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 한국 시간 새벽 6시, 미국 워싱턴에서 치러진 '포켓몬 월드 챔피언쉽(WCS)' 결승전은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이 가진 가능성을 다시 각인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아마도 애니메이션 혹은 2D 도트 그래픽으로 묘사된 피카츄가 가장 최근 기억이었을 사람들에게, 3D 카툰렌더링 그래픽의 포켓몬이 화려한 기술을 뽐내는 경기 모습은 그 어떤 홍보 영상보다도 효과적인 홍보를 해주었을 터다. 박세준 선수의 '파치리스'를 활용한 놀라운 경기력과 우승 소식은 포켓몬스터란 게임이 가진 이런저런 편견들에 꽤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사실 포켓몬스터는 1996년 2월 첫 발매 이후로 매 신작마다 나름의 발전과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왔다. 단지 포켓몬스터 게임이 인기를 세계로 확장해가던 시기가 한국의 경우엔 온라인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와 겹쳐버렸을 뿐이다. 때문에, 일부 마니아 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어린이용 게임'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대충 불법 에뮬레이터로만 잠깐 돌려보고 접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당시의 게임 플랫폼이 가진 특징을 최대한 활용해내는 포켓몬 시리즈의 특성상 그 변화의 노력이 국내 주류 게이머들에게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전 세계 동시 발매 이루어진 최초의 포켓몬 시리즈
2002년 대원게임을 통해 발매된 포켓몬스터 금·은 버전을 시작으로 2006년 닌텐도코리아가 정식 출범하면서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에 대한 한국 내 뿌리박기 작업도 점차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칭 5세대로 불리는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 포켓몬스터 블랙2·화이트2 까지는 언제나 일본보다 반년에서 1년 정도 늦게 발매되었다(이러한 사정은 북미, 유럽 지역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포켓몬스터X·Y(이하 6세대)부터는 달라졌다. 시리즈 최초로 전 세계 동시 발매와 멀티 언어 지원을 발표하며 그 대상 언어 6개 중에 한글도 포함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물론 이는 한국 내에서 정말 폭발적이었던 NDS 보급과 포켓몬 시리즈의 꾸준한 판매량 등등 그동안 뿌린 씨앗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일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기다려온 전 세계의 게이머들에게도 (전세계 동시 발매)소식은 게임 내 모든 포켓몬의 3D 카툰렌더링이 이루어졌다는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 포켓몬스터X·Y 공식 소개 영상
캐나다의 한 게임 소매점이 지정된 발매일을 잘못 알고 10일 빨리 판매해버리는 해프닝이 발생하긴 했었지만, 어쨌든 포켓몬스터의 전 세계 동시 발매는 모두에게 성공적이었다. 전 세계 포켓몬 게이머들은 동일 시기/동일 선상에서 출발하는 즐거움을 얻었고, 닌텐도는 NDS에 머물고 있던 유저들 중 상당수를 3DS로 세대 교체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툰렌더링 그래픽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전투'와 '주인공'
포켓몬스터 6세대의 가장 표면적인 변화는 그래픽에서 찾아왔다. 새롭게 추가된 포켓몬(여기에 아직 공개 안 된 환상의 포켓몬도 더하여) 포함 총 721여 마리의 다양한 포켓몬들이 도트 그래픽이 아닌 풀 3D로 움직인다. 그래픽이 3D로 바뀌면서 기술을 사용할 때의 동작들, 적에게 공격 당할 때의 리액션들 등 포켓몬의 움직임 자체가 기존 세대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근사해졌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포켓몬 전투가 그대로 게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전투 연출이 강화되면서 아무래도 전투가 진행되는 시간은 기존보다 약간 길어졌지만, 이전 세대에 비해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 수준으로 '적당선'은 유지해주었다.
▲ 5세대 전투(上)와 6세대 전투(下) 영상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출처: 포켓몬코리아)
그러나 6세대에서 추가된 새로운 전투 방식인 '스카이 배틀'과 '무리 배틀'은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스카이 배틀'의 경우 비행타입 포켓몬 1마리씩만을 가지고 펼치는 대결이라 상성을 찌를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어서 전투를 피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경우가 더 많았고, '무리 배틀'은 내가 1번 행동하는 동안 적이 5번 행동하는걸 구경하는 지루함뿐만 아니라 다수의 포켓몬이 등장하면서 발생하는 프레임 드랍 현상이나 출현하는 5마리의 적이 지닌 스킬의 밸런스 조절 실패 현상(5마리의 모다피가 매 턴마다 경쟁적으로 수면가루를 뿌린다든지)이 종종 발견되었다. 만약 이 부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적들이 무리로 출현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 오메가루비, 알파사파이어에서도 플레이어들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주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6세대에는 풀 3D 카툰렌더링 그래픽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포켓몬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포켓 파를레'란 시스템이 생겼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닌텐독스' 축소판에 포켓몬의 옷을 입힌 느낌인데,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6마리의 포켓몬을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거나, 함께 미니게임을 하여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콘텐츠다.
