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람의 오타쿠가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 야마가 히로유키 대표

등록일 2015년11월11일 09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야마가 히로유키(山賀 博之, やまが ひろゆき).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王立宇宙軍 オネアミスの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천원돌파 그렌라간'(天元突破グレンラガン)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ガイナックス) 창립멤버로 현 대표를 맡고 있는 크리에이터다.

 

24세의 나이로 대작 극장용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이하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감독을 맡아 각본을 직접 썼고, 그 후에도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각본, '마호로매틱' 감독 등을 맡았다. 각본, 기획, 연출로 활약해 오던 야마가 대표는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을 건 작품이 될 '푸른 우르'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와 같은 세계관에서 몇십 년 뒤의 이야기를 그릴 푸른 우르는 콤플렉스와 자기혐오에 빠져있던 20대 시절 만든 오네아미스로부터 30여년이 흘러 50대가 된 야마가 대표가 자신의 인생과 현재를 담을 인생의 자화상이 될 것이다.

 


 

푸른 우르 파일럿 필름을 제작중인 야마가 대표를 만났다. 기자 역시 한국의 오타쿠 중 한사람으로서 20대에 세계를 대표하는 오타쿠로 명성을 떨친 야마가 대표가 5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오타쿠인지, 나이를 먹고 기업가가 되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직접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는 여전히 오타쿠였다. 치열한 오타쿠였다. 기자는 그와의 대화에서 묘한 패배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40년을 오타쿠로 살아온 관록 앞에 무릎꿇었고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오타쿠일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와 대화한 내용을 최대한 원래 대화내용 그대로 옮겨본다. 야마가 대표와의 대화 현장에는 역시 대단한 덕력을 자랑하는 서울대학교 애니메이션 동아리 '노이타미나' 4대 회장 진요한씨가 동석했음을 밝혀 둔다.

 

젊은 시절,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에 담은 것과 지금 푸른 우르에 담을 것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흔히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미래를 그렸다고 해석된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에 야마가 대표가 바라본 당시 세계에 대한 해석이 담겨있었다면 푸른 우르에는 현재의 야마가 대표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담기게 될 것 같다
야마가 히로유키: 내가 30년 전 바라본 세계가 오네아미스의 날개이고 지금 세계가 푸른 우르인 건 맞다. 하지만 오네아미스의 날개가 희망과 미래를 그렸다는 건 완전히 틀린 해석이다.

 

미래에 대해 밝게 그렸다, 희망을 담았다? 그런 건 전혀 그리지 않았다. 당시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다 만들고 니이가타의 고향(*)으로 돌아가 지인들과 식사를 했는데 한 분이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보고 '거기에는 행복이 그려져 있지 않네?'라고 하기에 '제대로 봤구만'이라고 생각했던 게 생각난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에서 주인공과 우주군은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우주로 가려 하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주로 갔을 뿐이다. 그게 그들에게 주어진 일이니까 했을 뿐 거기에는 아무런 희망이 담겨있지 않다. 우주로 가도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알지만 우리는 의미가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꿈 같은 건 전혀 그려져 있지 않은 작품이 오네아미스의 날개다.

애초에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보고 무슨 꿈을 봤을까 신기해진다. 거기서 나와 당시 가이낙스 멤버들이 그려낸 건 현재다. 철저히 당시의 현재만 담았다. 미래는 전혀 모르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이었으니까.

 

그저 젊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냈지만 미래를 향한 에네르기를 느낀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긴 한데, 내가 의식한 세계와는 정반대의 해석이다. 젊으니까 그저 에네르기가 있을 뿐이고 앞으로 살아갈 거라는 것이다. 그 때로부터 30년 후인 지금의 이야기와 지금부터 30년 후에 그려낼 이야기도 전혀 다를 것이다. 물론 지금부터 30년 뒤에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테니 뭔가를 그려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오네아미스의 날개 당시에서 30년 뒤가 지금이다. 푸른 우르에서 그려낼 이야기가 다른 느낌을 준다면 그 30년의 차이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 야마가 히로유키는 니이가타현 니이가타시 출신.

 


 

처음 기획이 발표된 시점에서 긴 시간이 걸렸다. 푸른 우르의 이야기는 완성되었나
야마가 히로유키: 그렇다. 푸른 우르는 오네아미스의 날개가 만들어진 1987년에 이미 기획이 머리 속에 있었으니 28년 전의 기획인 셈이다. 그걸 실현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나리오 작업은 현재 진행중이다.

