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악당' 조커의 탄생을 말하다... 호아킨 피닉스가 그려낸 최고의 캐릭터 '조커'

등록일 2019년10월14일 10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전설적인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말하기를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다.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라는 것. 그가 남긴 명언처럼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이의 슬픔이 되기도 하며, 반대로 타인의 슬픔이 나에게는 기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조커'에 대해 개봉 전 각종 외신 및 미디어에서 '모방범죄'를 우려했던 것은 모두가 외면했던 공공연한 비밀을 영화가 폭로했기 때문이 아닐까. 기자 역시 영화를 직접 보기 전에는 모방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괜한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영화관을 나서면서 전혀 허황된 걱정은 아니었다는 점을 실감했다. 물론 '조커'가 나쁜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기에 나오는 칭찬 아닌 칭찬 같은 느낌.

 

영화 개봉 이후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유튜브에서는 영화의 각 장면들을 분해하며 다양한 해석거리들을 내놓고 있으며, 인생 최고의 명작이라는 반응과 기대 이하의 실망스러운 작품이라는 이야기들도 혼재하는 상황.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온 영화다 보니 개봉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관람을 망설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커'는 그렇게까지 무거운 마음과 부담을 안고 감상할 필요가 없는 영화다. 그동안 태생을 꼭꼭 숨겨왔던 빌런 '조커'의 탄생을 그린 오리진 영화로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영화의 진짜 본질은 주인공 '아서 플렉'이 '조커'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치밀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어떤 '조커'도 될 수 있는 새로운 조커의 탄생

 



 

DC 코믹스의 대표 빌런답게 '조커'는 이미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조명된 바 있다. 그럼에도 그의 기원만큼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는데, 그나마 코믹스 '킬링조크'를 통해 조커의 탄생 과정과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된 바 있다. 코미디언을 희망한다는 점이나 기원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 '조커'가 코믹스 '킬링조크'에 상당 부분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여태까지 어떤 미디어에서도 본 적이 없던 '조커'가 기자를 맞이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영화 '조커'에서 그리는 조커는 기존의 미디어를 통해 등장했던 모든 조커들과 나름대로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조커'는 DC 실사 영화 시리즈에 속하지 않는 독립 타이틀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설정이 연계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DC 코믹스 기반 영화들을 꾸준히 봤던 사람이라면 익숙할 만한 오마쥬들이 여럿 숨겨져 있다.

 

주연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 사실 대중들에게 히스 레저가 '다크나이트'에서 선보였던 조커의 이미지가 각인되어있는 만큼, 후발주자의 입장에서는 그 틀을 깨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자레드 레토가 먹고 탈이 난 조커라는 '독이 든 성배'를 호아킨 피닉스가 잘 소화해냈다.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라는 표현을 그대로 연기로 선보이는데, 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아서 플렉'의 심리에 관객들이 동화될 수 있는 것은 전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덕분이다.

 

극도로 현실적인 묘사,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

 



 

모방범죄에 대한 논란도 영화 '조커'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는 총기 소지가 합법이며 최근 '인셀(비자발적 순결주의를 의미하는 신조어)'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융화되지 못한 반사회적인 성격의 집단들이 대두되고 있는 미국의 상황 때문. 총기를 제외하면 비슷한 문제들을 겪고 있는 국내에서도 '조커'를 마냥 남의 이야기처럼 감상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영화 '조커'의 심리를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때문에 관객들이 주인공 '아서 플렉'에 깊게 공감할 여지가 충분하다. 전체 분량 중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이 화면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영화 '조커'는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그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그의 감정이 폭발하고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데,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위해 천천히 감정선을 쌓아가는 감독의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종국에는 이를 지켜보는 관객마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정도.

 



 

다만 한발짝 떨어져서 영화를 바라보면 작품이 '조커'를 영웅처럼 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특정한 사건을 시작으로 '아서 플렉'은 '조커'가 되어가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는 평범한 소시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예고편에서 '조커'를 시민의 영웅처럼 묘사했던 것과 달리, 실제 영화 상에서 '조커'는 여전히 '혼돈'과 '순수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그의 표정 대신 주변 인물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자.

 

결국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관객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서 플렉'이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당하고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는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다면 영화 '조커'는 한없이 우울하고 무거운 영화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아서 플렉'에게서 한발짝 떨어져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이 작품은 한 인간의 변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 웰메이드 심리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2회차 관람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한번 더 감상할 필요가 있겠다.

 

영화를 분해하며 감상할 필요는 없다

 



 

영화 개봉 이후 '조커'의 숨겨진 요소나 의미들을 해석하는 콘텐츠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수학능력평가에서 언어영역 지문을 해석하듯이 모든 장면들을 하나하나 분해하며 감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이나 감정선이 간결한 것은 물론, 영상미나 음악의 완성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너무 열을 올려가며 영화를 분석하려다 보면 오히려 핵심적인 재미들을 놓칠 수도 있다.

 

개봉 전 공개된 트레일러 상에서 오역들이 다수 발견되어 번역에 대한 문제가 또다시 대두되었지만, 다행히 영화 감상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욱 가취있기를(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이라는 영화의 핵심 문장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그다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장난이기에 딱히 이에 맞는 정답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말이 주는 대략적인 의미와 '아서 플렉'에게 이 문장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집중하면 무리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비극보다는 희극이 더욱 '가취'있기를

 



 

영화에 대해 여러 해석과 논란이 분분하지만, 굳이 겁을 먹고 영화 감상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 중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만큼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이처럼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여러모로 의미있는 작품. 특히 어느부분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감상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온다는 점도 영화 '조커'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놀라운 점은 영화를 연출한 토드 필립스는 기존에 '행오버' 등 코미디 작품들을 주로 맡았다는 사실. '행오버'처럼 정신이 나간 듯한(물론 좋은 의미다) 작품들을 연출했던 감독의 머리에서 이처럼 어둡고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유명 코미디언 '조던 필' 역시 스릴러 명작 '겟 아웃'을 연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람들을 웃길 줄 아는 이들은 분명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다. 영화 '조커'를 감상하고 난 뒤 관객들이 짓는 표정이 '웃음'일지, '슬픔'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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