포켓 파를레 속 포켓몬들은 각자의 설정에 맞게 피카츄의 볼(전기주머니)을 만진 플레이어를 감전시킨다거나, 정말 좋아하는 부위를 터치팬으로 쓰다듬어주면 >▽<) 같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싫어하는 부위를 만지면 화도 낸다. 포켓몬 각각마다 쓰다듬어주는 부위마다 표현하는 리액션이 다르다는 점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심지어 포켓 파를레로 호감도가 일정수준 이상 올라간 포켓몬들은 전투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화면 너머의 플레이어를 쳐다보거나 치명적인 공격을 맞더라도 HP가 1남은 상태로 버티는 기특한 모습을 보인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지우와 피카츄가 교감을 나누듯이 나도 게임 속에서 내가 키운 포켓몬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모습이 연출될 때마다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픽의 수혜가 포켓몬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캐릭터가 겪은 변화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전 세계 동시 발매에 대응하여 시리즈 최초로 캐릭터의 '피부색'을 게임 시작 시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숲'이나 'Girls Style' 시리즈 등에서 볼 법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요소도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남자 캐릭터보다 여자 캐릭터의 의상이 두 배 가량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남자 캐릭터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긴 했지만 말이다. 하루에 한 번씩 물품이 랜덤으로 경신되는 매장에 들러 '신상'이 들어왔나 둘러보고 이곳 저곳 꾸며보는 재미는 확실히 캐릭터 그래픽까지 풀3D가 되었기에 가능해진 일일 것이다.
6세대 포켓몬 육성 키워드, 페어리 타입 / 메가진화 / 슈퍼트레이닝
그래픽이 표면적인 변화를 대표한다면, 새로운 타입과 메가진화라는 새로운 진화 방식의 추가는 6세대 포켓몬스터의 내적인 변화를 대표한다 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타입 = 새로운 상성 = 전략의 변화'로 이어지는 포켓몬스터의 특성상, 새로운 타입이 가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포켓몬스터 식의 대규모 전투 밸런스 조절 패치인 셈이다. 악타입과 강철타입 이후 무려 14년 만에 발표된 새로운 타입이기에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포켓몬스터 한글판을 접한 국내 유저들에게는 꽤 생소한 이슈였을 것이다.
페어리 타입의 추가는 기존 포켓몬의 일부를 새로운 타입으로 변경하면서 몇몇 신규 포켓몬들에 이 속성을 주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페어리 타입 전담 체육관 관장과 챔피언의 대표 포켓몬으로 등장시켜 새롭게 추가된 타입에 대한 자연스러운 학습 구도를 마련해주었다. 아무래도 노말 타입 중에 페어리 타입을 지니게 된 경우가 꽤 있기에, 미리 페어리 타입의 상성을 읽어두지 않고서 기존의 기억대로 격투 타입을 내세웠다면 꽤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페어리 타입은 격투 공격 방어 시 대미지 반감, 노말 타입은 격투 공격이 약점).
페어리 타입이 추가되면서 실제 플레이어들끼리의 멀티 대전에서도 포켓몬의 기술 배치나 라인업이 꽤 영향을 받았다. 지금까지 약점이 없었던 고스트/악 포켓몬(깜까미, 화강돌)의 훌륭한 카운터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드래곤 타입의 공격에 아예 데미지를 입지 않는 특징 때문에 페어리 타입을 견제하기 위한 독, 강철 타입 포켓몬의 비중이 강화되었다. 개발사인 게임프리크가 공식적으로 '드래곤 타입 위주의 대전 타파'를 천명하면서 추가된 특성인 만큼,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타입의 추가보다 더 충격적인 콘텐츠가 또 있다. '진화를 넘어선 진화'라는 콘셉트의 '메가진화'는 포켓몬스터 역사상 유례 없는 진화 방식을 창조해냈다. 영구적인 진화라기 보다는 드래곤볼 속 손오공의 초사이어인 변신에 가깝달까. 해당 포켓몬의 종족 능력치(스테이터스)와 고유 특성, 심지어 타입까지(전룡:전기 → 메가전룡:전기/드래곤)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 간 포켓몬 대전을 진행할 때 서로의 수 읽기에 한 단계 깊이가 더해지게 된 것이다.
