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난이도로 입소문을 타는 소위 '매운맛' 게임들이 유행이지만, 마냥 어렵기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매운맛' 게임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어려운 난이도를 극복하고 게임을 공략했을 때 게이머가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 덕분. 그런데 이점을 간과한 채 무작정 '매운맛'으로 범벅을 한 게임들이 출시되어 시장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크래프톤이 출시한 로그라이크 RPG '미스트오버' 역시 뛰어난 게임이지만 '매운맛'이 너무 과한게 문제다. 게임은 출시 초반 독특한 분위기를 통해 호평을 받으면서 스팀 플랫폼 최고 인기 제품에 이름을 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현재는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
기자 역시 '미스트오버'의 체험판에서 게임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정식 출시 버전을 기다렸지만, 막상 게임을 플레이한 뒤에는 포기를 선언했다. 게임이 단순히 어렵기 때문은 아니다. 게임을 관통하는 모든 시스템과 콘텐츠 중에서 플레이어가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너무나도 적은 것이 문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라는 표현이 '미스트오버'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 아닐까.
※본 리뷰는 닌텐도 스위치 및 콘솔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대규모 패치가 진행된 PC 버전에서는 본 기사에서 언급하는 콘텐츠 및 시스템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잘하면 본전, 실수는 곧 지옥
'미스트오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멸망'이다. 어느 날 대륙에 '절망의 기둥'과 미지의 존재들이 나타나고, 예언자가 이야기한 '멸망의 때'에 대비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기억을 잃은 모험가들로 조사대를 꾸리고 안개 속을 탐험하게 된다.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게임 내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멸망의 시계'라는 시각적인 요소로 표현되며 게임의 진행에 따라 앞당겨지거나 뒤로 밀려난다.
제한시간을 두고 그 안에 게임을 끝내야한다는 점은 여느 게임의 '스피드런'이나 '다키스트 던전'의 '혈월' 난이도와 유사하지만, 정작 게임이 '멸망의 시계'를 다루는 방법은 앞서 이야기한 예시와 전혀 다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적들을 해치우고 캐릭터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존의 게임들과 달리, '미스트오버'에서는 던전을 무조건 100%로 클리어하는 꼼꼼함을 발휘해야 '멸망의 시계'가 흘러가는 것을 멈출 수 있다.
'멸망의 시계'를 멈춰 두는 조건은 상당히 빡빡하게 짜여있다. 던전을 탐험하면서 단 하나의 보물상자도 남겨두어서는 안되며, 던전 내부의 모든 지역을 100% 탐사하고 몬스터 역시 전부 해치워야 한다. 여기에 조사대의 평균 레벨이 던전의 적정 난이도보다 높을 경우에도 여지없이 '멸망의 시계'가 전진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결국 게임 내 모든 던전을 적정 레벨의 조사대로 100% 클리어해야 한다.
문제는 이 100% 클리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캐릭터가 던전을 탐색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만복도'와 '광휘도'가 감소하는데,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식량'과 '라이트플라워'를 구매하고 적절히 소모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특히 가장 난해한 부분은 “몬스터를 전부 사냥한다”라는 조건으로, 지도 상에서 해당 던전에 몬스터가 몇 마리 있는지를 언급하지 않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다. 여기에 사망한 몬스터는 일정 턴 뒤에 부활하기까지 하니, 일일이 내가 잡은 몬스터인지 새로운 몬스터인지 구분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
결국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가까스로 던전을 클리어해도 제대로 파악하기도 쉽지 않은 여러 부가 조건들로 인해 '멸망의 시계'가 앞당겨지는 모습을 보면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하나의 던전을 손해 없이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최소 30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리는데, 이런 부분들도 플레이어가 '미스트오버'에 계속해서 몰입하기 어려운 이유. 로그라이크 장르가 휘발성이 강한 만큼, 플레이의 흐름도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스트오버'가 장르의 매력을 잘못 짚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채찍은 많은데 당근은 없다
한번 죽으면 캐릭터도 죽고 진행 상황도 초기화되는 로그라이크를 많은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결국 불합리한 상황을 무작위적인 요소를 비롯한 한줄기 희망으로 극복하는 희열과 재미다. 특히 던전에서 최고 등급의 아이템까지도 획득할 수 있는 '랜덤 파밍'이야말로 로그라이크 장르의 가장 큰 매력.
그러나 '미스트오버'는 플레이어들에게 이런 재미를 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게임의 가혹한 시스템으로 인해 '채찍'은 많지만,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에 계속 도전하게끔 하는 '당근'이 부족한 것. '미스트오버'의 각 던전에서는 입장 전에 이미 모든 보상을 확인할 수 있다. 표기된 보상 이외의 '깜짝 선물'은 전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던전에 입장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어떤 아이템을 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전부 알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다.
조사대가 전멸해도 게임이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각 캐릭터들은 저마다 무작위로 스킬이 개방되어 있는데, 새롭게 고용하는 조사대원들의 스킬 분배가 영 좋지 못하다. 다시 던전을 돌면서 용병들을 육성시키려고 해도 앞서 이야기한 '멸망의 시계' 조건 때문에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 결국 한번 조사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를 복구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전투 역시 플레이어가 얻는 이득은 없는데 패널티만 가득하다. '멸망의 시계'가 앞당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데,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몬스터를 통해 얻는 보상이 별볼일 없다. 공연히 몬스터를 건드렸다가 출혈과 체력 소모만 커질 뿐. 더군다나 한번 부활한 몬스터는 보상을 제공하지 않아 던전을 탐색하는 내내 몬스터와 조우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플레이어에게 너무 많은 이득을 제공하면 게임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쉬워지고 성취감이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당근 하나 없이 채찍만 가득한 게임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현실을 사는 것도 패널티 투성이인데, 적어도 게임에서는 한줄기 희망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미스트오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불합리한 조건만 가득한 '미스트오버'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데에는 게임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난이도를 제외하고 비주얼과 분위기 측면에서 게임을 평가하면 '미스트오버'는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
총 7개의 직업으로 구분되어 있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도 강하고 나름대로의 서사 구조도 갖추고 있다. '팔라딘'이 기합을 내지르며 스킬을 사용하는 모습이나 '그림리퍼'의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다키스트 던전' 특유의 느낌을 '미스트오버' 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비주얼도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을 사용하면서도 캐릭터의 색감에는 밝은 원색을 주로 이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게임에 대해 아쉬운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캐릭터의 매력이나 개성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호평을 내리고 있다.
맛있게 '매운' 맛을 내는 비결을 찾아야
출시 초반 혹평을 고려해 크래프톤 측은 '미스트오버'에서 대대적인 패치를 진행 중이다. 플레이스테이션4와 닌텐도 스위치 버전은 월말에 한꺼번에 패치가 될 예정인데, 이용자들이 빠르게 이탈하고 있는 만큼 콘솔에서도 어느 정도의 응급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결국 문제는 '멸망의 시계'를 필두로 한 게임의 불합리한 구조 때문이다. 불합리한 구조로 난이도를 대폭 높이는 것이 많은 로그라이크 장르 게임들의 특징이지만, 당근 없이 채찍 만을 강요하는 시스템들이 '미스트오버'의 가장 큰 문제. '멸망의 시계'가 게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소재인 만큼, '미스트오버'가 마주한 문제들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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