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업계는 '미르의 전설',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등 일찌감치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게임들의 큰 성공 이후 '중국 바라기'가 됐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성공 신화는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과 사업 전략은 최근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 정부의 게임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 중국 게임사들의 게임 퀄리티 상승이 주 원인이지만, 판호 미발급, '한한령'이라는 외교적 갈등이 큰 벽으로 작용했다.
2023년 현재, 국내 게임 업계가 바라보는 중국 시장은 '내기만 하면 성공하는 홈그라운드'가 아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수 년 동안 국내 게임에 대한 외자 판호 발급이 0건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중국 시장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닌 정부라는 큰 손이 개입하는 예측 불가능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본격화된 '한한령' 이후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중국 시장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본격화된 모바일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시장과 업계의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중국과 대만 등 극히 일부 권역을 제외하면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국내 게임 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잠깐의 호황기를 거쳤다. 당시 많은 게임사들이 역대급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고, 개발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연봉 인상 러쉬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코로나 특수'에 불과했다. 2023년 현재 대부분의 게임사들은 실적이 크게 하락하고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내수 시장의 성장 둔화, 세계 최대 규모 시장인 중국 진출의 불확실성은 국내 게임 업계의 체질 개선을 앞당기는 모양새다.
최근 국내 게임사들의 게임에 대한 외자 판호가 나오고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해외 단체 관광을 허용하는 등의 움직임이 보이자 '한한령' 터널이 끝나가고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반대로 이전처럼 퀄리티 상승 없이 그저 '중국 바라기'로만 남아 있어서는 냉혹한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석도 지지를 얻고 있다.
단순히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수 년 사이 큰 폭으로 성장한 중국 게임사들과 중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퀄리티가 그만큼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게임 업계는 최대 시장인 중국을 배제하고 대체하는 것이 아닌, 중국 진출을 위한 퀄리티 업과 대비를 함께 하며 중국 시장 외 다른 대안도 찾아 나서는 상황이다.
반대로 중국의 내수 시장은 국내와 같이 모바일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성장했고, 국내에서 '한한령'이 화두로 떠오른 시기 즈음 국내를 포함한 동아시아 시장에 적극 진출했다. 또한 현재는 타 권역으로의 진출도 거리낌없이 해 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중국 게임사들은 정부의 규제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내수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진출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호요버스다.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고 거리낌 없이 투자하며, 부쩍 높아진 게임 퀄리티로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 게임 업계가 외자 판호 미발급과 '한한령'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중국 게임사들 또한 내자 판호 미발급, 강력한 게임 규제 등의 이중고로 인해 활로를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한령'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낙관적인 전망 그리고 판호 발급 중단 뉴스까지도 새로이 보도 되는 가운데, 이번 기획에서는 '한한령' 영향력 아래 있던 국내 게임 업계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하며 활로를 모색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성장 한계 다가오는 모바일 플랫폼, '스팀' 및 콘솔로의 진출 도모
2023년 현재까지도 국내 게임사들의 주력 플랫폼은 모바일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한령'이 본격화되고 글로벌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모바일게임만으로는 저변 확대에도 조금씩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리니지 라이크'로 대표되는 모바일 MMORPG 장르의 내수 시장 경쟁과 포화 상태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 있어 국내 게임사들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2023년 상반기에만 10종 가까이 '리니지 라이크' 스타일의 MMORPG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이전에도 다수가 서비스 되었지만, 대만 등 국내와 시장 기조와 게이머들의 성향이 유사한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게임은 없었다.
이에 시야를 넓혀 보다 적극적으로 타 플랫폼으로의 확장과 다변화를 노리는 게임사들도 여럿 등장했다. 이러한 플랫폼 확장은 한계가 있는 국내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한편,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을 준비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인 것이었다.
특히 일부 국내 게임사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선제적으로 '스팀' 플랫폼으로의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각자 게임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스팀'에 론칭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러한 움직임은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가 전례 없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보다 본격화됐다. 국내 게임사들이 모바일 플랫폼에서 시야를 돌려 '스팀'과 같은 글로벌 게이머들이 모이는 플랫폼을 '기회의 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중에서도 넥슨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누적된 퍼블리싱 노하우와 글로벌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팀' 진출에 적극적인 곳 중 하나다. 그만큼 '스팀'이라는 플랫폼이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넥슨은 '베일드 엑스퍼트', '퍼스트 디센던트', 'DNF Duel', '더 파이널스', '워헤이븐' 등 체급과 장르가 다양한 작품들을 '스팀'에 선보이면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중에서도 올해 화제작 중 하나였던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이러한 진출 도전의 과실(果實)로 평가할 수 있는 타이틀이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빅 & 리틀' 전략 중 '리틀'에 속하는 게임이다. 기본적인 체급이 AAA급을 지향하는 게임이 아니며, 당초 첫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모바일게임으로 기획됐다. 한 차례 프로젝트가 좌초되었다가 다시 발굴 되어 PC로 전면 재개발돼 기간 또한 상당히 오래 걸렸다.