 

정말이지... 28년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니.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30년이나 걸리다니 처음엔 생각도 못했다. 첫 작품은 22세에 시작해서 2년만에 만들었는데 다음 작품인 푸른 우르는 5년 정도는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30년 걸릴 줄은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는 굉장히 신비한 운명적 느낌도 받는다. SF에서 말하는 우라시마 효과(**)를 겪는 느낌이다. 왜 나만 나이를 먹어버렸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거다.

 

전체적인 세계의 움직임은 느린데 나만 빠르게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는 더 빠르게 노화가 진행된다. 사람들의 세상에서 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인간의 인생은 왜 이렇게 짧은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선보인 지 30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84살이다. 84살이 되어도 움직일 수 있으면 계속 작품을 만들 생각이지만 30년은 정말 길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다.

 

** 우라시마 효과란 일반상대성이론과 관련된 일본의 SF용어. '인터스텔라'에 나오듯 지구와 다른 행성 등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 생기는 현상을 가리킨다.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만들 때의 야마가 히로유키와 지금의 야마가 히로유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생겼나
야마가 히로유키: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만들던 젊은 시절에는 콤플렉스도 강하고 '나'라는 존재가 세계와 어떻게 접촉하면 되는지를 알 수 없었다. 24세의 나에게 푸른 우르라는 기획이 구상은 되었지만 구체적 작품으로 완성시키기에는 너무 젋었던 것 같다.

 

푸른 우르를 만들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을 진화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다.

 

특히 나 자신의 매력, 나라는 인간의 매력을 어떻게 세계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를 24세의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일단 여성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으니까... 이 세상의 여성들은 왜 나한테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내가 어떻게 멋진 애니메이션, 멋진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걸렸다. 푸른 우르의 설정상 주인공은 제트전투기에 타는 기사인데 콤플렉스를 갖고있던 나에겐 전혀 와닿지 않는 설정이었다.

 

다양한 공부를 했고 20대에 가장 먼저 한 건 여성들에게 고백해서 차이는 훈련을 5년 정도 한 거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공부를 하고 CG도 지켜보고, 애니메이션 외의 연출 공부 등을 하다보니 어느새 30년이 지나버렸다.

 


 

그래서 이제 멋진 캐릭터를 그릴 수 있게 되었나
야마가 히로유키: 주인공은 멋있는 캐릭터가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에서는 콤플렉스 때문에 내가 멋이 없는데 작품에 멋있는 캐릭터를 그려낼 수가 없었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캐릭터는 나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해서 한심한 캐릭터가 되었고 그런 캐릭터지만 그 안에서 멋진 면을 찾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거기에서 에반게리온으로 나아가게 된 거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철저하게 스타일리쉬를 추구했다. 그건 나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으로, 어른이 된 후의 나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푸른 우르는 에반게리온 다음에 만들 작품이니까 스타일리쉬하게, 멋지게 표현할 거지만 단순히 멋있게 그리는 건 재미가 없다. 하드보일드처럼 주인공은 여성에게 쉽게 속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식으로 그려질텐데 그런 의미에서 한심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로 보면 굉장히 멋있는 캐릭터가 되는 거다. 무게있는 멋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

 

지금 시점에서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고객들도 동경할만한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 이게 20대에는 무리였다. 당시에는 사다모토(오네아미스의 날개, 나디아, 에반게리온 등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애니메이터, 만화가 사다모토 요시유키를 가리킴)도 동의한 부분인데 20대의 관점에서 멋지다고 그리는 건 얕은 캐릭터가 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고 멋진 캐릭터를 그리려 하면 아무래도 평면적 캐릭터가 되고 말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깊이가 없는 멋진 캐릭터를 그리느니 멋 없어도 나름의 무언가를 갖고 있는, 멋은 없지만 좋은 녀석을 그려냈고 그게 당시 우리가 그려야 할 그림이었다. 당시 가이낙스의 동지들 모두가 그런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런 형태가 된 거다. 남자에게 멋이 붙는 건 30대부터다. 20대는 멋을 부리는 게 무리라고 생각한다.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20대가 만든 20대를 위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푸른 우르는 어떤가
야마가 히로유키: 역시 20대인 것 같다. 나 자신이 나이는 50대지만 의식은 20대 후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푸른 우르의 주인공은 32세라는 미묘한 나이로 설정했다. 어른으로 세상에 어떻게 접해야 하는지를 20대에서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람은 살아가면 저절로 30대가 되고 30대가 되면 유치한 짓은 못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봐야할 세대는 32세가 아닐까.

