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이면을 조명하는 고난이도 로그라이크 RPG '다키스트 던전'

등록일 2017년04월14일 16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영웅, 사전적 의미로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뜻한다.

게임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은 대부분 용감하고 정의롭게 그려지곤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칭송 받고, 악(惡)을 몰아내는데 크게 공헌해 전설이 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늘 접해왔다. 영웅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언제나 강력하게 묘사되고,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 또한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키스트 던전(Darkest Dungeon)'에서 만큼은 아니다. '다키스트 던전'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영웅이기 이전에 한낱 인간이라는 점을 플레이어에게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들은 검 한 자루로 세계를 평정하는 일당백이 아니다. 던전에 진입해 이동하는 것 만으로도 공포와 허기를 느끼고, 중독과 출혈 상태에 빠지면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영웅이 되어 활약하는 것을 기대한 유저들에게 '다키스트 던전'은 실망감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다키스트 던전'은 영웅이라면 무조건 강력해야 한다는 흔한 클리셰를 부수고, 포장된 영웅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2003년 이라크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쟁 드라마 '제너레이션 킬'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룬 '더 퍼시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두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지금껏 각종 미디어를 통해 포장된 미군의 정의로운 모습을 비튼다. 작품 내내 참전 군인들도 결국 인간임을 강조하고,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처참하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화된 전쟁의 이미지를 박살내는 '더 퍼시픽' (출처: HBO 공식 홈페이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파괴되는 인간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전쟁 드라마와 일맥상통하는 '다키스트 던전'의 핵심 시스템이 바로 '스트레스' 시스템이다. 영웅들은 미탐험 지역을 걷거나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일정 수치 이상 누적되면 치명적인 정신 질환을 얻는다. 이러한 영웅들은 죽기 일보 직전임에도 치료를 거부하거나, 절망적인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파티원의 '멘탈'을 부순다.

이쯤 되면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수치가 200까지 누적되면 '죽음의 문턱(Death's Door)' 상태가 되고, 이때 공격을 받으면 일정 확률로 사망한다. 사망한 영웅은 매우 드물게 등장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면 되살릴 수 없다. 로그라이크 장르라는 것을 감안하고 게임을 플레이 해도, 애정을 쏟아 키운 영웅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질환을 얻거나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플레이어의 '멘탈'도 함께 박살나기 일쑤다.

'스트레스' 시스템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이 플레이어에게 불리하다. 수시로 자동 저장되는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어 일명 '세이브 로드 신공'도 할 수 없다. 기용할 수 있는 영웅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던전 안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아도 시간을 들여 육성한 영웅들이 죽어나간다. 실력이 아예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수가 없으면 나의 공격은 모두 빗나가고 상대방의 공격을 모두 맞아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키스트 던전'의 묘미다.

정보가 없다면 당하는 수 밖에 없다

'다키스트 던전'은 확률로 점철된 높은 난이도의 로그라이크 RPG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치밀하게 짠 전략과 운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다키스트 던전'에는 검과 갑옷으로 무장한 '성기사'부터 사악한 힘을 다루는 '신비술사' 등 십여 종의 영웅이 준비되어 있고, 각 캐릭터마다 개성 넘치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아이템도 마련되어 있고, 4명의 영웅을 스킬과 위치에 맞게 구성해 조합과 전략도 마음껏 구상할 수 있다.

높은 난이도는 양날의 검이다. 진입장벽이 높지만,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모든 게이머를 아우를 수는 없지만, 확실한 마니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다키스트 던전'도 여타 하드코어 게임들과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게임은 하나부터 열까지 매우 불친절하다.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조작 방법만 알려줄 뿐, 이후 전략과 진행 방식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둔다. 쉽고 빠르게 머리를 쓰지 않고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들이 범람하는 요즘, 도전의식을 고취시키는 높은 난이도의 '다키스트 던전'은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a Singular Strike!

한편, '헬보이'의 작가 마이크 미뇰라에게 영향을 받은 독특한 그래픽과 게임의 어두운 분위기를 한껏 북돋는 BGM, 그리고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개성 넘치는 나레이션은 '다키스트 던전'의 백미다. 특히, 나레이션은 밋밋한 2D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턴제 전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공격이 치명타로 적중했을 때의 호쾌한 타격감과 이어지는 나레이션은 플레이어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영지로 모여든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키스트 던전'. 이 게임이 단순한 로그라이크 RPG 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는 이유는 뛰어난 전략성과 높은 난이도, 매 순간 희비가 엇갈리는 운(運)적인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늘 영웅의 강력하고 정의로운 모습만 봐왔던 유저들에게 색다른 이면을 보여주고 클리셰를 비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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