하지만 '데이브 더 다이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호평을 받으며 효자 IP로 자리매김 했다. 긍정적인 인지도, 프로젝트 투자 대비 수익 등 모든 측면에서 이상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넥슨의 꾸준함이 있었다. 넥슨은 '이블 팩토리', '탱고 파이브: 더 라스트 댄스', '야생의 땅: 듀랑고' 등 수익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이색적이고 독특한 게임들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노하우를 쌓았고, 그 결과 '빅 & 리틀'로 이원화된 게임 개발 전략이 비로소 성공적인 출발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인디 게임부터 AAA급 액션 게임까지 두루 론칭하며 경험 축적, 네오위즈의 사례
네오위즈 또한 일찌감치 콘솔 및 '스팀' 플랫폼으로의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게임사다.
네오위즈는 과거 '피망'을 통해 서비스 했던 '피파온라인' 등의 게임들을 떠나 보내면서 회사의 체급이 크게 줄었는데, 동 시기 다른 게임사들이 모바일게임으로 체질 전환에 힘쓴 것과 달리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보고 장기적인 투자에 나선 곳이다.
네오위즈는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팀을 발굴해 자사에 편입시키면서 PC 및 콘솔 플랫폼 진출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쌓아 나갔다.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와 '산나비', '사망여각'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는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수년 동안 이어진 네오위즈의 도전과 노하우가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우선 네오위즈는 로키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유명 리듬게임 IP '디제이맥스'의 최신작 '디제이맥스 리스펙트'(PS4)와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스팀)을 각각 론칭, PC 버전 기준 본편 기준 100만 다운로드, DLC 포함 4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또 네오위즈는 라운드8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소울라이크 액션 RPG 'P의 거짓'을 멀티 플랫폼으로 9월 출시하며 저변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PC & 콘솔 플랫폼에서의 개발 노하우와 퍼블리싱 경험을 동시에 쌓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미래가 유망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스팀'을 비롯한 타 플랫폼 진출에 노력을 기울이는 게임사들은 다수다. '이터널 리턴'의 카카오게임즈 & 님블뉴런이 대표적이다.
양사는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높아진 '스팀'의 접근성을 기반으로 수년 전부터 얼리액세스로 출시해 게임을 개선 및 서비스 해 왔으며, 그 결과 '이터널 리턴'은 정식 출시로 전환한 이후 대격변 업데이트를 통해 다시 유저들을 불러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스팀' 뿐만 아니라 콘솔 플랫폼으로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출시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펄어비스는 AAA급 지향의 신작 액션 게임 '붉은 사막'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 '승리의 여신: 니케'로 '원히트 원더' 리스크에서 벗어나 실적 개선에 성공한 시프트업은 PS 진영 독점작이자 액션 게임인 '스텔라 블레이드'를 개발 중이다.
이와 같은 국내 게임사들의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지는 탈 모바일 플랫폼 내지는 투 트랙 전략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존 모바일게임 시장의 강점과 중국 진출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으면서도, 유망한 플랫폼으로의 진출을 도모하며 개발 역량 강화와 글로벌에서의 인지도 확보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성공 찾아 신흥 시장 공략 나선 게임사들
중국 시장의 불안정한 상황과 진출 불확실성에 따른 의존도 감소의 필요성은 이미 수년 전부터 대두되어 왔다. 그만큼 타 권역, 국가로의 성공적인 진출과 신흥 시장 공략은 국내 게임사들에게 주어진 큰 숙제이자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이러한 신흥 시장 공략의 필요성을 깨닫고 적극 나서 성공한 대표적인 게임사가 바로 크래프톤이다.
글로벌 시장 전체를 두고 찾아봐도 비교 대상이 많지 않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모바일 플랫폼에서의 슈팅 게임 절대강자로 군림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지금의 크래프톤을 있게 해준 효자 IP다.
이중에서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크게 성공했는데,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인도 버전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또한 현지 젊은 세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는 2021년 7월 출시된 후 1년여 만에 누적 이용자 수 1억 명을 돌파하고 현지 앱 매출 순위 1위를 차지했다. TV를 통해 생중계된 e스포츠 경기는 동시 시청자 수 2400만 명, 전체 시청자 수 2억 명을 기록하는 등 '국민 게임'의 반열에 올랐다.
