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색과 음악의 향연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유아사 마사아키 진가 보였다

등록일 2018년02월13일 10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세상에는 많은 음악이 있고 그만큼의 취향이 있다. 악보에서 지시된 음과 악상대로 연주하는 걸 원칙으로 한 클래식의 정률함이 취향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엇박과 변박을 넘나들며 연주자에 따라 같은 곡도 완전히 달라지는 재즈의 즉흥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나 들으면 좋아할만한 가요나 팝이 제일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존 케이지 같은 현대음악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가요는 물론 클래식이나 재즈에 비해서도 현대음악이 취향이라는 사람은 소수가 아닐까 싶다. 예술성이 높을지언정 맥락을 파악하며 감상하지 않으면 일반인에게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음악인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초기작들은 현대음악에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첫 장편 애니메이션 '마인드 게임'은 같은 해에 나온 스튜디오 지브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제치고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다수의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흔히 말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문법, 리듬감에서 벗어난 작품이었던 '마인드 게임'은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정의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동세를 크게 하기 위해 그림을 의도적으로 과장, 왜곡하고 2D, 3D는 물론 실사 이미지까지 콜라주처럼 컬러풀하게 붙여 넣고 빠른 화면 전환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실험성과 일본 애니메이션답지 않은(?) 엇박자가 가득한 작품을 만든 유아사 마사아키는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열광하는 현대음악처럼 즐기는 사람만 즐기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떠안게 되었다. 다행히 그후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나 '핑퐁 더 애니메이션' 등 원작이 있는 애니메이션들을 만들면서 좀 더 폭넓은 인기를 얻었지만 흔히 말하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흥행 감독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그렇게 2~3년에 한편씩 과작을 하던 그가 오랜만에 자신만의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인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로 돌아왔다. 이 작품 역시 2017년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렇다면 마인드 게임과 같은 계열의 작품인가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구나 좋아할 가요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장점을 여전히 간직한 채 이전보다는 좀 더 대중적이 된, 재즈 아티스트 같은 모습을 보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움직이는 이미지와 음악의 조화였다. '벼랑 위의 포뇨'의 포뇨를 연상시키는 루의 움직임과 바닷물의 퐁퐁 소리, 카이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인트로는 마치 '판타지아' 같은 디즈니 클래식이나 캐릭터의 격한 액션과 음악이 절묘하게 싱크로 되었던 '톰과 제리' 같은 고전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좋은 음악이 뮤지컬처럼 움직임과 함께하니 감정적으로 공감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유아사 마사아키의 장기도 건재하다. 마치 그날의 감정에 따라 연주가 달라지곤 하는 재즈 아티스트의 연주처럼 유아사 마사아키 특유의 색감과 그 색들의 기세가 엇박스런 그의 리듬감을 타고 독특한 움직임을 선사한다.

 


 

같은 달리기라도 흔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한 컷이 아니라, 과장되고 왜곡되어 볼품없어 보여도 눈물, 콧물, 침을 흘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 같은 운동감과 기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움직임 말이다. 이런 표현은 한층 더 발전해 캐릭터뿐 아니라 바닷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에도 잘 드러났다.

 

또 연주 중 흥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재즈 아티스트의 즉흥 연주처럼, 루가 사는 바다도 처음에는 흔한 초록색이지만 루의 감정 변화에 따라 노란색, 파란색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바다뿐 아니라 카이의 티셔츠 색깔까지 원래 정해진 하나의 톤에 구애받지 않고 캐릭터의 감정선에 따라 변화하도록 만들어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 모든 움직임들은 클라이맥스에서 '노래꾼의 발라드'를 목청껏 노래하는 카이에 이르러 캐릭터의 성장과 작품의 메시지를 집대성한다. 원래 말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말을 하지 않던 아이인 카이가 루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좋아한다고 소리치며 노래하는 장면은 허니와 클로버의 마지막 장면과도 일맥상통하여 감동을 주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라는 의문에 눈물 흘리며 답을 내린 다케모토의 성장처럼 말이다.

 

동시에 루의 바람도 이루어진다. 인어가 인어인 채로, 사람이 사람인 채로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역시 자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타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라는 일관된 테마를 갖고 있다고 게임포커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번에 그는 그 테마를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뿐 아니라 원작 소설이 있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넷플릭스로 전세계 상영 중인 '데빌맨:크라이 베이비'까지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포맷으로 된 유아사 마사아키의 작품들이 요 1년 사이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다음 작품에도 착수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미 공개된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 곧 개봉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그리고 내년쯤 공개될 신작까지 유아사 마사아키의 일관된 테마인 '타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어떤 식으로 계속 변주해갈지 기대가 된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리뷰를 가필 및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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