 

히로인도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웅담이다. 이런 사람 괜찮지 않냐고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푸른 우르를 볼 사람의 연령은 관계가 없다. 멋진 캐릭터를 추구한 작품이니 아이들이 봐도 '멋있다!'고 느낄 것이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나갈때 영화 속 캐릭터를 흉내내도록 만드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 마치 내가 그 캐릭터가 된 것 같은 그런 영화, 동경의 대상이 될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에는 러브스토리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번엔 어떤가
야마가 히로유키: 맞다.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만들던 당시에는 현실의 내가 인기가 없는데 러브스토리를 그려낼 수 없었다. '내 러브도 못하는데 영화 안에서 러브라니... 못 그려'라고 생각했던 거다. 주인공을 키스라도 시킨다면 굉장히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푸른 우르에는 히로인도 나오고 키스신도 나올 것이다. 히로인은 20대라는 것만 정해뒀다. 20대의 어디쯤이냐는 실제 그려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나이를 딱 정하고 그리는 게 아니다.

 

주인공의 나이를 32세로 잡아둔 것은 어른이 되어야하지만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나이를 32세로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여성들은 그런 면에서 남자보다 빠르니까, 나이는 설정상 어려도 주인공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머리 속에 있던 푸른 우르와 이제 만들려는 푸른 우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야마가 히로유키: 기본적으로는 같은 작품이다. 머리 속에 있는 걸 어떻게 구체화할지를 28년간 계속 생각해 왔으므로 같은 물건이라 해도 될 것이다.

 

당시 처음 말로만 푸른 우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공허했지만 지금은 제대로 속을 채웠다. 그러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로켓이라는 이미지는 있지만 그 속이없었던 거다. 속을 충실히 채우기 위해 30년이 걸렸다. 시간을 들여서 '이게 내가 생각한 그거다!'라고 하는 데 이만큼이나 시간이 걸려 버렸다.

 

푸른 우르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한도가 없다. 무든 게 머리속에 있다. 30시간도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내 안에 들어있는 거니까 어머니나 고향 이야길 하듯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같은 이야길 해도 깊이가 없었다.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자신없는 느낌이 있었다. 20대의 자신만만하던 시대였지만 그랬다.

젊은 시절과 달리 지금은 자신은 있다. 내가 훌륭한 어른, 사람이 되진 않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자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절은 시절에는 불안하고 스스로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즉 제대로 된 가치관이 없었던 거다. 지금은 그게 생겼다.

 

간단히 젊은 시절에는 다음에 키스신을 그려야한다면 두근거렸다.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했지만 지금은 이 나이에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나...

여성들에게 인기도 생겼나
야마가 히로유키: 그건 변화가 없더라. 지금도 인기가 없다. 그 부분은 같지만 뭐가 다른가 하면, 무엇보다 젊은 시절만큼 비관적이지 않게 되었다. 체형도 둥글게 되었으니 기분도 둥글어진 거 아닐까 한다.(웃음)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야마가 히로유키 대표

 

크리에이터는 칭찬받으려 해선 안 돼
가이낙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다. 한국에도 팬이 많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고싶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야마가 히로유키: 표면적으론 물론 감사하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그런 걸 의식해버리면 제작자로선 끝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스스로가 영웅(히로)이 된 것처럼 작품을 만드는 인간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의식으로 뭔가를 만들면 안 된다.