그 사이 국가 차원에서의 서비스 중단이라는 암초도 만났지만, 크래프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별도로 게임을 현지 시장에 맞춰 새로이 선보이며 서비스를 정상화했다. 또 인도 e스포츠 대회 재개하거나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등 인도 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크래프톤은 현지에서의 사회공헌 활동, 정서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인도의 심장소리' 다큐멘터리 공개 등을 통해 인도의 '국민 게임'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크래프톤의 인도 시장에서의 성공은 현지 시장 및 고유의 문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 모바일 기기의 대대적인 보급과 통신 인프라의 개선 등 환경적 요인이 잘 어우러지며 만들어진 것이다.
인도는 타 국가와 달리 음주 문화가 일반적이지 않아 소셜 요소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장이다. 이 때문에 싱글 플레이 게임보다는 함께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레이 게임이 주류다. '배틀그라운드'는 협동과 생존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임인 만큼 친구 및 지인들과 함께 교류하는 사교 활동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가 대체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크래프톤은 글로벌 버전에서의 인기가 높은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인도의 정서나 문화와 맞지 않으면 과감히 제거하고, 인도의 중요 기념일을 축하하는 이벤트와 인도만의 특색이 담긴 스킨, 아이템을 업데이트 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세계 3위 시장 일본을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 삼다… 국산 서브컬처 게임의 성공 사례들
그동안 국내 게임사들은 중국 시장에서 눈을 돌려 일본 시장으로의 진출을 꾸준히 타진해 왔다. 이는 일본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모바일게임 시장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던 시장이며, 동아시아권에 속한 이웃나라인 만큼 종교, 정서,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공유되는 경향이 있어 진출에 부담이 적다는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의 국내 게임 수출 국가별 비중 비교(2020~2021년)에 따르면, 일본으로의 수출 비중은 2020년 3.8%에서 2021년 10.5%로 6.7%p 증가했다. 유럽으로의 수출 비중 또한 2020년 8.3%에서 2021년 12.6%로 4.3%p 증가했다.
또 모바일 시장 데이터 분석 기업 센서타워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8월까지 일본 시장의 모바일게임 수익은 90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모바일게임 수익의 18%다. 또한 일본의 모바일게임 RPD(Revenue Per Download)는 21달러로, 미국보다 4배나 높은 수치다.
이처럼 매력적인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일본 시장은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은 변화가 거의 없고 서비스를 시작한 지 오래된 게임들이 상위권에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경직된 시장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몬스터 스트라이크'나 '퍼즐앤드래곤', '페이트/그랜드 오더'와 같이 장기간 인기를 끄는 게임들이 다수이며, 비교적 최근에서야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원신' 등 완성도 높은 서브컬처 게임들이 상위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은 국내 게임사들이 주력으로 개발하던 MMORPG의 인기가 높지 않은 시장이기도 하다. 국내와 달리 수집형 RPG, 캐주얼, 퍼즐 등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게임사들은 일본 공략에 애를 먹었다. 국내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인식되는 MMORPG의 인기가 높지 않고, 다른 장르라고 하더라도 현지 유저들을 만족시킬 만한 완성도도 나오지 못해 외면 받았다. 몇몇 게임이 반짝 성과를 달성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블루 아카이브'와 '승리의 여신: 니케'는 달랐다. 반짝하고 마는 성공이 아닌 장기 흥행 궤도에도 올라 서브컬처의 본고장 일본 현지 공략에 성공한 몇 안되는 게임으로 평가된다.
특히 '블루 아카이브'는 프로젝트 구상부터 '일본에서도 통할 만한 미소녀 게임'으로 기획되었으며, 넥슨 산하의 넥슨게임즈에서 개발했음에도 국내가 아닌 일본에 선행 서비스를 하는 등 시장 공략을 위한 여러 도전이 담긴 타이틀이다. 또 최근에는 일본 및 국내,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발판 삼아 중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동안 국내 게임사들이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꺼내 들었던 카드들은 다양했지만 성공한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2017년 '소녀전선'과 '붕괴3rd' 등의 게임을 통해 증명된 서브컬처 게임의 시장성에 주목하고, 이를 발판 삼아 수년 동안의 개발 경험 축적을 이루어내며 성과를 이루어 냈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더불어 일본 시장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이를 교두보로 삼아 글로벌 진출에 나서는 움직임도 유의미할 것이다.
일찌감치 중국 외 시장 공략에 성공한 컴투스와 데브시스터즈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와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도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성공한 케이스다. 두 게임의 공통점은 바로 일찌감치 중국 외 국가에 적극적으로 진출, 국가와 권역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인지도를 쌓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점이다.
컴투스는 해외 시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어느 게임사보다 일찌감치 글로벌 진출에 공을 들인 게임사다. 대표작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는 권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국가에 론칭돼 현재까지도 롱런하고 있다. 2017년에는 국내 모바일게임 중에서는 최초로 단일 게임 누적 해외 매출 1조 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 IP는 2013년 첫 등장한 이래 10년 동안 243개국에 서비스돼 누적 2억 명 이상의 유저를 보유한 프렌차이즈로 성장했다. 2022년 1월부터 2023년 7월까지의 해외 매출 비중 순서를 살펴보면 미국, 일본, 대만, 태국, 캐나다, 홍콩, 영국 순이다. 해외 매출은 55%, 국내 매출은 45%다.
