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로봇vs괴수는 언제나 옳다... '퍼시픽림' 그 10년 후 '퍼시픽 림: 업라이징'

등록일 2018년03월23일 11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기자는 로봇을 좋아한다. 그 로봇이 크면 클수록 더욱 좋고 만약 그 로봇이 싸운다면 최고다. 아마 어린시절 TV에서 본 만화영화 속 거대 로봇들에 대한 동경과 추억에서 비롯된 로망이 아닐까.

지난 2013년 개봉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은 거대 로봇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였다. 고층 빌딩과 맞먹는 크기의 거대 괴수 '카이주'들이 도시를 파괴하는 상황에서 이를 막기 위해 '카이주'와 맞먹는 크기의 거대 로봇인 '예거'가 맞서 싸운다는 내용 자체로도 로봇 덕후들의 로망을 자극했다.

여기에 탑승자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로봇, 기술의 이름을 외쳐야 사용할 수 있는 등 각종 로봇 관련 콘텐츠들에서 따온 클리셰들에 거대 로봇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액션, 나름대로의 리얼리티를 살린 예거의 모습 등을 통해 소위 '어른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퍼시픽 림'이 두 번째 작품인 '퍼시픽 림: 업라이징'으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10년이 지난 뒤, 전작의 사령관의 아들 제이크 펜테코스트가 예거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거'에 탑승하니 마니 등의 쓸데없는 설전은 없다. 주인공은 탑승하라고 하면 '예거'에 탑승하는 쿨가이

시리즈로 제작된 영화를 볼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전작에서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전작을 접해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어느정도 전작의 내용을 설명해야 하지만, 이 부분이 너무 길어지다 보면 극의 전개가 늘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장황한 설명을 과감히 포기했다. 영화 내에서 전작과 관련된 내용들을 포함해 각종 설정들을 설명했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작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쉽게 이야기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전작을 이미 봤던 사람들이 지루함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갈등 같은 드라마 요소는 과감히 배제하고 액션만을 위해 달린다

내용 전개면에서도 액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인간들 사이의 드라마는 최소화했다. 특히, 인물들간의 관계도 간단하며 오락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러브라인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인간보다는 '카이주'와 '예거' 사이의 전투에 영화 상영 시간 대부분이 할애되어 있어 거대 로봇들의 화려한 전투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전체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오락영화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을 많이 봤던 관객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다음 장면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이야기 자체에서도 큰 무리수를 두지 않고 정석적인 구조를 채용했다. 여기에 예고편에서 공개됐던 내부의 적과 '카이주'라는 두 빌런들을 깔끔하게 연결시켰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OO레인저가 생각날 법한 디자인

전작에서 10년 뒤의 세계를 다루는 만큼, 기술력은 진보했다. 육중하고 투박한 디자인의 예거들은 좀 더 날렵한 '슈퍼 로봇'스러운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여기에 색도 좀 더 화려해져 흡사 전대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예거'에 탑재된 기술들도 발전했다. 현대의 통신 기기들을 사용하던 조종실은 대부분의 인터페이스가 홀로그램으로 바뀌었으며, 칼날과 주먹 등의 재래식 무장들도 좀 더 다양하게 변화했다. 전작의 투박한 느낌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지만 기술적인 변화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묵직함은 덜하지만 날렵한 액션 역시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예거'의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액션 또한 많이 달라졌다. 전작에서 느리지만 묵직한 한방이 있는 액션을 주로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예거'들이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좀 더 다채로운 액션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장점이지만, 기존의 묵직함이 다소 희석된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느꼈다. 느릿느릿 움직였던 예거가 날렵하게 270도 돌려차기를 선보이는 것을 볼 때는 감정이 복잡했다.

액션 영화로서는 쉴 틈없이 눈이 즐거웠지만, 아쉬운 부분들도 몇몇 존재한다. 설명을 최소화하여 내용 전개를 빠르게 가져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웠지만, 설명을 극도로 최소화하다 보니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느껴지는 설정 상의 구멍들이 많았다. 특히 전작에서는 '카이주'의 피가 산성이라는 설정이 있었지만 본편에서는 산성이 있기도, 때로는 없기도 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또한 다소 무거웠던 전작의 분위기를 의식한 것인지, 이번 작품에서는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개그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 개그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는 것. 주인공을 비롯한 각종 인물들이 개그를 던지며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개그 자체가 재미가 없으며 같은 흐름의 개그가 계속 반복되는 탓에 극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도 받았다.

극 중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카이주'와의 대결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최종 보스와의 대결에서는 그야말로 뒤가 없는 사투를 기대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다소 맥이 빠지는 결과로 대결이 마무리된다. 화려한 최종 보스와의 1대1 일기토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고 있을 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다. 그만큼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러닝타임 내내 우리에게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쉴 새없이 화려한 시각적인 요소들로 화면을 가득 채워준다.

비록 설정상의 구멍과 개연성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애초에 우리가 어린시절 보던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에서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추구한 적이 있었던가

'퍼시픽 림'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jpg

함께 영화를 봤던 일행 역시 “어린시절 상상했던 로봇에 타는 모습들이 실사풍으로 구현되어 매우 재미있었다”라고 말한 만큼, 거대한 로봇이라는 소재는 분명 우리들 마음 속 무언가를 자극하는 힘이 있다.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동심 속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로봇의 합체야 말로 슈퍼 로봇물 덕후들의 로망이 아닐까. 3번째 작품에서는 또 어떤 기술을 통해 기자의 로망을 불태워줄 것인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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