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뭐든지 말하면 이야기를 만들어 줄게, AI와 만들어나가는 텍스트 게임 'AI Dungeon'

등록일 2020년05월26일 13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명인 이세돌의 대결을 통해 우리는 AI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후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AI 모델들도 쏟아져 나왔는데, 기자로 일하는 입장에서는 글을 대신해서 완성해주는 언어 관련 AI 모델이 꽤나 인상깊었다. 2019년 2월, OpenAI에서 새로운 언어 모델 'GPT-2'를 발표했는데, 논리적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의미를 전달하고 읽을 수 있는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 모델을 뉴스 제작이나 각종 마케팅 활동에 활용하려고 고민하던 중, 해외의 두 개발자가 AI 언어 모델을 게임에 접목시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탄생하게 된 것이 AI 기반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인 'AI Dungeon(이하 AI 던전)'. 문단을 작성하면 이에 맞는 문장들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OpenAI GPT-2' 모델의 기능을 활용해 플레이어가 아무 문장, 상황, 대사를 입력하면 AI가 스스로 판단해 그에 이어지는 상황을 설정해준다. 흡사 AI와 TRPG(테이블 탑 RPG)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좋다.

 

뭐든지 말만 하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세계관과 이름을 입력하면 그럴듯한 프롤로그가 생성된다
 

'AI 던전'은 텍스트로만 진행되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장르 특성상 별도의 조작 키는 없으며, 텍스트 입력을 통해 모든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외형 자체는 텍스트 게임이지만 좀더 본질을 들여다보면 '던전앤드래곤' 등의 TRPG에 가깝다.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이나 상황, 대사 등을 입력하면 게임 마스터의 역할을 하는 AI가 이에 맞춰 각기 다른 상황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게임의 진행 방식.

 

흥미로운 점은 마치 실제 사람과 TRPG를 즐기듯이 어떤 규칙이나 한계에 구애 받지 않고 상상하는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 내에서는 판타지, SF, 좀비, 아포칼립스 등 기본적인 세팅을 제공하지만 상상력이 좀더 풍부하다면 게임의 기본적인 세계관부터 설정할 수 있다. 시험 삼아 커스텀 모드에서 빌런과 사투를 벌이는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를 설정했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30분 넘게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판타지 세계관에 로봇을 등장시켰다. 이후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다른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AI의 성능이 점차 발전한다는 것 역시 'AI 던전'의 매력 요소다. 세계관이나 설정이 독특해 데이터베이스가 적은 경우에는 Ai가 고장 난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판타지나 좀비물 등 대중적인 소재로 게임을 진행하면 실제 사람 같은 디테일한 상황 묘사나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즐길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AI 던전'에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경우가 많은 탓에 유독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특정 주제에 한해서만 AI가 고성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더라. 인간의 본능은 만국 공통인 모양이다.

 

AI 모델 특성상 게임 내에서는 영어 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별도의 번역 프로그램을 함께 사용하면 플레이에 큰 지장은 없다. 실수로 단어를 잘못 입력하더라도 게임 내에서 올바른 단어로 교정하여 인식하며, 의도와 다르게 이야기가 흘러가거나 명령문을 잘못 입력한 경우에도 아무런 부담 없이 되돌릴 수 있다. 부담없이 AI가 이끄는 대로 합을 맞춰나가는 재미를 느껴보자.

 

게임 마스터로서는 조금 부족한 AI

 


 

게임 마스터 역할을 하는 AI와의 놀이는 처음에는 흥미롭지만 오래 진행할수록 몇몇 단점들도 부각된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상황에 대한 AI의 이해도가 부족하거나 설정 등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가령 게임 내에서 드래곤을 무찌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고 할 경우, 드래곤과의 결전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전투 역시 몇 번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한 문단 이내에 끝나는 경우도 대부분.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나 성취감 등의 감정을 아직 AI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게임 중에서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이 없다는 것도 실제 텍스트 게임이나 TRPG에 비하면 김이 새는 부분.

 

특히 이전에 입력했던 내용을 AI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제대로 된 텍스트 어드벤처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동료가 죽어 복수를 위해 오크 캠프를 찾아가고 복수에 성공했지만 다음 문단에서는 동료의 시체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모험이 이어지거나 죽었던 인물이 다시 살아나서 등장하는 등의 오류가 잦다. 플레이어가 지속적으로 AI에게 현재의 상황을 인식시켜줘야 겨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I 대신 YOU를 사용해야 행위의 주체와 플레이어가 일치한다

 

게임을 즐길 경우 1인칭보다는 2인칭, 3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게임 마스터가 플레이어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나)는 '당신'이라고 불리기 때문. 그마저도 가끔씩 게임 내의 제 3의 인물로 통제권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되도록이면 캐릭터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특정 행동(Do)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또한 추후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AI가 자기 학습을 거친 뒤에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AI의 무한한 가능성,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게임

 

'AI 던전'은 인공지능 언어 모델을 게임에 적용해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이다. 정해진 결말이나 사건 등도 없기에 판타지 세계관에서 로봇이 등장하는 등 엉뚱한 이야기부터 나름대로 진지한 이야기까지도 마음대로 펼쳐나갈 수 있는 것이 장점.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한 탓에 AI가 제대로 게임을 이끌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기존의 텍스트 기반 게임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당장의 성과보다는 앞으로의 활용 방안이 더욱 기대된다. 최근 엔씨소프트는 자사 게임 내에 고성능 AI를 적용해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대응하는 등의 기술을 연구 중이며, 해외에서도 AI를 활용해 진짜 사람 같은 NPC나 적들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AI 던전'은 고성능 AI가 바꿀 새로운 게임 이용 방식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AI는 점차 성장한다. 구글 플레이에서는 국가 제한 없이 자유롭게 'AI 던전'을 다운로드해 플레이할 수 있으니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를 느껴보자. 되도록이면 야설보다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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