데브시스터즈는 2014년 '라인 쿠키런'으로 첫 해외 진출을 타진한 후 '쿠키런: 오븐브레이크'로 일본,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IP를 성장시켰으며, '쿠키런: 킹덤'으로 서구권 공략에도 적극 나선 바 있다.
주목할만한 신흥 게임 시장 사우디아라비아... 폭발적인 성장 예상돼
크래프톤이 선점하면서 주목을 받은 인도 외에도 전반적인 IT 기술의 발달과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중동, 북아프리카, 남미 지역 또한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흥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장조사 기업 니코 파트너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연합국, 이집트 등으로 구성된 중동·북아프리카 3개국의 게임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18억 달러(한화 약 2조 3747억 원)다.
니코 파트너스는 3개국의 시장 규모가 연평균 성장률 10%를 기록해 2026년 28억 달러(한화 약 3조 694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더불어 게임 이용자 수 또한 2022년 기준 6740만 명에서 연평균 성장률 6%를 기록해 2026년에는 8730만 명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집트는 중동·북아프리카 3개국 중 게임 이용자가 가장 많은 국가이며 시장 성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 규모가 3개국 중 가장 큰 58.7%를 차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은 3개국 중 사용자 당 평균 수익(Average Revenue Per User, ARPU)이 가장 높다.
점차 커져가는 중동 지역의 게임 시장, 국가 중에서는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주목할 만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디오 게임 시장 수익 규모는 2017년 5억 4640만 달러(한화 약 7208억 원)에서 2027년에는 24억 9800만 달러(한화 약 3조 2966억 원) 규모로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내 전체 게임 이용자 수는 2021년 기준 2100만 명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1년 동안 41% 성장한 수치다. 이처럼 큰 폭으로 게임 이용자 수가 증가한데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이 큰 영향을 끼쳤다. 여가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동안 게임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게임 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과 적극적인 투자도 있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경제 다각화를 이루기 위한 국가적 전략,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로 게임이 낙점됐기 때문이다.
특히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10년간의 포괄적인 투자 계획, '국가 게임 및 e스포츠 전략'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게임 및 e스포츠에 대한 투자와 인기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 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는 새비 게임즈 그룹을 출범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게임 분야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378억 달러(한화 약 49조 8430억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실제로 새비 게임즈 그룹은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에 대한 공격적인 지분 투자를 이어가며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아직까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게임사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미지의 시장을 개척하는데는 분명 리스크와 비용이 필요하며, 일본과 같이 같은 문화권에 있는 시장이 보다 진입하기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신흥 시장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몇 년 사이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지 진출에 적극 나서는 것을 검토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다만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앞서 인도의 사례와 같이 무엇보다도 문화, 종교, 언어, 관습 등 민감하게 여겨질 수 있는 요소를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일본, 인도 등 중국 외 시장에서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제는 단순한 로컬라이징 후 글로벌 원빌드 출시 전략으로는 더 이상 현지의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는 시기가 됐다.
완성도 높은 로컬라이징과 다른 게임 대비 매력적인 게임성은 기본이며 결제 수단 및 환경, 현지만의 독특한 문화와 게이머들의 성향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또 특히 뭉뚱그려 권역으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닌 국가 별로 파악하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만이 신흥 시장 공략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한한령', 더 이상 '중국 바라기'로 남아서는 안될 것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게임 업계의 활로 모색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한한령' 또한 당연하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즉 이전처럼 '중국 바라기'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때다.
중국 정부는 부정하지만, 국내 게임 업계가 뼈저리게 느낀 한한령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6년 째다. 최근 중국 국민들의 단체 관광이 허용되면서 앞으로 훈풍이 예상된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4월부터 또다시 판호 발급이 중단됐다는 비보도 전해졌다. 게임 업계는 나름의 '살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드'의 철회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판호 발급 제한과 '한한령'은 언제든 중국 정부가 다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당분간,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쭉 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높다. 그런 만큼 더더욱 중국 의존도를 줄여 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국내 게임 업계는 중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 단순히 크게 성공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또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점을 고려해서라도 그렇다. 현재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다. 그렇기에 중국 단 하나만을 바라보는 것에서 중국도 바라보는 투 트랙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 '소실대득(小失大得)'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음악, 드라마 등 게임 외 콘텐츠 분야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장했고, 제조 업계도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인력을 인도 등 타 국가로 옮겨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처럼 게임 업계도 '중국 바라기'로 남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체질 개선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함양을 위해 보다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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