 

그래서 옆으로 넘겨보면서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려 한다. 고맙지만 그걸 받아들여선 안 된다.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다가와서 팬입니다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무시하고 안들리는 것처럼 생각하려 한다. 물론 말을 걸어오니 대답은 하지만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그런 건 안 된다. 크리에이터는 칭찬받으면 안 된다. 역시 욕을 먹으면 괴롭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대단하다고 칭찬을 받으면 제대로 된 걸 만들 수 없다. 나는 아직 엉터리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엉터리에 부족하지만 그렇더라도 뭔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칭찬해 주는 분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하면 기쁘고 팬이라고 하는 분을 만나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응대하지만 머리 속의 다른 채널에서는 '이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 지나가다 만나 말을 걸었는데 야마가 히로유키가 예의없게 대한 적이 있어도 원망하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극력 팬이라고 하는 분에게는 제대로 서비스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잘 만드는 게 최고의 일이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그걸 좋아해주시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터가 직접 팬과 접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기의 가이낙스는 지금와서 보면 정말 대단한 멤버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시간이 가며 여러 동지들이 다른 길을 가게 되고 야마가 대표만 남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야마가 히로유키: 외부에서 보면 점점 사람들이 나가고 나 혼자 남은 것 같겠지만 지금도 동료는 잔뜩 있다. 후쿠시마 스튜디오를 맡긴 아사오('팬티&스타킹 with 가터벨트' 프로듀서)도 있고... 그런 의미에선 동료는 줄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다른 걸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싶은 걸 하러 간 것 뿐이다. 10대 친구들과 50대까지 같이 쭉 같이 가는 건 부자연스럽지 않나?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나.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모두가 프리랜서라 기본적으로 붙어서 늘 함께하지 않는 게 보통이고 작품단위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푸른 우르는 지금의 동지들, 이 사람들과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에반게리온은 이 사람들과 하자, 그렌라간은 이 사람들과 하자는 식으로 매번 다르니까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카라(***)도 그렇고 트리거도 마찬가지다. 카라는 그렌라간을 만들 때 우린 에반게리온을 만들고 싶다고 나가서 에반게리온을 만들었고, 트리거도 우리는 다음엔 킬라킬 같은 걸 만들고 싶다고 나간 식으로, 나는 다른 걸 하고 싶다면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게 당연한 거다.

 

그렇게 작품 단위로 헤어지는 게 당연한 것이다. 다수결로 다음에 뭔 만들지를 정한다면 만들고 싶은 걸 참아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모두가 만들고 싶은 걸 참는 걸 싫어한다. 시간이 흐르며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거다.

 

*** 2006년 가이낙스 이사였던 안노 히데아키가 설립한 회사. 2007년, 가이낙스가 그렌라간을 선보인 해 카라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상영했다.

 

후쿠시마에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야마가 히로유키: 지금은 정식으로 일을 하는 스튜디오가 아니지만 곧 같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신진들 교육을 후쿠시마에서 할 거라 앞으로 역할이 점점 달라질 것이다.

다 함께 푸른 우르를 만들게 되는 건가
야마가 히로유키: 다른 일도 잔뜩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가이낙스에는 지금도 사람이 많고 '앗! 안 나가고 있었네?' 싶은 사람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우리는 일종의 '패밀리'를 만든다는 감각은 아니다. 매번 매번 다른 작업을 다른 멤버와 하며 인연이 있다면 다른 작품도 다시 같이 할 수 있지만 그것뿐인 이야기다.

 

최근 한국 네오위즈게임즈라는 게임회사의 의뢰로 게임(애스커) 홍보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더라
야마가 히로유키: 한국회사냐 일본회사냐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국회사의 일을 하거나 한국회사와 협업하는 것에도 별로 이유같은 건 없다.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해서 30여년 동안 한국과 많은 일을 해 왔다. 한국회사냐 대만회사냐 같은 건 의미가 없다.

게임관련 일도 마찬가지다. 가이낙스는 뭐든지 하던 회사다. 이건 옛날부터 그랬고 달라지지 않은 점이다.(가이낙스는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등 게임을 직접 개발한 경험도 갖고있다)

오네아미스를 만들던 당시와 지금,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는 어떤 변화를 느끼나
야마가 히로유키: 모든 게 다 바뀌었다. 살고있던 고향이 완전히 외국이 되어버린 것과 같은 수준의 변화다. 전부 바뀌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힘들다는 것, 사람과 돈이 부족하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좋아진 점은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것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늘었다는 거다. 그림을 잘 그리는 젊은이가 늘어난 느낌이다.

 

이건 좋은가 나쁜가 판단하기 힘든데 세간의 인지도가 늘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한다고 평범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부분이 졸아진 건가 나빠진 건가는 잘 모르겠다.

