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른들의 사정으로 얼룩진 동화, 디즈니 '겨울왕국2'

등록일 2019년11월30일 12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부모들은 지갑을 단단히 동여매고 유튜버들은 OST 커버 영상을 준비하라! 디즈니의 흥행 보증 수표 '겨울왕국'의 엘사가 돌아왔다.

 

2013년 혜성같이 등장해 뭇 어린이들의 가슴을 흔들고 전국에 'Let it Go' 열풍을 불러일으킨 영화 '겨울왕국'의 후속작 '겨울왕국2'가 지난 11월 21일 국내에 개봉했다. 전작 '겨울왕국'이 워낙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던 터라 영화의 인기에 떠밀려 무리하게 후속작을 내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런 우려가 딱 들어맞았다.

 

개봉 초반의 성적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역대급'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불과 500명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전작의 흥행 성적도 가뿐히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 다만 시장의 반응과 달리 실제 관람객의 평가는 호불호가 나뉘는 모양새다. 2회차 관람을 선언하는 사람도 있는 한편 그 못지 않게 영화의 빈약함에 실망하는 관람객들도 많다.

 

사실 디즈니의 입장에서 '겨울왕국'의 후속작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겨울왕국'을 통해 '엘사'와 '안나'라는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뒤로는 주목할 만한 신인 공주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던 상황. 특히 '겨울왕국'의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기에 미디어믹스의 판매량을 견인하기 위해서도 '겨울왕국'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다.

 

결국 시작부터 '어른들의 사정'이 개입한 만큼 '겨울왕국2'가 전작처럼 굵고 묵직한 울림을 주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역대급 비주얼과 고 퀄리티 OST로 중무장한 '겨울왕국2'지만, 그 못지 않게 빈약한 서사 구조와 작위적인 연출들이 아쉬움을 남겼다.

 

3D 애니메이션의 정의를 새로 쓰는 비주얼

 


 

전작 '겨울왕국'도 화려한 비주얼로 주목받은 바 있는데, '겨울왕국2'는 그보다 한층 발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Let it Go'를 열창하며 얼음성을 쌓아올리는 장면에서 감탄했던 관객이라면, '겨울왕국2'를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당대의 3D 애니메이션 기술력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겨울왕국2'를 보고 나니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얼음이나 물 등의 자연물을 표현하는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가이다. 엘사가 만들어내는 얼음은 전작보다도 더욱 사실적이며, 물이나 빛 등 각종 효과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작중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Show yourself'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영상미는 가히 놀라울 수준. 가능하면 더 큰 화면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상미의 향상에 힘 입어 엘사와 안나의 매력도 한층 상승했다. 단순히 외모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표정이 상당히 풍부해졌다. 영화 초반부에서 작중 인물들이 다함께 둘러앉아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캐릭터의 성격을 표정에 그대로 반영해 보는 이로 하여금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들도 영상미 하나만큼은 인정할 정도.

 

'빌드 업'이 부족한 서사, OST도 함께 흔들린다

 


 

비주얼은 역대급이지만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작 역시 서사가 탄탄한 편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이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택했기 때문에 관객들도 큰 무리 없이 영화를 따라갈 수 있었다. 여기에 영화의 부수적인 설정들도 '눈의 여왕'이라는 유명 동화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 없이도 영화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적인 아쉬움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문제는 '겨울왕국2'는 온전히 전작에 기초해 오리지널 스토리를 펼쳐나가야 한다는 데 있다. 특히 '아렌델'에 한정되어 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만큼 세계관이 확장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다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겨울왕국2'는 서사적인 완성도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방대한 세계와 화려해진 볼거리를 선보이는데 대부분의 상영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명확한 선과 악의 대립이 없는 만큼, 보다 섬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마치 미국의 개척자와 원주민 사이의 갈등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야기가 '겨울왕국2'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데, 영화 중반까지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없더니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싱겁게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여기에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도 작위적이라 성인 관객층이 즐기기에는 조금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핵심 줄기인 서사가 흔들리는데 등장인물 역시 무사할 수는 없다.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내적인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조명한다. 문제는 이미 전작에서 내적인 성장을 이룬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다시 초기화시켜버렸다는 것.

 

분명 '겨울왕국'에서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여왕의 자리를 맡기로 결심한 '엘사'는 영화 초반부에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생각하며, 안나 역시 전작에서 언니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냈음에도 다시 '언니바라기'가 되어 끊임없이 걱정하고 고민한다. 내면의 심경이 급격하게 변화한 이유를 영화가 설명해주지 않다 보니 관객들이 느끼는 괴리감도 상당하다.

 


 

서사가 빈약하다 보니 매력적인 넘버(곡)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작의 명곡 'Let it Go'가 단순히 음악 자체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엘사의 억압된 감정이 터져나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뮤지컬에서 음악은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관객이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겨울왕국2'에서는 영화의 서사가 빈약하고 인물의 감정에 쉽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 넘버도 부족하다.

 

당장 영화 개봉 전에 타이틀 곡으로 내세웠던 'In to the Unknown'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해버려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사실상 클라이막스로 볼 수 있는 넘버는 'Show yourself'지만,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서사가 흔들리기 때문에 관객이 곡에 깊게 몰입하기도 힘든 편. 전작의 명곡 'Let it Go'가 영화의 감정선을 찬찬히 쌓아 올린 뒤 관객의 감정을 폭발시켰던 것과 비교하면 '겨울왕국2'에서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OST가 너무 길어서 극의 흐름을 끊는 경우도 있다. 'Lost in the Woods'는 70년대 록밴드의 뮤직 비디오 연출 방식을 채택했는데, 곡의 길이가 워낙 긴 편인데다가 영화의 전개와도 큰 연관이 없어 지루했다. 당시의 감성을 제대로 살린 연출이나 보컬은 인상적이지만 이 넘버가 굳이 지금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까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볼거리는 풍부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는 '겨울왕국'

 


 

결국 '겨울왕국2'는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했지만 그 내면은 빈약한 '속 빈 강정' 같은 느낌의 영화다. 진일보한 3D 그래픽이나 엘사가 매번 갈아입고 등장하는 화려한 드레스가 눈을 사로잡지만, 모든 상황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물론 인물의 감정 변화에도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영화를 구성하는 '드라마'가 부족하다보니 기억에 남는 OST가 없다는 것도 필연적인 결과.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동화를 선보였던 디즈니의 기존 작품과 달리, '겨울왕국2'는 완전히 저연령층 관객만을 타깃으로 한 영화다. 특히 노골적으로 영화의 미디어믹스 수익을 노리는 장면들도 많은데, 엘사가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많은 옷을 갈아입거나 전작의 명장면을 과하게 의식한 듯한 연출들도 다수 느낄 수 있다. 특히 작위적인 연출이나 서사상의 구멍들이 너무 많아 어른들도 쉽게 즐기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디즈니는 올해 총 두 편의 후속작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와 '겨울왕국2'를 선보였는데, 두 작품 모두 전작의 평가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문제는 명확하다. 전작의 흥행에 떠밀려 급급하게 후속작을 선보이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미디어믹스를 비롯한 영화의 파급 효과만을 생각한 것이 그 이유.

 

'믿고 보는 디즈니'라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사정'이 자꾸만 개입하면서 디즈니의 감성도 옛날에 비해 무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엘사의 드레스를 입은 어린이 관람객들이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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