게임 출시 초기에는 '메가진화는 곧 밸런스 붕괴'를 떠올리는 이들도 꽤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메가진화가 가진 제한사항(한 배틀에 하나의 포켓몬만 메가진화 가능. 해당 포켓몬이 '지닌 아이템'으로 자신에게 맞는 메가스톤을 반드시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는 패널티)의 경우 포켓몬 대전에서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재 해당 논란은 많이 잠잠해진 상태다.
기존 세대를 쭉 플레이 해온 전통적인 포켓몬스터 팬들이 6세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슈퍼 트레이닝'을 통한 포켓몬 기초 포인트(노력치) 분배 방식의 혁신이다.
포켓몬은 전투를 진행하여 경험치를 획득할 때마다 원래 자신이 타고난 능력치 외에 '기초 포인트'라는 보너스 능력치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잘 키운 포켓몬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숨겨진 비밀 능력치였다. 기존에는 이 수치를 눈으로 보여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략집을 펼쳐두고 正자를 그려가며 일일히 세부 수치를 맞춰주는 '노가다'를 했어야 했는데, 슈퍼 트레이닝이 등장하면서 라이트 유저들도 손쉽게 이 능력치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터치패드를 두드려 포켓몬이 샌드백을 두들기게만 하면 '기초 포인트'가 오른다니, 실제 '기초 포인트'를 어렵게 고생해가며 분배해본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이 변화에 크게 공감할 테다. 자연스럽게 플레이어 대전에 활용할 만한 '실전 포켓몬'을 향한 문턱이 낮아지고, 네트워크 대전이 더욱 활발해지는 결과를 낳았으니 결과적으로 좋은 선순환을 낳았다고 여겨지는 멋진 기능이다(다음 세대에도 넣어줄 지가 벌써부터 걱정되지만).
애매모호한 스토리, 어려운 이야기를 지나치게 단순화
6세대는 분명 기존 세대의 포켓몬에서 더욱 진화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세대보다 '부족한' 부분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부분은 '스토리의 완성도'에 대한 것이다.
이번 포켓몬스터 6세대에 등장하는 악의 세력인 '플레어단'은 '선택받은 자(플레어단)들만의 생존'이라는 모토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게임 내에서 매끄럽게 선악 구도를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불꽃 튀는 라이벌 관계라는 기존의 전통적인 설정을 버리고 정말 이상적인 '친구 사이'를 묘사한 시작 마을에서의 에피소드는 참신했지만, 악당들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부분은 '뭐 이런 억지가 다 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대 형성을 위한 사건이 부족했다. 이는 스토리의 완성도 면에서 시리즈 최고라고 칭송받는 포켓몬스터 5세대(블랙/화이트, 블랙2/화이트2)와 대비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말았다. 그나마 챔피언 전당 등록 후의 피날레와 핸섬하우스 이벤트가 없었다면 아마 두고두고 플레이어들에게 까이는 부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번 포켓몬스터 속 악당의 빗나간 야망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못한 이면에는 닌텐도 게임 특유의 '아이들 눈높이 맞추기'에 대한 강박관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포켓몬스터의 스토리상 진정한 핵심은 부의 집중에 의한 빈부격차와 자본주의적 불평등에 대한 갈등 구조였지만, 애초에 스토리의 뼈대 자체가 아이들에게까지 쉽게 전달되기 힘든 주제였던 것이다.
