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무려 600만 부가 판매된 하나자와 켄고(花沢健吾)의 인기 만화 '아이 앰 어 히어로'가 영화로 제작됐다. '간츠' 등을 연출한 사토 신스케(佐藤信介)가 감독을 맡았고,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를 모두 석권했다.
특히 제23회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는 연상호의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까마귀상을 '아이 엠 어 히어로'가 차지하며 작품성과 영화의 저력을 입증했다. 비록 네이버 평점(6.55)과 다음 평점(5.6)은 처참한 수준이지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ZQN(조쿤)'에 감염된 사람들이 끔찍한 모습의 좀비로 변한다. 이 괴상망측한 좀비들은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그리하여 좀비들은 순식간에 도쿄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도시는 혼돈에 빠져들고,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야말로 '생존기'를 써내려간다.
아무래도 '익숙한' 전개가 아닌가?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속성으로 보나, 설정과 전개 등 내용적으로 보나, 개봉 시기로 보나 여러모로 '부산행'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두 영화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라는 설명만 던질 뿐, 그 원인의 실체나 이유 등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해결책'에도 무감각하다. 주목하는 건 '현상'뿐이다. 좀비가 출현했을 때, 그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는지에 집중한다. 다만,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말랑말랑'한 좀비물이라면,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작정을 하고 만든 '하드코어' 좀비물이다. 과감하게 청소년관람불가를 선택한 만큼, 제대로 '피칠갑'을 한다.
어찌됐든 '아이 엠 어 히어로'는 '부산행'의 덕을 봤다. 아무래도 '좀비물'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좀더 부드러워졌고, 이해와 관용의 폭도 훨씬 커진 게 사실이다.
무려 11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부산행을 통해 '좀비'를 경험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아이 엠 어 히어로'를 선택하는 것도 그리 어색하진 않으리라. 내용적으로는 '부산행'에 비해 훨씬 더 깊이가 있다. '부산행'이 '기차'라는 좁은 공간을 배경을 했다면, '아이 앰 어 히어로'는 도심 전체를 무대로 삼는다. 자연스레 이야기도 풍성하다.
가령, 기존의 좀비물에서는 감염과 동시에 '몰개성화'되는 좀비들에게 '개성'을 부여한 점은 흥미롭다. 훨씬 더 강력해진 좀비들은 '과거'에 얽매여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회사원이었던 A는 좀비가 돼서도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출근하는 행동을 하고, 쇼핑에 꽂힌 B는 좀비가 된 후에도 쇼핑에 천착한다. 인근 대학교 높이뛰기 선수였던 C는 계속해서 달리고 뛴다. 좀비의 '개성화'는 영화의 후반부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또, 생존자들이 '아울렛 쇼핑몰'에 모여 좀비에 맞서 싸울 때, '집단'을 형성하는데 그 모습들이 제법 흥미롭다.
'좀비물'이라는 특성을 잘 살렸고, 그 안에 일본 영화 특유의 '호러'를 영리하게 녹여냈다. 하지만 아쉽고, 때로는 불편한 부분들도 도드라진다. 우선, 주인공인 히데오(오오이즈미 요)는 이름의 뜻(히데오=영웅)과 달리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루저'다. 15년 전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지금은 만화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사실상 '실업자'다. 여자친구 뎃코(가타세 나나)의 집에 얹혀 살지만, 연거푸 연재 기회를 얻는 데 실패하자 쫓겨나고 만다. 가능성이 없는 남자친구와 계속 살기엔 자신의 미래가 너무 불확실했던 것이다.
영화는 평범한 남자(보다 못한 남자)가 여성들에 의해 '각성'해 좀비들을 무찌른다는 '해피 엔딩'으로 흘러간다. 도망을 치다가 만난 여고생 히로미(아리무라 카스미)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야부(나가사와 마사미)의 '자극'에 의해 히데오는 자신의 이름인 '영웅'의 진면목을 열어젖힌다. '부산행'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그려졌던 여성이,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는 '남성을 각성시키는 존재'에 머무른다. 위기의 순간에 무전기를 통해 히데오를 애타게 찾는 야부의 모습은 개연성이 결여돼 매우 어색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불편'했던 건, '히데오'의 모습에서 일본의 '욕망'이 엿보였다는 점이다. 사실상 히데오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15년 전 신인왕을 수상하고 혜성처럼 등장했던 히데오가 무력감에 젖어 지내는 건, 1980년대 경제 전성기를 맞이하며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이 지금은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을 묘사한다.
쏘지도 못하는 '클레이 사격용 산탄총'을 벽장 안에 넣어두고, '총포법 위반'이라며 절절매는 모습은 강력한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하면서도 일본 헌법 제9조의 제약과 국제 사회의 비난에 몸을 움츠리는 일본을 상징한다.
'지켜야 하는 대상'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으로 인해 각성한 히데오가 전혀 다른 사람(이른바 영웅)이 돼, '클레이 사격용 산탄총'을 손에 쥐고 못된 좀비들을 처치하는 장면은 묘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어질 '연상(聯想)'이 무엇일지는 뻔하다. 군대를 마음껏 동원하고 파병할 수 있는 일본. '선의'에 의해, '요청'에 의해 선한 목적으로 군대를 '사용'하는 일본. 바로 이것이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 엿보이는 '일본의 욕망'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혹은 영화관을 빠져나온 후에도 입 안의 쓴맛처럼 계속 남아 있는 '불편함'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글 제공 :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의 블로그(http://wanderingpoe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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