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불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웃음)
라이트노벨은 딱 정해진 정의가 있는 게 아니라 라이트노벨 레이블에서 책을 출판하면 라이트노벨 작가인 것이죠. 처음 시작부터 가치관이 다른 작가들을 모아 시작했지만 같은 레이블에서 책이 나오면 다 같은 라이트노벨 작가이고, 예전엔 SF도 많았고 재미있었죠. 예전에도 '그건 SF가 아니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있었고, 늘 그런 것 같습니다.
게임포커스: 신작 그랑크레스트 전기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한국에도 최근 1권이 정식 발매됐습니다.
미즈노 료: 그랑크레스트 전기는 자신작이니 한국 판타지 팬들이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전부터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그랑크레스트 전기는 심플한 이세계를 설정해 군주들의 경쟁을 그린 역사물입니다.
왕좌의 게임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크로니클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포커스: 그랑크레스트 전기도 라이트노벨로 출간되는 것 같더군요. 한국에도 일본의 라이트노벨이 많이 소개되는데 판타지 작품은 많지만 역시 하이판타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즈노 료: 하이판타지는 사실 일본에서도 가끔 한두 작품 나오는 정도입니다. 저도 좋아하긴 하지만 하이판타지로 나와 잘 팔리는 작품은 별로 없는 편이죠. 일본이라면 그냥 하야카와 등에서 내는 판타지나 SF를 읽으면 되는 거였는데 요즘은 아무래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본에서 판타지는 SF와 같은 부류로 취급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SF의 서브 장르로 일본 판타지가 생겨났기 때문일 겁니다. SF와 판타지는 둘 다 공상소설이라는 점에선 비슷한 면이 있지만 사이언스와 역사, 환상, 신화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는 역시 다른 거라고 봐야겠죠. 팬층을 봐도 판타지 좋아하는 사람은 판타지, SF를 좋아하는 사람은 SF만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하드 SF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게임포커스: 긴 시간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미즈노 료: 한국의 판타지 마니아, 로도스도 전기 팬들과 만날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랑크레스트 전기는 자신작이니 꼭 읽어 보세요.(웃음)
* 인터뷰를 마치고 미즈노 료 작가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허락하며 이렇게 말했다.
"SNS에 올리려는 거죠? 자유롭게 올려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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