미르시티에서 판매되는 소위 '명품'들의 무시무시한 가격, 각종 콘텐츠를 즐길 때마다 팁을 요구하는 NPC, 스타일리쉬(미르시티 내에서 얼마나 돈을 자주 썼는가로 매겨짐) 등급에 따라 플레이어가 받게 되는 차별대우 등 은밀하게 게임의 주제를 어필했으나, 너무 게임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보니 스토리에 연관된 포석으로 작용하는데 실패했으며 많은 플레이어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스토리에 대한 부분 외에도 6세대에 대한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꽤 두드러지는 편이다. '학습장치'를 첫 번째 체육관을 깬 직후에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켜두기만 하면 엔트리 내의 모든 포켓몬들에게 경험치를 분배해주는 이슈 덕분에 이번 세대의 전투 밸런스 자체가 지나치게 쉬워진 것(체육관 관장 레벨보다 내 포켓몬 레벨이 10이상 높은 건 기본)이나, 프랑스 파리를 본 따 만들어진 게임 내 대도시 미르시티의 구조가 원형이라 어느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 길을 잃어버리기 쉽고 카메라워크가 불편한 점에 대한 불만 등이 있었다. 시스템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것에 악영향을 줄 만큼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최신 트렌드인 'SNS'를 포켓몬의 방식으로 풀어내다
포켓몬스터 6세대를 처음 켰을 때 3DS의 터치 패널에 항상 기본적으로 떠있는 화면이 있다. 일종의 포켓몬스터 내 자체 메신저와 같은 기능을 가진 플레이어 서치 시스템(줄여서 PSS)가 바로 그 화면의 정체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전 세계 플레이어들 중 이 PSS에 연결된 이들을 무작위로 매칭하여 화면에 뿌려주는 기능 뿐만 아니라, 실제 3DS 기기에서 친구를 맺은 플레이어들의 포켓몬스터 접속 여부와 근처 플레이어 표시기능 등 주로 '포켓몬을 플레이 중인 누군가'를 매칭시켜주는 기능에 특화된 콘텐츠다. 이를 통해 'O파워'라는 일종의 '버프'를 상대 플레이어들에게 나눠주거나, 면식 없는 해외 유저와 대전을 하는 등 소셜 기능에 관련된 부분이 한층 강화되었다. 게임 내에서 GTS(글로벌 트레이드 스테이션)과 동시에 전 세계 동시 출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사실 PSS보다 소셜성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콘텐츠는 메뉴 한 켠에 숨겨진 '미라클 교환'이라는 기능이다. 아무 포켓몬이나 미라클 교환에 내보내면, 해당 시기에 미라클 교환을 시도한 전 세계 유저들 중 누군가의 포켓몬과 교환을 하게 되는 일종의 '무작위 교환'인 셈이다. 소위 '에딧산'이라 불리는 부적합 포켓몬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어 출시 초기보다는 이용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혹시나 모를 행운(전설이나 환상, 혹은 색이 다른 포켓몬)"을 기대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참 흥미로운 기능이다.
미라클 교환이 6세대에 등장한 새로운 교환 방식이라면, NDS로 출시된 포켓몬스터 4세대 시절부터 전 세계의 모든 유저들과 포켓몬을 교환할 수 있는 GTS는 그 기능이 한층 강화되었다. 도감으로 발견하지 못한 포켓몬이라도 한글 이름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어떤 언어라도 상관없이 해당 포켓몬을 정확히 찾아주는 기능부터, 원하는 조건의 포켓몬을 찾기 위한 필터링 부분까지 기능 개선에 신경 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해당 3DS 기기의 국가와 지역 설정에 따라 서로 다른 무늬의 날개로 출현하는 '비비용'이란 포켓몬은 '포켓몬은 해봤으나 GTS는 이용해본 적 없던' 플레이어들까지 자연스럽게 해당 기능을 이용하도록 만드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포켓몬 대전이나 이벤트, 인터넷 웹사이트와의 연동 서비스 부분은 이번 포켓몬스터 부터 새롭게 바뀐 PGL(포켓몬 글로벌 링크)을 이용하도록 바뀌었다. PGL은 주로 게임 내 레이팅 배틀 일정 및 규칙 공지(닌텐도 공식 대회) 등록 및 기본적인 이벤트 공지의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포켓몬 게임 내에서 쌓이는 포인트인 '포켓마일리지'를 내고 즐길 수 있는 미니게임을 통해 게임 내에서는 얻기 힘든 포켓몬용 도구들을 얻는 등 게임 콘텐츠의 일부분도 함께 담당해주고 있다. 아무래도 PGL이라는게 뭔지 아직 잘 모르는 포켓몬 유저들이 아직은 더 많은 게 현실이지만 만약 포켓몬스터X나 Y를 즐기고 있음에도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시라.
※포켓몬 글로벌 링크: http://3ds.pokemon-gl.com/
포켓몬 신작이 나오면 오히려 구작의 판매량이 오른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특이하게도 새로운 세대가 나오면 오히려 예전에 출시되었던 시리즈들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6세대가 출시된 현재 NDS 초기 게임이라 할 수 있는 포켓몬스터 4세대(디아루가/펄기아/기라티나) 팩들은 동네 마트에서 씨가 말랐을 정도다. 그리고 명작으로 꼽히는 2세대의 리메이크작인 하트골드/소울실버는 밀봉된 신품의 가격이 원래 가격을 상회할 정도이며 프리미엄까지 붙기 시작했다.