 

좋아진 거 아닌가
야마가 히로유키: 그런가? 좋아진 건가? 그래서 좀 물렁해진 것도 사실이다. 옛날에는 작품을 만드는 걸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80년대부터 90년대 에반게리온까지는 지금 눈으로 봐도 그 때가 제대로 되었고 괴로운 젊은이가 세상에 도전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 콤플렉스가 사라져서 살아가긴 쉬워졌지만 작품을 만든다는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에선 어떤지 모르겠다. 위기감이 없어졌다. 그 반면에 환경은 여전히 매우 어렵고 고통스럽다.

푸른 우르는 의미있는,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될 것
푸른 우르에는 CG가 얼마나 들어가게 되나
야마가 히로유키: 푸른 우르는 6~7할을 CG로 하게 될 것이다. 수작업도 들어가지만 CG로 60~70%를 그릴 것이다. CG가 발전했기 때문에 겨우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CG는 오브젝트를 나열하고 카메라가 있고 직접 촬영하는 것에 가깝다. 수작업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이렇게 보인다'라며 그려내는 것으로 방향이 아예 다르다. 결과물은 비슷해 보여도 방법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 방법적인 면에서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지향하지만 작업에는 CG를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 영상이 실사인가', '손으로 그린 그림인가', 'CG인가', '리얼타임으로 지켜보는 무대인가'의 구분은 등장인물이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달려 있다.

 

등장인물이 사람이면 어떻게 촬영해도 무대다. 등장인물이 실사면 백그라운드에서 뭘 해도 실사다. 그런 의미에서의 애니메이션이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면 캐릭터로 나타날 거다. 캐릭터 외에는 CG를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비행기는 컷마다 다르게 하려 한다. 분량을 어떻게 할까는 고민 중이다. 비행기 씬을 손으로 다 그리는 것도 의미가 있고 CG로 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는데 장면마다 다르게 할 생각이다.

 

당신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지만 계속 오타쿠인 것 같다. 기자도, 우리도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될까
야마가 히로유키: 사람마다 테마가 다르다. 나의 테마는 푸른 우르로 집약된다. 나처럼 30년 동안 작품 하나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경우는 적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명확한 작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보고나서 그런 기분이 되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역할을 하게 되는 거고 공을 세우는 게 되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고싶은 건 뭔지 막연히 알지만 드러내고 실제 행동에 나설 자신은 없는 채로 살아가는, 삶의 실감이 없는 사람이 푸른 우르를 보고 거짓말이라도, 속아도 좋으니 '나도 자신이 생겼다', '해 보자!'는 그런 생각을 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30년에 걸쳐 구상한 푸른 우르를 만드는 것이 의미를 가질 것이다.

 

마지막에는 좀 평범하게, 한국 팬들에게 한말씀 하고 끝내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자. '푸른 우르는 이런 영화가 될 것이다. 기다려 달라'는 느낌으로 말해주면 좋겠다
야마가 히로유키: 인간의 행복,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나름대로 생각해 담은 그 발표회같은 영화가 푸른 우르다. 보고 나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아주면 좋겠다. 그 부분이 영웅담(히로물)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담은 히로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팬들에게 기다려 달라는 기분은 안 된다. 영화가 나오고 그 때 우연히 본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영화다. 지금 현재의 관객을 위한 건 아니다.

 

여기서는 '기대해주세요!'라고 말할 타이밍이지만 솔직히 완성되었을 그때 관객이 되어줄 사람이 지금은 상상이 안 된다. 머리 속에 '이런 사람이 이렇게 기뻐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있지만 현실 관객과는 다를 것이다.

'기대하고 기다려 주세요'보다는 꼭 내가 의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 거니까, 그럴 거라는 건 확실하니까 당신에게 그 때 뭔가 곤란한 일이 있다면 푸른 우르를 한 번 본다면 해결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본다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그래서 푸른 우르를 만드는 것이다. '기다려 주세요'보다는 영화가 개봉되었을 그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망상', '이 영화는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라는 이야기가 가장 가까울 것 같다.

 

**** 푸른 우르는 2018년 개봉 예정이다. 30년을 간직한 일본의 '고대 오타쿠'가 자신의 인생을 담아 그려낼 이야기가 어떤 것이 될지... 느긋하게 기다려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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