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수출 효자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중독물질로 낙인 찍혔다. 정부의 게임육성 이면에는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성공한 게임회사 경영자는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게임은 마약 취급받는다.
정부는 육성이라는 당근과 규제라는 채찍을 써가며 게임을 '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놓았다. 사건만 터지면 사회의 책임을 게임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외화 벌어 오는 '게임산업'은 환영하지만, 게임이 일상과 어울리는 '게임문화'는 배척한다. 게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어왔다.
급기야, 올해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또 다른 탄압의 명분이 제공됐다. 총 10부작으로 진행될 이번 기획은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를 맞아 그간 한국게임이 받아온 게임 규제의 역사, 그리고 게임질병 코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아보았다.
목차
1부: 왜 게임은 탄압받는가?
1)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게임은 탄압받았다! 게임규제 50년사
2) 문제는 미디어! 게임을 향한 비틀린 프레임
3) 거짓과 증오를 이용하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게임 죽이기
2부: 게임 질병 코드, 또 다른 탄압의 명분
1) WHO의 헛발질, 논란과 엇갈린 반응
2) 문화부, 복지부, 여성부의 서로 다른 셈법
3) 무의미한 민간협의체, 기울어진 운동장 인사구성 논란
3부: 진짜 의도는 이것! 게임 질병코드 본질은?
1) 질병코드의 본질은 게임이 아니다
2) '마약 중독자 만드는 도파민 괴담?' 게임 마약론의 함정
3) 과잉 약물치료. 게임장애 근본적 대안 'NO'
4) 결론은 돈! 중독세 논란으로 바라보는 '돈의 전쟁'
5부: 문체부, 복지부, 여가부의 서로 다른 셈법
작년 5월 WHO는 '게임 이용 장애'를 공식 질병에 포함하는 제 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번에 통과된 11차 개정안은 오는 2022년 1월부터 각국에 권고 효력이 발생하며, 국내 도입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여기에 게임 이용 장애라는 같은 이슈를 두고 정부부처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게임 이용 장애에 직접 관련된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작년 7월에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정부와 민간위원이 모여서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민관협의체가 구성됐다.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섰을 정도로 부처가 크게 충돌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부처는 문체부와 보건복지부다. 여기에 국내 대표 게임규제로 손꼽히는 셧다운제를 맡고 있는 여성가족부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임 이용 장애에 관련해 세 부처의 행보를 짚어보자.
문체부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체부는 2018년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결정이 나기 전에도 WHO에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삼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한 바 있다. 당시 게임을 즐기는 한국 청소년 2,000명을 5년 간 추적 조사한 연구보고서를 함께 보냈는데, 청소년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게임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 태도,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문체부는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문체부 박양우 장관은 작년 3월에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게임산업에 대해 일반 국민들도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게임은 부작용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이 많다"라며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밝혔고, 올해 7월에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도 "게임은 현재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중요한 문화이자 레저라고 생각하고,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문체부는 작년부터 친게임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개인이 만든 플래시게임이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단되자, 문체부는 '비영리게임 심의 면제' 제도를 시행해 인디게임 육성에 나섰다. 게임업계가 오랜 시간 동안 요구했던 온라인게임 결제한도도 완화시켰다. 아울러 박 장관은 취임 직후 주요 게임사 대표 및 협회장과 간담회를 가졌고, 지스타에도 방문하는 등 게임업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스타에 문체부 장관이 방문한 것은 2015년 후 4년 만이었다.
지스타 전에 열린 게임대상에서 박 장관은 "게임은 질병이 아닌 건전한 여가 문화다. 정부는 게임산업진흥법을 전면 개정하고, 게임업계가 성장과 도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가 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문체부는 게임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며, 국민의 여가이자 경쟁력 있는 문화산업이라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복지부 "게임중독은 질병이며 대책 마련하겠다"
문체부와 대척점에 있는 부처는 보건복지부다. 보건복지부는 WHO 결정 전부터 게임 질병코드를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18년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대해 묻는 의원 질의에 "기본적으로 동감한다. WHO에서 확정적으로 정해지면 바로 받아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이슈 전부터 게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게임을 술, 도박, 담배와 묶어 4대중독물질로 관리하겠다는 '게임중독법'에 찬성한 바 있다. 2015년에는 게임 및 게이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게임중독 예방 광고를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아울러 지난 5년 동안 진행한 '인터넷∙게임중독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연구', 소위 게임 디톡스 사업과 함께 게임중독에 대한 다양한 연구과제를 진행해왔다.