이런 괴현상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닌텐도는 항상 새로운 포켓몬스터 타이틀을 출시할 때마다 이전 세대와의 연동 요소나 그 시절 타이틀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콘텐츠들을 항상 남겨두는 편이다. 그것은 때로는 그 세대를 대표하는 전설의 포켓몬일 때도 있고, 스토리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특수한 기술을 지닌 포켓몬이거나, 심지어 포켓몬을 넣어두는 몬스터볼일 수도 있다.
따라서 6세대로 포켓몬을 처음 접했다 하더라도, 기존 세대만의 독점 콘텐츠를 알게 되고 나면 그 이전, 더 이전의 타이틀들을 마치 시간여행 하듯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각 세대에 걸쳐서 포켓몬을 옮기려면 무조건 순서를 지켜야 한다! 4세대의 포켓몬을 바로 6세대에 옮겨두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6세대부터는 기존 세대의 포켓몬을 옮기는 방식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게임기 한대로도 바로 이전 세대인 5세대의 포켓몬을 옮길 수 있게 '포켓몬 뱅크(일종의 클라우드형 포켓몬 박스 서비스)'와 '포켓무버'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편리함은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졌으나 기존 세대에서 포켓몬을 옮겨올 경우 '한 박스(최대 30마리)' 단위로만 가능하게 한 부분이나, 포켓몬 뱅크의 구조상 3DS가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여야만 하고, 무료가 아니라 추가로 기간제 정액 이용료를 내야 한다(게임기 한 대 더 사는 것 보다야 훨씬 저렴하지만)는 점 등 불편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포켓몬 뱅크 출시 초기, 전세계 유저들의 서버 동시 접속량 예측에 실패한 닌텐도의 전체 네트워크 서비스가 과부하로 뻗어버리는 웃지 못할 사건도 벌어졌었는데, 그만큼 기존 세대에서 꾸준히 자신의 재산을 쌓아온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한국의 포켓몬 뱅크 이용료는 1년에 5,000원
※2014년 9월 30일까지 포켓몬 뱅크에 접속하면 환상의 포켓몬인 '세레비'를 입수할 수 있다.
기존 세대의 콘텐츠를 즐길 때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닌텐도 Wi-Fi 커넥션 서비스가 종료되어 기존 세대 게임의 네트워크 대전이나 '드림월드(5세대)'와 같이 특수한 핵심 콘텐츠들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포켓몬 뿐 아니라 NDS나 Wii의 게임타이틀 중 해당 기능을 이용하던 게임들 모두에 통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닌텐도 Wi-Fi 커넥션 서비스의 맹점을 활용해 포켓몬 에디팅과 같이 '부적절한' 부분들을 한꺼번에 막으면서 NDS에서 3DS로의 세대교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 손해는 순전히 '그 시절에 그 게임을 해보지 못한' 플레이어의 몫이 되어버렸다.
메가진화의 수수께끼는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에서 이어진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포켓몬스터 6세대는 3DS라는 닌텐도의 새로운 휴대기기 플랫폼에 완벽히 적응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전통적인 팬층과 신규 유저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그래픽 스타일을 잘 조율해냈고, 페어리 타입과 메가진화로 전투에 새로운 전략의 바람을 불어넣었으며, 게임의 난이도를 희생하여 진입장벽을 과감하게 낮추는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6세대가 출시된 지 약 반년 뒤, 게임프리크는 3세대 게임 타이틀인 포켓몬스터 루비·사파이어의 리메이크를 발표했다. 포켓몬스터 3세대는 1세대를 제외하고 국내에 한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포켓몬스터 시리즈인 만큼, 한국 내 포켓몬스터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각별하다. 게임프리크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아보면 3세대의 리메이크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선이긴 했으나, 전 세계 동시 출시라는 움직임을 계속 지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다.
▲ 한글로 즐길 수 있는 포켓몬스터 3세대가 2014년 11월 21일 출시
새로운 포켓몬스터 신작의 출시 시기(11월 21일)를 생각하면 6세대 포켓몬스터를 지금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즐길 수 있는 시기는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의 시리즈별로 서로 다른 맛의 재미 요소를 항상 살려냈던 게임프리크를 향한 믿음이 있기에, 포켓몬스터X·Y 역시 '옛날 포켓몬스터'가 되는 날은 오더라도 잊혀지진 않을 것이다. 이전 세대의 포켓몬스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추억 속 단골 맛집 같이 항상 그곳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플레이어들을 맞이해주길 바란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엘타냥. 전직 게임 기자. 현재 모 게임개발사에 기획자로 재직중인 인기 게임블로거(http://blog.naver.com/tepery79). 좋아하는 게임이라면 안 따지고 구입하는 열혈 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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