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가져온 변화는 뉴스 소비의 패턴을 급격히 바꿨다. 그 양상(樣相)은 '저물고 있다'는 말조차 희망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사정(事情)은 훨씬 더 어렵고 열악(劣惡)하다. 지난해 11월 26일, 통계청은 '종이신문을 읽는 인구는 급감하고 있고, 인터넷 신문을 보는 사람은 그보다 2배 가까이 많다'는 내용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 자료를 발표했다.
한편, 지난 8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5 신문산업실태조사'에서 '종이신문의 신문 판매수입은 2013년 5천 844억원에서 2014년 4천 934억원으로 15.6%나 줄었다'고 보고했다. 특히 20대의 경우에는 종이신문 이용시간이 하루 24시간 중 150초(2분 30초)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뉴스이용에 있어 종이신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3.1%에 불과했다. 종이신문의 미래가 어떨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해외라고 사정이 다를까? 안타깝게도 이런 흐름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소유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문'을 표방했던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다음 달 26일자를 마지막으로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돈이 안 되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냥 탓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앞으로 '인디펜던트'의 모든 콘텐츠는 온라인을 통해서만 유통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배경이 되는 2001년은 9 · 11 테러로 기억되는 해이지만, 언론 쪽에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신문의 발행부수와 독자가 감소하고, 기자 감원이 본격화됐던 시기이다. 저널리즘(journalism)의 위기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던 시기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영화의 주인공인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의 존재감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그들의 활약상으로 빠져들어가볼까?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
보스턴 최대의 일간신문이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신문 중의 하나.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는 18번째로 많은 평일의 평균 발행 지수를 가진 신문이며 퓰리처 상을 18번 수상했다. - '다음 백과사전'과 '위키백과'에서 발췌 -
스포트라이트(spotlight)
1) 무대의 특정한 부분이나 한 인물만을 특히 밝게 비추는 조명
2) (신문사에서) 심층취재 또는 집중취재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이 끔찍하고 추악한 사건을 끝까지 파헤쳤던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전문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감독인 토마스 맥카시는 '놀랍게도' 극적인 장치를 끌어들여 영화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매혹적인 전략을 쓰기보다 한걸음 떨어져서 담담한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애써 강조한다거나 언론의 역할을 교훈적으로 설파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끝내 '영웅'을 만들고야마는 그 지겨운 패턴을 반복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그저 담담하고 묵묵하게, 사건의 실체와 감춰진 진실에 접근하는 언론인들의 취재와 보도과정을 그려낸다. 오히려 그 기조가 언론의 직업윤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강한 전율을 선사한다.
영화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물론 그 대답이 어렵지는 않다. 영화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사회의 구성원들끼리 쉬쉬하고 있는 문제, 조직적인 은폐가 이뤄지고 있는 문제, '(가톨릭) 교회'라고 하는 종교 권력(그것이 권력이라면 반드시 '종교'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의 치부를 건드리는 문제를 파헤치고, 사람들 앞에 오로지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에서 가장 '저릿'했던 장면은 따로 있다. '보스턴 글로브'에 새롭게 부임한 신임 국장 마티(리브 슈라이버)는 하나의 칼럼에 주목한다. 30년 간 보스턴 내 6개 교구에서 80여 명의 아이들이 사제에게 성추했을 당했고, 종교계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추기경이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던 정황이 있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마티는 스포트라이트 팀에 이를 집중취재할 것을 지시한다.
사건의 실체 일부가 드러났을 때, 마티는 성직자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라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한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들을 숱하게 봐왔던 터라 이런 보도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몰두하는 이성적인 접근이 언론의 역할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적절한 타협'의 유혹은 얼마나 달콤하던가!
끈질긴 취재 끝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마크(마크 러팔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보도를 하자고 주장한다. 더럽고 추악한 성직자의 민낯, 교회의 민낯을 알아버린 기자의 분노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의 편집자 월터(마이클 키튼)는 이를 막아선다. 지체하면 다른 언론에서 먼저 터뜨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교회 측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하고, 완벽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결단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돋보였던 것은 영화 속에 종교 권력이 두려워 취재에 나서지 않았던 비겁했던 언론의 자기 반성이 담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의 월터의 고백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전 세계 64개 시상식에서 215개 부문에 수상 및 노미네이트 돼 화제를 모았다. 또,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드러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포트라이트'는 '종이신문'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한 인터넷 뉴스는 '발화성(發火性)'이 강하다. 그만큼 '전파성(傳播性)'도 크고, 그런 만큼 '신속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빨리, 더 빨리, 가장 빨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인터넷 뉴스의 특성은 너무 쉽게 '정확성'을 배제하기도 한다. 휘발성(揮發性)은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심층취재(혹은 기획취재)'에 부적합하다. 종이신문의 힘은 거기에 있다. 길게는 몇 달씩 매달릴 수 있는 '끈적함' 말이다. 실제로 취재부터 보도까지 약 8개월이 소요됐던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의 끈기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 번 물면 결코 놓지 않는 언론인의 '(흔히 '곤조'라고 표현되는) 근성'을 보여준다.
(종교든 정치든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권력의 비호와 용인, 온갖 관련자들의 조직적 은폐, 사회적 부조리에 접근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은데(사실상 불가능한데), 이를 보도하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 어려움이 오히려 언론의 필요성, 더 엄밀하게는 '종이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오로지 진실만을 탐구하는 언론이라고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한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허탈감과 씁쓸함을 가득 안겨준다.
글 제공 :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의 블로그(http://wanderingpoe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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