지금도 게임 질병코드에 대한 보건복지부 입장은 확고하다. 보건복지부는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포함한 ICD 개정판을 통과시킨 직후 국내 도입을 준비하겠다며 협의체를 만든다고 전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권준옥 건강정책국장은 "협의체 운영을 통해 관련 분야 전문가 및 관계부처 등의 의견을 나누고 향후 일정(22년 국제질병분류 공식 발표 및 2026년으로 예상되는 국내 질병분류체계 개편)에 대비하여 중장기적 대책을 논의하고 준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문체부는 보건복지부가 주도하는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고, 결국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현재 운영 중인 민관협의체가 결성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보건복지부는 게임 질병코드는 자신들의 소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작년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게임 중독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보건복지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여가부 "청소년 보호 관점으로 접근하겠다"
마지막으로 여성가족부는 게임 질병코드에 관련해선 문체부나 복지부보다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다만 게임 이용 장애를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상은 청소년이며,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보호 업무를 맡고 있는 부처다. 민관협의체에도 여성가족부 관계자가 정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이정옥 장관은 작년 10월에 열린 국정감사 현장에서 "청소년 보호 관점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는 게임 질병코드에 대한 입장을 적극 피력한 적은 없으나, 게임에 우호적인 부처는 아니다. 오히려 규제 쪽에 더 가깝다. 게임중독법 전에 발의되어 업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1% 징수법(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게임사 매출 최대 1%를 '중독치유기금'으로 징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됐다면 여성가족부는 게임 규제 관련 예산과 권한을 가져갈 수 있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는 대표적인 게임 규제로 꼽히는 셧다운제 주무부처이며, 셧다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진선미 전 장관은 작년 1월에 열린 기자간담회 에서 "중학생에게 밤에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이 게임산업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게임업계가 셧다운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모바일까지 확대될까 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 밝혔다.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된다면 셧다운제도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다. 게임을 과하게 이용하는 것이 질병이 된다면 셧다운제도 '청소년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한다'라는 확실한 명분을 갖게 된다. 현재 문체부와 여가부는 셧다운제 개선을 논의하며 관련 협의체를 구성 중이다. 이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된다면, 논의 방향이 셧다운제 강화로 기울어질 우려가 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신중한 접근과 합리적인 결론 필요
지금까지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주요 정부부처 입장을 살펴봤다. 문체부는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고 있으며, 복지부는 찬성한다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여가부는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 있다. 세 부처는 모두 작년 7월에 구성된 민관협의체에 참여하고 있으며, 민관협의체는 질병코드 도입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각각 듣고, 올해 초부터 질병코드 도입 문제와 관련한 연구를 3단계에 걸쳐 진행한다.
질병코드를 도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국내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시행하는 게임 관련 정책도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 만약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되면 게임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기에 정부에서 진행하는 진흥책에도 제동이 걸릴 우려가 있다.
게임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엄청난 파급효과가 발생하리라 예상된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신중한 접근과 누구나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작년부터 활동에 들어간 민관협의체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글/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이번 공동기획은 한국게임미디어협회(KGMA)와 한국게임기자클럽(KGRC)에서 2020년 신년특집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KGMA 소속 15개 매체 편집장과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표편집자 이덕규 게임어바웃 국장, 김미희 게임메카 기자, 김성렬 게임포커스 기자, 김한준 지디넷뉴스 기자, 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박상범 게임뷰 기자, 이원희 데일리게임 기자, 임영택 매경게임진 기자, 허새롬 PN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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